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4권 3화
108. 순백의 기적과 신수의 강림.
상대 병사들의 진형움직임은 분명 방어진이었다.
그것도 고작 5만 정도의 숫자로 15만의 강인한 괴물들이 뒤섞인 이 군세를 정면에서 막겠다고 광고하는 꼴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일련의 기병들을 선두로 한 채 겁도 없이 나타나는 인간들의 군세가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전술의 기초도 모르는 멍청이가 할 법한 행동이었다.
숫자가 적으면 매복, 혹은 함정 같은 방법으로 서서히 숫자를 깍아내릴 생각을 해야지 대놓고 정면에서 막아서려 든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고르곤의 표정은 비웃음과 경멸로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
"하! 웃기지도 않은 놈들. 겁도 없이 내 군세를 정면에서 막겠다? 하!"
병력의 수는 오히려 숫자는 뱀파이어 쪽이 더 우세했다.
인간의 군세는 끽해야 4~5만가량 정도로 실상 숫자의 우위는 뱀파이어가 두 배, 혹은 세 배에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예리한 시야로 짚이는 병사들의 수준 또한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랜 시간 전투를 위해 준비해온 뱀파이어의 군세와 잔뜩 겁을 먹고 움츠러들어 주변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저 겁쟁이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오합지졸과 잘 훈련된 지옥의 군세와의 싸움.
어린아이조차 싸움의 결과를 알 만큼 너무 완벽한 차이가 있음에도 싸우기 위해 나선 그 무모함에 고르곤은 짜증과 놀라움을 동시에 표했다.
저벅저벅.
이윽고 인간의 군세 정중앙에서 말을 탄 인물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천천히 투구를 벗어 내렸다.
"젊은 계집이 아닌가!"
고르곤의 외침에 투구를 벗은 하늘빛 머리칼의 여성이 명확하게 그를 인식했다.
"감히 이 군세를 막아서려 들다니 겁도 없구나!"
확성 마법 없이도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상대측에서 상당히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감정은 분명한 두려움이었다.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이 서로 웅성거리며 두려워하고 있다.
오합지졸은 강하게 몰아붙일수록 더욱 겁을 먹는다.
고르곤은 기세등등한 걸음걸이로 적들의 군세 앞까지 다가갔다.
그를 호위하듯 새카만 피부의 거대한 미노타우로스들이 뒤따라나서자 인간들의 동요가 심히 거대해졌다.
"떨고 있구나, 내가 두려우냐? 흐흐흐, 그럴테지! 두려울 테지! 평화에 찌든 네깟 놈들이 할 수 있는 건 무력하게 비명을 지르고 죽어가는 것밖에 없음이다!"
이윽고 귓가에 병사들의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저 괴물들을 대체......"
"숫자부터 이미 배 이상 차이나는데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와들와들 떨고 있는 젊은 병사부터, 체념한 얼굴로 서있는 노령의 병사까지.
얼마나 다급했으면 병사의 나이 편차부터가 엉망진창 그 차체였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도 상당 수 되지만 급박하게 징집된 병사들의 수가 사실상 압도적으로 많았다.
"인간 계집, 네년 또한 잘 봐야 할 것이다! 네년의 그 아둔한 판단으로 인해 너를 믿고 따르던 인간들은 모두 처참하게 찢기고 잡아먹힐 것이다! 네년 또한 죽음을 피할 순 없을 테지, 크흐흐, 걱정 마라. 네년만큼은 내가 직접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피를 빨아 처참하게 죽여줄 테니!"
그의 전신에서 새빨간 기류가 흘러넘치기 시작하자 주변에 지독한 악의로 인한 무거운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투구를 벗은 채 말에서 내린 그녀는 관심 없다는 듯이 자신의 등에 멘 커다란 언월도의 천을 천천히 풀어낼 뿐이었다.
"전군 들으세요."
이윽고 천을 모두 풀어낸 그녀, 레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울 테지요. 겁이 날 겁니다. 적의 숫자는 우리의 배 이상. 하나하나의 위험성도 이전의 어떤 사건보다 더욱 높을 겁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고르곤은 천천히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며 차가운 비웃음을 던졌다.
"어쩌면 여러분들 모두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확신해도 좋습니다."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평화에 찌들어 아무것도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저 아둔한 뱀파이어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인류의 저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천천히 언월도를 들어 올린다.
투웅!!!
동시에 하늘에서 황금빛의 기류가 쏟아지며 그녀의 전신으로 막대한 힘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흠?"
생각 이상의 강한 힘에 놀란 고르곤은 곧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전군. 믿음을 가지세요. 사령관의 이름으로, 그 누구의 죽음도 쉽게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상대를 베고 죽이세요. 그것이 우리를 믿고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담담하게 외친 그녀가 천천히 언월도를 높게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한발 먼저 내디뎠다.
"신께서 함께하십니다. 신의 이름으로 힘을 부여받은 고결한 분께서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홀로 수많은 준비를 해온 그분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겠지요."
이윽고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한발 더 내디뎠다.
"전군. 돌격."
이윽고 그녀의 외침과 함께 병사들은 두려워하면서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끼리의 싸움이 아닌 인류의 근간을 위협할 적들이다.
싸우지 않는다면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결국 똑같다는 소리였다.
"에라이 x벌! 그래, 한번 뒤지지 두번 뒤지나!"
"어차피 여기서 죽으면 다 뒤지는 거야! 가세!!"
반쯤 자포자기이지만 이상하리만치 두려워서 도망치자는 의견보다는 차라리 죽게 될 거 상대를 하나라도 더 죽이고 죽자는 느낌이 강하게 퍼졌다.
상위 뱀파이어인 고르곤은 알지 못했다. 저들을 저렇게 몰아붙이는 것은 압도적인 힘을 지녀 정말로 대륙을 멸망시켜버릴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는 드래곤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쿵!! 쿵!! 쿵!!
거대한 헬버드의 창대를 주기적으로 내리치며 병사들의 사기가 서서히 끌어올려 지기 시작했다.
뒤를 막는 것이 없음에도 인간 측의 병사들은 마치 배수의 진을 친 것처럼 오와 열을 맞춰 진군해오기 시작했다.
"전군! 쐐기형 진을 펼치세요!"
이윽고 그녀의 외침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단 한 자루의 창의 형태를 취하며 빠르게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이에 고르곤은 차가운 비웃음을 던지며 고개를 돌렸다.
"물어뜯고, 찢어발겨라. 먹잇감에 당하는 멍청이 따윈 자긍심 높은 귀족에게 수치다."
이미 자신들이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병사로서 있는 하위 뱀파이어들은 전혀 겁을 먹지 않는 모습이었다.
비장하게 진군해오는 인간들의 군세와는 별개로 흉폭함과 느긋함을 보이는 뱀파이어 군세의 대치가 불러오는 사기의 변화는 분명 뱀파이어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그 변화는 곧 조금씩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투웅!!
선두에서 가장 먼저 돌진하는 용사 레이나를 필두로 하늘에서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순백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점차 속도를 올리고 함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병사들과 기병대는 하늘에서 펼처지는 거대한 마법진을 발견하지 못한 듯 비장한 얼굴로 빠르게 달려왔다.
그리고.
두 군세가 당장에라도 충돌할 법한 지척의 거리에 닿았을 때.
하늘에서 만들어지던 순백의 마법진이 이윽고 수십 수백 장으로 나위며 거대한 빛의 가루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실로 섬뜩할 정도의 신성 버프 마법이 곧이어 모든 인간 병사들에게 둘러싸이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변화를 대번에 눈치채지 못한 병사들은 마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사람처럼 맹렬하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낀 고르곤은 저도 모르게 한발 뒤로 내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저 백색의 마법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가지는 분명 알 것 같았다.
당장 저것을 막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것을 말이다.
이에 그가 급히 혈기를 끌어올려 마법진의 활성화를 막아내려 할 때쯤이었다.
-끼이이익!!!
하늘에서 들려온 거대한 포효소리에 고르곤이 눈을 부릅떴다.
창공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화염의 새가 정확히 뱀파이어의 군세를 가로지르며 초고열의 화염 브레스를 직격으로 꽂아넣어 버린 것이다.
"끄아아아아아아!!!"
겁도 없이 진군해오는 인간 정체 불명의 버프 마법진. 이외에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화염의 새.
당황한 고르곤은 생각지도 못한 전황의 변화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해 멍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리고 멍하니 있던 그가 무어라 소리치기도 전에.
자신의 몸이 압도적으로 가벼워진 것을 깨달은 인간 병사들의 눈에 전의가 놀라울 정도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죽어라!!!"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성자와 용사께서 함께하신다!!"
그 외침과 함께.
고르곤은 볼 수 있었다.
숫자가 반도 되지 않던 인간 병사들의 일자 쐐기형 공격진이 일순간에 자랑스럽고 용맹하며 흉폭하던 자신의 군대를 밀어붙이며 들어오는 것을 말이다.
* * *
"이대로 괜찮은가요?"
사제단을 이끌고 전쟁에 합류했던 성녀 후보 앨리스의 말에 나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리 봐도 인간 측이 불리해 보이는 전장이었다.
게다가 적장을 대놓고 이쪽 병사들의 심리를 뒤흔들어놓는 센스까지 보였다.
"사제단의 신성마법으로는 여기서 전부 닿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저 전열에 합류해서......"
"지켜보세요. 회복담당인 사제들은 다쳐선 안 됩니다. 성녀 후보."
"......"
병사가 다치면 사제가 치료해주지만 사제가 다치면 치료해줄 사람이 없어요.
내 말에 앨리스는 그저 침묵했다.
적장 고르곤의 외침은 병사들뿐만 아니라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제들조차 질리게 하였다.
"정말...... 괜찮은 거야? 이렇게 멀리서 구경해도......"
"세상에...... 자칫하면 모두 죽을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성녀 후보님과 성자님께 말씀드려서 전열에 합류해야......"
수군거리는 말을 무시한 채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레이나가 묵묵히 롱기누스를 들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렸다.
"앨리스님. 시작합시다."
"네?"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줘야지요."
담담하게 말한 내가 강하게 양손을 깍지끼듯 잡은 뒤 눈을 감았다.
투웅!!
동시에 내 전신에서 새하얀 기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죄 없는 이들을 구원하고자 하오니, 36개월 무이자 할부로 짱짱한 은총 반번 대출합시다.]
[9위계 최후 성마법.]
[신의 성역(Sain Sanctuary)]
화아악!!!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부릅뜨게 할 정도로 신성한 영역이 일순간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이건 대체......"
직접 본 신성마법의 위력이 자신들이 알고 있던 신성 마법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제들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에 나는 사제들이 있는 이곳과 병사들이 싸우는 평원을 그대로 잇는 통로를 만든 뒤 말했다.
"뭣들 합니까. 버프까진 안바랍니다. 회복마법 쓸 준비하세요. 저 마법진 덕분에 여기서 쓰는 회복마법이 저기서 그대로 활성화될 테니."
담담하게 말한 내가 깍지낀 손을 가대로 양쪽으로 펼쳤다.
이 전쟁에서 절대로 나는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않아야 했다.
그래야 가장 큰 효능을 볼 수 있을테니까.
버프는 내가 걸어주리다.
[스트렝스]
[하드스킨]
[스톤 스킨]
[어질리티]
[바이탈 펌프]
[마나 컨버전]
순백의 거대한 힘의 기류가 퍼지기 시작하며 성역으로 선포된 일대 전체에 강화된 신성 마법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신의 성역에서 가해지는 모든 이타적인 버프 마법은 배 이상으로 증폭된다.
[레노바티오]
[리인포스 더 마인드]
체력 회복과 정신 강화.
[디바인 프로텍션]
보호마법까지.
이후 나는 망설임 없이 이전 하인스 영지에서 고블린을 소탕할 때 자주 사용했던 증폭마법을 그대로 활성화했다.
신의 성역으로 인해 이미 한번 강화 활성화된 버프 마법에 한 번 더 증폭.
어디 신성 마법에 범벅되어보라지.
[세인트 글로리아]
늘 하는 말이지만, 상식을 깨부수는 버퍼가 존재한다면 단순한 한둘의 머릿수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싸우다 죽어라, 모두 되살려버리면 그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