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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46화 (346/1,559)

제 346화

112. 금기의 업

죽음을 관장하는 심판자의 영역을 빠져나오자 보인 것은 큰 차이가 없는 여전한 사막이었다.

“세상에…… 뜨거워. 너무 더워……”

끔찍한 더위에 일리나는 입고 있던 겉옷 하나를 벗을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가 입고 있는 의상은 겉옷을 벗어내면 민소매가 되어버리는 차림이었다.

황녀로서 교양을 익혀온 그녀에게 이성 앞에서 옷을 벗어 던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사막의 끔찍한 더위가 그녀를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

“후우…… 괜찮아……”

소드마스터의 강화된 육신으로도 견디기 힘들 정도라면 보통 인간이라면 몇 분도 채 못 버틸 정도의 더위라는 소리였다.

말없이 한 손을 들어 온도측정 마법을 사용하자 끔찍한 더위의 수치가 드러났다.

“그게 뭐야?”

“온도측정 마법.”

“흐음…… 몇 도인데?”

“딱 쪄 죽기 좋은 온도네.”

말없이 손가락에 피워 올려진 꽃봉오리를 보던 나는 곧 꽃잎이 펼쳐지는 양을 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아공간에서 물주머니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수분 보충해둬.”

“시, 싫어……”

“여기서 객사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되고.”

내 말에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물주머니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마개를 열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결국 눈물까지 방울방울 자아내기 시작했다.

“냄새가 너무 역해……”

“밤나무 꽃 냄새 같은 게 좀 진하긴 하지. 그래도 수분은 확실해.”

“……”

결국, 이를 악문 일리나는 눈을 꼭 감았고 그대로 물주머니를 살며시 물고 쭈욱 빨아당겼다.

“우웩!”

그리고는 얼마 가지 못해 반 정도를 그대로 뱉어내며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 미안해……”

“처음부터 익숙할 수야 있나.”

다시 물주머니를 노려보는 일리나를 뒤로한 채 나는 정령 마나를 끌어 올렸다.

노아스건 엘라임이건 소환이 될지는 조금 의문이지만.

치직…… 칙!!

이윽고 옅은 스파크와 함께 내 손에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령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파스스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모래는 완전히 바스러져 내려버렸다.

“저기 말이야 데이비. 너 마법도 쓸 수 있지 않아? 분명 마법 중엔 대기 중의 수분을 끌어내는 물 마법도……”

“슬슬 이동해보자.”

“야!!”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일리나가 기겁하며 달려들었다.

그대로 나를 덮치듯 덤벼든 그녀의 입에선 좀 전 마신 사막 뿔 나방의 체액 냄새로 가득했다.

“……”

그 때문에 스스로 놀라 그대로 물러난 그녀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울먹거렸다.

“내 생에 이렇게 치욕스러웠던 적은 처음이야……”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엉엉 울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이에 나는 말없이 아공간에 손을 밀어 넣었다.

분명 내가 꺼낸 것은 물이 가득 담긴 물병이었다.

파스스……

하지만 이곳의 힘이 작용한 탓인지 물병은 내 손에 끌려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먼지로 흩어져 버렸다.

그곳에 적용되는 힘은 엄연히 신력이었다.

주신 프리아 여신에 의해 식수나 식량을 아공간에서 꺼낼 수가 없다.

내 여건을 좋지 않게 만들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복잡한 심정이었다.

-끼익?

그때, 내 귓가에 괴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느끼며 양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던 일리나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얼굴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사람 키 반 정도 되는 커다란 검은 새가 담담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끼익?

고요한 눈싸움 속에서 나를 한참이고 바라보던 새는 곧이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기이한 울음소리를 흘렸다.

갑작스레 출현한 거대 새의 존재에 일리나가 소리 없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사뿐사뿐 걸어 내게 다가오며 무언가 말하려다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거, 사람 입에서 벌레 체액 냄새 좀 날 수 있지, 누가 신경 쓴다고.

“그쪽은 뭘 관장하는 심판자지?”

이윽고 새와 눈싸움을 하던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새가 어떻게 대답을 하겠어?”

이에 일리나가 키득거리며 물어오자 새가 고개를 기괴하게 꺾었다.

“꺅!”

그 기괴한 모습에 일리나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내 팔을 붙잡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곳은 탐욕을 심판하는 곳. 나는 탐욕의 업을 심판하는 심판자랍니다.]

낭랑한 꼬마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래?”

[죽음을 관장하는 심판자의 영역을 붕괴하였지요. 그건 당신 짓인가요?]

“……”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마음 같아선 감히 심판자를 해친 존재를 당장에 지워야겠지만……]

말끝을 흐린 새가 다시 고개를 본래대로 돌렸다.

[최종 심판관께서는 당신을 눈여겨보고 계세요.]

담담하게 말한 새가 날개를 펄럭였다.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일순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특별 심판 규정에 따라 당신을 최후의 심판대로 안내하겠어요.]

당신은 그곳에서 남은 6명의 심판자에게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이후 최종 심판관에게 판결을 받게 될 겁니다.

“무죄는 없다?”

[무죄는 있어요. 살생의 업과는 별개로 나머지 업은 모두 무죄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거의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당신은 살생의 업이 짙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심판을 받지 않았죠. 오히려 살생의 업을 심판하는 심판자를 살해하고 그 세상을 붕괴시켰어요. 그에 따른 처벌은 반드시 피할 수 없어요.]

멋대로 판단하며 말하는 새의 말이 끝날 때 즈음.

나는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원형경기장 같은 공간 중앙에 서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작스레 분위기가 바뀐 탓에 일리나는 깜짝 놀란 듯 내 팔을 부여잡고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여긴…… 어디…… 흡?!”

그때였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중압감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며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압도적인 중압감은 단순 중력이나 그런 문제의 수준이 아니었다.

감히 고개를 들어 올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짓눌림 속에서 일리나는 결국 주저앉으며 숨을 헐떡이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 와중에도 검지와 엄지로 내 바짓자락을 잡는 그녀였다.

“……”

그저 침묵 속에서 나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만큼 환하게 빛나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각기 다른 형상의 도깨비들이었다.

붉은 도깨비, 푸른 도깨비, 녹빛의 도깨비, 검은 도깨비.

그리고 도깨비 앞에는 이전에 본 네쌍둥이 판결단과 흡사한 이들이 몇몇 자리하고 있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나는 그저 빛을 묵묵히 응시했다.

묘하게 뭔가 이상한 느낌인데.

전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신벌치고는 너무 맹탕인데……”

내심 그런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던 찰나였다.

“부외자를 밖으로 내보내라.”

엄숙한 목소리와 함께 일리나의 몸이 빛으로 감싸지더니 이내 그대로 사라지며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마치 재판소의 배심원들이 앉을 법한 거리까지 밀려난 일리나가 급히 일어나 내게 달려오려 했지만.

쿵! 쿵!!

마치 허공에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녀의 접근을 방해했다.

게다가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제 심판받는 자, 데이비 올 라운을 도와 흐름을 방해하는 존재는 없다. 심판자들은 공정하고 명확한 판결을 내릴지어다.

“예. 최종 심판관님.”

어디선가 들려온 중후한 목소리에 대답하듯 검은 도깨비가 천천히 일어났다.

다른 도깨비에 비해 유별날 정도로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탐욕의 업을 심판하는 탐욕의 심판자입니다. 그대는 심판받는 자, 데이비 올라운입니까?”

“……”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검은 도깨비는 상관없다는 듯 천천히 걸어 내 쪽으로 느긋하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 손을 뻗어 보였다.

우웅!!!

동시에 소년의 목소리를 지닌 검은 도깨비의 얼굴에 따분함이 어렸다.

“살생의 업과는 다르네요. 당신은 해서는 안 되는 중죄를 저질렀어요. 그렇기에 시험의 방식을 바꾸겠습니다.”

담담하게 말한 도깨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대한 공간의 하늘 위로 마치 한 폭의 영상 같은 것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쑥쑥 커라. 너희들이 앞으로 내 밑천이 되어주는 거다.]

느긋한 목소리로 거대한 밭을 보며 중얼거리는 내 모습이었다.

콰앙!!!

동시에 말없이 하늘의 영상을 바라보던 나는 순식간에 파고드는 무언가에 흠칫하며 몸을 움직였다.

쿠웅!!!

거대한 해머가 일순간 내가 있던 장소를 으깨버렸다.

“심판을 진행하며, 심판자를 해친 심판받는 자, 데이비 올 라운의 형벌을 시작하겠습니다.”

거대한 해머를 마치 수수깡마냥 붕붕 돌리며 검은 도깨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은 스스로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인위적으로 재배, 그리고 그것을 팔아 치웠습니다.”

“살생도 그렇고 말도 안 되는 거로 트집 잡는 게 너희 심판자들의 몫이냐?”

“저희 심판은 모든 생명에게 공평합니다.”

“그딴 게 공정한 거면 세상에 살아있는 생명은 단 하나도 없을 거다.”

먹고 살기 위해 식물을 뜯어 먹고 고기를 먹는 순간 죄인이 될 테니까.

이런 개뼉다구 같은 논리에 장단을 맞춰줄 이유가 어디 있는가.

나는 상태창과 내 손의 상황을 계속해서 번갈아 보았다.

일리나가 빠진 이상 이제 저들을 일검에 베어버리는 짓은 불가능해졌다.

지금도 소리 지르며 보이지 않는 허공의 벽을 두드리고 있는 일리나의 표정은 상당히 화가 난 듯 보였다.

이곳의 목소리가 들리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판결합니다.”

거대한 해머를 붕붕 돌리며 내게서 거리를 벌린 검은 도깨비가 소년의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탐욕의 정도가 사실상 그리 크지 않습니다. 평균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가진 능력에 비해 탐욕의 수준이 상당히 낮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재물을 홀로 독차지하지 않고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한 점, 이 모든 점을 참작하여 심판받는 자, 데이비 올 라운. 당신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살생의 업을 담당하던 이와는 다르게 참작의 여지를 남겨놓겠다는 건지 검은 도깨비는 의외의 판결을 내렸다.

콰드드득!!

지면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도깨비가 다시 내게 덤벼든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살생의 업을 주관하는 심판자를 해친 당신은 남은 모든 심판자의 공격에서 살아남는 형벌을 가하겠습니다.”

결국, 이 최악의 조건 속에서 한판 붙는 건 여전하다는 소리다.

마왕의 힘을 사용해볼까.

그렇게 생각하기엔 벨리얼을 죽이고 얻은 마왕의 힘은 아직 형상화조차 되지 않을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결국, 사용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붕붕!!

쿠웅!!

생각하던 중 내 팔에 묵직한 해머의 일격이 꽂히자 절로 짜증이 솟았다.

이 미친 도깨비가?

“사람이 곰곰이 생각하고 있으면 기다려 줘야 할 것 아니야!”

투쾅!!!!

반사적으로 놈의 망치면을 손바닥으로 스쳐 도깨비의 신형을 내 쪽으로 당겨버린 나는 제약이고 나발이고 일단 열 받으니 한 대만 맞으라는 심정으로 모든 힘을 모조리 끌어내 버렸다.

그리고는 후려쳤다.

그냥 맞은 수준이 아니라 거의 지옥행 편도 티켓이 될 수 있을 정도지만, 뭐 어떠랴. 죽지도 않을 텐데.

퍼엉!!!

“어라?”

하지만 순식간에 주먹이 내질러지고, 그 주먹이 검은 도깨비에게 닿았을 때.

나는 상반신이 날아가 버리는 도깨비의 모습에 황당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데이비 올 라운의 살생을 금한다.]

분명 주신 프리아 여신의 살생을 금한다는 제약은 멀쩡한데.

상대를 죽여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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