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9화
"그러니까, 네 말인즉슨 놈들을 죄다 감염시켜가꼬,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게 한다 이거가? 그라믄 병력이 필요하다는 건 무신 소리고?"
고요하던 회의장 내에서 한 남성이 의견을 던져왔다.
이전 기사단장 가오르의 배신 사태에 선두에 서서 상황을 진압하던 사내로 기억이 났다.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보그라, 내는 이제 나이를 먹어가 긍가, 이해가 잘 안 되는고마."
그를 포함한 대부분이 같은 의견인 듯 보였다.
"간단하게 말해서 놈들을 자멸시킬 기생충의 수를 조금 늘렸으면 한다는 겁니다. 인간에겐 무해하나 뱀파이어에겐 치명적이죠. 어지간한 상위 뱀파이어가 아니면 죄다 감염돼서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싸우게 될 겁니다."
사실은 심연의 생명체 파편이 없었으면 이 같은 짓도 못했겠지만.
바이오 하자드라는 게 꼭 인간의 한정일 필요는 없다.
"그라믄, 상부에서 무얼 해줬으면 한다는 기가?"
"허공에서 기생충이 태어나진 않겠죠, 일단은 생명처럼 보여도 이거 마법 물질이거든요. 그러니까 촉매가 되는 재료가 필요한 겁니다."
그리 말하며 나는 아공간에서 꺼낸 주머니에서 작은 돌멩이 같은 것을 내놓았다.
검게 변색했지만, 관리가 잘되었는지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있었다.
"그건......."
"뮤턴트 울프의 이빨인가?"
대륙 각지에 퍼져있으나 어지간한 사냥꾼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도 않은 오지형 마물이다.
그리고.
리인포스 알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물이기도 했다.
"필요 촉매의 대부분은 용병의뢰로 처리할 수 있지만 이처럼 뮤턴트 울프의 이빨이나 얼음전갈의 독침 같은 것들은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요."
돈이 있다고 마냥 다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리인포스 알파 같은 비밀기사단의 단원이 된 건 상당히 큰 메리트가 있었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작은 수정 구슬을 반짝이는 그들의 말에 나는 재촉하지 않으며 한발 물러났다.
"적어도 저들이 과오를 저지르는데 애꿎은 인간의 피를 흘릴 필요는 없죠."
"상부 뱀파이어는 어찌할 생각인가?"
"직접 다 처리할 겁니다. 위협적이지 않은 놈은 살려놓고 나머지는 다 죽여야죠."
다 죽인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내 입장이나, 그걸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기사단 상부나.
정상은 아니리라.
"조금 더 순화적인 방법은 없는가. 아무리 그래도 생화학적인 테러는......"
"그렇게 할까요?"
내 말에 기사단 상부가 침묵했다.
"신도 아니고 대륙 각지에 숨어버린 놈들입니다. 정보 길드에서조차 제대로 찾아내지 못할 만큼 은밀한 곳에 숨어다니는 놈들인데 잘도 찾아내겠네요. 전면전으로 퍼지면 수많은 이들이 죽고 오염되어 못 쓰는 땅도 생길 겁니다."
어쩌면 저들이 승리할 수도 있지요.
포로가 된 인간들은 끌려가서 가축이 되거나 죽을 때까지 피를 빨리게 될 테고.
저항하던 이들은 무참하게 처형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급진파 뱀파이어와 손을 잡은 마족은 당연, 인간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만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이게 대륙의 존속입니까? 세속적인 싸움 현황입니까?"
내 물음에 기사단 상부의 표정이 어둡게 굳어졌다.
"알겠네. 촉매의 재료를 제공하는 정도로는 어렵지 않으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하지. 일단 데이비 단원, 자네가 요구한 촉매제들은 기사단의 창고에도 비축하고 있는 것들이 있네. 일단은 그 물량을 내어줌세. 그 외에 추가적인 물량은 확보되는 대로 전서구를 통해 연락하지."
"예."
"데이비 단원."
"......"
보리스의 부름에 내가 고개를 돌렸다.
"자네에겐 미안하게 생각하네. 그리고, 자네에게 고맙다는 말을 늘 제대로 하지 못하는군."
상부의 회의는 오래갈 것도 없었다.
애초에 손해 볼 게 전혀 없는 사안이었으니 말이다.
뱀파이어를 감염시키고 오로지 혈기를 가진 뱀파이어에게만 적대감을 가지는 기생충의 존재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조금 방식이 과하긴 하다 해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를 말살시켜버릴 수 있다면 선택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우선적으로 리인 포스 알파 기사단에 기생충 일부를 전달한 나는 그것의 사용법을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기생충, 정확히는 기생물질의 사용법은 단순했다.
상대의 체내에 침투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일 테니 말이다.
면역력을 지닌 놈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놈들이 대부분인 만큼 아마 한바탕 난리가 날 터였다.
심연의 힘이 그들을 보호해줄지도 모른다고?
장담컨대, 놈들은 이번 일을 영원히 기억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사람 잘못 건드렸어, 개x식들아."
뒤이어 언제 여유가 되면 꼭 하인스 영지에 찾아오겠다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기사단 동기들의 배웅을 받으며 하인스 영지로 돌아온 나는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한 개인 연구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공간에서 꺼내 든 자루를 휑하고 던져버렸다.
-데이비, 헌데 말이야. 애초에 그대가 만든 그 기생물질에 촉매가 필요했나?
침묵하던 페르세르크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륀느, 눈치 매우 빨라, 데이비님이 사기를 쳤다고 확신,"
눈치 빠른 꼬맹이 같으니라고.
"엣햄. 륀느, 개체연식이 아주 오래되었다고 보고. 눈치 면에선 상당히 빠르다고 판단."
"예. 어르신."
내 대답에 빈약한 가슴을 펴며 자랑스레 말하던 륀느의 표정이 대뜸 찌푸려졌다.
분명 무슨 감정을 표현해도 무표정만큼은 유지하던 녀석인데.
저렇게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얼굴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륀느?"
"매우 낮게 평가. 데이비님 인성을 아주 낮게 평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녀석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마치 삐진 아이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자재들을 발끝으로 툭툭 걷어찼다.
"매우 낮게 평가......"
그리고는 침묵한다."
-데이비. 자세히 설명해봐. 륀느의 말이 사실인 게야?
"그렇지."
담담하게 말한 나는 미리 준비된 시약병에 촉매제랍시고 받아온 것들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몇 가지 물질을 넣은 후 손을 뻗었다.
"온도는 대충......"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손가락 끝으로 화염을 일으키자 병 안 액체의 색이 변하며 내가 던져넣은 촉매들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미리 만들어둔 틀에 그것을 부어 넣자 마치 작은 금속 덩어리처럼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리튬전지."
-리튬?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 전력이 아니라 자연 마나를 순환시키거든. 워낙에 효율이 떨어져서 그리 좋은 물건은 아닌데, 적어도 시계를 움직이는 정도로 써먹기엔 최고지. 제작 자체도 간단하고."
마나가 없는 곳이 아닌 이상 이 전지만 멀쩡하다면 반영구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전지의 수명이 다되거나 강한 충격에 부서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내구성을 보완하지는 않아?
"가능하긴 한데,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나?"
내 말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구나......수명에 한계가 있어야 또 팔릴 테니.
"이건 사업이니까. 무리하게 완성도만 올려놓는 건 오히려 손해지."
에오니샤가 구상한 시계는 간단한 태엽 시계였다. 하지만 일하느라 바쁜 평민들이 고상하고 우아한 시계를 원할 리도 없고, 결과적으로 언제든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값싼 물건을 원할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곧 필요로 할 테니 아마 조만간 이 문제에 관해 고민을 하리라.
뱀파이어와의 전쟁을 준비한답시고 받아온 물건으로 시계의 원료나 만들고 있는 이 사태를 기사단이 보면 기가 막혀 할 따름이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나는 뭐 땅 파먹고 장사하나."
-대단히 악랄한 인간이로고.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거지."
좀 횡령도 하고, 그래야 사람 사는 맛이 나지.
물론, 본래 목적을 이루지도 못할 만큼 횡령하는 건 글러 먹은 짓이지만.
-그럼 나머지 재료들은? 그대 말대로라면 남은 재료를 쓸 곳은 어디 있는 데?
그녀의 말에 나는 자루 속에 구분된 재료 중 몇 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둔 솥에 던져넣은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완전히 용해되자마자 시험관에 나눠 담았다.
"여기에 쓰려고."
그리고는 연구실의 한쪽에 그려진 작은 마법진 위에 봉인석과 살점 덩어리를 올려놓았다.
이 세상의 모든 법칙에 치외법권 같은 힘을 발휘하는 심연의 생물인 촉수 덩어리였다.
당장 페르세르크를 찾아 꿈틀거리는 그 움직임에 페르세르크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 주머니 속에 숨어버렸다.
-역시 보기 그렇군.
"겉보기엔 저래도 안에 든 힘은 제법 쓸만하니까."
내가 하려는 것은 봉인석에 저 촉수 덩어리가 가진 힘의 일부를 구분해내 봉인시키는 것.
레이나의 육신의 구성에 필요한 마지막 작업이나 다름없었다.
우웅......
이윽고 이전과 같이 마법진이 가동하기 시작하자 촉수 덩어리에서 보랏빛의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미리 준비해둔 시약을 그대로 촉수 덩어리에 스리슬쩍 부어버렸다.
"얌전히 있어라."
푸쉬이이익......
그러자 마치 바람 빠진 고무공처럼 수축하는 살점 덩어리가 이내 침묵했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대로 마나를 움직여 살점 덩어리의 안에 든 힘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실패하면?
"실패는 얼어 죽을, 이것도 실패하면 접싯물에 코 박고 뒤져버려야지."
[8서클]
[커스텀 스페이스]
보험으로 일대 영역을 모조리 싸잡아 영역을 만들자 마구잡이로 새어나가던 힘들이 허공에 고정되어 마나에 붙잡힌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봉인석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레이나의 육신을 만들기 위해 이미 몇 차례 실험을 해둔 바 있었다.
이윽고 빛과 함께 봉인석의 크기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자 나는 아공간에서 초월의 종언을 꺼내 들었다.
-초, 초월의 종언! 저것을 얼마 만에 보는 게야.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린 듯 눈을 번뜩이는 그녀가 몸을 반쯤 주머니 속에서 빼냈다가 촉수 덩어리를 보고 다시 숨어들었다.
"커져라! 뚝딱."
투웅!
옅은 소리와 함께 손톱만큼 작아진 봉인석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 크기는 내가 조절이 가능한 만큼이면 충분하리라.
이윽고 봉인석이 서서히 커지며 사람의 심장 정도의 크기로 변하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미리 만들어둔 나머지 시약병을 봉인석에 뿌려 넣었다.
-그건?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거야. 심장 대용으로 써야 하는 장기인데 딱딱하면 내부에서 망가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신기하다는 듯 흐물흐물해지는 봉인석을 바라보았다.
심연의 촉수 덩어리가 가진 힘을 봉인는 데엔 역시 성공했다.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금으로썬 이것이 전부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만큼 여건이 마냥 좋은 편은 아니었다.
힘 대부분을 제대로 봉인 당한 살점 덩어리는 빠르게 수축하더니 이내 바짝 말라 늘어져 버렸다.
"아깝다......"
촉수 살점 덩어리를 모두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반에 해당하는 물량을 이렇게 잃어버리는 건 조금 아쉽다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
이후 시험관에 둥둥 떠 있던 레이나의 육신을 꺼내 가슴께 위에 흐물흐물해진 봉인석을 올린 내가 그대로 마법을 발현했다.
그러자 수십 겹의 마법진이 중첩되어 스며든 봉인석이 그녀의 심장 부근 살결 아래로 녹아내리듯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길 잠시.
말없이 레이나의 육신을 바라보던 내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라? 왜 눈을 안 뜨는 게야?
그 말에 나는 말없이 준비해둔 작은 조각을 들어 보이며 피식 웃어 보였다.
"영혼이 여기 있는데 눈을 뜨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지."
그리 말하며 그녀의 이마에 조각을 밀어 넣고 나는 몸을 돌렸다.
"며칠 정도면 영혼이 안착하면서 깨어날 거야."
레이나의 육신은 제법 내 욕망을 실현해둔 육신이라 할 수 있다. 일단 프로토 타입인 것도 있지만, 그녀의 몸은 인간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며칠 정도는 조정이 끝난 후에야 정신을 차리리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으......으읏......"
-며칠이 아닌 거 같은데?
반응이 너무 빨리 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