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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44화 (344/1,559)

제 344화

카앙!!!

묵직하고 날카로운 대형 낫을 휘두르는 도깨비들의 수는 지금까지 만나온 적들과 비교하면 그 수가 적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위험성은 미묘하게 달랐다. 묘하게 위험하게 느껴진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촤악!!

새빨간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도깨비들을 보며 일리나는 숨을 고르듯 짧게 공기를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장소가 달라서인가…… 묘하게 힘이 들어……”

마나가 풍족하지 않다.

같은 행동을 하는데에도 그만큼 마나의 소모가 극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이 검을 놓는 순간 저놈들을 죽일 수 있는 이는 사라질 테니 말이다.

지금 저 안하무인에 그야말로 독재자 그 자체인 데이비를 지켜줄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그의 공격은 저들에게 치명상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저 콧대 높은 자식에게 큰소리칠 기회야!’

실질적인 강함의 차이가 얼마나 나건 무슨 상관인가. 그가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러운 일리나였다.

자신이 데이비를 지키는 것에 왜 만족감을 느끼는지 의구심도 품지 못한 채 그녀는 더욱더 열을 더해서 도깨비들을 제압해 나갔다.

촤악!

“읏!”

그 과정에서 자잘한 상처가 생겨났지만, 그것도 처음일 뿐.

반복되는 전투 속에서 일리나는 누가 보면 경악할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그렇게 거의 기계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도깨비들을 베어 넘기던 그녀는 문득 상대하던 도깨비의 숫자가 상당히 줄어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아지경으로 베어 넘긴 탓에 도깨비들의 위협이 상당히 낮아지자 일리나는 그제야 가장 위험성이 큰 상대인 그 거대한 뱀의 존재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 뱀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거대한 존재감을 흩뿌리고 있던 거대 뱀은 보이지 않고 그저 홀로 서 있는 소년의 존재를 볼 수 있었다.

“데이비?”

분명 당장에라도 다 집어삼킬 것처럼 격노하던 뱀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마왕의 죽음에 큰 힘을 써서 자아가 잠든 칼디라스를 거둬들인 그녀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뭐해?”

“숨 쉬어.”

“……”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은 그녀가 후다닥 달려가 데이비 앞에 섰다.

그리고는 그를 올려다보며 눈을 흘겼다.

“그거, 농담으로 던진 거 아니지?”

“사실이잖아.”

“내가 너와 무슨 말을 하니, 하아…… 그보다 그 거대한 뱀은?”

“도망쳤지.”

데이비의 말에 일리나의 표정에 황당함이 어렸다.

“아니, 걔 타고 어디 간다고 하지 않았어?”

저도 모르게 동화되고 있는 것일까.

일리나가 떨떠름하게 물어보자 데이비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빛의 밧줄을 보여주었다.

“일단 교육이 되어야 할 것 아니야.”

콱!!!

동시에 데이비가 빛의 밧줄을 강하게 잡아당기자,

쿠웅!!!!

-샤아아아악!!

멀리서 처절한 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가긴 어딜 가 인마, 몇 대 맞았다고 엄마한테 이르러 가냐? 사내새끼가 왜 이리 패기가 없어, 이리와!”

콰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뱀이 그대로 모래 속에서 끌려 나오는 꼴을 보고 있자니 일리나는 이 인간은 역시 괴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 * *

상대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데엔 희망 고문이 최고인 법이다.

감정 없이 덤벼드는 도깨비와 다르게 이 이무기로 추정되는 뱀은 공포심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불안정한 감정선이 아닌 상위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아직도 보고 있나? 그래서, 지금 상황을 보고 무엇을 판단하시게?”

도발하듯 이죽거리며 나는 바닥에 끌려온 이무기와 눈을 마주쳤다.

“다시 보네?”

-샤아아아아악!!!

바들바들 떨리는 동공을 숨기지 못한 채 애처롭게 떨고 있는 녀석을 보며 나는 말없이 녀석의 주둥이를 쓸어내렸다.

당장 한입에 삼켜질 만큼 크기 차이가 나는 것이 바로 이 이무기의 존재였지만 몇 번의 투닥거림으로 녀석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도망쳤을 텐데.

“다시 끌려오니 반갑다. 그렇지?”

-샤아아악!!

“어이쿠,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도……”

퍼억!!!

“되는데.”

묵직한 한방에 이무기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아니, 어차피 아플 뿐이지 죽진 않잖아.”

요건은 놈이 한방에 절명할 위력을 넣는 것.

어지간한 데미지 이상이 가해지면 주신 프리아의 제약으로 고통만 전해질 뿐 데미지는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놈에게 죽을 만큼의 고통을 주되 실질적인 데미지는 전혀 주지 않는 지금의 방법만큼 좋은 게 없다는 소리였다.

퍽!! 퍽!!!

“야! 야! 이리와 이 새끼야! 마! 너 뭐 되냐?”

-샤아아아악!!

“너, 뭐 있냐? 이리와 인마!”

퍽!! 퍽!!

처참한 폭행에 이무기는 급기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꺽꺽거렸다.

죽도록 아픈데 죽을 수가 없다.

분명 이렇게 쥐어패고 있다 보면 프리아 여신이 또다시 제재를 걸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맞춰 나름대로 계획까지 짜두었건만.

이 이상 간섭을 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 간섭의 횟수에 제한이 있기에 신중하게 제한을 걸었거나.

아니면 신벌이라는 핑계로 이 여신이 내게 다른 것을 요구하는 건지.

다른 것이라 하면?

지금 이런 상황을 유도해 내게 계속해서 일정 이상의 힘을 발현하게 하는 것을 보면 싸한 계획이 한가지 떠오르긴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닐 거라 믿고 싶은 생각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주신 프리아 여신이 이 모든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고 최종적으로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면 딱 하나밖에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아닐 거야.”

“응? 뭐가?”

“신부……음? 별거 아니야.”

담담하게 말한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무기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좋은 영물답게 상황파악을 깔끔하게 끝낸 녀석은 내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놈에게 가해진 묵직한 프레스는 결국 굴종을 선택하게 하였다.

-샤아아악……

죽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머리를 숙여 보이는 이무기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좋은 말로 할 때 듣지.”

담담하게 말한 나는 일리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자. 관문은 총 7개야. 이제 시작인데 여기서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귀찮아진다.”

내 말에 일리나는 조심스레 내 손을 잡고 이무기의 머리 위에 올라섰고 곧 떨어지지 않게 내 품에 안긴 채 보슬보슬하게 돋아있는 머리 부분의 털을 강하게 틀어잡았다.

“가자, 뽀삐야.”

강아지에게나 부르는 이름을 붙여주자 이무기가 식은땀을 흘리며 기겁했다.

비늘을 가진 이무기도 땀을 흘리는 게 퍽 신기하긴 하지만 영물이 안 되는 게 어디 있는가.

“꺄악!! 너, 너무 빨라!”

“금방 익숙해질 거다.”

“으읏……”

이윽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놈은 곧이어 아주 작정을 했는지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갑작스런 속도에 깜짝 놀라 내 품에 파고들었던 일리나는 곧 속도에 적응되기 시작하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이무기가 무형의 힘으로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탄성을 흘렸다.

“와아……”

사방에 모래밖에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달랐다.

하늘 위에서 본 사막은 은은한 빛으로 둘러싸인 빛의 강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나와는 다르게 일리나는 단순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듯 보였다.

“데이비! 저거! 저거 뭐야?”

“리버 오브 소울(영혼의 강). 죽은 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은하수 같은 거야.”

“저건?!”

“퀘이사.”

“저, 저건?! 그거지? 밤의 신 크리아스의 눈물!”

“밤의 신이고 뭐고 그냥 블랙홀이야, 중앙에 검은 거 보이냐? 방대한 흡입력으로 빛까지 빨아들이다 보니 주변만 밝아 보이는 거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현실이었다.

“블랙홀?”

“그래, 하나만 존재해도 일대를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버리는 천체야.”

“흐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어버릴 만큼 강렬한 빛을 내뿜는 퀘이사가 가까이 있는데도 멀쩡하질 않나, 블랙홀로 추정되는 천체가 멀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뿌리고 있지 않나.

보통 세상에선 존재할 수 없는 현상들이 가득하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내는 건 분명했기에 일리나는 그 의문을 해소하기보다는 그저 지금의 아름다움을 눈에 간직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돌았냐고 물었지?”

말없이 하늘을 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예쁜 하늘을 본 거로 목숨 걸어보기엔 충분한 것 같아.”

“어지간히 미쳤구나.”

담담하게 물어주자 그녀는 혀를 쏙 내밀뿐이었다.

-샤아아아악!!

그리고, 그런 대화를 하던 중 사막은 끝을 다했는지 주변의 풍경이 슬슬 변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풍경의 끝에는 거대한 문이 보였다.

“어째……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거 같은 거대한 문이네.”

그녀의 감상과는 별개로 나는 그저 묵묵히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기분 나쁘게 나를 관찰하던 시선이 사라졌다는 건 이무기를 탄 이후부터 쭉 이어져 왔다.

스르르르륵……

스르륵 소리를 내며 나를 내려주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내빼려는 이무기였지만 나는 녀석의 수염을 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어딜 튀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넌 내가 이 세상을 벗어날 때까지 도망 못 가는 거야 알겠냐?”

내 말에 이무기의 눈동자가 탁하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내 손에 태어난 신수도 아니고,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끼이이이익!!!

이윽고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그 안으로 붉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동시에 순식간에 튀어나온 사슬이 나와 일리나를 포박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그 문안의 풍경에 도달해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사방은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세상에…… 이게…… 대체 뭐야?”

“……”

수많은 창과 검이 지면에서 뻗어져 나와 있고 그 위에 수많은 혼령인지 인간인지 모를 존재들이 꿰어져 고통 어린 신음을 흘리고 있다.

[재판의 과정에서 피고를 압박하기 위해 주변 분위기를 무시무시하게 조성한다는 건 제법 효과가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다.

프리아 주신은 내 기억에서 차용해낸 것들을 십분 이용하는 데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어서 오라. 이곳이 바로 혼이 가진 업을 심판하는 첫 번째 심판영역, [죽음]의 경계이니라.”

“생자와 망자를 가리지 않고 이곳에 발을 들이민 자는 죽음의 군주께서 심판받는 자의 업을 판단하신다.”

“그 업에서 무죄를 받는 자. 무사히 다음 심판의 땅으로 갈 수 있으나.”

“유죄를 받는 자.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받으리라.”

오만한 말투에 고개를 든 나는 거대한 존재감을 뿜고 있는 사내와 그 사내를 보좌하듯 서 있는 4명의 쌍둥이 같은 사내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릴레이라도 하듯 말을 이어나간 4명의 쌍둥이는 곧 입을 모아서 한마디를 내뱉었다.

“감히 고개를 들 수 없는 분이시다. 업을 심판받는 자여, 죽음 그 자체이신 심판자께 고개를 조아려라.”

말없이 주변을 바라보던 나는 피를 뚝뚝 흘리며 괴롭다고 울부짖는 이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일리나의 눈을 가렸다.

“귀 막아.”

내 말에 일리나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양 귀를 틀어막았다.

이에 나는 일리나가 눈을 뜨지 못하게 가볍게 블라인드 마법을 걸어 주고는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조용히 품에 끌어안고 고개를 들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가져다 버린 편협한 심판이라면.

이쪽에서 저쪽의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다.

표정을 싸늘하게 죽여버린 내가 천천히 입을 열며 정확히 업의 심판자를 바라보았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기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거대한 도깨비였다.

“그래. 심판하겠다고?”

“……”

내 말에 4명의 쌍둥이가 일제히 손에 쥔 거대한 헬버드를 움직이려 든다.

하지만 거대 도깨비가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자 모두가 침묵했다.

“뭐라고 부르면 되나.”

“무엄하다. 심판받는 자는 심판자께 예를 갖추라!”

압도적인 존재감과 함께 묵직한 중압감이 느껴지자 일리나가 화들짝 놀랐지만 나는 말없이 그녀를 안정시키며 조용히 받아쳤다.

“예우? 심판받는 이를 닥치는 대로 죄인으로 단정 짓고 재판하는 꼴을 보고 내가 뭐가 아쉬워서?”

카앙!!

굉음이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날아든 사슬이 나를 꽁꽁 묶었다.

“죄가 있는지는 그 업의 사슬이 알려줄 것이다. 네가 죽인 생명체의 수가 과하게 많을수록 그 사슬은 붉게 물든다. 네가 죄가 없다면 검은빛에서 변하지 않겠지.”

그 말과 동시에.

나를 묶고 있던 사슬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죄인 확정이군.”

마치 선고하듯 네 쌍둥이 중 한 명이 조용히 뇌까렸다.

“그래서, 판결은?”

내 물음에 심판자는 조용히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심판받는 자여. 이름을 대라.”

“데이비 올 라운이다.”

“심판받는 자 데이비 올 라운. 너의 살생이 쌓아 올린 악업은 도를 지나쳤다. 고로 판결을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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