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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45화 (345/1,559)

제 345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도깨비 심판자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판받는 자. 데이비 올 라운, 판결을 확정하기 이전에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

“그걸 주는 이유는?”

“네 스스로가 더 잘 알 거라 본다.”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죽…… 여…….”

“고통……”

사방에 있는 창칼의 지옥에 꿰뚫려 고통스레 비명을 지르는 이들은 아마 내가 오기 이전 심판을 받은 존재들일 것이다.

그들이 본래부터 존재해왔던 이들인지, 아니면 몽환 세계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생겨난 이들인지는 판단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누군가를 심판하는 것에 대해 당신은 무엇으로 판단하지?”

“심판받는 자의 업을 헤아리고 그 안에 담긴 무게를 측정하여 심판을 내린다. 그것이 나 [죽음]의 업을 관장하는 심판자의 몫이니라.”

“그 기준은?”

“생명의 살생.”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간이 무심코 밟은 개미 한 마리에 대한 업도 쌓이나 보지?”

“그 작은 개미 한 마리 또한 크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네게 밟힐 이유는 없다.”

그 말에 확실해졌다.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말없이 한 손에 화염구를 피워올렸다.

“심판받는 자! 데이비 올 라운! 여기서 뭐 하는 짓인가!”

판결단이 벌떡 일어나 무어라 소리치려던 찰나.

나는 손에 가지고 있던 화염구를 가볍게 던졌다가 받아냈다.

이곳에 들어오면서 육신의 힘은 잃었으되, 혼의 힘은 멀쩡하다.

육신과의 괴리 때문에 힘의 회복이 더디던 내게 혼의 해방은 말 그대로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현상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살생의 업을 관장하는 심판자.”

“…….”

“당신이 나를 심판할 자격은 누가 주었나.”

콰직.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애초에 자격 따위 존재할 리가 없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한다. 그랬을 경우 당신은 그에 대한 업을 어떻게 판단하지?”

“그것은 그들이 죽어 이곳으로 왔을 때 심판하는 법.”

“그걸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뭐라?”

”내게 해를 가한 놈은 내 손으로 해결한다. 그걸 당신에게 맡겨야 할 이유도 없고, 감히 뻔뻔하게 신도 아니면서 신인척하는 당신들이 판단할 자격도 없다.“

내 말에 판결단의 네 쌍둥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일순간 보랏빛으로 휩싸이며 거대한 스파크 속에서 뭉쳐지기 시작했다.

두 명이 합쳐지면 집정관……. 음, 아니지.

4명의 판결단이 순식간에 합쳐지며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하자 자리에 앉아있던 도깨비 심판자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곁에 있던 거도를 천천히 뽑아 들었다.

거대한 스파크가 주변 일대를 장악하자 고통받던 모든 이들이 마치 신기루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옥도 같던 공간은 텅 빈 곳으로 변해버렸고 나는 말없이 일리나에게 걸어두었던 블라인드를 해제하며 그녀를 품에서 떼어냈다.

“심판을 받는 자여. 네놈의 선택은 스스로 윤회의 길을 버리는 것과 같다.”

“틀렸어, 심판자 양반.”

내 말에 도깨비 심판자는 거도를 든 채 전신에 화염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힘이 증폭되기가 무섭게 사방이 새빨간 용암 지옥으로 변하기 시작하며 선선하던 공기가 일순간 화끈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단순 불의 온도가 아닌 영혼을 직접 불태우는 화염과도 같았다.

“첫째로 나는 지금 혼의 상태지만, 망자가 아니라 당신이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높은 위계의 의지 때문에 떨어진 방랑자일 뿐이고. 둘째로 당신이 내게 유죄를 선고하건 무죄를 선고하건 결과적으로 내게 윤회의 길 따윈 없었어.”

내 대답에 일리나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검인 칼디라스를 강제로 활성화 시킨 뒤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그녀의 양팔에 내 양손을 포개었다.

그리고는 칼디라스의 검 끝을 끌어내렸다.

“무, 무슨 짓이야!”

“움직이지 마. 이기어검술을 보여줄 테니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버둥거리는 일리나였지만, 곧 들려온 내 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는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마음껏 사용해! 나는 준비 됐어!”

단순하기는…….

“세상의 섭리를 멋대로 기만하려 드는 자에겐 그에 합당한 처벌을…….”

“악법이 버젓이 존재한다면 그건 당장 뜯어고쳐야 할 일이다.”

악법도 법이라고?

악법은 뜯어고쳐서 멀쩡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다. 그럴 힘이 없으니 순응하고 사는 것이고.

이딴 말도 안 되는 기준으로 선(善)과 악(惡)을 나누는 것 따위 서로가 정할 자격이 없다.

단순 서로를 죽고 죽여서 이기는 자가 선(善)이 되고.

지는 이가 잘못된 존재이며 악(惡)이 될 뿐.

“오라. 와서 네 결단을 보여보아라!”

화르르륵!!!

이윽고 심판자 도깨비의 전신으로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화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도깨비가 지닌 신불은 확실히 그냥 화염이 아닌 초월적인 화염에 가깝다.

보통 물이나 화염 같은 것으론 대항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내게는 현재 주신 프리아 여신이 던져준 거지 같은 페널티. 즉 살생금지가 걸려있다.

내 손으론 저 둘을 처리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일리나는 내가 하려는 행동을 금방 눈치챈 듯 보였다.

결과적으로 내 손으로 처리하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니까.

‘본래 주신 프리아 여신은 내가 여기서 금기를 어기길 바랐겠지.’

금기를 어겨 신의 제약을 멋대로 해제하고 날뛰길 바랐을 것이다.

그래야 더 단단한 목줄을 내게 채워 둘 수 있을 테니.

이번 일로 주신 프리아 여신은 나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졌다고 판단했을 테고 그에 따라 나를 제약하며 나를 억지로 강화할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신벌?

핑계일 뿐.

“눈 감고 내가 가는 대로 따라와. 전신에 힘을 풀고.”

넌 눈감고 10초만 헤아리고 있어. 나머지는 내가 한다.

담담하게 설명한 내가 전신에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내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생각한 가설의 증거가 되리라.

순식간에 거대한 신성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왕의 힘은 현재 당장 끌어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게다가 저런 적을 상대로는 차라리 상위 신성의 힘을 모방한 신성력이 잘 먹히리라.

아우우우우우!!!!

이윽고 가장 먼저 내게 덤벼든 것은 판결단 네 쌍둥이가 합쳐지며 만들어진 보랏빛의 거대 늑대였다.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로 단번에 나를 물어뜯고 삼켜버릴 듯 입을 쩍 벌린 놈은 그야말로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내 주변을 장악했다.

“윽……”

그 기세가 보통기세를 넘어 중력까지 간섭하기 시작한 탓에 일리나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불안함을 내심 드러냈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그녀의 몸과 몸을 포갠 채 그녀의 손을 덮고 있는 내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이거 한번 보여주면 일리나는 머지않아 이것까지 터득할 것이다.

압도적인 검의 재능을 지닌 만큼 그녀에게 여지를 주는 순간 따라 하게 될 테지만 사실상 아쉬울 건 없었다.

단순 이기어검의 수준으로 나를 어찌하지 못하거니와. 당장 그녀의 재능이 뛰어나도 이기어검을 익히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일순간 칼디라스를 빙그르르 돌린 나는 그녀의 팔을 천천히,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움직인 뒤 그대로 허공에 던져올렸다.

우웅!!

동시에 내 몸에서 일리나의 몸을 타고 뻗어져 나간 신성력과 마나가 하나가 되며 칼디라스를 허공에 완전히 띄웠고 나를 향해 덤벼드는 거대한 늑대를 향해 검 끝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렸다.

“아……”

일리나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럽고 정밀한 마나와 신성력의 움직임에 놀란 듯 눈을 감고 탄성을 흘렸다.

그 볼은 발그레해져 있고 입이 살짝 벌려진 것이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검이 좋아도 그렇지.

그때, 그녀가 느끼고 있던 감정이 검의 경지를 본 것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이윽고 늑대와의 거리가 지척에 이르렀을 때.

마치 압축되듯 뭉쳐지던 신성력이 일순간 폭발하며 일리나의 손에 포갠 내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거대한 섬광과 함께.

나를 향해 덤벼들던 보랏빛 늑대 전신의 반을 가르듯 새하얀 섬광이 사방을 메웠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전신에 화염을 일으킨 거도를 든 도깨비 심판자의 전신을 감싸며 하늘을 찌를듯한 섬광이 주변을 메웠다.

“아무래도 선은 이쪽인가 본데?”

“……”

“스스로의 잣대로 생명을 멋대로 악으로 단정 지어온 당신이 이번엔 악이 되는 거야.”

결국, 싸움은 승패에 따라 선과 악이 나뉘는 것뿐이다.

나는 이기적이지만 선으로 남기 위해 싸움에서 지지 않는 것이고.

내가 진다면?

그땐 내가 악이 될 뿐이다. 그게 세상에 살아가는 생명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섭리일 뿐이다.

내가 괜히 죽여서 해방시켜주는 것보다 두고두고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 * *

거대한 혼의 움직임이 보였다.

애초에 정체불명의 세상이다.

혼이 이루는 강이 보인 시점에서 정상적인 세상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명계도 아니고, 만들어진 조잡한 사후세계 따위에 규칙이 있을 리가.

죽음의 업을 심판하는 도깨비 심판자의 죽음으로 심판대에서 죄를 선고받고 끔찍한 형벌에 처한 수많은 영혼이 그대로 해방되었고.

그대로 사방에 흩어졌다.

쿠웅!!!! 그그그그그극!!!

동시에 주인을 잃은 화염의 땅과 사막은 일순간 붕괴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부수는 거야. 이거 완전?”

“그렇겠지. 주체를 잃고 목적을 잃은 세상이니까.”

“신의 꿈이 만들어낸 세상이라니……. 넌 진짜 사기꾼이야.”

자신의 입장에 대한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한 세계의 일부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작자가 어디 있겠는가.

“보통 망자들은 이렇게 심판자를 처단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아. 모든 생명체는 육신에 대부분의 힘을 저장하거든.”

혼에 힘을 저장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양은 극히 일부이며, 어지간해선 육신에 대부분의 힘을 저장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심판대로 들어서는 문을 넘었을 때.

일리나도 나도 망자 취급을 받았다.

즉 혼의 힘을 제외하고 육신의 힘에 괴리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즉 일리나의 경우 자신의 본래 실력을 낼 수 없게 되었다는 뜻과 같았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미 혼이 빠져나와 회랑에서 강화된 전적이 있다.

애초에 나는 육신이 아니라 혼이 강한 케이스 였으니까.

혼과 괴리를 불러일으키던 육신의 제약이 사라지면 당연, 혼의 힘이 그대로 깨어나게 되고. 살생금지라는 제약이 걸려있어도 내 본래의 힘이라면 일리나의 육신을 멋대로 뒤틀어 저 정도의 적을 베어버리는 데엔 전혀 어려울 게 없었다.

퍽 어려운 논리이지만.

이용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이용하는 수밖에.

거대한 용암 바다와 그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바위와 흙을 내려다보며 나는 일리나를 품에 안은 채 더더욱 높게 날아올랐다.

판결단 네 쌍둥이와 심판자 도깨비의 사멸로 지면 하나 남기지 않고 사멸하는 세상은 주신 프리아의 의지가 개입되었다 봐도 무방했다.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 삭제한다는 개념이 강했다.

“주신 프리아 여신은 말이야……”

“음?”

“의외로 정말 잔인한 신인 것 같아. 안 그래?”

“진실을 보고도 프리아 여신이 자애의 여신이라 불리는지는 웬만해선 모르지. 다만 그건 알아둬.”

주신 프리아 여신에게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여신이 사랑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한 축의 종족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자애의 여신이라는 문구가 남아있는 것은 그녀의 최종적인 목적은 이 세상의 수호와 생명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보다 자애롭게.

주신 프리아 여신이 인간의 신이라며 떠들고 다니는 성국에서 들었다면 당장 신성모독이라며 전쟁이라도 일으킬 발언이다.

“방금 네가 보여준 이기어검술의 이름이 뭐야?”

“별 가르기.”

섬광처럼 찌르듯 내질러져 그대로 하늘까지 베어올리는 일검술.

중검술 최상위 난이도의 검술 중 하나로 역량에 따라 그 범위는 천차만별로 나뉜다.

“솔직히 감도 안 잡혀.”

담담하게 말한 일리나는 내게서 무언가 또 새로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가 우울해진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막상 겪어본 일검은 그녀가 아직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찬 수준의 검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진 않아.”

배시시 웃으며 말한 그녀가 미소를 천천히 지웠다.

“선업을 쌓아왔지만 억울하게 심판을 받은 이들은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말없이 사라져 가는 혼들을 향해 씁쓸한 기도를 하는 그녀였다.

저 혼령들은 각기의 삶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비록 나를 위한 시험대의 재료로써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그중에는 악인도 있었을 것이고, 선인도 있었을 것이다.

악인이야 고통받아 마땅하다지만 선인의 경우는 어찌 되는가.

편협하기 그지없는 심판일 뿐이다.

서서히 하늘이 갈라지며 다른 세계의 일면이 엿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그대로 속도를 올려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시험은 총 7관문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앞으로 6곳을 더 들려야 해.”

“괜찮겠어? 넌 모두 무죄를 받아야 여기서 탈출할 수 있다며.”

“안되면 지금처럼 엎어야지.”

계속해서 주신 프리아 여신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만약 주신 프리아 여신이 방해하면?”

“아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때 맞춰서 방법을 쓰는 수밖에.”

내 말에 일리나가 흠칫 놀랐다.

“위험한 거야?”

“반쯤은 도박이긴 해.”

모든 게 내게 유리한 상황으로 돌아갈 순 없거든.

각오 단단히 하고 숨겨놨던 수를 꺼내는 수밖에.

헤라클래스의 생존기술을 배울 때 그는 내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강한 적이 네 보금자리를 위협한다! 그럴 때 넌 어찌해야 할까.]

[해답은 간단해. 적의 공격을 막는 것은 하책일 뿐이다. 상책은 말이다.]

[네 보금자리와 생존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위협을 가해오기 전에 사냥해버리는 것.]

그 가르침에 따라.

나는 그의 무식한 육체 강화 방법을 사실상 가장 먼저 익혔었다.

대행성 파괴급 마법을 맨몸으로 맞고도 껄껄 웃어넘기는 괴물이 고안한 육체 강화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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