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사단.
마지막 조각이라 불리는 라스트 위스프 기사단인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은 유례없는 대륙 개입이라는 결단을 내리고 움직이는 시점이었다.
본래라면 대륙 전체의 멸절에 대한 위기가 아닌 이상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소리소문없이 암암리에 대륙의 존속에 위험이 되는 극지의 마물들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오랜시간 막아왔으니 말이다.
"후우...... 긴장되네요."
몸을 파르르 떨며 쌍둥이 자매중 한 명인 샤이르 렌다가 자신의 정령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게...... 이렇게 대륙 바깥까지 나와본 건 정말 어릴 때 이후로는 처음이야."
"세상은 정말 무서운 곳이라던다......, 이렇게 막상 나와보니 별거 없네!"
잔뜩 기가 살아서 말하는 소년, 다무르의 말에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알리사 패트릭이 고요하게 답했다.
"다무르, 그 입 다무세요."
"쩝...... 나만 가지고 그래."
"다무르 당신이 한마디를 하면 꼭 일이 터지니까요."
"꺄르륵! 맞아."
알리사의 담담한 타박에 다무르가 인상을 대뜸 찌푸렸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자신이 쌓아올린 업보라는걸 모르진 않으니 말이다.
그는 겁이 많은 편이다.
[치익! A조 단원. 응답하라.]
"여기는 A조 조장 알리사 패트릭입니다."
[여기는 단원 총대장 보리스다. 상황 보고하라.]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샘플 바이러스 주입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목표대상 추적 중입니다."
[지금 시간부로 작전을 시작한다.]
"작전, 시작하겠습니다."
[건투를 빈다. 무사히 복귀하길 바라마.]
"걱정 마세요. 선생님"
빙그레 웃는 알리사의 말에 수정구 너머에서 보리스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절대 무리하지 말거라. 알겠니?]
"걱정마세요. 데이비님만큼 큰 성과를 낼 순 없겠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다면 그에 맞춰서 움직여 주는 정도는 할 수 있답니다."
담담하게 말한 알리사는 능선 너머로 빠르게 이동하는 소수의 뱀파이어롸 혈마수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전원, 절대 긴장을 놓지 말아주세요. 시작하죠."
파앙!!!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원 A조는 비록 어린 연령대의 소년소녀들이 모인 정규집단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식 시험을 통과해 정식단원이 된 아이들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제 나잇대의 소년 소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실력을 지닌 실력가이기도 했다.
순식간에 정령사 쌍둥이 자매가 펼치는 정령술 기예가 움직인다.
미리 스며들게한 액상 약품이 마치 물거품처럼 퍼지고 바람의 중급 정령인 실라임의 바람을 타고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데이비라는 전무후무한 괴물 신입단원이 만들어낸 바이러스의 효는은 이미 기사단 대부분이 보고 확인한 바 있다.
모든 생명체에 소용이 없지만 유일하게 뱀파이어와 뱀파이어의 힘이 깃든 혈마수에게만 통하는 지독한 바이러스는.......
"스, 습격이다!"
"감히! 인간 놈들이!"
빠르고 조용히 움직이던 하위 뱀파이어들이 크게 경계하며 소리치기가 무섭게 전방에서 방패를 들고 있던 성기사 필디르가 마치 덤프트럭마냥 엄청난 속도로 파고들어 전방의 뱀파이어 하나를 쳐 날려버렸다.
현재 A조 기사단원들의 실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나 강화된 뱀파이어는 실질적으로 단번에 죽일 수 없다.
죽도록 세심한 공을 들여 죽여야 하는게 사실이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지금 뱀파이어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대한 지식을 상회하는 생존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놈들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크악!!"
날카로운 검기가 파고들어 뱀파이어 하나를 베어 넘기자 놈이 인상을 찌푸리며 제 팔을 부여잡고 물러났다.
동시에 수십마리의 혈마수가 기사단원을 향해 파고들었지만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사불란하게 협동하여 움직이고는 그들의 공세를 막아냈다.
그런 와중에도 쌍둥이 자매가 펼치는 물방울의 바람은 여전히 전역을 휩쓸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절대 일정이상 공격해오지 않고 발을 묶는 그 행동거지에 열이 뻗친 뱀파이어들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이 이상은 위험하니 후퇴할게요!"
이윽고 큰 외침과 함께 뿔피리 소리가 들리자 기사단원들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뒤 싸우던 것도 뒤로한 채 서로를 엄호하며 그들에게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인간 놈들! 감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으리라 보느냐!!"
그 외침에 가장 후열에서 도망치던 거병을 든 소년이 낄낄 웃어 보였다.
"내가 우리 동기한테 배운게 있지 이 새끼들아! 어디 이 헤그님의 눈 뽕이나 맞봐라!"
쫘악!!
그 말과 함께 품에서 작을 스크롤을 꺼내 든 헤그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입에 물고는 한 손으로 찢어 허공에 던졌다.
"이걸 쓸 때는 꼭 그 말을 하라더라!"
공자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공자 가라사대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만.
[광(光) 속성 개조 마법]
[4서클]
[스턴 그레네이드]
동시에 A조 기사단원 소년 소녀들 전원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을 감고 한 손으로 시야를 가렸다.
퍼엉!!
귀가 먹먹해지는 소리와 함께 눈을 찌르는 듯한 거대한 빛이 터진다.
안 그래도 강렬한 빛이다.
게다가 빛속성에 약한 뱀파이어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그아아악!!"
"커헉! 누, 눈이!"
비명을 지르며 주춤거린 뱀파이어들은 타들어 갈 듯 아파져오는 시야레 눈을 붙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 사실은 시력이 존재하는 혈마수라 해서 다를게 없었다.
모두가 눈을 감고 정신을 몾 차리는 상황이 한참 지속되었을까.
천천히 눈을 뜬 뱀파이어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빌어먹을! 도망쳐 버렸군!"
화가 잔뜩 난 듯 이를 부득부득 가는 그를 시작으로 시력을 되찾은 이들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자신들을 기습했던 어린 인간들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게릴라전에 완전히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격분한 뱀파이어 하나가 분개하며 온 전신에 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으으으으!! 빌어먹을 놈들! 찾아서 죽이리라! 찢어 죽이고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피를 빨리라!"
반대로 몇몇은 안도한 모습이었다.
"후우...... 어찌 목숨은 굳혔군."
"그 망할 인간때문에 불사의 힘을 손에 넣어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인간 단 하나가 뱀파이어 전원을 긴장하게 하는게 확실히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나는 이번 전쟁을 빨리 끝내면 좋겠군. 내가 이번에 배정받은 혈마수놈이 드디어 내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거든. 아직 약한 녀석이라 더 자랄때까지는 은신처에 두고 있었다만. 이 임무만 끝나면 돌아갈 수 있으니까."
"오오. 좋은 소식이군 그래. 더 성장시켜서 어서 늠름한 혈마수로 만들길 기도하지."
"덕담 고맙......"
조용히 말하던 뱀파이어 하나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왜그러나 자네."
"......별거 아닐세. 속이 좀......이상하군."
"혹시 식사하는걸 깜빡한거 아닌가?"
동료 하위 뱀파이어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세. 사실 이 임무가 좀 위험한가. 그래서 배고플까 봐 산짐승 몇마리를 잡아서 피를 미리 빨아두었다네."
"그럼 너무 많이 마신게지. 미련한 인사 같으니 쯧쯧......"
"그렇다고 해도......"
말을 하던 그가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그대로 허리를 숙였다.
"끄륵......"
"어어? 이봐! 왜이래!"
당황한 동료 하위 뱀파이어가 그의 등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허리를 숙인 그는 쉽게 움직이지 못하며 오히려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이...... 이상한......"
스스로도 뭔가 몸이 이상하다 여겼는지 힘겹게 말을 내뱉던 그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갑작스런 침묵에 의아함을 느낀 동료 뱀파이어가 그를 부축하려던 찰나였다.
캬아악!!!!
갑자기 허리를 숙이고 있던 뱀파이어가 벌떡 일어나며 동료 뱀파이어의 팔을 물어 뜯어버렸다.
"크악?! 이놈이 미쳤나! 왜 이래!"
깜짝놀란 그가 급히 팔을 빼냈지만, 송곳니에 제대로 찔렸는지 그의 팔은 뱀파이어 특유의 냄새가 나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 어어? 내가 무슨 짓을......"
"이봐. 미쳤어?!"
"아, 아니야! 내가 일부로 그런 게 아니야!"
"에잉......"
"미, 미안하네! 내 자네를 다체게 할 생각은 없었어!"
"것 봐. 자네는 전투와는 잘 맞지 않아. 보아하니 스트레스로 인해서 속이 뒤틀린 모양인데 어서 돌아가세. 본대로 돌아가면 마족분이 치료해주실 게야"
"아 그 신묘한 의술을 보이던 서큐버스 여인을 말하는 것이로군."
"그래. 그래. 어서 가세. 에잉......"
투덜거리는 뱀파이어들은 알지 못했다.
이미 그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뱀파이어가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말이다.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의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를 본대에 묶어두기 위해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듯 계속해서 진격을 해오던 뱀파이어들과는 별개로 별동대가 대륙 각지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미 놈들의 출현 위치를 알았으니 그다음부터는 이동 경로야 뻔했다.
쿠릉이를 통해 하늘의 바람을 장악하고는 놈들을 감시한 나는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에게 알려 그들을 급습하라 일렀다.
그 와중에 그들이 추가로 제물을 수급하는 것은 그냥 두었다.
어짜피 저들이 원하는 것은 증오로 가득한 제물.
대부분이 범죄자나 큰 문제를 일으킬 자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기적이지만 나는 그대로 이용해줄 생각이었다.
당장 첫 제물들이야 회개 테러를 이용해 못쓰게 해버렸지만, 그 이상 그런 짓을 하는건 오히려 계획에 방해가 될 뿐이다.
레이나가 메인으로 부대를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슬슬 소식이 올 때가 됐는데.
뱀파이어 별동대 곳곳에 바이러스를 심어 보냈다.
그리고 그 트리거가 될 바이러스 또한 내가 리바이브로 되살린 혈마수를 통해 스며들었다.
이제.
결과가 나오리라.
"크, 큰일 났습니다! 사령관!"
멀리서 레이나를 향해 뛰어오넌 전령의 모습에 그녀는 상황을 대충 예측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배, 뱀파이어 진형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관측되었습니다! 마치 내전이라도 벌어진 것 같은......!"
이에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녀는 더 볼것도 없이 곁에있던 장군 한 명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공격 준비하세요. 단번에 밀고 들어갈 겁니다."
동시에 나는 그녀에게 고개만 끄덕여준 후 몸을 돌렸다.
"어딜 가시나요?"
"부대 탈영합니다."
"타, 탈영이요?"
"잡을 수 있겠어요?"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네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어서 내가 부대를 떠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찾아온 앨리스 성녀를 향해 나는 미련없이 탈영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