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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06화 (305/1,559)

# 30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4화

"이봐요. 또 식사를 걸렀네요."

숲 속의 작은 오두막.

화사한 금발의 소녀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따지듯 물었다.

"......"

대답하지 않는 사내는 시선조차 소녀에게 주지 않았다.

"그쪽은 뭐 식사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그런 존재에요?"

소녀, 일리나 데 팔란의 물음에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울창한 숲 속에서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던 그를 발견한 것은 거의 우연이었다.

폐관수련의 막바지에 든 그녀는 제국의 황족에게만 알려진 이 숲의 내부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에 제법 놀랐다.

장시간 사람을 만나지 않고 검만 휘둘러온 그녀에게 사내의 존재는 조금 반가운 손님이나 다름없었다.

폐관수련은 보통 동굴에서 하는 게 아니냐고.

처음에야 그렇게 했지만 일련의 과정을 거친 그녀는 일대 숲 전체를 수련의 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녀는 그녀가 거주하고 있던 작은 오두막에 그를 데리고 가 그를 치료하고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처음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던 사내였건만, 며칠 전부터 눈을 뜨고 말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된 것이다.

"급히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위험했던 주제에 이제는 식사를 거르다니, 죽어가는 거 다 살려놨더니 다시 죽으려는 건가요?"

대답하지 않는 사내의 태도가 짜증이 나는지 일리나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스릉!!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다가갔을 때 사내는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듯 검은 기류를 피워올려 일리나의 목에 겨누었다.

"......"

"놀라지 않는군."

담담한 물음이었다.

"사령 마나를 쓰는 존재를 경계할 줄 알았는데."

"아는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령 마나를 써대고 있는데 사령 마나를 가지고 있다고 적대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보다 좀 치워주지 않을래요? 그래도 은인에게 이런 태도는 조금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일리나의 말에 사내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왜 나를 살렸나."

"왜 살렸냐고요? 웃기지도 않아. 죽어가는 이가 있으면 살리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쪽이 무슨 뱀파이어도 아니고."

"뱀파이어를 알고 있나?"

"생각보다는요."

일리나는 뱀파이어에게 상당한 원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종족에게는 아니었다.

"특이한 인간이로군."

"그런 말 듣자고 살린 거 아니니까 들어요. 그쪽......뭐라고 불러요?"

"......"

"진짜 답답하게!"

짜증을 확 부린 그녀가 한 손으로 검은 기류를 낚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다.

반사적으로 놀란 사내가 날카롭게 벼려진 검은 기류를 지워냈지만 조금만 잘못했어도 크게 다칠뻔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거봐. 날 헤칠 생각도 없었잖아."

담담하게 말한 그녀는 사내가 누워있던 침대에 걸터앉은 뒤 준비해온 수프 그릇을 들고 한 스푼 내밀었다.

"그쪽이 무슨 사정으로 이렇게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죽으면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도와준 것뿐이니까 괜한 착각하지 말고 들어요."

"......"

"먹고 살아야 뭘 할 거 아니야. 멍청하게 발버둥도 안치고 죽으려고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어도 되었다."

"웃기고 있네."

인상을 찌푸린 그녀가 냉소를 흘렸다.

"그냥 뒀으면 당신 죽었어, 알아?"

"......"

"그러니까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닥치고 좀 먹어."

박력 넘치게 스푼을 들이미는 그 모습에 사내는 한참 동안 일리나를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옳지 잘한다."

이에 일리나는 짜증을 모두 날려버린 듯 환한 얼굴로 스프를 그의 입안에 떠먹여 주었다.

"제 친구가 말이에요. 의원이에요. 검도 쓰고 마법도 쓰는 주제에 의술도 해요."

일리나의 말에 사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우물거렸다.

"그 녀석 말로는 상대가 때려죽일 적이라고 해도. 아픈 사람이라면 치료 후에 때려죽이라더라고."

담담하게 회상하듯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야 뭐, 의술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간단한 응급 치료와 신성력을 주입해주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요."

"......"

꼬르륵.

"배가 많이 고팠나 보네. 자, 한 스푼 더 들어요. 식량이야 비축해둔 게 워낙에 많아서 나 혼자선 배 터져 죽을 때까지 먹어도 다 못 먹어요."

그녀의 말에 사내는 혀를 쯧쯧 찼다.

"언젠가 크게 후회할 거다."

"글쎄요, 당신은 내게 적의가 없잖아요? 나 눈치가 빠르거든요."

"......"

"나는 일리나라고 해요. 일리나 데 팔란.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집요하게 물어오는 그 모습에 사내는 한참 동안 수프를 우물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벨."

"벨?"

일리나의 의문에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벨리얼이다. 벨이라 불러라."

담담한 얼굴로 그가 말을 이었다.

"인간, 너는 어째서 이 숲에 있는 거지? 인간이 살만한 숲은 아닌 듯한데."

"수련 때문이에요. 알지 모르겠는데 이 숲은 팔란 제국 황실의 사유지에요. 그리고 나는 벽을 넘기 위해 수련 중인 거고."

"소드마스터를 넘고자 하는 것인가?"

"네, 당신은 이미 소드마스터 이상급의 실력자 같은데. 부럽네요."

그녀의 말에 베리얼은 한쪽 벽면에 놓인 신검 칼디라스를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얄궂은 일이군."

"얄궂어요?"

무엇이 얄궂은 일인지, 일리나로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은혜는 잊지 않겠다."

짧은 답변에 일리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이 행복감에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존재하는구나.

그녀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이타적인 환하고 아름다운 미소였다.

* * *

"엇?"

마탑 린드홀에서는 때아닌 장례 행렬로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장로 브램 6급이 살해당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청탑의 대 장로 중 하나였으며 곧 대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처럼 7서클에 들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던 대단한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적탑에 마련된 그의 연구실에서 무언가 연구하다 살해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브램 6급이라면 분명 인간의 한계는 명백해서 8서클은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 말하던 그 노인이 분명했다.

-갑자기 초상이라니. 마탑도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아.

'적당히 눈치보다 빠져야지.'

"어서 오시게."

담담하게 나를 보고 환대하는 대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는 안타깝다는 심정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조의를 표합니다."

"비록......소속은 다르다고 하나 브램 6급의 변화에 내심 기뻐하던 찰나였네만......, 주신께서도 무심하시지."

"마법사가 신을 믿어도 됩니까?"

"신께서 존재하시는 증거인 신성 마법이 있는데 어찌 보고도 믿지 않겠나."

담담하게 말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두 개의 잔에 와인을 따르더니 내게 내밀었다.

"마탑에서 중요한 별이 떨어졌을 때 마시는 술이라네. 자네도 한잔 들게나."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특별한 상황에서 마시는 술이라서 그런지 와인의 맛은 놀라울 정도로 싱그럽고 감미로웠다.

내 대답에 그는 말없이 술잔을 빙그르르 돌렸다.

"브램과 나는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네. 툭하면 서로의 의견을 두고 분쟁을 멈추지 않았었지."

푸념하는 듯한 그의 말을 나는 그저 묵묵히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의 마법에 대한 순수 탐구욕만큼은 그 누구보다 인정하고 있었네. 비록 내가 7서클에 먼저 올랐지만......, 어쩌면 10년만 더 있었다면 그도 7서클에 들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네."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그 모습에 내가 담담하게 질문을 던졌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추려내셨습니까?"

"콜린 4급......아니, 정확히는 콜린이라 부르는 게 맞겠지. 이미 청탑에서 퇴출이 결정된 사내이니."

조용히 말한 그는 작은 수정 구슬을 꺼내놓았다.

"마탑 내부에 설치된 감시형 영상 마도구일세. 그곳에 콜린의 모습이 찍혔어."

수정구 속에는 브램과 콜린이 말싸움하는 광경과 콜린이 브램을 죽이는 모습까지 모두 담겨있었다.

놀라운 점은 그가 보인 마법은 4서클의 마법사가 보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5서클 윈드리스 커터네요. 사용시간을 보면 단순히 5서클 마법사가 된 건 아닌 것 같은데."

내 추측에 그는 놀랄 것도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어디로 갔습니까?"

"백방으로 추적 중이네만......,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은 없네."

"유감입니다."

이미 그는 급진파 뱀파이어들과 합세하여 자리를 떴다.

이미 숨어버린 놈을 나라고 무슨 수를 써서 찾겠는가.

내가 본 콜린은 단순히 내게 상당한 적대의식을 가지고 있다 정도뿐이었지 뱀파이어에게 힘을 받은 흔적은 전혀 없었다.

운명을 보는 게 미래를 예지하는 건 아닌 만큼 그의 변화를 먼저 알 방법은 단순 페르세르크에게서 빌려온 심연의 권능이 대형 서비스를 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편협한 권능이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혹시나 해두는 말이지만, 비슷한 사례가 여기저기서 보이네."

"비슷한 사례 말입니까?"

"단순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내 짧은 식견으로는 이것들이 하나같이 연관성이 있어 보이니."

그가 해주는 말은 생각보다 연관성이 깊어 보였다.

대륙 곳곳에서 콜린과 비슷한 경로를 통해 갑자기 행방불명된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사람 사라지는 게 흔한 세상이라지만 이번 콜린의 사태처럼 기묘한 사건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간단히 정황에 대한 대화를 나눈 나는 현자의 집무실을 벗어나 그대로 윈리와 내게 주어졌던 객실로 향했다.

예상대로라면......

"데이비님, 륀느 매우 불만을 높게 평가."

단단히 삐진 륀느가 기다리고 있을 터다.

후다닥 달려와 내 허리춤의 옷깃을 붙잡고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륀느의 얼굴은 잔뜩 식어있었다.

평소의 무표정은 그대로이지만, 어째서인지 몹시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별일 없었나?"

"없다고 보고. 특이점, 윈리님에게는 존재한다고 보고해."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숙소에서 나오고 있는 윈리가 나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라버니!"

윈리는 적탑 마법사들이 입는 로브를 입고 있었다.

정확히 윈리는 마탑의 소속은 아니었기에, 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적탑에 들었구나."

"아......금방 알아내 버리셨네요. 깜짝 놀라게 해 드리려고 했는데. 헤헤."

헤실거리며 헝클어진 내 옷가지를 정리해준 윈리가 혀를 빼꼼 내밀었다.

"율리스님이 이번에 만드신 소규모 연구팀에 저를 초대해 주셨어요. 어린 나이에 벌써 4서클에 들어있는 재능있는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녀석의 대답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요시아도 그랬지만 윈리의 경지는 요시아보다 한술 더 뜨는 수준이 아니던가.

마법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도 않았음에도 실전을 통해 경지를 이룩했으니 방향은 다르지만 윈리의 재능이 빛을 발한 꼴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여기 있을 예정이에요."

"마탑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널 여기 두는 건 좀 그런데."

"흐응......안되나요?"

윈리의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로 이곳에 남고 싶어 하는 듯한 눈치였다.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하면 돼."

빙그레 웃어준 내가 륀느를 바라보았다.

"륀느, 에나벨은?"

"하인스 영지에서 월급 도둑을 시행 중. 매우 느긋한 팔자라고 보고."

"그 녀석 데려와야겠다. 당분간 윈리의 신변을 보호하게."

새로운 골렘 편대인 어벤져 편대의 유일한 구성원인 에나벨의 단순 전투능력은 디셉티콘에 비해서도 떨어지는 편이지만 마법적인 능력이나 여러 방면에서의 효율성은 디셉티콘 편대의 위에 존재한다.

그러니 괜한 시선을 끌지 않고 윈리의 곁에서 윈리를 지켜줄 만한 녀석이라면 에나벨이 제격이리라.

애초에 어벤져 편대는 전방 전투용이 아닌 후방 보조용이었으니까.

물론 적탑과 하인스 영지에서 상당히 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거야 워프 마법 두어 번이면 해결될 일이기도 하다.

"정말 고마워요! 오라버니!"

"대신 조건이 있다. 절대 무리하지 말 것. 혹여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반드시 말할 것.

하나라도 남김없이 전부 말해. 만약에 널 부당대우하는 놈이 있다면.

끝없이 솟아오른 듯한 이 마탑을 손수 무너뜨려 줄 테니.

내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였는지 윈리가 샐쭉하니 웃어 보였다.

"율리스 그 양반하고 이야기를 좀 나눠봐야겠네."

사람이 말이야, 나이 차가 몇인데 자꾸 손을 뻗으려 들어.

이래서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윈리 저 아이는 그대의 딸자식이 아니야.

나는 모르겠고!

"데이비님, 또 한가지 보고."

"음?"

내 바지춤을 잡아당긴 륀느가 제 주머니 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들었다.

연락을 취할 때 사용하는 전서구였다.

보통 마법 수정구로 통신을 많이 하지만 마법 통신구는 여러 요건이 갖춰줘야 하기에 파발이나 전서구가 아직 까지는 남아 있는 문물이기도 했다.

라운왕국의 왕실 인장이 박힌 작은 서신에 나는 그것을 보낸 이가 바리스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서신을 펼쳐 든 내 눈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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