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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42화 (342/1,559)

제 342화

주신의 의지 아래에 한세상이 만들어지는 건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다프네에게 들은바 세상에는 또 수많은 세상이 존재한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오랜 시간 신의 의지가 깃들어 만들어지는 완전한 세상과.

당장 생겨나고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주신 프리아 여신의 꿈으로 만들어진 세상.

복잡하게 파고들면 복잡한 표현을 써야 하지만 결론적으로 가장 깔끔하며 비슷한 표현은 역시 꿈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신의 의지가 존재함으로써 자연스레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런 만큼 버그투성이라 비집고 들어가기만 하면 냉큼 달아날 수 있을 텐데.”

“으읏…….”

일리나가 깨어난 건 묵묵히 걸음을 옮긴 지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보통 사람이 사람을 업고 장시간 걷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톤 단위의 금속배트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러대는 근력을 마음대로 끌어낼 수 있는 내게 그녀는 가벼울 뿐이었다.

단순 중량으로 치면 키가 작은 축에 속하는 생체 골렘 륀느가 가장 압도적인 편이니 말이다.

“으윽…… 머리야……”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울상을 하며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은 채 멍하니 있다가 눈을 크게 떴다.

“핫?! 데이비!”

“깼냐?”

담담한 질문에 그녀가 멍하니 있자,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지지하던 손을 놔버렸다.

“꺄악!”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닌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그녀를 뒤로한 채 나는 말없이 시야를 강화했다.

끝도 없는 사막은 도저히 뜨거운 태양 빛을 피할 곳도 보이지 않았다.

“……”

“아야야…… 너 진짜!”

나를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던 그녀는 내 표정이 굳어있자 뜨끔하며 물러났다.

“일리나.”

“어…… 어?”

“돌았냐?”

내 질문에 그녀는 얼이 빠진 얼굴로 침묵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따라와.”

내 물음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 하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신벌이잖아. 그거!”

“본 적 있나 보다?”

제법 흔한 현상은 아닌데.

내 물음에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어릴 적에…… 부패한 한 성국의 신관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신벌을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 그 끔찍하던 모습을 어떻게 잊어……”

그녀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너 성자라면서…… 왜 네가 신벌을 받는 건데?”

그녀는 그때 당시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 대적자와 마왕의 관계는 그와 관련이 있는 이들만이 알고 있을 사실이니 말이다.

그녀의 질문에 나는 몇 걸음 빙빙 돌 듯 움직이며 허공에 손을 뻗다가 천천히 말아쥐었다.

그리고는 눈을 살짝 감으며 숨을 들이켜고는 대답했다.

“일단 이 거지 같은 것부터 부수고 시작하자.”

[마왕 유르그 식(式) 대균열]

[아수라 패황권(阿修羅 覇皇拳)]

이전 유리아 헬리샤나가 있던 엘프의 숲에 처져있던 결계를 박살 내던 일격과 동일하지만.

힘을 극도로 압축했던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이 거지 같은 공간 자체를 부숴버리는 힘을 담았다.

순식간에 손에 모여드는 검붉은 기류가 마치 귀신처럼 번뜩였고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일리나를 등진 채 나는 그대로 왼발을 미끌 듯 내밀었다.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투쾅!!!!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검붉은 화염이 일대를 집어삼킨다.

내가 주먹을 내지른 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지만.

주먹이 닿기 전 내 왼손은 정확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강제로 낚아채 잡아당겼다.

마치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를 가두고 있던 결계였다.

아마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사라지는 형식인 듯한데.

기분 나쁜 것은 나를 여기 가둬놓고 관음증 환자마냥 쳐다보고 있을 놈들의 존재였다.

콰직!

이윽고 허공에 충돌한 검붉은 화염은 급기야 검은 스파크를 튀겼고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유리창 깨뜨리듯 주변의 공간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꺄악?!”

상상을 뛰어넘는 강풍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인 일리나가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감옥은 부수고 나가야 직성이 풀리거든.”

“이젠 네가 뭘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

이윽고 같은 사막이지만 지금까지와는 느낌이 다른, 미풍이 부는 사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마르지?”

하늘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내가 조용히 묻자 가만히 있던 일리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이야……. 네가 왜 벨리얼을 죽인 건지도 모르겠고. 이젠 나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그녀의 그런 태도에 나는 조용히 초월의 종언을 꺼내 들었다.

“사막 뿔 나방은 말이야. 생긴 게 저래도 제법 수분이 많거든.”

잡아서 쪽쪽 빨아먹으면 당분간 물 걱정은 없다.

“뭐?”

“퍼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모랫바닥 중 일부를 그대로 후려쳤다.

“티오니스 대륙에서 파생된 꿈인가 보네.”

사막 뿔 나방도 있는 걸 보니, 그 말인즉 생존전문가에게 있어서 이 같은 환경은 그야말로 생존하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소리가 된다.

-키에에에엑!!

마나를 머금은 지팡이로 지면을 후려치기가 무섭게 괴성이 울려 퍼지며 모랫바닥 위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의 상체만 한 흉측하게 생긴 벌레 수십 마리가 일제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멀쩡한 모랫바닥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읏?! 징그러워!”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칼디라스를 빼 든 그녀가 놈들을 베어 넘기려 하자 나는 초월의 종언으로 그것을 막고는 말했다.

“소중한 식수에 뭔 짓이야. 저리 비켜.”

웅!! 웅!!

날갯짓 소리를 격하게 내며 적의를 드러내는 거대한 나방은 언 듯 보기엔 도저히 먹는 것과 연관 짓기 어려운 지독한 벌레들이었다.

실제로 이놈들은 티오니스 대륙의 서부에 펼쳐진 대사막 지역에서 서식하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을 속이고자 모래 위에 납작 엎드려 모래처럼 위장하고 있다가 행인이 근처를 지나칠 때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하고 큰 뿔로 행인을 덮치곤 하는 제법 난폭한 몬스터에 속하는 부류였다.

내 손에 이미 피떡이 되어 추욱 늘어진 사막 뿔 나방 한 마리를 한 손에 집어 든 채 나는 지팡이를 가볍게 빛냈다.

초월의 종언은 마법사에겐 그야말로 전설과도 같은 보조도구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 정도 급의 지팡이를 사용한다면.

마법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예로부터 이런 말이 있었다.

공자 가라사대 힘법사가 최고시다.

[스태프 용 CQC]

[빡통깨기]

빠악!!!

정확히 머리 부분을 노려 나를 향해 덤벼드는 놈의 머리를 초월의 종언으로 으깨버린 나는 그 큰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서늘하게 웃어 보였다.

“당분간 식수 걱정은 없겠네.”

2인분이니 평소 내가 보관하는 양의 딱 두 배만 채취하자.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좋아하는 나를 보며 일리나는 한참 동안 복잡한 표정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 * *

일리나 데 팔란이라는 이 곱게 자란 황녀님은 내가 사막 뿔 나방의 머리통만 으깨버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저기……데이비. 대체 뭐하는 거야? 이 녀석들 식인 몬스터잖아……. 그냥 베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귀중한 식수를 허공에 버린다고? 어림도 없지.”

“마, 마신다고? 이걸?”

핼쑥하게 질린 그녀가 농담하지 말라는 어조로 물어왔지만.

나는 제법 진지하게 나방 한 마리의 머리를 가볍게 돌려 따버린 뒤 흘러내리는 체액을 가죽 부대에 모아 담았다.

“맛이 좀 독특해서 호불호가 갈리긴 하는데. 수분은 확실해, 독도 없고. 걱정 말고 마시면 된다.”

아마 미식에 환장하는 엘프 유리아 헬리샤나라면 웃는 낯짝으로 이놈들을 해부해 차의 재료로 써먹을 테다.

“시, 싫어…… 데이비 사막 뿔 나방은 해충 몬스터잖아……. 해충을 먹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이야.”

“그게 굳이 많이 알려질 내용은 아니지 보통?”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들도 사막 일을 주로 하는 이들이 아니면 잘 모르는 깨알 상식이다.

물론, 사막 근처에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에겐 이미 잘 알려져 있겠지만.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벌레의 체액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에 그녀가 기겁한 얼굴로 물러났다.

확실히, 곱게 자란 황족이 이런 걸 어디서 먹어나 봤겠는가.

“결계가 부서진 탓에 시간은 많이 벌었다만, 그래도 먹고 마시지도 않고 버티긴 쉽지 않아, 자, 마셔봐.”

내가 체액이 가득 담긴 부댓자루를 내밀자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녀가 한걸음, 한걸음 물러났다.

“나, 난 안 마셔!”

그리고는 기겁하며 엄포를 던졌다.

“강제로 먹이는 수가 있다.”

“차라리 날 죽여 이 나쁜 새끼야! 넌 숙녀에 대한 매너가 쥐뿔도 없냐?!”

“아, 나는 모르겠고.”

“꺄악! 접근하지 마! 그 징그러운 벌레의 체액을 먹을 바에 그냥 콱 혀 깨물고 죽어버릴 거니까!”

철이 없다고 쏘아붙이기엔 사막 뿔나방의 생김새가 워낙에 흉측한 게 문제이긴 했다.

확실히 이놈의 체액을 처음 마시기까지 나는 한 달 가까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버텨야 했으니 말이다.

호불호가 갈린다고 했던가.

사막 뿔 나방은 상당히 혐오스럽게 생겼지만, 체액 자체에는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이다.

그 맛은, 제법 달달한 편이라고 자부한다. 진실을 알면 구역질이 나올 내용물이겠지만.

망설임 없이 부댓자루를 입에 대고 물을 꿀꺽꿀꺽 삼키자 일리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넌 왕족이라는 놈이 대체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씁쓸한 기억을 되짚었다.

“한 수십 년 정도 사막에서 구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돼.”

그녀는 농담으로 치부한 듯 보였지만.

정확히 내가 사막에서 살아남은 기간을 모두 합치면 50년은 넘어간다.

“일단 식수와 식량부터 확보해야 해. 환골탈태를 해도 넌 그런 식으로 버티다간 얼마 못 가.”

“시, 싫어. 죽어도 못 마셔!”

“아직 상황파악도 안 되는데 누가 도와줄 것 같냐? 그걸 안 마시면, 뭐 어쩌게? 비라도 마시려고? 아서라, 기후 꼬라지 보니까 당분간은 어림도 없다.”

“잘 찾아보면 오아시스라든지……”

“개 풀 뜯고 있네. 이 철없는 아가씨가. 당장 마실 물이 없으면 자기 소변이라도 받아서 마시는 게 사막이다. 정신 차려.”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소, 소변!? 벼, 변태야! 미쳤어?!”

“죽으면 교양이 다 무슨 소용이야, 그러니까, 그 꼴 보기 전에 마셔두라고.”

진지한 말투에 내가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고 판단한 듯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그나마 화이트버드의 수장이자 검사로서 여러 수행을 거쳐왔으니 이 정도에 멈춘 거지 보통 곱게 자란 황족이라면 사태파악도 못 할 게 틀림없었다.

“나는 신벌을 받아 여기로 왔고, 넌 겁도 없이 날 구하겠답시고 손을 뻗었다가 휘말린 거다. 여기에서 빠져나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내 경고에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이걸 강제로 먹이는 한이 있어도 널 무사히 데리고 나갈 거다.”

신벌을 받아 사라져 가는 내게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준 고마움 때문에라도.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아직 모르는 거야?”

“우릴 지켜보는 놈들이 있어. 괜히 티 내지 말고 기다려봐.”

저쪽에서 먼저 접촉을 해와야 이쪽이 유리할 거 같으니.

놈들은 내가 자기들을 모르고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인데.

자신이 심판자라 생각하고 오만하게 구는 놈들에게 한번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 니들이 심판하려는 자가 얼마나 막돼먹은 놈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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