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13화
마법제가 끝난 후 삼 주간의 휴식절이 공표되었다.
대형 행사인 마법제가 끝난 이후 샤쿤탈라에선 삼주에서 사주 정도 휴식절이라는 공휴일을 가지게 된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학생들에게 꿀 같은 휴식을 주자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F반 전원은 예고되었던 대로 마법사들에겐 꿈인 다름없는 존재.
대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와의 면담을 위해 적탑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허허, 저들이 보름 가까이 투닥거리며 만난 동년배의 소년이 이 늙은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법사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할꼬."
생각해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첨탑 끝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레 걸어오는 수십 명의 학생을 보며 헬리슨이 껄껄 웃어 보였다.
"대 현자님, 면담이 준비되었습니다."
"호오, 그래. 새싹들이 오는 걸 봤으니 어서 맞이해주어야겠지. 그토록 훌륭한 마법재능을 보여준 새싹들에게 덕담 한마디 못 해주어서야 어디 대 현자라 하겠는가. 껄껄."
널찍한 로브를 가볍게 털어내며 걸음을 옮기는 그의 표정은 흥미로 가득해 보였다.
끼이익!! 덜컹!
이윽고 학생들이 기다리는 응접실로 내려간 헬리슨은 자신을 보기가 무섭게 바짝 긴장하는 학생들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껄껄껄. 편히들 있거라."
"대, 대현자님을 뵙습니다!"
선두에서 가장 먼저 티미가 기겁한 듯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이자 다른 학생들 전원이 그를 따라 고개를 숙여 보였다.
"호오......"
하지만 단 한 명.
요시아 프랑소스만큼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신기한 아이가 있구나. 이전엔 저런 아이가 없었던 것 같다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헬리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이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자자, 이웃집 할아버지라 생각하고 긴장을 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지 않겠느냐."
"그, 그것이."
"어허, 괜찮대도. 허허 그래, 그게 있었구나."
헬리슨의 부드러운 어조에 허리를 숙이고 있던 티미가 눈을 반짝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법사 학생들에게 대륙 최고 마법사라 불리는 대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우상. 되고 싶은 존재의 끝이라 할 수 있었다.
헬리슨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마나가 움직이며 살랑거리는 마나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듯 보이는 테이블들이 움직이며 학생들의 앞에 천천히 날아들어 안착하였다.
뒤이어 찻주전자와 찻잔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학생들의 앞에 하나씩 세팅되기 시작했다.
"세상에...... 주문도 없이 마나를 컨트롤하는 걸로 이 같은 기적을......"
"놀라워!"
기겁하는 학생들의 눈은 당장에라도 빛이 날 것처럼 번뜩였다.
반대로.
한 사람만큼은 담담한 시선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선생님.'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는 괜한 불안함이 앞서던 사람이었다.
납치된 자신을 구하러 단신으로 뛰어든 동년배의 소년.
하지만 동년배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느낌을 주는 소년은 저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틀려....... 선생님은 애초에 마법을 쓸 때 영창 자체가 필요 없는 느낌이었어. 대 현자님이 마나의 흐름을 간파하고 조종을 유도하는 느낌이었다면......'
반대로 자신을 구하러 왔던 데비 선생님은 주변의 마나를 멋대로 조종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마나 그 자체가 된 것처럼 말이다.
지배하고, 초월하고의 개념을 넘어선 기묘한 느낌.
설마 대 현자에게서조차 느낄 수 없다니 대체 자신들을 가르쳤던 데비 선생의 정체가 새삼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어쩌면, 선생님은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드래곤이 아닐까.'
마법을 창시한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은 동화책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존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그저 전설이라 치부할 뿐이었다.
"허허허, 식기 전에 들 거라. 본래라면 다들 따로따로 만나서 대화를 했으면 싶지만, 사정이 이러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모두 다 같이 만나게 되었구나."
", .아닙니다! 이렇게 만나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티미의 외침에 헬리슨이 재밌다는 듯 껄껄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 이 늙은이가 추천해준 선생님의 아래에서 배웠다고."
"아...... 그 미치광이......"
"음?"
"아! 아니에요! 별거 아니에요 하하하!"
당황한 티미가 제 입을 틀어막으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데비 선생님 말씀이신가요?"
"그래, 데비. 그런 이름이었지. 그래, 너희들이 보기에 그 데비 선생님은 어떤 인물이더냐?"
헬리슨의 질문에 학생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마치 홀린 것처럼 대답을 던졌다.
"미치광이요."
"싸이코패스요."
대동소이한 그 답변에 헬리슨은 잠시간 멍한 얼굴로 학생들을 지켜보았고 곧 뭐가 그리 웃긴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 * *
헬리슨 발레스티아는 여유가 되는대로 학생들에게 데비 선생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엔 헬리슨을 매우 어려워했으나 한번 말을 트니 술술 나오는지 신이나 자신들의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의 경험담을 헬리슨 발레스티아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세상에 그때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살고 싶으면 죽자고 달리래요. 본능에 몸을 맡기고 달리다 보면 폭탄도 피해갈 거라고."
티미와 알리사 요스포그의 투덜거림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거라느니 뭐니......"
"정말 무책임한 선생님이었어요!"
뒤이어 로이사 포렌과 엘리 타이샤 마저 기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거의 반 불만, 푸념에 가까운 경험담에 헬리슨은 허허 웃으면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내 오랜 삶을 살았지만 그런 방식의 수업은 처음이로구나. 허허......'
단순 미친 짓이라고 여기기엔 그 성과가 너무 뛰어나다는 게 더욱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는 헬리슨을 향해 요시아가 천천히 손을 들어 보였다.
"호오, 요시아 프랑소스 양이로군. 그래, 질문이 있나?"
"대체 그 선생님 정체가 뭐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 같지가 않아서요."
"흐음. 그건 무슨 뜻인고?"
"그건 대 현자님께서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요시아의 담담한 질문에 티미가 기겁한 듯 요시아를 제지했다.
"요, 요시아! 대 현자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허허, 괜찮다. 괜찮아. 그래, 요시아 프랑소스양.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
"선생님...... 데비 선생님이 숨기고 있는 걸 대 현자님께서는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해서요. 솔직히 저는 제가 본 걸 쉽게 믿을 수가 없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질문을 드리는 거예요. 데비선생님......, 대체 정체가 뭐죠?"
그 말에 헬리슨이 고민하듯 침묵했다.
"데비 선생이 끝까지 너희들에게 정체를 말하지 않았다면 본인의 선택인 게지."
"하지만......"
"세상엔 말이네. 요시아 프랑소스양."
"......"
"정말 많은 사람이 있네. 어디 보자...... 그래, 하인스 영지를 알고 있는가?"
그의 질문에 학생들의 시선이 마주쳐졌다.
"하인스 영지라면......, 그 라운왕국 1왕자인 성자, 데이비 올 라운 왕자님이 있는 그곳 말인가요?"
"그래.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불모지에 가깝던 영지를 최대 부유 영지로 만들어버린 대단한 인물이지. 그 왕자 또한 아직 어린 나이이지."
그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심드렁함을 드러냈다.
"뭐......, 솔직히 성자는 신의 사랑을 받는 거니까요. 오랜 시간의 수련과는 별개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팔란제국의 언데드 사태를 종결시켰다는 소문을 들었을 땐 대단히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구요."
전체적인 이미지는 그러했다.
성자로서 수많은 사람을 구한 사람이다. 정체 모를 전염병에서 수많은 평민을 살려냈고 대륙에 전운을 몰고 올지도 모를 언데드 군단을 처리하는데 혁혁한 공을 내세웠다. 이후 해상도시에서 있었던 대규모 사태를 종결시킨 살신성인의 표본.
"비슷한 연배라곤 하지만 그런 대단한 분과 그 양아치 같은 선생을 비교하는...... 헙!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한 언사를......."
"허허허허허허!!"
뭐가 그리 재밌는지 헬리슨이 껄껄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물었다.
"그래, 묻겠네. 자네들이 보기에 성자 데이비 왕자는 대단한 인물인가?"
"그럼요.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구하는 성자는 영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죠."
"맞아요. 살신성인 그 자체라면서요. 실제로 팔란 제국의 검의 공주님과 혼인을 치를지도 모르는 사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어라? 난 린디스 제국의 황녀님과 국혼 이야기가 오갔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학생들이 저마다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허면, 자네들이 본 데비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싸이코패스."
"미치광이."
그러면서도 학생들은 한 가지 사실만큼은 인정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변화시켜버린 정체 모를 선생님이요."
"솔직히 인정하긴 싫은데 고작 보름 만에 저희들의 실력을 압도적으로 끌어올렸죠."
학생들의 말에 요시아는 문득 괴리감이 들었다.
데비 선생. 데이비 왕자.
'설마......'
그렇게 생각했지만 요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데이비 왕자는 성자였다. 신성력을 다루는 사람이고, 데비 선생은 더 볼 것도 없이 마법사였다. 서클 하나 제대로 측정하기 힘든 마법사 말이다.
게다가 그에게서 신성력을 느낀 적은 없지 않던가.
무엇보다, 그런 날라리 쌩양아치 선생님이 살신성인의 표본이자 수많은 이들을 구한 영웅이라 칭송받는 성자 데이비 왕자라니 웃기지도 않을 노릇이었다.
비웃음이 서린 그 미소가 아닌 부드럽고 멋진 미소를 지닌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정말 동화에서나 볼법한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소문이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그런 만큼 요시아에게 데이비 왕자의 모습은 대부분이 상상으로 이루어진 인물일 뿐이었다.
'그 인간이 데이비 왕자면 내 손에 파이어볼을 지지고 말지.'
거의 재앙에 가깝다며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에 신성 마법을 쓰는 사제가 마법사라는 것부터가 전제가 틀려먹었다.
마법검사는 존재해도 마법과 신성력을 동시에 쓰는 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데비 선생은 말이네. 스스로 말하거나 우연스레 알지 않는 이상 굳이 정체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면 알려 들지 않는 게 그를 위한 예우가 아니겠는가."
"그, 그렇네요."
떨떠름하게 중얼거린 요시아가 제 손을 꼭 쥐었다.
다시 만나고 싶다.
그의......
그의 피를 빨고 싶다.
반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한 그녀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내, 내가 무슨 생각을.'
스스로의 생각을 황당해하면서 그녀는 조심스레 다시 시선을 헬리슨에게 돌렸다.
"허허, 그래. 마침 너희들에게 데비 선생님의 소식을 하나 줄 수 있을 듯하구나."
"그래요? 어디에서 볼 수 있죠?!"
"그 선생님! 막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훌쩍 사라져버렸어요!"
학생들의 성화에 헬리슨 발레스티아는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미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라운왕국의 하인스 영지로 향한다고 했었지 아마, 그곳에 볼일이 있다고."
그 말에 학생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마침 잘되었네. 세상 경험이라는 것은 중요한 법인 게지. 언제까지고 아카데미 내에서 골머리만 싸맬 수야 없지 않은가. 어떤가, 다들 이번 휴식절을 기회로 라운왕국의 하인스 영지로 한번 가보는 것은?"
"하인스...... 영지로요?"
"그래, 이 늙은이가 우연찮게 데이비 왕자와 안면이 좀 있다 보니 말이지, 어디 한번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대단한 살신성인의 성자를 만나보는 건 어떠한가. 그 김에 자네들이 찾는 데비 선생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 일석이조인 게야."
"참! 하인스 영지에 시계의 왕녀님이 있다는 말도 들었어요! 무려 10대 초반에 엄청난 발명을 해낸 연금술사라고......"
"세상에 대단한 사람이 정말 많네요!"
세상 넓은 걸 직접 겪어보고. 자신들이 쌓아 올린 단단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겪어보라.
헬리슨의 의도는 그러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 마디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나을 테니까.
고작 보름 만에 학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데이비 왕자의 행실에 헬리슨은 이 학생들의 성장에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참신함을 더 해준다면 얼마나 더 성장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법과 신성력은 공존할 수 없다는 상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수는 그 소년을 직접 본다면 학생들에게 큰 깨달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과정에서 데이비 왕자가 엿을 좀 먹는다면?
그것 또한 재미난 일인 게다.
적탑에 대규모 폭발 테러가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만.
그가 아는 데이비 왕자라면 그렇게 무자비한 짓은 저지르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그였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은 이런 곳에서 쓰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