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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57화 (357/1,559)

제 357화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로 주변의 소리가 사라졌다.

터벅…… 터벅……

그중에서 유일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걸음을 옮기던 그는 예쁘장한 외모가 무색할 정도로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3초 안에 이 상황, 최대한 변명해봐라.”

담담한 그 목소리에 주변이 침묵했다.

“3”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땡, 시간 지났다.”

퍼억!!!

거침없이 머리를 잃고 무너져내린 육신을 걷어차 버린 나는 쓰러진 몬미더를 제외한 근위병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해. 이 자식들 전부 연행해. 죄목은 영지에서 소란을 피운 죄, 그리고 하극상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성자의 권위는 때에 따라서 왕족 이상 수준의 힘을 지닌다.

“예…… 예!”

전후 상황 모른 채 분위기에 압도된 근위병들은 급히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사특한 무리가 감히 성자님을 사칭하는가! 주신 프리아 여신의 이름 아래에 성자를 사칭하는 마녀를 이 검으로 단……”

퍼억!!

성기사 중에는 외골수들도 더러 존재한다.

나를 데이비라는 인물로 받아들이지 못한 성기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검을 들었고.

시원하게 명치를 맞고 벽에 처박혀버렸다.

손 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 공격이었다.

“눈이 삐었나, 어딜 봐서 마녀야. 빨리 데려가. 이 새끼들 다 죽이기 전에.”

상당히 기분이 저조해져 있던 나로서는 사실 이놈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전후 사정이 어찌 되었건 저들은 이곳에 와서 내 동생들을 위협했고, 충신의 몸에 부상을 입혔으며, 무엇보다 페르세르크를 압박해온 놈들이었다.

안 그래도 가족에 대해 생각이 복잡해져 있는 이 시점에 절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파르르 떨고 있는 에오니샤와 타냐에게 다가갔다.

“다친 곳은?”

“오라…… 버니세요?”

타냐가 당황한 듯 물어왔다.

“그래.”

“어, 어쩌다가 모습이……”

“좀 거지 같은 일이 있었거든. 아마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빙그레 웃어주자 타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분위기나 다른 모든 게 비슷한데 모습이 완전히 변해 있으니 아직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에오니샤가 간헐적으로 몸을 파르르 떨었다.

두 사람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순식간에 제압당해 압송당하는 성기사들을 뒤로한 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피를 울컥울컥 토하는 몬미더를 바라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모자라서……”

“아니, 충분히 잘해줬어.”

가볍게 그의 이마에 손을 대자 푸근한 기운의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찌그러져 있던 그의 몸에 빛이 스며들며 새파랗게 변색하였던 피부가 서서히 본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쿨럭! 감사합니다! 저하!”

말은 그리하면서도 이름 값하듯 나를 조금 의뭉스레 바라보는 그였다.

“내가 적당히 사람 의심하랬지.”

“죄, 죄송합니다.”

“일단 들어가서 안정을 취해. 혹시 모르니. 다른 근위병들은 저 망할 성국 외골수 놈들 잘 감시해.”

“예! 저하!”

내 말에 근위병들이 절도있게 자세를 취하고는 우수수 흩어졌다.

마치 폭풍이 오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직위를 받고 귀족이 되어 대리 관리인의 위치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때 당시엔 내 전속 시녀였던 에이미를 희롱하던 신관을 베어버렸던 일이 있었다.

문제는 그런 도태된 하급신관과 정교 이단 심문회의 상급 심문관은 그 위계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큰일이 난 것이냐.

그럴 리가.

말없이 에오니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에오니샤가 조금 당황한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데이비 오라버님이세요?”

“그래.”

“하지만 오라버…… 흡!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반란으로 인해 그 많은 일을 겪은 에오니샤는 참 눈치가 빨랐다.

“두 사람 전부 큰 문제는 없어. 그래도 크게 놀랐을 테니 방에 가서 푹 쉬도록 해.”

막 돌아온 참이라 본래대로라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타냐의 눈치였지만.

나는 우선으로 고개를 돌려 소란을 듣고 쫓아온 에이미를 바라보았다.

“흡!”

당황한 에이미가 어찌할 바를 몰라 눈동자를 굴리자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에이미.”

“예! 저하……! 저하?”

반사적으로 대답한 뒤 나를 확인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비슷했던 탓일까.

“저하? 맞…… 으시죠?”

“그래.”

“죄송합니다. 저하! 제가 두 분 왕녀 저하를 보필하지 못해서……”

“괜찮아. 그보다 지금부터 성국으로 향하는 모든 거래와 지원을 끊는다.”

내 말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탑에도 상당량 자금을 지원하는 편이지만 성국은 예로부터 세금형식으로 부유한 영지에 일정량의 세금을 받고 신관의 주기적인 지원을 해주는 편이었다.

신관의 지원?

치료를 못 받는다고?

엿이나 먹으라지.

“성국으로 향하는 자금은 모두 동결시켜. 그리고 그 외에 성국과의 거래도 완전히 차단한다.”

니들이 그 딴식으로 나온다면. 아니, 의도하지 않은 내부의 불화라 해도 상관없다.

집안관리 못 한 놈은 피해를 봐야 하는 법이다.

“이견은 안 받는다. 알겠나?”

서늘한 목소리로 내가 그대로 쐐기를 박아넣었다.

“네! 명령이시라면!”

이런 식의 대처는 성국과 당연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국의 위세나 그들의 필요성을 생각하면 정말 다시 없을 위험한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결행을 번복하지 않았다.

누가 더 피가 마르는지 한번 해보자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니.

곧바로 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돌아가는 에이미를 뒤로한 채 나는 한참 동안 피가 묻은 복도를 바라보았다.

피가 묻을 리 없는 이 영주성에서 누군가의 피가 흘렀다.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내 입에서 쓰디쓴 한숨 소리가 나왔다.

“쓰읍…… 하……”

동시에 내 뒤에서 누군가가 힘겹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이비…… 미안해…….”

우울한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사태가 자신 때문에 벌어졌다고 판단했는지 울상이었다.

이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나는……

그대로 그녀의 양 뿔을 낚아챈 뒤 그대로 벽으로 밀어붙였다.

쿵!!

“꺅!”

제법 귀여운 비명과 함께 그대로 밀려난 페르세르크가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하아…… 이때를 노렸어.”

“흡?! 떠, 떨어져!”

그제야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그녀가 기겁하며 발버둥 쳤다.

“웃기지 마라! 괴상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한다는 짓이 이거야?! 본녀는 그대의 욕망에 놀아나는 장난감이 아닌 게야! 이거 당장 놔!”

비명을 지르며 새빨개진 얼굴로 버둥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은 채 말했다.

“불편한 곳은?”

“……없어.”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회피한 채 그녀가 웅얼거렸다.

워낙에 작은 소리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보다 어떻게 된 게야. 결혼이라니. 그대 아무리 막 나가는 인생이라지만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게지.”

“그래서?”

눈을 살짝 찌푸리며 묻자 그녀가 대뜸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하지만, 본녀에겐 연하 취향 따윈 없어! 그리고 부활을 시킬 거면 차라리 인간의 모습으로 했어야지! 지금 마족과 인간이 어떤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 알면서도 본녀의 머리에 이런 큼지막한 뿔을 달아놓은 이유가 뭐야!”

마왕의 뿔은 보통 마족의 힘을 상징한다.

페르세르크는 역대 다른 마왕들과 달리 대부분의 권능을 손에 넣었기에 그 뿔의 크기가 보통 손가락 마디만 한 다른 마족과 다르게 거대한 편이었다.

겉보기엔 차라리 마족보다는 용인족에 가까운 사이즈였으니 말이다.

“인체공학적 뿔이 어때서.”

“본녀의 뿔은 그대의 욕망이나 채우는 손잡이가 아니야.”

싸늘하게 쏘아붙이는 그 말에 나는 그대로 손을 뻗어 그녀의 뿔을 잡았다.

“애초에, 본녀의 뿔이 없었다면 이렇게 의심을 받을 일도…… 어?”

그녀가 당황한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뿔이 내 손에 떨어져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뿔이 있던 부분은 마치 환각 마법에 걸려 있던 것처럼 일반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몰랐냐? 이거 마나에 반응하는 탈 부착식인데.”

네 육신은 어떤 의미로는 탈 인간, 혹은 마족의 육신이다.

쉽게 지치지 않고 몸의 원형이 거의 변하지 않으며, 혹여라도 찢기거나 부서져도 마나를 수복해 스스로 회복한다.

지금 디셉티콘 편대와 새로 추가 중인 어벤져 편대의 골렘들에게도 사용 중인 기술이기도 하다.

내 말에 그녀는 황당한 얼굴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다.

* * *

하인스 영지에 이단 심문회가 들이닥치고 약 며칠이 지났다.

끼익……

고요한 문이 열리며 흰색의 수수한 복장을 한 전(前) 성녀 후보 앨리스가 걸어들어왔다.

중앙 성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온 그녀의 시야에 있는 이는 총 두 명이었다.

이제 유일한 성녀 후보가 되어 곧 성녀가 될 리나 성녀 후보와.

현 성국의 법왕, [사이델리스 쇼른 하레즐렘] 이었다.

“법왕성하.”

“오셨습니까. 앨리스 성녀 후보.”

“이제는 대주교입니다. 성녀 후보는 제게 과분한 자리에요.”

미련을 떨쳐버린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 하하……앨리스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러네요. 그동안 공부 많이 하셨나요?”

“헤헤…… 그게……”

“후우…… 당신은 늘 그렇죠.”

앨리스의 타박에 리나가 움츠러들었다.

“죄, 죄송해요.”

“딱히 당신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제 유일한 성녀 후보가 되셨으니 최소한의 프레셔는 감당하셔야 해요. 언제까지 느긋한 삶을 살 순 없잖아요?”

앨리스의 타박에 리나가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장 밖으로 나가 맛있는 꿀빵을 사 먹고, 활기찬 거리를 보며, 예쁜 노을을 보기 좋아하는 꿈많은 아가씨일 뿐이었다.

하지만 성국의 성녀라는 위치는 성흔을 받는다 해도 그렇게 꿈만 가지고 존재할 수가 없었다.

유별난 케이스인 하인스 영지의 그 괴물 같은 왕자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 엄청난 힘을 보고 누가 성자가 아니라 의심이나 하겠는가.

물론, 지금 성국에선 그의 힘을 아직 인지하지 못한 이가 다수이지만 말이다.

“그래요. 곧 이 성국을 떠나는 제게 하실 말씀이라는 것은 뭐죠? 게다가 리나 성녀 후보까지 이리 불러오시고.”

앨리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어왔다.

그러자 법왕 사이델리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말입니다. 리나 성녀 후보께도 말씀드렸지만, 앨리스 성녀후…… 아니, 대주교께서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죠?”

“성국의 정교 이단 심문회가 분열했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성국의 불화를 일으키고 있어요. 이번 전쟁을 통해 저희가 그곳에 시선을 돌린 틈을 타서요.”

“이단…… 심문회……”

그 단어에 앨리스가 이를 살짝 갈았다.

별로 좋은 감정이 드는 곳은 아니었다.

그곳이야말로 광신도의 집합체들이니까.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거죠? 이제 이곳을 떠나는 저는……”

“문제는 그 이단 심문회에 계시가 내렸다는 겁니다. 마족을 찾아 척살하라고. 그 계시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광신도들은 아주 작정하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어요.”

“좋지 않은 소식이네요. 그래서요?”

그래 봐야 자기하곤 관련 없는 일이다. 이제 자신은 하인스 영지로 떠날 참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치들이 하인스 영지를 뒤집어엎은 모양입니다. 성자인 데이비 왕자가 없는 틈을 타서.”

“……”

그 말에 앨리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절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설마…… 거기서 뭔가 사고를……”

“쳤죠.”

담담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법왕 사이델리스나 리나 성녀 후보가 아니었다.

익숙한 어조이지만 묘하게 톤이 낮은 목소리였다.

“핫?!”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앨리스는 접견실의 한쪽에 언제 들어왔는지 느긋하게 앉아 손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한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아니? 소녀라고 보기엔 조금 중성적인 느낌이다.

“누구……”

“그 집 주인입니다.”

그 한마디에 앨리스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지금 8서클 마법 7개를 상공 2천 미터에 띄워 놨습니다만……, 10분 내로 이 상황을 해명하지 않으면 하나씩 떨어뜨릴 겁니다.”

부족해요? 더 늘려드릴까요?

장난스레 말하지만, 앨리스는 알 수 있었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은 저 외모가 바뀐 데이비 왕자로 추정되는 이가 꼭지가 돌아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빌어먹을 광신도가 누굴 건드렸는지 알아야 할 텐데.”

재수가 없으시네요.

빙그레 웃는 그 미소가 어째서일까.

전쟁터에서 환자들을 치료할 때 투덜거리면서도 챙겨줄 건 다 챙겨주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 저 미소는 따스하지 않았고, 오히려 죄다 얼려버릴 것처럼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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