# 30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3화
처음은 느리지만, 그 범위는 방대하다.
입자 하나가 분열해 그것이 두 개로 나뉜다.
두 개는 네 개로 나뉘고 네 개는 여덟 개로 나뉜다.
그 속도는 점차 빨라졌고, 정확히 나를 기준으로 일대의 모든 마나를 터뜨리며 분해해 나갔다.
본래 마법사가 마법을 쓰기 위해선 자신의 마나를 촉매로 자연 마나를 끌어모아 발현하는 식으로 마나를 아낀다.
당연 이렇게 되면 결계를 부숴도 돌아갈 수단이 사라지지만.
그 정도 마나도 감당 못 하면 9서클이라 부를 자격도 없으리라.
-그만!! 그랬다가 연쇄반응으로 마나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게 된다면!
하지만 페르세르크는 일대의 마나가 사라지는 것보다 이것으로 생길 엄청난 여파를 두려워했다.
마나는 어느 곳에든 존재하니 연쇄폭발은 끝도 없이 퍼져 나갈 테니까.
다만 나는 그런 그녀의 걱정을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뭐야, 이런 것도 몰라? 마법 다시 배워와야겠네.'
-이익!
분노한 그녀가 내 귀를 잡아당기며 악악 소리를 질러댔다.
반대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요시아는 그저 멍한 얼굴이었다.
퍼엉!!!
이윽고 임계점까지 도달한 연쇄 분열이 한계를 넘어섰고 급기야 거대한 광풍을 동반하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그 속도를 더더욱 올리며 요시아를 그대로 안아 들었다.
"가자."
"어......어딜요?"
"어딜 가긴, 집 가야지. 평생 여기서 살 거냐?"
"어......어떻게......"
"잘 봐."
무어라 반박할 거리를 찾듯 입술을 오물거리던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고요하던 내 몸 안에서 그녀가 느끼기에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며 나를 기준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어떻게 마법진이......"
마나가 분해되어 완전히 사라져버린 공간에서 펼쳐지는 중첩 마법에 기겁한 듯 그녀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꽉 잡아라. 넘는다."
"무슨?! 꺄악!"
[8서클]
[공간 전이]
투웅!!!
이미 마나가 증발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간을 내 체내에 숨어있던 마나들이 뒤덮으며 마법 술식을 만들어냈고.
요시아는 마법을 사용하는데 영창을 개 무시해버리는 내 작태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진 연동 고속 무영창?!"
기겁하는 그녀를 둘러맨 채로 공간이 뒤바뀌기 전. 나는 미리 준비시켜둔 마법진 한 장을 허공에 던졌다.
쩌적......쩍!
그리고, 뱀파이어 로드가 설치해둔 결계가 마나 입자분열에 휘말려 순식간에 분해되기가 무섭게 나는 일대의 마나 분열 현상을 담아 모조리 공간을 뒤바꿔버렸다.
마나 입자분열이 벌어지고 있는 이 공간 채로 옮긴다면 어찌 될까.
내 의도를 깨달은 페르세르크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대참사......데이비 설마.
바로 봤다.
퍼엉!!
이윽고 순식간에 공간이 뒤바뀌며 폐허가 되어있던 고성은 순식간에 익숙한 마법 학교의 건물로 바뀌었다.
그리고, 샤쿤탈라 전체로 마나 분열 현상이 퍼져 나갔다.
파바바바바방!!
계속되는 폭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속도로 전이되는 폭발을 보며 나는 맨다리에 힘을 주고 단순 육체 능력으로 요시아를 안아 든 채 그대로 허공에서 착지했다.
쿠웅!!!
당연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내가 낙하하면서 지면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지만, 다행히 나와 요시아가 나타나는 모습을 본 이는 없었다.
애초에 내가 나타난 곳은 사람이 없던 오래된 연구동, 즉 요시아의 삼촌이던 라스칸 프랑소스가 있던 곳이니 말이다.
파바바바박!!
샤쿤탈라는 보통 장소보다 마나가 풍부한 곳이기에 그 여파는 더욱 거대해졌다.
-대륙의 마나를 모조리 없애버릴 생각이야?!
"아니, 샤쿤탈라 내부의 마나만 깡그리 없앨 거야."
물론, 마나로 움직이거나 작동하는 도구들 대부분이 먹통이 되어버릴 테고, 그에 따른 대량의 자금손실이 생기겠지만.
내 알 바는 아니다.
"그렇지?"
-그대의 개인연구실에 그걸 터뜨리면 아주 유감이겠어.
"그렇게 하면 심연에서 낚아 올린 촉수 생물체와 24시간을 같이 있게 해줄 수 있다."
-끔찍한 소리!
원료만 있으면 끝없이 분열하는 핵분열과 다르게 마나 입자분열은 한계가 존재한다.
의지를 가진 무형의 힘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일대 공간을 단절시키고 확산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터지는 범위를 제대로 계산하려면 정확한 수식 계산과 정확한 확산 속도 제어가 필요했다.
어지간한 마법사가 이런 짓을 한다고 한다면 말이다.
개소리하지 말라며 헛웃음을 흘리리라.
멍한 얼굴로 내게 안긴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요시아는 붉게 변한 눈동자를 끔뻑거리며 입을 쩍 벌렸다.
"대체 무슨 짓을."
"마법제 중간에 이런 대규모 재난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게?"
"그야 당연히 중단......세상에, 미쳤어요?"
기겁한 듯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요시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모르는 일이지. 그냥 자연재해야 그런 건 누굴 탓하기도 힘들지."
시치미 떼면 누가 했는지 알게 뭐겠는가.
"어서 들어가 봐. 널 기다리느라 눈알 빠지고 있는 녀석들이 있으니."
마법제에 뜻하지 않은 테러를 감행한 이상 행사는 중단될 것이고. 이번 마법제는 유야무야 넘어가거나 사태가 진정된 후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럼 이제 내가 나서는 거지.
빽은 뒀다가 이런 데 써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대 현자 헬리슨의 한마디 정도면 마법제를 다시 금방 열게 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내 말에 요시아는 침묵한 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선생님......대체 정체가 뭐예요? 방금 그거......대규모 공간 전이 마법이죠? 나 알아요. 책에서 봤어......이론상으론 존재하지만, 인간의 뇌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8서클 마법......."
그 말인즉슨 내가 8서클 마법사 이상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숙제를 그렇게 날로 처먹으려 들지 마라."
담담하게 말하며 그녀의 등짝을 시원하게 때려주자 요시아는 비명을 지르며 내게서 물러났다.
"꺄악! 또! 또!"
"눈 색은 바꿔놨다. 조만간 사람을 통해서 내 피를 보내주마. 잊지 마라. 절대 사람 목덜미 물지 마. 뱀파이어의 각성에는 단계가 있다."
정확히는 뱀파이어 로드로서의 각성 단계지만.
"하지만......저는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라고요! 제가 갑자기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된 것도 이해할 수가 없는데!"
"적탑의 장로인 율리스님을 통해서 편지 정도는 보내주마. 정말 힘들 때 한 통씩 보내. 조언을 적어 보내줄 테니."
내 말에 그녀는 뭔가 굉장히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꾹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 말에 그녀는 혼란스런 얼굴로 나를 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시는 거예요?"
"가야지. 언제까지 소꿉장난이나 하고 있을까."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직감한 것일까.
그녀는 본래 같으면 묻지 않을 그런 질문을 내게 던져왔다.
"그렇다면 선생님......저희 다시......만날 수 있어요?"
"다시 만날 수 있냐고?"
"이렇게 헤어지면 선생님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말에 나는 침묵을 유지했다.
"말해주세요."
결국 요시아는 볼썽사납게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못생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게서 한발 물러났다.
"선생님. 나는요 절대 이 은혜 잊지 않을 거예요. 아직 사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선생님을 믿어볼래요."
"그래."
"그럼......, 언제 꼭 다시 봐요. 우리."
그리 말하며 그녀는 미련 없이 내게서 등을 돌렸고 급히 중앙동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평소 요시아의 속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지만, 그녀 본인은 그것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뱀파이어 로드를 저렇게 그냥 둔다고? 솔직히 말해서 본녀는 반대야. 뱀파이어 로드가 제대로 각성하면 단순 권능의 위험만 따져도 그대에게 위협적이야. 차라리 금제를 몇 가지 더 거는 게......
"아니, 그냥 둔다."
-뱀파이어 로드가 어디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
"가능성을 못 봤으면 애초에 피 빨게 두지도 않았을 거다."
요시아는 내 제자이지만 그렇다고 덮어놓고 마냥 감싸줄 순 없다.
"그리고, 정치질이라는 건 밑밥을 잘 깔아야 해."
조금 무책임한 방치라곤 해도 이게 지금 느끼기엔 최고의 선택이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그녀의 각성 단계를 완전히 저지할 순 없지만 적어도 시간을 늦춰두었으니 시간 자체는 제법 여유롭다.
-만약......저 아이가 끝내 그대를 적대한다면?
"어쩌긴 사랑의 매로 정신이 번쩍 들 때까지 때려주는 수밖에."
그 첫 단추만 잘 끼워주면 나머지는 스스로 끼워야 하는 법이다.
애초에 뱀파이어 로드는 연륜이나 경험 같은 것으로 오르는 자리가 아니다.
태생적인 자리라 할 수 있다.
물론 중간에 가능성이 있는 뱀파이어가 있다면 로드가 되기도 한다고 들었지만, 태생의 뱀파이어 로드가 있다면 선택권은 무조건 후자로 향한다.
그 말인즉슨.
그 소년 뱀파이어 로드가 요시아에게 다음 대의 뱀파이어 로드 직을 넘겼다면 그녀는 충분히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명색이 한 종족의 군주가 될 정도의 재목이었다면 아마 내가 손을 대지 않아도 스스로 절제하고 제어할 정도의 재능을 보일 거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요시아가 완전히 사라지자 페르세르크는 묘하게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에 나는 그녀가 이견을 제시하기 전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공간을 넘어 고성으로 가기 전 도착했었던 고요한 연구동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직 살아있으려나 모르겠네."
성화로 인해 끝없이 고통을 받게 하긴 했다만, 솔직히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나도 안 봤으니 알 수가 있나.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난장판이 된 연구동 내부로 들어가자 벽에 처박힌 채 짧게 경련하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요시아를 성추행했던 그녀의 삼촌, 라스칸 프랑소스였다.
"끄륵......끅......"
라스칸 프랑소스는 내가 떠나기 전 벽에 처박아 둔 모양새 그대로 살아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참혹 그 자체였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피부는 거멓고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안구는 고열에 노출되어 증발해버렸다.
머리카락은 단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고 무언가 타들어 간 지독한 냄새만이 주변에 가득했다.
그럼에도 그는 살아있었다.
본래라면 아직도 불타고 있어야 할 그였지만.
마나 입자가 대규모로 분열되면서 성화에도 영향을 미친 탓에 신의 화염은 깔끔하게 소화된 후였다.
"으......으으어......"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괴이한 목소리를 흘리는 라스칸을 보며 페르세르크가 싸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냥 확 알을 터뜨려버렸어야 했는데.
페르세르크의 중얼거림에 나는 말없이 그의 눈에 신성력을 쏟아부어 눈 부분만 재생시켰다.
그러자 다시금 시야가 보인다는 사실에 그가 눈동자를 천천히 굴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움직이지 않는 몸을 버둥거리려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슬슬 끝내자."
장시간 불에 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죽지도 못한 그는 이미 정신이 반쯤 붕괴되어있었다.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내게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내가 왜 당신의 눈을 재생시켰는지 알아?"
내 질문에 그는 괴성만 흘릴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가는 길에 누가 당신을 쳐 죽이는지는 봐야 할 거 같아서."
담담하게 말한 나는 이제 내 몸에 남은 힘인 사령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7서클 사령 마법]
[아귀옥]
쩌억!!
사령 마법이 활성화되기가 무섭게 그가 있던 바닥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라스칸의 전신을 당장에라도 집어삼킬 것 같은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입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마계수, 혹은 사역 가능한 마수라 불리는 이차원의 존재, 아귀였다.
"참고로 아귀는 상대를 산 채로 잡아먹는다."
"으......으으......으으으으으!!!"
필사적으로 버둥거려보려 하지만 근육까지 모조리 불타버린 그가 움직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콰득!! 콰드득!!
이윽고 바닥에서 튀어나온 흉측한 입을 지닌 괴물들은 필사적으로 소리 지르는 라스칸을 산채로 물어뜯어 균열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공포에 가득 찬 얼굴로 내게 자비를 호소하던 그였지만, 어차피 그를 성화로 불태울 때부터 그의 목숨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지 않고 가도 되겠는가? 아이들이 그대에게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던데.
"굳이 할 필요가 있나?"
내 물음에 그녀가 키득거렸다.
-그래도 사제간의 정이라는 게 있는데.
그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가볍게 허공에 손을 뻗었다.
마나를 거의 다 쓰긴 했지만 마나의 양보다 실력을 메인으로 하는 메시지 마법 정도는 쓸 수 있다. 9서클 마법사가 되면 자연적인 회복 속도는 기본 마법사와는 다르게 되니까.
나는 F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링크를 건 뒤 그대로 메시지 마법을 날렸다.
한때 선생님으로서의 애정을 담아서.
[니들 서클에 잠이 오냐?]
깔끔한 조언이다.
-깔끔한 인성질이겠지.
선생으로서 첫 제자들을 향한 내 마지막 말은 제법 심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