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7화
"어떤......가요?"
불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에오니샤에게 대답하지 않는 채 보고서를 훑어내리던 나는 묘한 기분에 눈을 가늘게 떴다.
애초에 그녀가 제대로 된 연금술이나 공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은 알고 있었다.
리네스 왕비와 바리에타 공작이 득세하던 시절, 궁 밖 출입을 자제하면서 자신의 궁에 틀어박혀 있던 에오니샤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 탓에 그녀가 이쪽 방면에 관한 책을 읽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생각 이상이네.'
속으로 감탄을 숨긴 채 내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 때문인지 에오니샤가 아이 특유의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안......되나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기획했는지 물어도 될까?"
내 물음에 에오니샤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우물쭈물했다.
"그......그게......"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를 낸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눈시울을 붉힌 에오니샤는 투명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죄......죄송해요. 흑......흐흑."
뭐가 문제인지 따지기 이전에 탐탁잖다는 반응에 겁을 집어먹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아이는 아이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다시 해올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냉담한 내 반응에 녀석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내가 실망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그, 그건......이번엔 똑바로 해올게요! 더 잘할 수 있어요!"
고집은 있다 이건데.
애초에 전제가 틀려먹었다는 걸 에오니샤는 몰랐다.
"다시 할 필요 없어, 딱히 흠을 잡을 게 없으니까."
내 말에 에오니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냥 대단한 발명품은 필요 없어. 네가 만들고자 한 것이 뭔지 정확히 말해봐."
"......그, 그게......모든 사람이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시계를......"
"그렇지. 그런 시계에 이것저것 추가하면 당연히 평민들은 비싼 돈 때문에 쓰지 않겠지."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저렴하고 다루기 쉬운가이다.
"이런 경우 왜 안 되냐고 따져야 한다."
내 말에 에오니샤의 눈이 다시 한 번 크게 떠졌다.
"그리고 어필 해야 하는 거다.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걸 고안해냈는지. 또 어떻게 하면 해야 이걸 실현 가능한지. 적어도 연금술사나 공학자가 되려면 그 정도 소양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지."
"아......"
"언제까지 내 밑에 있을 건 아니잖아?"
정확히는 종신 계약이라 내가 풀어줄 생각도 없지만.
솔직한 말로 언젠가 녀석이 정말로 성장했을 때, 스스로 서기를 원한다면 나는 몇 가지 조항만 걸고 종신계약서를 찢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네가 보기에 이게 가능하리라 보니?"
"그......나무 중에 가볍고 튼튼한 백나무가 있다고 책에서 봤어요!"
녀석이 허둥지둥거리며 설명을 했다.
"가......가볍고 싸고 튼튼한 재질. 그렇다고 너무 튼튼할 필요도 없어요! 오래 쓴다고 해도 너무 오래 쓸 필요도 없고 가격도 싸야 해요!"
녀석은 천부적이었다.
지구의 나이로 고작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서는 나이이다. 단순 노는 데에 재미를 들려야 할 나이에 이 아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갖은 생각을 펼쳤다.
아무리 왕족 귀족이 빠른 나이에 교육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솔직한 말로 바리스와 윈리 혹은 타냐 같은 케이스가 아닌 곱게 자란 보통 어린 나잇대의 소년 소녀들은 대개 철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에오니샤는 제법 곱게 자라왔을 텐데도 달랐다.
"평민들도 써야 해요! 책에서 봤어요....... 평민들은 궂은일을 많이 한대요. 그래서 물이 묻기도 하고 진흙이 묻기도 한대요! 용병들은 싸움 때문에 잦은 충격을 받기도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물에 젖어 고장 날 걱정도, 잦은 충격에 부서질 걱정도 없는 백나무를 선택했다.
백나무는 실상 뿌리를 제외하면 거의 방수 재질에 가까운 신기한 나무이니 말이다.
애초에 계획 자체가 물이 들어간다고 마냥 망가지는 물건은 아니지만, 물에 젖으면서 나무가 상하거나 내부 부품이 망가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방수 나무를 사용한 꼴이다.
백나무는 다른 나무와 다르게 빛과 벌레를 먹고 살기로 유명하다.
다른 나무와 다르게 필요 수분량이 극도로 적은 나무라는 소리였다. 그런 주제에 주로 자라는 곳이 강풍이 많이 부는 지역이라 어지간한 충격에도 버틸 만큼 단단한 나무이기도 했다.
연금술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다만 문제가 있지? 네가 계획한 이 시계는 백나무를 가공해야 해. 그런데 어지간한 조각칼을 가져다 대도 깎이는 게 아니라 깨지는 나무를 어떻게 다룰 건데?"
내 물음에 녀석이 입을 오물거렸다.
그리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그게......뿌리에 물을 마구 뿌려주면 물을 머금으면서 내부에 수분이 가득 차서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게......그럴 거 같아서......"
-데이비 어때?
'섬뜩한데?'
순수한 아이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본래라면 웃어넘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에오니샤가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로 특유의 독특함이 있었다.
내가 수집해둔 현재 티오니스 대륙의 연금학파에선 애초에 백나무를 이런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백나무의 단단한 재질과 방수 효과만을 바라보는 입장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에오니샤의 제안은 정확했다. 물론, 물이 아니라 특수 용액을 이용해야 하지만 이런 발상 자체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나로선 이 겁 많고 배다른 동생이 과연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흥미가 일었다.
"드워프 장인들에게 연락을 취해놨으니 네가 가서 말하면 곧바로 하던 일도 내버려두고 도와줄 거다."
"저......괜찮은가요?"
녀석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까딱였다.
"뭐가?"
"그......다들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렇지.
디셉티콘 편대의 추가 골렘 제작이나 어벤저 편대의 제작도 바쁜 축에 속한다. 이외에 아직 완공이 덜된 수력 마나 발전 시설과 그 시설의 전력에서 잉여 전력을 끌어모아 구상하고 있는 계획 또한 아직은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도와줄 거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 또한 그리 원했던 일들이기에 그리 고민할 건 없었다.
대륙의 인간들이 머리를 싸매도 기술력의 부족으로 실현하지 못하던 것들을 이곳에선 할 수 있다.
기술종족이라 불리는 드워프와 정령 마법이나 자연 식물들과 교감하는 엘프들. 그리고 티오니스 대륙의 기준으로 오버 테크놀러지 수준의 기술 원천이 존재하니 말이다.
"괜찮을 거다. 어디 한번 마음껏 네 마음대로 만들어봐."
내 말에 에오니샤는 열정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도도도 뛰어 사라졌다.
아마 저 아이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지금으로썬 거의 없겠지만.
에오니샤의 머릿속에 있는 구상을 현실로 끌어내 줄 존재는 분명 존재한다.
"어떤 발명품이건 공돌이를 갈아 넣어서 안 되는 게 없지."
-악랄한 인간 같으니.
오래 걸리진 않을 터였다.
고작 11살짜리 소녀의 이름으로 내놓아진 발명품 하나가 얼마나 큰 여파를 가져올지 말이다.
* * *
보름.
그 시간 동안 에이미에게 강제로 휴가를 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내 버린 나는 미묘하게 틀어막혀있던 영지의 문제를 하나하나 처리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저하. 왕실과 신목에서 보내온 서신입니다."
"동시에?"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도착했더군요."
그 말에 나는 말없이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두 가지 서신 내용의 공통적인 부분을 집어낼 수 있었다.
계속해서 급진파 뱀파이어들이 움직이면서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은 분명 보이는데 규칙도 없고, 워낙에 방대한 움직임이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저하?"
"그래, 고생했어. 들어가서 쉬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
짧은 축객령에 베르닐 시종장이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하,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떠실런지요."
그의 말에 내가 멈칫했다.
"휴식? 내게 남는 게 시간인데?"
"그럴 리가요. 저하께서 최근 들어서 마음 편하게 여가를 즐기신 적이 없으신 걸로 압니다만."
베르닐 시종장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입맛을 다셨다.
"그랬나?"
"제가 저하를 그리 오래 모신 건 아닙니다만.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심리가 어느 정도는 보이는 법입니다."
담담하게 말한 그가 옅게 웃어 보였다.
"피로가 많이 쌓이셨군요."
"그래? 그럼 피로를 좀 풀어야지."
"허면, 좋은 여행지를......"
"아니, 스트레스를 좀 해소할만한 곳으로 찾아보자고."
스트레스 푸는 데엔 역시 때려 부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드디어 저들의 움직임을 잡았군.
'지들이 머리꼭대기에서 노는 줄 아는 놈들은 한번 끌어내려 줄 필요가 있어.'
함부로 시선 돌리고 장난을 치다가 걸리면 호되게 맞는 법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망설임 없이 창문을 열어 손을 뻗었다. 그런 내 팔 위로 하늘에서 날아든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독수리를 받을 때 맨팔에 받으면 크게 다친다만.
놀랍게도 독수리는 발톱을 정리하기라도 한 것처럼 깔끔하게 내려앉았다.
놀라울 정도로 잘 훈련된 독수리를 전서구로 쓰는 집단은 내 인생에 딱 한곳밖에 본 적이 없다.
"베르닐 시종장. 미안하지만 다시 자리를 비울 거야. 그동안 잘 부탁해."
"이번엔 어디로 행차하시는지요."
"시종장의 말대로 스트레스 풀러 간다."
"다녀오십시오."
무슨 이유인지, 또 왜 영지를 비우는지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
그저 모시는 자로서 주인이 가는 길을 담담하게 배웅할 뿐이었다.
[데이비 단원, 자네가 말한 요소가 보이긴 했네만.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아보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네. 가능하다면 직접 기사단에 출두하여......]
이제 나는 견습생이 아니라 정식 일원이다.
그 차이는 큰 법이다.
전략에서 이런 방법은 자주 쓰인다.
여러 가지 행동으로 상대의 시선을 끌어버린 뒤 계속해서 야금야금 이득을 챙기는 행동.
급진파 뱀파이어들의 납치 행각은 분명 목적이 있는 행동이겠지만, 그것이 메인은 아닐 터다.
그렇다면 녀석들이 발견되는 요소 중 유일하게 공통점이 없는 것이 놈들이 노리는 바가 된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아야 할 테니 많은 인원을 투입할 수도 없다.
생각보다 간단한 논리였다.
제법 이 대륙에는 내가 뿌려놓은 눈이 많은 편이니 말이다.
멀리서 눈치를 채고 잽싸게 다가오는 륀느를 향해 내가 서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륀느, 역갱 한번 치러 네 고향에 가자."
"매우 높게 평가!"
마탑에서 상당히 지루한 시간을 보냈던 륀느는 전투 골렘이라는 명칭답게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었다.
앞도 뒤도 없이 높게 평가한다며 소리치고 달라붙는 녀석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나는 곧바로 손가락에 끼워둔 반지를 그대로 가동했다.
* * *
두구두구두구두구!!!
"어서 움직여라."
"시간이 부족하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들이 검은 숲 내부를 빠르게 이동한다.
마치 광신도들의 복장마냥 얼굴 전체를 가린 기괴한 로브를 뒤집어쓴 이들은 겉보기에도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새파란 비늘을 가진 도마뱀의 등에 올라탄 사내들이 빠르게 숲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작은 도마뱀들이 끄는 마차가 행렬을 뒤따랐다.
마치 도둑이 물건을 몰래 훔치고 달아나는 듯한 그 행동거지였지만 애석하게도 십수 명의 행렬을 뒤쫓는 이는 없었다.
어두운 숲 속에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이들이 움직이니 그야말로 주변에 동화된 느낌까지 들었다.
입김이 호호 나올 정도로 강추위가 몰아치는 숲을 빠르게 이동하던 중이었다.
빠르게 이동하던 행렬은 곧 자신들의 앞에 거대한 바위가 떡하니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보고 그대로 도마뱀들을 멈춰 세웠다.
"멈춰라!"
선두에 선 사내의 외침에 행렬이 일제히 멈춰 섰다.
"길이 막혀있군. 분명 올 땐 이런 것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저희가 숲 내부로 들어가면서 산사태가 벌어졌던 모양입니다. 저길 보십시오."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 한 명의 말에 고개를 든 선두의 리더는 절벽 위에서 바위가 떨어진 것을 암시하듯 부서진 흔적을 보고 침음을 흘렸다.
"시간이 없다. 빠르게 이것들을 가져다 주......"
퍼엉!!!!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일순간 검은 숲에서 섬광이 번뜩이는 듯싶더니 보랏빛 광탄이 뒤편에 있던 사내 두어 명을 그대로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놀란 로브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숲 속에서 튀어나온 은발의 작은 소녀가 빛가루를 휘날리는 듯 날아올라 그대로 손에 쥔 묵빛의 크로우 바를 내리찍어버렸다.
쿠웅!!!!!!!
도저히 단순 금속을 휘둘러서 나온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파가 퍼지며 범위 내에 있던 로브인들을 채로 쥐포마냥 으깨버렸다.
갑작스런 굉음에 도마뱀들이 괴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렸고 살아남은 로브인들은 순식간에 대열이 뒤틀려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이 무슨?!"
분명 이곳에 자신들이 있는 걸 아는 이는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어째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인가.
선두에 선 로브인의 리더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무언가 소리치려던 찰나.
그가 타고 있던 도마뱀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그의 신형이 고꾸라졌다.
그리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그의 귓가로 누군가의 느긋한 목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왔다.
"어서 와.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새끼들아?"
붉은 눈동자를 지닌 소년은 방금까지 분명 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언제 왔는지 그의 시선 앞에 서 있었고.
순식간에 소년의 손에 쥐어진 푸른 검이 번뜩이는 듯하더니 그의 몸에 걸려있던 보호마법이 일순간 모조리 벗겨졌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날아든 소년의 손이 그의 머리통을 낚아채 그대로 지면에 처박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