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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23화 (323/1,559)

# 32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21화

106. 특이한 언어.

"벨리얼! 또 식사를 걸렀어요?"

"......"

고요한 숲 속 오두막.

폐관수련을 하던 인적이 드문 그 숲은 아니지만 벨리얼은 일리나의 도움을 받아 황궁에서 멀지 않은 작은 숲 속에서 요양을 계속했다.

말없이 바위에 앉아 손을 뻗어 새를 앉혀두고 있는 사내는 소녀의 외침에도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다.

무시야 요 며칠 그를 데려온 이후 늘 있던 일이기에 일리나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아...... 내가 석상하고 이야기를 하지 그냥......"

"인간 여자."

인간 여자.

일리나라는 이름이 있음에도 그는 언제부터인가 그녀를 인간 여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뭐죠?"

"중간 계는 태양이 언제부터 떠 있었나......"

"네?"

뜬금없는 그 질문에 소녀, 일리나가 눈을 찌푸렸다.

"무슨 개 풀 뜯는 소리야! 이 마족은. 태양이 언제부터 떠 있었냐니, 당연히 아침이 되면 해가 뜨는 게 맞지."

"그렇군. 매번 태양이 뜨는 건가?"

"그럼, 아니에요?"

"......"

대답하지 않는 사내가 천천히 손가락을 뻗자 정원 안에서 날아다니던 작은 종달새 한 마리가 빠르게 날아와 그의 손가락에 앉았다.

"내가 태어난 고향엔 태양이 없었다."

"벨리얼 당신은 이곳이 아닌 곳에서 왔다고 했죠? 당신은 어디서 왔는데요?"

"흑의 종군."

"흑의 종군? 그건 또 뭐람. 사람이 말이야. 알아듣기 쉽게 말을 해야 알아듣지."

일리나의 투덜거림에 벨리얼은 말없이 새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그 조용함이 답답했는지 일리나가 뭐라 말하려던 찰나.

벨리얼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마족은 오래전 이 땅에서 추방당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는 곳에 갇혔다."

"......"

"그곳에서 새 터전을 잡은 마족은 오랜 시간 이 대륙의 모든 생명체에 대해 이빨을 갈아왔다. 나와 같은 온건파는 종족의 배신자와 같은 낙인이 찍히지. 흑의 종군은 그런 온건파가 수용된 거대한 수용소였다."

지옥 같은 환경, 끊임없는 노동, 지독한 학대.

햇볕조차 없는 인공마계에서도 잘 없는 처참한 삶의 환경.

흑의 종군이란 그런 곳이었다.

"그곳보다 이곳은 살기 좋은 곳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위험 수가 있을지 모르지. 나는 투기장에서 우승했다는 이유로 이곳으로 오는 선발대에 합류했다. 비록 지독한 곳이지만 내 고향이기도 하다."

"......좋은 거 아닌가요? 생지옥에서 이곳으로 온 거잖아."

"좋겠지,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말에 일리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고향에서 쫓겨나듯 내쫓겼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눈치챘지만 그를 동정해야 할지 오히려 경계해야 할지 모호한 기분이 들었다.

[일리나, 저 남자가 지금 스스로를 죄인이라 말하긴 했지만, 엄연히 상위 마족이야. 직급으로 치면 최상위라고. 마족도 울고 웃는 존재라지만 네가 하는 짓은 크게 후회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거 알아?]

'느낌이 좀 그렇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이성적으로는 그를 살려두는 게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자꾸 마음 한쪽에서 그를 살려두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그 말에 칼디라스는 침묵을 유지했다.

일리나에게 무언가 특별한 힘이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는 칼디라스였다.

비록 신검의 주인이 지금껏 존재하지 않다가 오랜 시간을 거쳐 그녀를 신검의 계약자로 받아들였지만, 그녀는 검의 재능이 뛰어날 뿐 특별히 영적인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칼디라스가 신성력을 빌려주고 그녀를 돕는 이유는.

이상하리만치 그녀의 감이 잘 들어맞기 때문이기도 했다.

[네가 그렇다면. 하지만 이 일에 관해선 페르와 함께 있는 그 인간에게 조언을 요청해보는 게 어때?]

그 인간이라는 단어에 일리나의 표정이 대뜸 찌푸려졌다.

'됐어, 그런 몰인정한 자식한테 내가 뭘 바래.'

[삐졌구나? 폐관수련을 끝내고 나왔는데도 전혀 관심도 안 주니까.]

'그 자식이 그런 놈인 거 몰라? 애초에 그딴 놈이 어떻게 나오건 아무 상관 없어. 그리고, 데이비 그 녀석의 성격상, 적대 세력이라 판단되면 냉정하게 쳐내겠지.'

일리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분명 뭔가가 있는데.'

영적인 힘이 있는 그녀는 아니었다.

하지만 옛날부터 그녀는 상당히 감이 좋은 편에 속했다.

실제로 몇몇 큰 사건의 배후에는 그녀의 감을 따라 행동한 것이 큰 결과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애초에 데이비와의 만남도 그런 유의 문제였다.

"뭐, 다른 이야기는 없어요? 당신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한숨을 포옥 내쉬며 들고 온 봇짐을 내려놓은 일리나가 그의 곁에 걸 터 얹었다.

"없다."

"진짜로?"

"......"

더 강조할 것도 없다는 듯 조용히 침묵하는 그 모습에 일리나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네 그 인간 친구에 관한 이야기는 없는가?"

그의 질문에 일리나가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인간 친구?"

"그래, 검에 마법, 신성력까지 다룬다는 그 인간."

"아아......데이비."

그 말에 일리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개자식이에요."

"개자식이라......"

"왜요. 뭐 이상해요?"

"아니. 그를 상당히 신뢰하는 듯 보이는군."

의외의 말에 일리나가 당황한 듯 인상을 대뜸 찌푸렸다.

"신뢰라......신뢰......맞아요. 신뢰는 하지, 성질머리가 그 지경이라 그렇지 천성 자체는 착한 놈이니까."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뭔가 울컥한 듯 보였다.

"그러면 뭐해. 잘난 척에 가식 덩어리에, 툭하면 시비 걸고, 남들 괴롭혀서 울상짓는 걸 보고 즐기는 악랄한 놈인데."

일리나의 외침에 벨리얼은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솔직히 한때엔 그랬어요. 그 녀석의 검술에 관심이 있어서 어떻게든 배워보려고 국혼 문제까지 들먹인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어쩌긴요. 매몰차게 거절당했지 뭐."

담담하게 말하는 일리나의 목소리에 벨리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이건 마족이건 미적 감각은 비슷하다고 알고 있다."

"어머, 그래요?"

"넌 그런 우리 마족의 입장에서도 상당한 미인일 텐데."

"글쎄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고자라는 소문도 있고. 비록 그 꼴이긴 하지만 위치도 위치고 능력도 능력이라 신랑감 후보로선 손색이 없긴 하거든요."

젊고, 능력 있고, 부자에, 강하다. 신분의 문제까지 전혀 거리낄 게 없으며, 단신으로 두 제국의 신임을 받은 막무가내 그 자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여자에게 관심이 없어요. 난 말라버린 우물을 파는 스타일은 아니거든."

"말라버렸다라......"

벨리얼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미 누군가를 품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관심이 없는 건지는 몰라도, 굳이 생각 없는 녀석에게 내가 매달릴 이유가 어딨어요. 결국, 거기서 끝인 거지."

담담하게 말한 일리나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벨리얼의 손에 앉아있던 새가 말없이 일리나를 바라보다 그대로 벨리얼에게 파고들었다.

"동물들이 참 잘 따르네요."

"......"

조용히 침묵하던 그가 일리나와 그녀의 품에 있던 칼디라스를 바라보았다.

"신검의 주인."

"네?"

"신검은 자아가 있다고 들었다. 분명 나를 죽이라 외칠 줄 알았는데."

"칼디라스는 마냥 마족을 죽이라 외치는 녀석이 아니니까요."

"조금 다르군."

담담하게 그는 그가 아는 사실을 꺼내놓았다.

"검신의 검, 칼디라스의 자아는 마족에 한해선 굉장히 흉폭하기로 소문난 검이다. 3천 년 전 자아가 현신할 수 있을 땐 거의 광적으로 마족을 싫어했다고 들었다."

그 말에 일리나가 칼디라스를 바라보았지만 칼디라스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거겠죠."

일리나의 말에 벨리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검을 잡아라."

"뭐라고요?"

"검신의 검술은 수천 년의 원수인 우리 마족조차 인정하는 편이다. 내 가문은 그런 검신의 중검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독자적인 검술을 가문 검술로써 계승해왔다. 비록 제대로 된 중검을 가르칠 순 없겠지만. 도움이 안 되진 않을 테지......"

"됐거든요? 환자와 대련할 만큼 막무가내는 아니에요."

일리나의 거절에 그가 천천히 마기를 끌어 올렸다.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변한다.

"몸이 이렇다 해도 네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건 알 필요가 있겠군."

그 말에 일리나가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칼디라스를 감싼 천을 풀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중검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그 특유의 마나 흐름과 함께 그녀의 전신으로 마나가 터져 나오듯 활성화되며 그녀의 검 끝으로 푸르스름한 기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소드마스터의 상징.

오러블레이드였다.

"젊은 나이에 오러블레이드. 그야말로 검신의 환생 그 자체로군. 네가 최초인가?"

"정확히는 두 번째겠죠, 그 망할 자식은 단순한 소드마스터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제법 궁금해지는군."

쿠웅!!!

그 말과 함께 일리나가 한발을 강하게 구른다.

그녀의 발이 닿은 지면이 일순간 어그러지더니 그녀의 신형이 포탄처럼 그에게 쏘아져 들어갔다.

순간 폭발적인 중량이 검에 담기며 가해지는 내려 베기에 벨리얼은 침착하게 검을 쳐올렸다.

콰앙!!!!!!

어마어마한 충격음이 숲 전체를 뒤집어엎었다.

"눈치 빠르시네요. 중검을 함부로 빗겨내려 들다간 검이 작살나는 걸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던데."

"말하지 않았나. 내 가문 검술은 엄연히 중검을 모방하여 흉내 낸 잡기라고."

담담하게 말하며 올려친 검을 순간적으로 빼 균형을 흩어버린 그가 그대로 일리나의 다리를 걸었다.

"읏?!"

동시에 그대로 무너지는 일리나의 목을 움켜쥐려다 방향을 틀어 그녀의 팔을 잡고 그녀를 그대로 지면에 메다꽂았다.

콰앙!!!

하지만 곧이어 들려온 충격파에 벨리얼은 뜻한 바를 모두 이루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배려라니, 참......"

"인간의 기사도가 인간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비록 홀로 남았지만 내 가문은 적군이건 아군이건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가풍을 지니고 있었다."

"거 눈물 나게 고마우시네!!"

짜증이 왈칵 난 표정으로 그녀가 덤벼들었다.

벨리얼의 말인즉슨, 그녀가 압도적인 약자라고 판단되었다는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쾅!!! 쾅!!

고요한 숲 내부에 정신없이 거대한 충격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일리나와 벨리얼은 대련을 빙자한 사생결단을 내기라도 하듯 서로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 없는 공격을 쏟아부었다.

비록 약해져 있다고 하지만 벨리얼은 상위 마족다운 힘을 보여주었고, 일리나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과 기교를 내보이며 벨리얼을 압박해 나갔다.

[일리나, 너 지금 상대가 환자라는 것도 잊고 뭐하는 짓이야?]

자연스레 강자와의 대련에 흥미가 생긴 일리나는 곧 상대가 환자라는 사실도 잊고 검을 휘둘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동시에 그녀의 수준에 맞춰 검을 휘두르던 벨리얼은 갑자기 그녀가 공격을 멈추자 도리어 당황해 검로를 강제로 틀어버렸다.

콰앙!!!

결국, 벨리얼의 무거운 검은 지면을 내리치며 바닥을 박살 내버렸고, 그 충격으로 균형이 뒤틀린 일리나가 넘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부축하듯 벨리얼이 급히 손을 뻗었다가 그마저 균형을 잃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미묘한 분위기가 풍기는 자세로 쓰러져 버린 두 사람의 행동에 침묵은 오래갔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끝에 일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 미안해요. 그런데 좀 비켜주지 않을래요?"

그녀의 말에 멍하니 일리나를 보던 그가 천천히 비켜 일어섰다.

"실례를 했군."

"거, 마족이 예의도 바르셔라. 우리 적이라면서요. 그냥 죽여도 됐을 텐데?"

"너 하나 죽여본들 내게 이득은 없다."

담담하게 말하며 물러난 그가 검을 거두었다.

대련이 순식간에 무산되어버리긴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굳이 그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식사...... 안 했잖아요. 오늘은 당신이 먹는 걸 보고 갈 거니까. 거르지 말아요."

"왜 내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지?"

"감 때문에."

일리나의 말에 벨리얼이 침묵했다.

그때였다.

"왜, 보기 좋았는데, 계속하지?"

들려올 리 없는 목소리에 일리나와 벨리얼 둘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레이나. 저 새끼 제압해."

"벨리얼, 당신은 마족 중에서도 그래도 경의를 표할 존재일 줄 알았는데......"

일순간. 누가 반응하기도 전에 새하얀 빛으로 된 날개가 번뜩이며 순백의 깃털을 흩날렸고.

깜짝 놀라 경계하던 벨리얼의 육신이 그대로 거대한 추에 맞은 것처럼 튕겨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이어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인 흑발적안의 소년이 느긋하게 벨리얼을 향해 말했다.

"레이나가 예전 네가 알던 그 다 죽어가던 반 시체가 아니거든. 아, 너는 얘가 누군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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