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14권 4화
전황이 뒤집히는 건 한순간이었다. 한번 충돌한 병사들은 자신들을 돕기 위해 나타난 거대하면서도 신성한 화염의 새와.
마치 신의 기적을 보는 듯한 새하얀 빛의 깃털이 흩날리는 공간을 보며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비실거릳던 노인이 오랜 시간 근력 운동을 해온 이처럼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그아아! 이놈들! 내가 죽더래도 네놈들하고 같이 가는 거다!"
괴성을 지르며 헬버드를 집어 던져 버린 노인은 곧 그를 향해 덤벼드는 거대한 다크 울프의 턱을 맨손으로 낚아챈 뒤 그대로 턱을 비틀어 죽여버리고는 거대한 다크 울프의 몸체를 마치 둔기처럼 휘둘렀다.
노인의 몸에서 나왔다고 보기엔 너무 압도적인 근력과 체력이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활성화된 수십 수백 장의 백색 마법진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흡! 흡!"
어린 나이에 용병이 되어 전쟁터에 참가한 소년은 자신의 부족한 점인 근력을 메꾸기 위해 단련해온 기교 높은 검술에 압도적인 신체 강화 버프가 걸리자 마치 모든 것을 베어버릴 것처럼 전장을 누비고 다녔다.
처음의 쐐기 진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미 전쟁터는 진형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난장판 그 자체였다.
수많은 이들이 엄청난 버프를 등에 지고 싸우는 것은 그야말로 재앙 덩어리 그 자체였다.
-부오오오오오!!
거대한 울음소리를 내며 손에 쥔 둔기로 인간들을 휩쓸던 검은 미노타우르소 한 마리는 곧이어 언제 치명상을 입었냐는 듯 벌떡 일어나 좀비처럼 덤벼드는 인간들에게 질려 한발 두발 물러났다.
그야말로 개미떼 그 자체!
숫자가 훨씬 적은데 하나하나가 인간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버프가 걸린 이상 결과는 뻔했다.
"이, 이건...... 말도 안 된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두 존재였다.
스릉......콰드드드득!!!
단 일합에 수십 명이 지면 채로 반토막 나며 쓸려나간다.
전장의 선두에 있던 용사 레이나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괴물 그 자체였다.
황금빛이 섞인 순백의 오러블레이드를 언월도에 씌워 닥치는 대로 베어 넘기는 그녀의 존재는 설마 그녀가 그렇게까지 강할까 하는 의문을 품던 이들의 생각을 단번에 종식해버렸다.
-끼이이익!!!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전장 전체를 누비며 거대한 위용을 떨쳐내고 있는 거대한 화염의 새도 마찬가지였다.
"이,이건 말도 안돼......"
고르곤은 멍하니 하늘을 날아다니며 잠식된 와이번들을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화염의 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병사 하나하나 죽이기 쉽지 않다. 저들의 사령관인 인간 여성은 고르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무서울 정도의 강자이고, 정체불명의 피닉스로 추정되는 화염의 새는 인간에겐 전혀 해를 주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고르곤의 군세를 불태워 죽였다.
제아무리 선발대로 본대보다 약하다지만 그래도 이것은 아니었다.
강인한 혈마수와 마계의 마수, 이 외에 잠식돤 몬스터들의 수준이나 수를 생각하면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런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 이놈들!!!"
격분한 그가 근처에 있던 인간의 목을 처 날렸다.
빌어먹을 회복력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지만 결국 즉사를 해버리면 회복마법도 살릴 방도는 없다.
"죽어라! 이놈!!"
"죽어!"
그 말인즉,
죽지만 않으면 반드시 살아난다는 소리와 같았다.
그러니 병사들의 전의가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닥치는 대로 베어 죽이던 고르곤은 곧이어 뱀파이어의 무리들을 쓸어버리며 다가오는 레이나를 보곤 한발 뒤로 물러났다.
역시 저 미친 힘을 지닌 인간 여자와의 싸움은 아니다.
도망쳐야 한다.
본능은 당장 퇴각하라 외치는데 이성은 그것을 붙잡고 있었다.
본대의 명령을 어기고 접촉하여 선공을 가한 것은 그였다.
그리고 대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저들의 사기를 대폭 상승시키는 결과까지 내어주었으니.
살아 돌아간다고 해도 돌아올 결과는 비참한 불명예와 죽음 뿐이리라.
이도 저도 못한 채 굳어있던 고르곤을 향해 천천히 다가온 레이나가 롱기누스의 창끝을 그에게 겨누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나의 은공께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입방정 떠는 것치고 제법 약골이시네요."
"이, 이 빌어먹을 X이!!"
레이나의 도발에 격분한 고르곤은 이성과 본능을 모두 분노에 맡겨버린 뒤 그녀를 향해 빠르게 파고들었다.
콰앙!!!
그리고는 거대한 검을 뽑아 그녀를 향해 내리치며 미친듯 소리를 질렀다.
"네년!! 네년만큼은 이 손으로 직접 찢어 죽이리라! 찢어 죽이고 피를 마셔서 죽이리라!!"
광기까지 보이며 밀고 들어오는 그의 맹공에 말없이 롱기누스를 들어 그의 검을 처내던 레이나는 곧 익숙하게 한발을 그대로 내디뎠다.
그리고는 조용히 마나를 폭사시키며 끌어 올렸다.
[중검]
[태산 가르기]
콰득!!!
압도적인 중량이 담긴 일검.
비록 검이 아닌 창으로 이루어졌지만, 무게가 압도적으로 무거워져 있는 롱기누스의 창날은 순식간에 고르곤이 가지고 있던 검을 양단해버린채 그의 몸까지 그대로 반으로 갈라버렸다.
어찌나 강한 힘으로 갈라버렸는지 그가 서 있던 곳으로부터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길 정도였다.
15만에 달하는 대량의 군세를 이끌던 이의 죽음 치고는 정말 허무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당연, 우두머리를 잃은 뱀파이어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최하위 뱀파이어라곤 해도 인간보다는 강한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 버프 마법에 범벅된 미치광이 인간들의 힘을 견뎌내지 못했고 닥치는 대로 쓸려나갔다.
그 와중에 자신들의 지휘자까지 죽어버렸으니. 절망적인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귀족의 자긍심을 지닌 뱀파이어들에게 항복이나 후퇴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무리를 잃고 흩어지는 마수나 혈마수와 다르게 뱀파이어들은 결국 마지막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버텼다.
수는 근 세배에 달하는 싸움이었지만 서로 후퇴 없이 들이친 결과, 한쪽이 전멸해 버린 것이다.
무식해도 너무 무식한 전투방식에 기겁한 이들을 뒤로한 채 숨을 고르며 롱기누스에 묻은 피를 털어낸 레이나는 새삼스러울 정도로 흠집 하나, 흉터 하나 없는 견고함을 지닌 롱기누스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였다.
진짜 기가 막히는 내구성이네......"
담담하게 말한 그녀는 곧이어 멍하니 서서 그녀를 보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천천히 창끝을 들어 올렸다.
승리의 선포.
동시에 사방에서 엄청난 환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절대적으로 패배할 거라 여겼던 싸움이 너무 황당할 정도로 압승이 되어버리자 병사들의 사기는 그야말로 마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급상승해버렸다.
단순히 승리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방식으로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한 플러스 효과였다.
"용사 레이나 만세!!!"
이윽고 몇몇 외침과 함께 병사들 사이에서 그녀를 칭송하는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만세!!"
본래라면 버프를 제공한 본인이 가장 칭송을 받아야겠지만.
정작 그 본인은 이 상황을 일부러 유도하듯 병사들의 시선에서 최대한 멀어져 느긋하게 상황을 구경할 뿐이었다.
* * *
성녀 후보 앨리스는 새삼 그가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사용한 신성 마법은 그녀로서도 본적이 없는 계통의 신성 마법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흔적은 본 적이 있었다.
과거 펠리스티 공국의 사건이 터졌을 때 말이다.
그때 당시엔 일리나 황녀의 칼디라스가 각성하며 터진 신성 마법이라고 소문이 났지만.
앨리스는 그게 얼마나 개소리인지 새삼 잘 느끼고 있었다.
눈앞의 저 성자는 진짜배기 괴물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세상에...... 대체 제가 그 짧은 시간 안에 뭘 본 겁니까?"
"오, 신이시여."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던 프리아 교단의 중급 사제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앨리스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세상에...... 지금 제가 신의 기적이라도 보고 있는 것일까요."
"대체...... 저분은......"
"아무리 성자라지만 이건 정말 경악할 수준이군요."
"앨리스 성녀 후보께서 저분을 믿으셔서 마지못해 따르긴 했지만, 정말...... 저 자신이 부끄러워질 지경입니다."
직접 전잰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전쟁의 판도를 혼자서 뒤틀어버렸다.
병사들은 이 모든 것이 레이나가 만들어낸 기적이라 보고 있지만, 겉에서 보고 있던 사제들은 알 수 있었다.
이 전쟁을 진짜로 끝장내버린 인간은.
용사 레이나가 아니라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성자 데이비 왕자라는 것을 말이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어떻게 성국의 교황조차 하지 못할 기적을 행하는 것인지.
"쿨럭......"
그때 데이비 왕자가 쿨럭거리며 몸을 살짝 비틀자 사제들의 눈빛에 존경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스스로의 몸을 돌보지도 않으시고......"
"아아...... 신의 은총이로다."
실제로는 먼지 때문에 재채기를 한 것이지만 이미 콩깍지 씐 사제들에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이 정말 대륙에 소문이 자자하던 성자의 진면목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지 이해 할 수 없는 것들도 가득했다.
홀로 전황을 살펴보고 있는 그를 뒤로 한 채 사제들은 자신들을 이끄는 앨리스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성녀 후보 앨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자란 신의 사람을 받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리고, 생명을 사랑할수록 강해지는 존재이구요."
그 말에 사제들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감동이라도 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상에...... 그렇다면 저분께선......."
"얼마나 이 세상을 사랑하고 계신단 말입니까."
성국의 교황조차 엄두도 못 낼 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냈다.
상위계 성마법을 사용해본 적도, 실제로는 본 적도 없기에 사제들은 데이비라는 인간이 사용한 신성 마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 그저 대단하구나, 놀랍구나 정도로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정말 놀랐습니다. 이 거리에서 저 수많은 병사 하나하나를 모두 강화할 줄......"
"그러게 말입니다. 역시 세상을 사랑하시는 성자!"
신성마법의 심도나 정교함 따위보다.
그 안에 숨겨진 마음에 중점을 둔 사제들은 마치 무슨 신을 영접하고 감동을 한 것처럼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아......주신 프리아 여신이시여. 오만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저토록 숭고한 분을내려주심에 영원토록 감사를......"
"신께서 함께하시리라......"
착각은 자유다.
앨리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성자라도 그의 힘은 진짜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 그가 얼마나 숭고한 마음으로 노력했는지 알것 같았다.
거듭하는 말이지만. 착각은 사람 개개인의 자유다.
"쿨럭쿨럭"
-웬일로 재채기를 그렇게 해.
"누가 내 욕하나 보다."
-그럴 만도 하지. 아마 지금쯤이면 그 황녀 아가씨가 그대를 신나게 씹어대고 있을걸?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일리나에게 이번 전쟁은 가급적 참여하지 않는 쪽이 좋았다.
복수에 미치면 좋은 게 없기에?
그럴 리가.
복수는 달콤한 것이고, 그것을 깔끔하게 이뤄내고 다음 목표를 찾아내는 건 삶의 활력 또한 된다.
와신상담이라 하였나.
괜히 그런 말이 옛말로 나도는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무식한 전쟁은 앞으로 힘들겠지.
할 수야 있다지만 내가 여기에 발이 묶여 있을수록 저쪽이 유리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승전보를 들고 돌아서는 연합군을 뒤로한 채 폐허가 된 평원을 바라보던 나는 피바다 속에서 시체가 되어 쓰러져있던 수많은 뱀파이어롸 혈마수, 그리고 마계의 마수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좀 전까지 성자의 이름으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음지의 대사령 술사로서 움직일 때가 되었다.
아공간에서 작은 시약을 꺼낸 나는 혈마수 몇 마리의 환부에 시약을 찔러 부어 넣은 뒤 조용히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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