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15화
적색바위 부족에서 왔다는 두 명의 드워프 장로는 하인스 영지의 여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오, 왔군!"
"호오...... 저렇게 어린 인간이 그토록 대단한 기술을......"
새삼 처음 보는 내게 호기심을 아낌없이 보내오는 붉은 수염의 드워프들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리고는 한 손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반갑소! 우리 드워프의 은사! 태초의 섬광을 다시 만드는 데에 큰 은혜를 주었다고 하여서 언제 꼭 한번 만나고 싶었소이다!"
"나는 가름이라 하오! 이쪽 노친네는 게름이라 하지!"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 말한 내가 드워프의 예법을 담아 화답하자 적색바위 드워프들이 기분이 좋은 얼굴을 해 보였다.
"하하하하! 드워프의 예법을 아는 인간이라니! 정말 볼수록 마음에 드는 인간이로고!"
"어허, 이 미친 영감탱이들이! 은사께서 우리 종족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그 정도 태도란 말인가!"
"에잉....... 황색 놈들 성질 급한 건 알아줘야지. 쯧쯧."
붉은 수염의 가름이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받아주시오. 비록 직접적으로 우리 적색바위 부족을 도와준 것은 아니라고 하나, 일차적으로 태초의 섬광을 되살리는 데에 큰 공헌을 한 귀인에게 아무런 보답도 하지 않는 건 드워프의 수치이지! 이건 우리 마을 최고의 세공사가 만든 목걸이요! 무려 마법이 깃든 아티펙트라 할 수 있소!"
그의 말에 상자를 열자, 작은 보석이 세공된 아름다운 목걸이가 나왔다.
"소중한 사람에게 직접 걸어주면 행복한 일이 벌어질 거랍디다. 뭐, 그래 봐야 반쯤은 미신일 뿐이지만. 껄껄껄."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허허 웃어 보인 가름의 모습에 게름이 팔꿈치로 툭툭 쳤다.
"커흠!"
"이럴 게 아니라 성으로 가시지요."
"아니올시다. 우리는 기술자요. 기술자의 대표로 온 게지. 오는 길에 저 황색부족 놈에게 들었소. 아카데미를 짓고 싶으시다고."
"예."
"드워프와 엘프, 수인족, 오크 인간 할 것 없이 모두가 원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는 학교라....... 그 크기가 작을 수야 없지. 좋소. 자제만 제공해준다면 우리 쪽에서 지어드리리다. 3개월만 주시오."
"3개월이요?"
"뭐 오래 걸릴 게 무에있나. 우리 적색바위 부족은 최고 크기의 마을이고 그 안에 있는 놈들은 건축가들이오.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장인 놈들만 수천에 달하지. 마법 도구를 활용하여 속도를 올리는 건 익숙한 일이올시다."
자신만만하게 3개월을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골다 장로를 바라보았다.
"불가능하진 않을 겝니다. 뭐......조금 분하긴 해도 우리 황색바위 부족이 공사한다면 짧아야 2~3년이오. 은사."
"좋습니다. 원하시는 건 기술이라고 하셨지요?"
"그......그렇소! 많이 바라진 않겠소이다. 황색바위 부족에게 알려준 기술 몇 가지만 공유해주었으면 하오."
고민할 것도 없는 거래 내용이었다.
* * *
거기까진 좋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일 처리가 되고 마을에 소식을 전하겠다며 급히 떠난 가름과 게름 장로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저돌적인 황소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기술 공유를 확정받고 난 후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떠난 가름과 게름을 뒤로 한 채 영주성으로 돌아오자 신나게 뛰어다니던 홍단이가 나를 발견하고 쪼르르 뛰어와 안겨들었다.
"아! 아빠아!"
"어이구, 실내에선 뛰면 안 되지."
"네에!"
신이 난 목소리로 답하는 녀석을 안아 들자 뒤에서 조심스레 따라온 청단이도 자신의 팔을 뻗어왔다.
"처......청다니도......"
"그래."
"저하, 견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내할까요?"
"그래."
애들 살살 구슬려서 자기들끼리 구경하게 내버려두면 알아서 되겠지 싶은 마음이 앞선다.
"어디서 왔다고?"
"마법 학교입니다."
"마법 학교가 어디 한두 군데야? 뭐 됐고. 그래. 대 현자 그 양반의 부탁이라니 못 들어줄 건 없다만. 아카데미 건축에 정신없는 이 시국에 견학은 무슨......"
대형 응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문득 굳어버린 실내의 분위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어?"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약간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얘, 티미,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환상."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알리사 요스포그의 말에 티미가 멍하니 대답했다.
"이상하다? 시력에 문제가 생겼나......"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의 수는 대략 수십 정도지만 하나하나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니들이 왜 여기 있냐?"
나는 우선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을 그들에게 표했다.
그리고.
멍하니 있던 학생 중 한 명의 입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 그건 저희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데비 선생님."
* * *
고요한 대치 속에서 나는 이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오랜 시간 고민하지 않았다.
마법 학교에서 온 견학생.
그리고, 대 현자 헬리슨의 추천으로 온 학생들.
빠르게 굴러가는 머리가 한가지 답을 도출해냈다.
결론이 났다면 결정은 신중하게, 그리고 실천은 빠르게.
"조만간 적탑에 들를 거다. 일정 비워놔."
"예......예? 헙?! 저, 저하! 안됩니다! 그곳엔 윈리 왕녀 저하께서......"
"일단 데려오고 나서 생각한다. 나가 봐."
뒤따라온 베르닐 시종장이 아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우웅...... 아빠아?"
이에 홍단이가 손가락을 쪽쪽 빨며 나를 올려다보고 물어왔다.
"아, 아빠?!"
"저......저 귀여운 아가씨가 설마......"
학생들은 아직도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런 침묵이 있기를 한참, 용기 있는 학생인 티미가 천천히 손을 들어 보였다.
"저......데비 선생님?"
"......"
"왜...... 선생님이 여기 계세요?"
마지막 최후의 저항을 하듯 물어오는 그 말에 나는 내 뺨을 꼬집어 당기는 홍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왜 여기 있긴, 내 집에 내가 있는 게 문제라도 있나?"
싸늘한 찬물을 끼얹은 듯 학생들 전원의 표정이 대놓고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관이었던 건.
"마, 말도 안 돼....... 이건 재앙이야......재앙이라고!"
패닉에 빠져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데린이라는 이름의 작은 소년이었다.
* * *
인간이 나쁜 일을 겪었을 때는 주로 몇 단계로 변화를 보인다.
첫째가 현실도피
"에이......이거 장난일 거야. 그치?"
"데비 선생님이 어떤 인간인데, 분명 뭔가 있겠지."
"맞아. 나잇대도 비슷해서 친분이 있을 수도 있고."
둘째가 분노.
"아니! 망할!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성자 데이비 왕자님과 데비 선생님이 동일 인물이라는 거야!"
셋째 슬픔.
"흑......흐흑......세상은 망했어."
"멸망해버리라지, 이딴 세상......"
"재앙이야......재앙......프리아 주신께서 드디어 인간의 욕심에 극대노 하신 거야......"
네 번째. 체념.
"......"
"......"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며 홍단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내 품에서 빠져나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티미의 팔을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우웅......언니 오빠 왜 그래애?"
"아......"
하지만 홍단이 청단이의 모습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 건지 티미는 허탈한 표정으로 그저 말없이 있을 뿐이었다.
그중 요시아 프랑소스는 조용히 파이어볼을 영창한 뒤 자신의 손을 태워버리려 들고 있었다.
"망했어....... 세상은 망했어......"
뱀파이어 로드나 된 녀석이 저렇게 심지가 얇아서야.
물론, 그 과정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내가 가만히 그 꼴을 지켜볼 리 없다.
"이것들이 단체로 돌았구나?"
현실 직시 못 하고 멍청한 짓이나 하라고 가르친 게 아닌데. 그새 그런 것들을 까먹고 있다.
"흐읍?!"
순식간에 요시아의 팔을 낚아채 마법을 디스펠해버린 내가 음산하게 웃어 보이자 학생들은 현실을 깨달은 듯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데, 데비 선생님...... 설마 정말로 선생님이 성자 데이비 왕자님이신 건가요?"
"이름만 봐도 비슷하지 않나?"
"보통 사제를 두고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돼요?!"
기겁하며 반박하는 학생들의 말대로였다. 이름이 비슷해도 기본의 상식이라는 게 있으니까.
'가만.'
-대 현자는 이 아이들이 그대의 정체를 깨닫고 깨달음을 얻길 바란 모양인데?
자신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겪게 해줌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느끼게 하고자 하는 행위.
나쁘지 않은 선택인데.
거기에 내가 휘말린 이상 기분이 좋지 않다.
"홍단이 청단이, 아빠랑 같이 재밌는 구경 갈까?"
"네!"
"청다니 볼래! 볼래!"
활기차게 애교를 피우며 대답하는 두 아이의 치명적인 귀여움에 학생들의 시선이 두 아이에게 집중되었다.
"서, 선생님. 정말 이 두 꼬마 아가씨가 선생님의 따님인가요?"
"쌍둥이인가? 하지만 머리카락 색이 다른데......."
"뭣보다 선생님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이르지 않아?"
"맞아. 성년 직후 결혼해도 아직 갓난아기가 한계일 텐데......."
몇몇은 나와 두 아이 사이에 생길 의문점을 드러냈다.
"륀느, 디셉티콘 편대 준비시켜. 실전 훈련 들어간다."
"륀느, 명령 수행 중. 엘더브레인인 륀느도 참전해?"
"마음대로."
지옥을 보여주리라.
"그래, 견학하러 왔다고."
"......"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을 향해 내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식 들었다. 마법제에서 1등 했다고 했지. 잘했다."
"아......네......"
"기왕 이렇게 온 거 다시는 잊지 못할 견학을 시켜주마. 우선 몸 좀 풀고 시작하자."
* * *
아직 개발되지 않은 넓은 들판과 숲이 이어진 하인스 영지의 동부 영역.
그곳으로 학생들을 이끌고 곧바로 나온 나는 말없이 손에 쥔 큐브를 가볍게 던졌다가 받아냈다.
에나벨도 참가시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어벤져 편대는 현재 증축의 영역에 있기에 당장 빼내 올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쓸 수 있는 디셉티콘 편대가 전부이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햇병아리 마법사가 성장해봐야 익스퍼터 최상위에서 몇몇 개체는 마스터급 까지 업그레이드된 디셉티콘 편대의 데이터 수집에는 좋은 제물이 될 터다.
-자기 학생을 골렘 성장의 데이터로 써먹다니.......
"그러길래 누가 날 보고 기겁하랬나? 뭐? 재앙? 이것들이 미쳐가지고."
멀찍이서 주변을 탐색하고 있는 학생들의 표정은 기대감보다는 이제는 경계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 학생들에게 다가가며 내가 천천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 어때 보여."
"여, 여기요?"
"그, 글쎄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기겁하는 학생들의 반응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는 그들에게서 천천히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기왕 휴일에 놀러 온 만큼 푹 쉬다 가라. 재밌는 걸 시켜줄 테니."
그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분명 희소식인데, 미묘하게 희소식 같지가 않은 발언이었다.
"메가트론, 전기톱과 드릴허용. 포격모드 가동."
[가동준비. 완료.]
그 말과 함께 내 귓가에서 메가트론의 대답이 들려왔다.
"일대에 결계를 쳤다. 어디 신나게 한번 놀아봐."
투쾅!!
내 중얼거림과 함께 멀리서 보랏빛의 광탄이 날아든다.
멍하니 있던 학생 중 하나가 기겁하며 물러나기가 무섭게 광탄은 가차 없이 학생의 발아래를 완전히 소멸시키듯 파헤쳐 버렸다.
"흐익?!"
기겁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미소를 거두지 않고 학생들에게 들리게끔 외쳤다.
"대 현자님께서 너희에게 좋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시려고 그런 모양이더라고, 그럼 그 기대에 부응해드려야지. 메가트론, cs멀미탄 최대 출력, 발사."
[발사.]
투쾅!!
인간의 체면을 하수구 밑바닥까지 처박아버릴 악마 같은 탄환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너희 집에 이런 거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