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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43화 (343/1,559)

제 343화

사막의 밤은 빠르게 찾아온다.

운이 좋았다.

일리나를 업은 채 이동하던 나는 오래가지 않아 태양 빛을 피할 수 있는 거대한 바위 지대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잠자리로 쓸만한 곳이 있을 만큼 형편이 좋지는 않았지만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닌가.

대번에 파이어 블레스트로 거대한 바위에 구멍을 뚫고 동굴을 만들어버린 나는 잘 챙겨온 사막 뿔 나방이나 여타 사막 몬스터들의 몸체 중 잘 타는 부분을 모아 불을 지폈다.

나무하나 없는 사막에서 불피우기가 어디 쉬운 줄 아는가.

고요한 침묵 속에서 일리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 방해가 될까, 자신이 지쳐가면서도 끝까지 약한 소리를 내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녀가 약한 소리를 내는 게 편한 입장인 나였기에 굳이 속도를 올려 더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었지만 일리나의 고집은 실로 대단했다.

“저기…… 데이비…… 넌 신벌에 대해 알고 있는 거야?”

“대충은.”

“그럼…… 보통 신벌을 받는 이들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 네가 본건 성화에 그대로 불타 사라진 것일 테고. 나는 경우가 달라.”

경우가 다르다.

상위급 심판이라는 소리다.

영원한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지금 내가 있는 이 신벌의 공간이었다.

“신의 흐름을 망가뜨릴 정도로 큰 사고를 쳤거든. 당장 소멸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이런 벌도 엄연히 존재해.”

“그럼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영혼 채로 소멸한다. 어때, 깔끔하지?”

“……”

경악한 얼굴을 한 채 그녀가 무릎에 제 얼굴을 파묻었다.

“벨리얼의 일은…… 그가, 선택한 일이야?”

“어떻게 대답해줄까.”

“네가 원인이라고 한다면 한 대 때려줄게.”

“이거 어쩌나. 내가 원인인데.”

부정은 하지 않았다.

퍼억!!

망설임 없는 주먹질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날아든 날카로운 공격이었지만, 나는 부드럽게 손바닥으로 그녀의 주먹을 막아내곤 대답했다.

“맞아준다곤 안 했다.”

“나쁜 새끼……. 그도 살아있던 생명이야.”

“뱀파이어는 다르냐?”

“……”

“모순된 논리 들이밀 거면 집어치우는 걸 추천하마.”

싸늘한 내 타박에 그녀가 울먹거렸다.

“하지만……”

“그놈이 스스로 원한 걸 네가 무슨 권한으로 그걸 판단해.”

“……불쌍하잖아……”

그녀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난 그에 대해 몰라……. 하지만 그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을 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고……. 그렇게 허무하게 죽게 하려고 살린 게 아니란 말이야……”

자신이 살린 이에 대한 애착.

주로 의술을 배운 의사들이 초기부터 느끼는 마음가짐 중 하나다.

그동안 직접 누군가를 살려본 경험이 거의 없던 그녀였으니 아마 그 애착은 보통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지 스스로 원해서 제안을 받아들였고. 만족하고 떠났다.”

“……”

“너도 기사 서임을 받았으면 경의는 표할 줄도 알아야지.”

“희생은 허울 좋은 단어일 뿐이야. 누군가가 곁에서 사라지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넌 잘 알잖아.”

“니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지키는 거 아니야? 넌 반쯤 미쳐있는 거 같으니까 그 방식도 과격하기 그지없어.”

그녀의 질문에 나는 침묵했다.

[어머니! 죽지 마세요! 제발요!]

괜히 욕 나오는 기억이 떠오르자 나는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버렸다.

“야! 뭐하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칼디라스를 통해 페르세르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일리나였기에 그 이상 의문을 던지진 않았다.

식용으로도 쓰이는 사막 몬스터가 있었던 건 운이 좋았다.

다행히 겁도 없이 나를 먹어치우려던 놈의 이빨을 모조리 뭉개버리고 고깃덩어리로 만든 탓에 당장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괜히 나를 의식하느라 침묵하던 그녀는 벨리얼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내 과격한 행동에 화가 났지만, 결론적으로 그가 원했던 일인 만큼 외부인이었던 자신이 함부로 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던 중 문득 생각난 게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왔다.

“데이비. 넌 그렇게 계속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거야?”

“……잃는 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지.”

“그럼 넌 누가 지켜주는데?”

무슨 이유인지 그런 질문을 던져오는 모습에 나는 침묵을 고수했다.

“나를 지켜? 누가 누구에게서.”

“넌 그렇게 계속 혼자 다 떠안을 거냐고. 내가 널 모를 줄 알아? 보아하니 이번 계획도 벨리얼을 제외하고 아무도 몰랐던 거 아니야? 페르세르크라는 그 너무 예쁘던 마왕도 몰랐던 눈치던데.”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이쪽만 불리하지.”

담담한 내 답변에 그녀가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나 좀 더 강해질래.”

“……”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이번에 네가 저지른 일처럼 누군가를 잃어가면서까지 지키지 않아도 되게 강해질 거야.”

그리고, 모두를 지켜냈지만 결국 본인을 지킬 이는 하나도 없는 너를.

내가 지켜줄게.

그녀가 말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때? 기분이라도 편해져?”

헤실거리며 물어오는 그 미소에 나는 픽 웃음을 흘려버렸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식용 몬스터의 고기를 마저 씹어 삼킨 뒤 천천히 일어났다.

“이놈들은 감상에 젖을 시간을 안 주네.”

내 말에 조용히 내 식사를 지켜보던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말이야?”

“왔다고.”

담담하게 말한 내가 초월의 종언을 들고 걸어나가자 일리나가 급히 칼디라스를 품에 안은 채 나를 뒤 따라 나왔다.

* * *

내가 있는 이곳은 신의 의지가 만들어낸 꿈의 허상.

즉, 몽환 세계이자 심판대는 인간이 존재하는 평범한 세상은 아닌 듯 보였다.

촤르르르르……

커다랗고 날카로운 낫이 달린 검은 사슬을 양손에 구속구처럼 달고 천천히 걸어오는 거한들의 수는 못해도 수백은 넘어 보였다.

딱히 수백이라는 숫자가 많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하나하나가 기괴할 정도로 싸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 확실히 평범한 느낌은 아니었다.

“데이비…… 저게 뭐야?”

“나도 몰라. 저런 건 나도 처음 보거든.”

하지만 한가지는 알 것 같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주민이며 저들이 나와 일리나를 향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초월의 종언을 가볍게 돌려 드래곤하트가 되는 매개체를 땅으로 향하게 잡은 나를 보던 일리나가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봐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다가오는 건 아닌 것 같지?”

정확히 일리나와 내가 있던 동굴로 향해오는 놈들이다.

목적이 나와 그녀라는 것을 모를 순 없었다.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은 예전부터 매가 약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더라. 싹 정리하고 올 테니. 뒤에서 기다려.”

한걸음 내딛기가 무섭게 일리나가 휴면상태에 빠져든 칼디라스를 뽑아 든 채 나를 따라 달려왔다.

“뒤에 있으라고 했을 텐데.”

“말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든? 넌 내가 지켜. 넌 네 맘대로 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샐쭉하니 말하는 그녀의 고집을 쉬이 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던 나는 결국 포기한 채 한발을 강하게 굴렀다.

콰앙!!!

동시에 일대에 모래가 강하게 튀었고 그것을 기점으로 내 신형이 일순간 가속했다.

-크릉!

동시에 놈들이 나를 향해 공격하듯 낫을 휘둘러 들어왔다.

뭉툭하고 두꺼운 사슬과 그 끝에 붙은 위협적인 낫이 인상적인 무기다.

나는 그대로 몸을 빗겨내듯 피하고 초월의 종언 끝에 마나를 뭉쳐 그대로 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가까이서 본 괴한의 생김새는 거대한 외눈을 지니고 있었다.

이외에 날카로운 송곳니와 모피 같은 하부 가리개. 그리고 단단한 뿔이 머리 위에 돋아나 있었다.

단순 생김새만 따지면 전래동화에서나 볼법한 도깨비의 형상이었다.

마법사 중에 최고는 뭐다?

힘법사다.

순식간에 도깨비 한 놈의 머리통을 후려쳐 날려버린 나는 기이할 정도로 이상한 손맛에 눈을 찌푸리고 상태창을 활성화 시켰다.

“x병할.”

그럴 줄 알았지.

밴댕이 소갈딱지마냥 뿔이 난 주신 프리아 여신이 내가 여기서 난장판을 치게 둘 리 없다.

[데이비 올 라운의 살생을 금한다.]

죽이지 못하게 그녀의 힘으로 막혀버렸다.

본래라면 머리통이 터지다 못해 일대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남겨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이었는데.

크레이터는커녕 직격한 도깨비 놈도 멀쩡히 일어나 나를 향해 다시 덤벼들었다.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잘려나갈 것 같은 사슬들이 마구잡이로 나를 향해 파고든다.

웃긴 것은 놈들의 공격이 자신들 끼리는 마치 허상처럼 통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무슨 짓을 하건 내겐 손해로 다가왔다.

[중검]

[대 회전베기]

서걱!!

그때 내 귓가에 예리한 절삭음이 들려왔다. 그 절삭음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일리나였다.

공격력으로 치면 이쪽이 한참을 앞서지만 나는 놈들을 해칠 수 없다.

반대로.

휘말려 들어온 일리나는 주신 프리아 여신이 제재할 어떤 명분도 없었다.

피고의 입장인 나와 다르게 그녀는 말 그대로 불순물에 가까웠으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나는 미련 없이 초월의 종언을 흔들며 조용히 마나를 운용했다.

근력 강화, 속도 강화, 마나 실드.

마법사가 펼칠 수 있는 수 가지의 버프 마법이 무식한 마나를 머금고 일순간 그녀에게 향한다.

“일리나. 숨 들이켜라.”

“후웁!”

의문을 품지도 않은 채 내 말에 따라 움직이는 그녀가 검을 마치 납도 하듯 당겼다.

“손목 힘 풀고. 허벅지로 버텨.”

쿠웅!!

“지금, 당기듯 발검해, 중량 최대로 한 방 먹여.”

[초 중검]

[초신속 발검]

[창월광검]

일순간 거대한 중량을 품은 묵직한 발검이 일대를 휘저었다.

내가 안 되면?

일리나가 베는 수밖에.

“거봐! 내가 뭐랬어! 내가 널 지켜준다고 했지?! 자신만만하게 덤비더니 뭔지는 몰라도 꼴 좋아 데이비! 아하하하하!!”

내가 못하는 걸 자신이 한다는 게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내막이 어떠하건 간에 그녀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윽고 상대를 파악한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미친 듯이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나는 이놈들을 처리할 수단이 현재로썬 없다.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주신 프리아 여신의 심기를 이 이상 건드리기엔 그리 효율이 좋지 않으니 말이다.

미친 듯이 도깨비들을 베어 넘기며 나를 보호하듯 거리를 확보하던 일리나는 확실히 소드마스터가 되면서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실로 놀라울 정도의 변화였다.

단순 검을 한번 본 것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정도로 검의 재능이 뛰어난 그녀였다.

괜히 검신의 후손이 아니라고 시위하듯 상상을 뛰어넘는 성장률을 보이던 그녀는 이윽고 도깨비와 나 사이에 당당하게 서며 외쳤다.

“데이비를 해치고 싶으면 나를 베어 넘기고 가야 할 거야!”

도깨비 자체는 일리나가 감당할 정도의 수준이지만 제약이 걸려 주신의 화를 풀어주고 있는 입장인 나는 두손놓고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고생해라.”

“여기서 나가면 내 소원을 꼭 들어줘야 할 거야.”

“들어보고.”

내 대답에 그녀는 만족한다는 듯 다시 푸른 마나를 뿜어냈다.

그리고 다시 한 번의 일검을 꽂아넣기 위해 그대로 기수식을 잡았다.

그때였다.

콰앙!!!!

고요하던 사막의 지면이 일그러지듯 뒤틀리며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와중에도 관음증 환자마냥 몰래 들여다보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 감시자들의 행동거지에 나는 조금 더 큰 자극을 줘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뭐가 저렇게 커?”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일리나가 칼디라스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데이비…… 너 지금 저 녀석들을 죽일 수 없는 거지?”

“……”

“일단 뒤로 빠져…… 아무래도 쉬운 상대는 아닌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나는 한 손을 가볍게 풀었다.

“살생금지.”

“뭐?”

“주신 프리아 여신이 내게 내린 페널티라고.”

아무리 강하게 처도 안 죽는다는 소리다.

“반대로 보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냐?”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와중에도 도깨비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뱀이 나를 한입에 삼킬 듯 덤벼들었다.

“죽도록 패도 죽을 일이 없으니, 최고의 샌드백이라는 소리다.”

나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 함정을 준비했습니까? 미안한데 당신이 1을 막으면 나는 2를 이용할 거고 2까지 막으면 3을 개척해서라도 날로 먹을 겁니다.

투쾅!!!

어마어마한 속도로 파고들어 뱀의 머리통을 작은 주먹으로 후려갈겨 버린 나는 지면에 처박히는 뱀의 송곳니를 틀어잡고 서슬 퍼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니들을 보낸 그 심판관인지 재판관인지 하는 작자에게 우리 좀 태워가라.”

이딴 돼먹잖은 시험을 내가 치러서 장단 맞춰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 정도 덩치면 이 넓은 사막도 순식간에 지나갈 거 같은데.

협박의 정석 그 첫 번째.

우선 요구사항을 던진다. 그리고 강요한다.

듣지 않을 경우?

말보다 가까운 게 주먹이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면 되는 일이렷다.

당연 내 말을 알아들어도 들어줄 리 없는 거대 뱀은 다시 내게 덤비려 들었다.

송곳니를 붙잡아 머리를 고정하고 있는 나를 통째로 삼키려는 듯 입을 쩍 벌리는 게 상당히 흉폭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홍단이를 뽑아 든 채 놈의 잇몸 부분을 거침없이 헤집어버리며 섬뜩하게 웃어 보였다.

“하기 싫다고? 괜찮아, 시간은 많고. 나는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필요하니까. 마침 너 덩치도 크겠다. 아주 신나는 시간이 될 거다.”

드래곤들과의 전투 경험에 따라 내가 놈들에게서 뽑은 이빨만 수백 개.

고작해야 아종인 뱀의 이빨 하나 못 뽑을 정도로 실력이 미숙한 치과의사가 아니라는 소리다.

“걱정 마, 마취 없이 깔끔하게 단번에 부러뜨려서 뽑아줄 테니.”

섬뜩한 황안을 번뜩이던 거대 뱀의 눈동자가 흔들린 것 같은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이 거대 뱀은 신수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영물이었다.

문제는 말이다.

내가 영물급 짐승들을 다루는 것에 아주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뱀탕이 또 정력에 그렇게 좋다던데.

차라리 머리가 나빠 내 말을 해석하지 못하는 게 축복이었다고 느끼게끔 만들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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