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14화
"거의 완공이오, 솔직히 이렇게 빨리 작업이 된 적은 처음이라 오히려 얼떨떨할 지경이군."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영지 전역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소. 일반 평민의 가정에도 말이오."
"안 그래도 에오니샤가 이번엔 등불이 아닌 마나등을 집에 설치할 수 있게 간단한 시스템을 구상 중이라니 그걸 많이 도와주세요."
"허허, 어린 왕녀님의 상상력은 언제 봐도 놀라울 지경이오."
기술보좌를 맡은 골다 장로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유분은 남지 않죠?"
"끄응....... 황색바위 부족도 이제 작업제를 시작하니 말이오. 대부분의 장인 놈들이 공방에 틀어박힐 테지. 자제를 살 돈과 사람을 부릴 돈이야 많겠지만, 그걸 지휘할 장인이 부족한 게 사실이오."
"그러네요."
"걱정 마시오! 내 그럴 줄 알고 대륙 최고의 건축기술자들을 살살 구슬려놨소이다."
그가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작은 서신을 건네주었다.
거기엔 적색바위 부족의 드워프들이 자신들에게 한가지 기술만 공유해준다면 얼마든지 하인스 영지의 일을 도와준다고 적혀있었다.
"딱히 걱정할 건 없소! 은사께서 우리 황색바위 부족에게 가르쳐준 수많은 기술 중 두 가지만 전수해주기로 했으니 말이오. 의논 없이 일을 저질러서 죄송하오만......."
"좋네요."
나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적색바위 부족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수많은 드워프들은 마을마다 자신들의 고유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중부대륙의 남단에 모여 사는 드워프 대도시, 적색바위 부족은 그야말로 대륙 최고 건축기술자들의 마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자들이었다.
기본적으로 복잡한 기술은 결국 내가 손을 대지만 그 외의 것들은 대부분 그들에게 맡겨도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
실제로 삼 제국의 건물을 짓는 데에 적색바위 드워프들의 기술이 섞인 것은 숨길 필요 없는 사실이었다.
"적색바위라...... 나쁘지 않은데요?"
"현재 하인스 영지에서 가장 시급한 건 장인의 숫자이니 말이오.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선 기술자가 많이 필요한 게지. 어찌하시겠소? 이번에 계획하신 영지 서부의 아카데미 건축 관련 문제는 이들에게 맡겨봄이."
"좋네요. 접선해봅시다."
가벼운 답변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마침 적색바위 부족의 장로 두 놈이 은사를 만나기 위해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소. 수프 제대로 들이켰는지 짐보따리까지 싸고 왔더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면 더 고민할 것도 없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걸음을 옮겼다.
"바로 만나봅시다."
"엇! 저하!"
집무실을 빠져나와 걸어가던 중이었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몬미더가 눈을 크게 뜨더니 내게 허겁지겁 뛰어왔다.
"무슨 일이야."
"그것이, 팔란 제국과 적탑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내용은?"
그를 대동한 채 걸어가며 심드렁하게 묻자 그는 한 치의 거짓 없이 내용을 고해 올렸다.
"팔란제국의 일리나 황녀께서 폐관수련을 끝내고 돌아왔다는 소식입니다. 아무래도 마스터의 벽을 넘어선 것 같다는군요."
"빠르기도 해라."
20세 이전에 소드마스터라니, 참 우스울 따름이다.
어지간해선 거의 불가능한 재능의 영역이지만, 그녀는 신검을 깨우고 주인이 될 만큼 재능이 좋다.
오죽하면 내가 한번 보여준 것만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겠는가.
"축하한다고 선물이나 하나 보내줘. 어지간한 장신구는 싫어할 테니 손목 보호대 정도면 괜찮겠다."
"다음은 적탑의 소식입니다. 견습생들의 미래를 위해 하인스 영지의 견학 방문을 하면 어떠할까 하고 연락이 왔습니다. 대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님의 부탁인 듯 보입니다."
"거절해. 귀찮게 뭐하러."
간단한 내 대답에 그가 우물쭈물했다.
"그것이...... 크리아네스 국왕 폐하께서...... 이미 승낙을 하셨다고."
"이 양반이......"
귀찮음이 팍팍 드러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몬미더가 뜨끔한 얼굴을 해 보였다.
"받아들이심이 어떠하신지요."
"망할 놈의 계급. 더럽고 아니꼬워서 독립하든지 해야지......."
반역에 가까운 발언임에도 몬미더는 놀라는 기색 하나 없다.
"준비할까요?"
"미쳤어? 그냥 하는 말이지. 왕실의 명이면 받아들여. 어지간해선 내 편의를 봐주고 계신 양반인데 이런 것까지 거절하면 쓰나."
내 대답에 그가 품 안에서 작은 차트를 꺼내 든다. 분명 근위조장인데, 치안상태가 워낙에 좋다 보니 월급 도둑이 되기 싫어서 에이미의 일을 도와주는 형편인 모양이었다.
"여기 견습생들의 소속과 각 귀족 가문 혹은 왕족 가문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상세정보와 명단을......."
"나 바쁘니까 집어치워. 어차피 코흘리개들 알아서 살살 구슬려주면 헤실거린다."
내 말에 주변에서 황당한 표정이 날아들었다.
-지는.
"데이비님, 육체 나이 17. 전혀 많지 않다고 판단."
"조용히 해."
담담하게 쏘아붙인 뒤 나는 영지 대규모 프로젝트를 담당해줄 적색바위 드워프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최고의 마법 아카데미, 샤쿤탈라가 있는 린드홀을 지나 하인스 영지로 향하는 행렬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보통 같으면 마나 게이트를 사용하겠지만 느긋한 여행을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는 만큼 직접 말을 타고 이동하는 걸 선호하는 학생들이었다.
마법사가 몸이 허약하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악랄한 선생의 주입식 교육이 빛을 발한 꼴이었다.
"요스포그양, 정말 저희가 하인스 영지로 가는 거죠? 솔직히 실감이 안 나네요."
"아 데린, 뭐, 솔직히 대단한 사람을 보는 건 알겠는데. 이해가 안 간다고 해야 하나......."
알리사 요스포그의 대답에 왜소한 체격의 한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안 간다니요?"
"아니, 그가 대단한 사람인 건 알겠는데. 대단한 마법사인 것도 아니고 그저 견학을 가는 거라면서. 굳이 우리가 그 견학에서 얻을 게 있나?"
그 말도 맞지만, 소년은 다른 곳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 보였다.
"성자 데이비 왕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인품도 정말 멋진 분이겠죠?"
"우리와 나이 차이도 거의 나지 않지만, 대륙에 수많은 업적을 세운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었어. 신성 마법은 그야말로 신의 기적에 가깝다는 말도 들어봤고."
"그게 정말인가요?"
"사실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나도 잘 모르겠지만 히히. 아 그래도 정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이전에 참석했던 무도회에서 직접 데이비 왕자를 본 영애들이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거든. 그래서 조금 기대가 된다고 해야 할까."
알리사 요스포그의 말에 소년은 더더욱 빨리 가고 싶어졌는지 타고 있던 말의 등을 살살 쓰다듬어 보였다.
"저희 집은 독실한 프리아 여신님의 신자라서요. 솔직히 정말 기대가 돼요!"
두 사람의 대화뿐만이 아니었다. 대개 F반의 학생들은 이번 행렬 자체에 상당한 의문과 기대를 동시에 품고 있기도 했었다.
[세상은 넓은 게야.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그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 게지. 세 살짜리 아이에게도 배울 게 있다고 하는데 하물며 이미 수많은 업적을 세운 인물이야 더 말할 게 있는가.]
대 현자가 자신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겠는가.
결과적으로 대 현자와의 면담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은 학생들은 그가 강조한 하인스 영지 견학에 상당히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나잇대는 비슷하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 꼴이다.
"그나저나 하인스 영지는 정말 땅덩어리가 넓네."
라운왕국의 영역으로 들어와 하인스 영지의 영역 끝자락에 들어선 학생들은 넓디넓은 평원을 보며 신비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성자 데이비 왕자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래요. 본래 하인스 영지는 죽어가는 땅으로 땅 자체가 저주를 받아 지기가 사라지고 기후가 굳어버린 버려진 땅이었다고 해요."
작은 소년의 말에 학생들 모두의 시선이 소년에게 향했다.
"맞아, 데린은 하인스 영지와 성자 데이비 왕자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했지?"
"성자 데이비 왕자가 하인스 영지에 온건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고 들었어요. 영지민은 고작 200여 명에 당장 겨울을 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수천 명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죠."
"1년 만에 그렇게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고?"
"네. 유명하잖아요? 달의 풀 잎사귀 사업. 그 외에 드워프를 영지민으로 받아들이고 그 유명한 엘프도 유일하게 영지민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도시죠."
"엘프라...... 한번 보고 싶다."
티미가 입을 헤벌쭉하며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모리 사엘른이 입을 삐쭉였고 알리사 요스포그가 티미의 입을 잡아당겼다.
"으악!"
"넌 좀 당해도 싸."
입을 부여잡고 인상을 찡그리는 티미를 무시한 학생들은 다시 데린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죽은 땅 치고는 너무 예쁜 곳인데?"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경관의 모습에 학생 중 하나가 의문을 던졌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성자 데이비 왕자의 기도에 감복한 주신 프리아 여신께서 이 땅에 축복을 내리셨다나 봐요. 그래서 초목도 잘 자라고 달의 풀 잎사귀도 재배할 수 있었구요. 그 외에 몬스터가 오지 않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상세하게 알고 있는 데린의 지식력에 학생들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 뭘 그렇게 잘 알아?"
"아......하하하, 집의 부모님들이 데이비 왕자의 열렬한 추종자셔서......."
"그런 것치고 네가 더 들뜬 것 같은데?"
촉을 찌르고 들어오는 요시아의 목소리에 데린이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 그게......안 되나요?"
불안한 얼굴로 물어보자 오히려 요시아가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누...... 누가 안 된다고 했나?"
"하여튼. 쯧쯧."
"사실 제 형이 팔란 제국의 기사를 하고 계세요. 일전에 데이비 왕자님이 형의 목숨을 구해주신 적이 있어서......."
그러면 이해할 수밖에.
"데이비 왕자님은 정말 멋진 분이라고 했어요. 아마 정말 자상하고 멋진 사람일 거로 생각해요! 일단은......제 롤모델이거든요! 살신성인! 귀족의 의무를 다하는 자! 지나가는 사람마다 데이비 왕자를 찬양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라는 증거겠죠!"
잔뜩 열이 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슷한 거로 치면 데비 선생님도 있잖아. 소드마스터라며?"
마법을 쓰는 걸 제대로 본 이는 요시아뿐이기에 학생들 전원은 그저 데비 선생이라는 그 인간이 그저 소드마스터에 준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데비......선생님......하......하......"
어색하게 웃던 데린이 피식 웃어 보였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그런 양아치 선생하고 비교하는 건 데이비 왕자님에 대한 모독이에요!"
"미......미안해. 소리치진 마라."
"다시는 그런 망언을 하지 말아주세요! 데비 선생님은 대단하죠. 하지만 인간으로선 영 꽝인 인간이라고요!"
"그......그래......"
기세에 떠밀린 학생들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다들 데린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았다.
린드홀에서 출발해 말과 마차를 타고 이동하길 약 며칠.
하인스 영지의 중앙에 도착한 학생들은 신기함에 눈을 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저것 봐! 마탑들이 줄지어 있어!"
"세상에 드워프잖아?! 수인도 있는데?! 그 희귀한 토인족이야!"
영주성의 시녀로 보이는 토인족 소녀가 커다란 봉지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가는 걸 보며 한 학생이 눈을 번뜩였다.
"세상에 저 미녀가 엘프......"
"남자 같은데?"
"망할!"
대륙 어디를 가도 보기 힘든 광경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보통 영지와는 다른 수로 시스템은 물론이고 건축 양식도 일반적인 거리의 건물과는 다르게 너무도 세련되고 아름다워 보일 정도였다.
"나 여기에서 살고 싶어......"
"세상에 데이비 왕자님은 정말 대단한 분인 모양이야."
홀린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영주성 내부로 걸어 들어간 학생들은 곧 영주성의 복도를 뛰어다니고 있는 붉은 머리와 푸른 머리의 쌍둥이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꺄르륵! 홍다니 잡아바라~"
"헥......헥...... 가, 가치가!"
활발해 보이는 빨간 머리 소녀의 외침에 푸른 머리의 꼬마 소녀가 숨을 할딱거리며 부지런히 쫓아가는 모양새였다.
"경고! 경고! 이것은 육체 효율에 상당히 악영향을 끼친다고 판단! 륀느는 휴식을 요구해!"
그 뒤를 이어 등허리에 날개가 달린 작은 은발의 소녀가 뒤따른다.
정말 신기한 광경에 학생들은 시녀를 따라 멍하니 영주성의 커다란 응접실로 들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저하께서 곧 당도하신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부드러운 인상의 노집사의 말에 학생들은 기대감이 가득한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렇게 단체로 불쑥 찾아와서 정말 죄송해요. 이런 환대에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허허. 괜찮습니다. 이미 이야기가 된 것을요. 저하께서도 만남을 고대하고 계시니 마음 편히 계시면 됩니다."
베르닐이라 소개한 노집사의 말에 학생들은 저마다 데이비 왕자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을 더더욱 부풀려 갔다.
"정말 어떤 분일까?"
"막, 어떤 우연을 계기로 친해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서라. 우리는 지금 일개 귀족 가의 학생이야. 상대는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신랑감 후보 1순위고."
여학생들은 꿈을 펼쳤고 남학생들은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그렇게 존경을 받는가 궁금해했다.
그렇게 각자의 상상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데이비 왕자 저하께서 당도하셨습니다."
연락을 받은 듯한 노집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정복을 입은 깔끔한 인상의 누군가가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다고?"
"마법 학교입니다."
"마법 학교가 어디 한두 군데야? 뭐 됐고. 그래. 대 현자 그 양반의 부탁이라니 못 들어줄 건 없다만. 아카데미 건축에 정신없는 이 시국에 견학은 무슨......."
누군가와 대화하며 들어오는 듯한 그 목소리에 담긴 느긋함에 학생들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리고.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