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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24화 (324/1,559)

# 32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22화

마족과의 대면은 솔직히 상당히 놀랐었다.

그것도 해상국가에서 일어났던 마족, 마왕의 측근 초대 리치이자 9서클 흑마법사인 닉스의 부활 던전에서 중간의 길목을 막고 있던 검은 갑옷의 마족이 이곳에 있을 거라는 사실은 모두의 예상을 사실상 가볍게 뛰어넘는 조합이었다.

륀느와 카트린느의 공격에 이어 내가 당시 각성하면서 퍼뜨린 여파에 꽤 큰 치명상을 입었을 테니 완전히 이해가 불가능한 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부상을 입은 그가 팔란 제국까지 도망쳐서 은신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마족, 벨리얼은 내가 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에게 레이나는 완전히 처음 만나는 존재였을 것이다.

이전의 용사 레이나라는 존재가 삭제되면서 그의 기억도 일부 수정되었을 테고, 그때 당시 시시각각 죽어가던 용사 레이나를 만났다는 기억은 이미 없을 게 뻔했다.

애초에 그는 적이다.

심연의 권능을 끌어올리자 그의 이름이 벨리얼이며.

직급상으론 상위 마족, 그리고 벨리얼이라는 이름을 지닌 우직한 작자라는 사실밖에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튕겨 나간 벨리얼과 그런 그를 제압하듯 새하얀 빛으로 된 검을 겨누고 있는 레이나의 표정은 혼란과 배신감 그리고 분노로 가득해 보였다.

"힘없는 소녀나 겁탈하려 들다니......."

이제는 본인이라고 하기도 뭣하지만, 일단은 이쪽 세계선의 자신을 일생의 적중 한 명이 겁탈하듯 깔아뭉개고 있으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그것도 마족 중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기사로서 인정하고 경의를 표하는 적이었던 사내가 말이다.

반대로 일리나는 멍한 얼굴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 외에는 상황을 그저 말없이 지켜보는 내가 있었다.

"뭐, 뭐야?"

가장 당황한 것은 다름 아닌 일리나였다.

화사한 금발을 흩날리며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발 앞서 내디딘 뒤 내 이름을 불러왔다.

"데이비? 네가 여기 왜 있어?!"

마치 잘못하다 걸린 아이처럼 불안한 얼굴로 나를 향해 물어오는 일리나는 자신이 왜 그런지도 모른 채 당황한 목소리로 외쳐왔다.

"내가 여기 왜 있냐고?"

"그래! 여기에 내가 있을 거라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을 텐데......"

담담하게 말한 내가 옷깃 부분을 톡톡 두드렸다.

"그거 보고 찾아왔지. 어딜 그리 열심히 돌아다니나 했네."

이에 말없이 나를 따라 자신의 옷깃을 확인하던 일리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 말에 나는 그녀를 무시한 채 레이나에게 제압당해 있는 벨리얼을 향해 걸어갔다.

"네 몸 안에 추적 마법 하나 심어놨다고."

"뭐, 뭐?! 너 미쳤어?! 황족의 몸에 마법을 무단으로 심어?! 너 이거 들키면 내가 문제가 아니라 팔란 제국에서 들고 일어날 일인 건 알고 있는 거야?!"

"아, 그거, 신경 쓰지 마라."

담담하게 말한 나는 레이나가 물러나기가 무섭게 그대로 벨리얼의 멱살을 틀어잡아 끌어올렸다.

"그 문제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거든. 넌 모르는 모양인데, 당분간은 내가 네 신변을 지키기로 이야기 끝난 지 오래야."

"세상에...... 나, 난 그런 말 듣지 못했어!"

"참고로 도청기능도 있다."

"꺄악!! 이 변태 새끼야!"

"구라야."

일리나의 표정은 당혹 그 자체였다.

실제로 거짓말은 아니었다.

팔란 제국의 언데드 창궐 사태 이후 나와 독대를 한 살리반은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향후 일리나가 소드마스터가 되는 순간까지. 일리나의 신변을 몰래 지켜줄 것.

그 대가는 대량의 자금이었다.

애초에 돈에 크게 구애 받는 입장은 아니지만,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에둘러 찾기 힘들었기에 나는 그 제안을 받아 일리나의 몸에 몰래 추적 마법 하나를 심어두었었다.

팔란 제국의 새 황태자가 된 살리반은 확실히 스스로를 어둠에 숨겨 동생을 지키는 편을 택했다. 일리나에게 차라리 미움을 받는 것이 모두의 손에서 녀석을 지키는 방법이니 말이다.

자신이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동생의 삶을 온전히 지키려 한 인간이.

단순히 국가의 위신을 위해 동생의 안위를 안일하게 대처했을까.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벨리얼을 보며 내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렇다 할 사이는 아니다만, 일단은 보호자 입장이라서 말이다. 눈앞에서 제법 엉큼한 짓을 하는 놈팽이를 살려둘 만큼 내가 그렇게 인내심이 좋지 않은데. 변명이라도 해볼래?"

내 질문에 벨리얼이 침묵했다.

본래 이놈에 대한 문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애초에 이놈이 왜 이곳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넌......"

그제야 나를 알아본 듯 그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우리 구면이잖아, 그렇지?"

본래 그는 나와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용사 레이나의 존재.

그 존재를 세상의 규칙이 소거하기 시작하면서 비어버린 자리가 생긴 탓이었다.

그 자리를 메꾼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존재였다.

실제로 대륙에 떠도는 소문을 종합해보면 해상국가에서 일어난 초대 리치 닉스의 문제를 해결한 건 나로 되어있다.

즉, 닉스의 봉인지를 지키던 검은 기사였던 벨리얼과 불여우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의 싸움을 붙인 건 레이나가 아니라 내가 되어버렸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렇군....... 그 인간은 널 말하는 것이었군."

벨리얼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일리나를 바라보았다.

"마침 폐관수련도 끝이 났겠다. 얼굴 한번 볼까 해서 직접 어렵게 찾아왔더니. 웃기지도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담담하게 웃으며 말하던 나는 곧 미소를 지운 채 일리나를 향해 물었다.

"이놈 어떻게 해줄까."

"......"

"말만 해. 보아하니 위험한 마족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네 말 한마디면 당장 여기서 이놈을 죽여줄 수 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움직인 것은 벨리얼이었다.

부상으로 대부분의 힘을 상실한 그였지만 그는 전신에 검은 마기를 끌어올려 순간적으로 흑색의 기검을 만들어냈고.

내게는 익숙한 검술을 사용하며 나를 떨쳐내고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비록 빈사 상태에 가까운 부상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소드마스터는 반응도 하지 못할 만큼의 속도와 기교가 섞인 기술이었다.

실제로 그의 행동을 일리나는 전혀 반응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소드마스터라는 게 정말 대단한 경지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도 일리나처럼 단순히 스스로의 노력으로 20세 이전에 소드마스터에 들 정도의 재능이라면 다시 없을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완성된 무인이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제 막 마스터가 된 시점일 뿐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마스터급 이상의 힘을 지닌 벨리얼의 반사적인 저항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부류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여기까지가.

콰앙!!!

"커......억......"

일리나의 기준으로 볼 때의 벨리얼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제 막 소드마스터가 된 햇병아리는 아니라서 말이다.

"겁도 없이 최대 제국의 금지옥엽을 겁탈하려 드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지, 나도 괴롭힐 땐 최대한 성심성의껏 선을 지켜가면서 괴롭히는데."

담담하게 말하며 벨리얼의 목을 틀어쥐고 거목에 다시 한 번 처박아버린 나는 그의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다는 사실에 눈을 가늘게 뜨고 전신을 훑었다.

"내장도 엉망이고, 기혈도 다 뒤틀렸네. 움직이지 마라. 여기서 한 번만 더 충격이 가해지면 그대로 송장 치우는 수가 있다."

내가 마족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적이었던 놈에게 인정 베푸는 것 자체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내 말에 피를 계속해서 토해내던 그가 잔뜩 지친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터......무니 없는 속도군. 정말 인간이 맞는 건가?"

"의심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도 좋아."

내 질문에 그는 침묵을 고수했다.

대신 다른 이가 나섰다.

"제게 맡겨주세요. 지금이라면 이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남자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어요."

레이나의 가세였다.

일순간 백색의 기검을 만들어 벨리얼의 목에 겨눈 레이나가 위협하듯 중얼거렸다.

"......"

동시에 레이나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본 벨리얼의 눈에 미약한 의문이 어렸다.

그럴 수밖에.

기본적으로 조금 바뀌긴 했지만 레이나의 외모는 엄연히 일리나의 성장한 모습과 흡사한 구석이 많다.

비록 그녀의 육신을 재구성하면서 조금 입맛대로 바꾸긴 했지만, 기본적인 얼굴형이나 느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넌......"

"당신은 그래도 마족 중에서 제법 도의를 중시하는 그런 마족인 줄 알았습니다."

싸늘하게 중얼거린 레이나가 눈에서 빔이라도 쏠 기세로 그를 노려보았다.

"설마, 저보다 약한 여인을 강제로 취하려는 몰상식한 자일 줄이야......"

"나는 너를 본 적이 없다."

"그러시겠죠. 하지만 난 당신을 지겹게 봐왔어."

부들부들 떨며 레이나가 기검을 더욱 들이밀었다.

"데이비! 그만해! 그는 내 환자야!"

그때.

일리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환자? 요즘은 그 환자가 돌팔이라고 해도 치료해주는 사람을 바닥에 자빠뜨리나 보다?"

"말장난하지 마! 단순 대련 중에 일어난 사고일 뿐이야! 알고 있으면서 자꾸 장난칠 거야?"

나는 말없이 벨리얼을 지켜보다 망설임 없이 표정을 풀고 물러났다.

"레이나. 검 치워."

"네."

당장에라도 그를 때려죽일 것처럼 굴던 레이나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며 백색의 검을 지워버렸다.

내 손에 목을 틀어 잡혀있던 벨리얼은 지지하던 힘을 잃고 그대로 무너져 내려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소드마스터. 축하한다."

담담한 말에 일리나는 고개를 훽 돌리며 새침스레 대답했다.

"흥, 눈치는 빨라가지고......"

"그래도 제법 빠르게 나왔네. 더 예뻐진 걸 보니, 환골탈태도 성공한 것 같고."

"누구라도 네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을 잡을걸? 그, 그리고 칭찬해도 나오는 거 하나 없거든."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일리나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검을 휘두르는 것만 보고 스스로 벽을 넘어섰다고? 환골탈태를 겪었다고?

환골탈태가 뉘 집 개 이름인 줄 아나.

보통은 그런 거 못 한다.

고개를 돌린 채 멍하니 있는 그녀의 머리를 푹푹 눌러 쓰다듬어 주자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던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내게서 떨어졌다.

"너...... 사람 자꾸 애 취급할래?"

"누가 애 취급했다고 그러냐."

"......가끔씩 널 보고 있으면 말이야. 너 이외에 다른 모든 사람을 애처럼 보는 경향이 있어."

들켰네.

나를 미묘한 표정으로 째려보던 일리나는 곧 걸음을 옮겨 벨리얼을 부축했다.

"이봐요. 몸은 괜찮아요?"

"......"

대답 대신 침묵을 유지하는 벨리얼의 모습에 일리나가 나를 향해 고개를 훽 돌렸다.

"데이비, 이 사람 살려줄 수 있어?

기존의 치료로는 크게 차도가 보이지 않아. 보상은 충분히 할게."

"이놈, 마족이야."

내 말에 그녀가 침묵한다.

"그것도 그냥 마족이 아니라 초대 리치 닉스의 봉인지를 지키고 있던 놈이라고, 무슨 뜻인지 모르냐?"

신랄한 비판을 던지는 듯한 내 말에 일리나가 고개를 살짝 숙여 시선을 피했다.

"네가 그렇게 때려죽이고 싶어 하는 뱀파이어와 동맹이라고."

내 말에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금 상기한 일리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그건 알아......아는데. 페르를 생각하면......마냥 나쁜 마족만 있는 건 아니라고......"

아.

'아 그러고 보니 칼디라스 때문에 일리나는 널 알고 있구나.'

-그랬지.

"일단 적이라고. 나쁘고 착하고를 떠나서."

"그, 그것도 알아! 아는데......"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조용히 물었다.

"살리고 싶나?"

"적어도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척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는 그렇게 나쁜 마족 같지도 않고."

그 말에 내 곁에 있던 레이나가 이를 뿌득 갈았다.

"그렇게 물러터진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런 지옥을 맛봤지."

빈정거리는 레이나의 말에 일리나가 눈에 불을 켜고 레이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레이나를 마주 보며 화를 냈다.

"당신이 뭔데요? 당신이 뭔데 모든 걸 아는 척하는 거죠?"

미묘하게 레이나를 향해 기를 세우는 일리나의 행동거지에 레이나가 차갑게 웃어 보였다.

아마 레이나는 과거의 자신을 보면 뺨따귀를 후려쳐서라도 충고해주고 싶은 현재의 인간과 같은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의가 가득하지 않아요."

"충고 자체는 고맙지만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에요. 나는 내 눈을 믿어."

화가 난 듯 일리나가 레이나에게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어?"

그때 레이나의 얼굴을 보던 일리나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비록 얼굴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레이나는 엄연히 타 세계선에서 넘어온 일리나 데 팔란이라는 소녀가 나이를 먹은 모습이다.

이곳의 일리나는 고작 열일곱에 지나지 않지만 레이나는 이십 대 후반.

큰 차이가 있되 차이가 없기도 했다.

"데...... 데이비. 이 사람...... 대체 누구야?"

당황한 듯 한발 물러난 일리나가 급히 내게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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