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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59화 (359/1,559)

제 359화

일리나에게 페르세르크라는 여성은 그야말로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아직 몸이 불편한지 침대에 앉아있거나 데이비가 직접 만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며칠간 지켜본 그녀였다.

“진짜 사람이…… 아니지 마족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괜히 서큐버스 전설 같은 게 있는 게 아니었어.”

본인도 자신이 예쁜 편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오만함이 아니라 적어도 남들이 보는 시선을 정확하게 캐치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대륙 6대 미녀.

린디스 제국의 막내 황녀가 대륙 미녀로 급부상하면서 6명으로 늘어난 만큼 대륙에는 데이비의 표현을 빌려 경국지색이라는 존재들이 더러 존재했다.

일리나 본인도 그 6대 미녀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 만큼 실질적으로 자신의 외모에는 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진짜 이기적으로 예쁘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외모로 자격지심을 느껴본 적이 없건만, 괜한 투정이 나올 정도로 페르세르크라는 이름의 마족은 너무 아름다웠다.

뿔을 달고 있건 뿔을 떼어내건 그녀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3천 년 전의 검신과 싸웠다는 마왕이자, 그녀의 검인 칼디라스의 친우, 그리고 현재는 데이비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이었다.

우아한 행동거지에 장난기가 살짝 어린 나긋나긋한 미소, 그 외에 눈을 뗄 수 없는 새하얀 은발과 붉은 눈까지.

신이 작정하고 심혈을 기울여 빚어낸 예술품 같았다.

그것이 단순 데이비의 취향에 의해 탄생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그녀도 잘 알았다. 그때 뱀파이어의 은신처에서 그녀의 혼령을 본 적이 있었다.

그 혼령은 현재 그녀의 모습과 거의 같았다.

일리나는 이전부터 페르세르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데이비와 함께 지내며 정이 들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녀의 존재를 직접 보니 정말 놀라울 정도로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녀가 그동안 힘든 일을 겪어왔다는 사실도 들은 바 있었다.

마왕이 되기 전 검신 하레스에게 가장 소중했던 존재가 그녀였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잘된 것은 괜히 자기 일처럼 기분이 좋아야 했다.

그런데.

왜 데이비가 그녀와 잘되는 일만 남은 이 시점에서 미묘하게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

좋은 일은 축하해주는 게 맞는데, 이상하리만치 데이비라는 친구를 그녀에게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친구는 소유하는 게 아니고 공감하는 건데 말이야…….”

피곤해서 자신의 심정이 괜히 날카로워진 것이라며 애써 무시해 넘긴 일리나는 데이비에게 자신은 일단 팔란 황실로 돌아간다는 편지만 남긴 채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는 그녀가 고민이 많을 때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이에게 연락을 날렸다.

“헬리슨 현자님……. 저…… 일리나에요.”

“호오, 제국의 황녀님이 이 늙은이를 다시 찾아주시었구먼.”

“아이, 참……. 평소처럼 대해주세요. 할아버지.”

힘없는 어조로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수정구 너머의 노인이 놀란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호오. 그래, 고민거리가 많아 보이는구나. 무슨 일이 있더냐?”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히 마음이 심란해서요.”

담담하게 웃어 보인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전쟁에 직접 나서서 도움을 주셨다면서요?”

“껄껄. 다 늙은 노인네가 방구석에 처박혀있으면 무엇하겠느냐.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와야 하는 게지.”

“그런가요.”

“그래. 무슨 일인지 한번 말해보려무나.”

자애로운 할아버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물어오는 헬리슨의 모습에 일리나는 몸을 웅크린 채 한숨을 내쉬고는 용히 입을 열었다.

“주변인의 이야기에요. 아 물론 제 이야기는 아니구요. 그냥 들은 이야기에요, 진짜요.”

그리고는 그녀가 느끼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제 일이 아니라는 말만 몇 번이고 반복하며 말이다.

말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대륙의 명망 높은 대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는 귀여운 손녀가 재롱부리는 걸 보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껄껄, 그 어리던 아가씨가 다 큰 게지.”

담담한 그 말에 일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네가 그 왕자를 향해 연심을 품었다는 뜻 아니겠느냐. 그리고 네가 그 아가씨를 향해 느끼는 건,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인 게지. 질투라고 들어보았느냐.”

“제, 제가 아니라니까요?!”

당황한 일리나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손사래를 쳤지만 헬리슨 발레스티아는 그저 껄껄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래, 그래 네 일이 아니라고 하자꾸나. 그래,”

“정말…… 현자님도 계속 이러실 거에요?”

“그래서, 넌 어찌하고 싶으냐.”

“잘…… 모르겠어요.”

“인간의 감정과 욕망은 당연한 게지. 누군가를 좋아하면 질투를 할 수도 있는 게고. 어찌 남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터라 이 늙은이도 손녀딸 같은 네가 걱정이었다만. 허허허허허!”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대상을 일리나의 ‘지인’에서 그녀로 고정해버린 헬리슨의 웃음소리에 일리나는 대꾸할 힘도 잃어버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질투라니……. 웃기지도 않은 소리죠.”

그럴 리 없다. 자신이 뭐가 아쉬워서 그 싸이코패스 같은 자식을 좋아한단 말인가.

평소 그를 지켜주고 싶었던 건 그가 그녀의 시선에는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었고,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많은 이들을 지켜왔지만 정작 그를 지키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분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왜 그는 많은 이들을 위해 힘을 쓰는데 정작 그를 이해하는 이가 없는가 하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합리화를 하려던 중이었다.

“허면, 하나 물어보자꾸나. 네 말대로 정말 축하해주어야 할 일이거늘, 어찌하여 넌 데이비 그 왕자에게 축하한다는 한마디도 전해주지 못하는 게냐?”

“그건……”

“할 수 없었겠지. 마음 한편에서 그걸 축하했다간 더없이 멀어져 버릴 것 같으니까. 껄껄, 아니더냐?”

그 말에 일리나의 몸이 굳어버렸다.

* * *

“요시아 프랑소스, 그만 마셔라.”

쭙쭙 소리를 내며 가죽 주머니에 든 내 피를 쪽쪽 빨아 마시던 요시아 프랑소스가 눈을 치켜세웠다.

“그만 마시라고! 이 정신 나간 식충아. 남의 귀한 피 아껴먹을 생각도 안 하고 거덜 낼 생각이냐?”

“우부부부! 우우웁!”

피를 빨면서도 불만을 표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냥 가죽 자루를 입에서 떼고 말하면 될 일인데. 그녀는 그 잠깐도 아깝다는 듯 절대 입에서 가죽 자루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쪽 빨아먹은 뒤 손등으로 입을 스윽 닦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흐으, 맛있다! 선생님. 그 모습, 계속 그대로 계시면 안 돼요?”

“다시 동굴 극한 체험하고 싶다고?”

“아…… 지금이 더 맛있단 말이에요!”

요시아 프랑소스에게 나라는 존재는 단순 피 맛이 좋은 선생님이자 조언자일 뿐이었다.

이단 심판관이 영지를 찾아온 이후, 나는 F반 학생들을 모조리 샤쿤탈라로 돌려보내 버렸다.

하지만, 요시아 프랑소스만큼은 이곳에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 분위기가 이런 마당에 당장 샤쿤탈라보다는 이곳이 그녀에게 더 안전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녀는 엄연히 대륙 공적인 뱀파이어.

그것도 뱀파이어의 수장이다.

모르는 이가 보기엔 온건파고 급진파고 모두 때려죽일 모기년놈들로 보일 테니 그녀는 말 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요시아는 다른 학생과 다르게 나를 보자마자 눈치챈 듯했다.

그녀가 나를 알아본 방법은 간단했다.

내 몸에서 느껴지는 혈향이었다.

뱀파이어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사람의 특별한 체향으로 요시아는 뱀파이어 로드로 각성한 뒤로부터는 주로 사람을 그 향기로 구분하곤 했다.

당연, 육신이 변한다고 해서 유전자나 분위기가 바뀌는 것도 아니기에 그녀에게 나는 겉모습이야 어떻든 선생님일 뿐이었다.

“그보다 뱀파이어 소식은 들었나?”

“네. 솔직히…… 제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담담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씁쓸하게 말했다.

“솔직히…… 동족이라곤 하지만……, 정말 동족이라는 느낌은 안 드는 걸요. 제가 뱀파이어라면서요. 하지만 저는 피를 빠는 것만 빼면 더 인간 같은걸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직 본성이 각성하기 전인만큼 그녀는 뱀파이어 로드의 특성만 가지고 있을 뿐 여전히 인간에 가까웠다.

“그래서 말인데요. 선생님.”

“뭔데.”

“2주 뒤에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실 거라면서요?”

“그렇지.”

“그때는 또 피 맛이 다를까요?”

“흉측한 괴물이 될 수도 있는데?”

육신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

내 말에 그녀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날름 웃어 보였다.

“어차피 직접 빠는 것도 아닌데요. 뭐. 괴물이라 해도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그저 맛있는 피만 빨 수 있으면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였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의 피를 빨진 않았겠지?”

“선생님 말고 다른 사람의 혈향은 비려서 싫어요. 선생님껀 담백하고 깔끔하단 말이에요.”

잘못된 주입식 입맛의 폐해 그 자체였다.

“그런데 뭐하시는 거예요?”

“설계.”

내 말에 그녀가 의아한 듯 책상 위에 놓인 설계도를 바라보았다.

“어디에다 쓰는 건데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는 생각을 정리한 뒤 천천히 말했다.

“육체 변이 골렘.”

이름도 정해두었다.

“이름은 메라몽”

“뭐야…… 작명 센스가 왜 그래요?”

“뭐가 어때서.”

“아니. 좀 멋있는 것도 많은데…….”

“두고 봐라. 굉장하다는 말이 튀어나올 거다.”

내가 설계하고 있는 건 엄연히 금속 인형이었다.

어벤져 편대의 시작품인 에나벨 이후로 추가될 두 번째 인형으로 사실 컨셉을 어찌 잡을까 고민했지만, 심연에서 튀어나오던 그 거대한 놈이 떨어뜨린 파편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괜히 위험부담이 가득한 생물체가 아니라 정화된 그 파편의 특성만 끌어내 만들면 내가 원하는 대로 굴려 먹을 수 있으니까.

“비슷한 게 이미 있긴 한데 사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변수 덩어리였거든. 그래서 조금 다운그레이드시키고 정화해서 필요한 것만 뽑아냈다.”

“선생님은 대체 정체가 뭐래요? 연금술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마법에, 검술에, 성자에.

이제는 연금학파에서조차 선보인 적 없던 골렘을 만들고 있다고 하니 아주 기가 막히는 모양이었다.

“뭐든 하면 되는 거다. 연금술과 마법은 어떤 의미로는 비슷해. 언제 한번 그 두 개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봐라. 숙제다.”

“그 재능을 다른 곳에 쓰신다면 정말 대단하실 텐데……”

“두고 봐, 굉장하다는 말이 나올 테니까.”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반드시 만든다.

그게 내 연금술사로서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나저나 드워프 아저씨들이 아카데미 건설로 바쁘던데.”

하인스 영지에 아카데미 건설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거대한 학교를 짓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안되면 되게 하라.’ 했던가.

정령의 힘과 마법 아티펙트, 그리고 드워프의 기술력과 쉬지 않는 노동력인 스켈레톤까지.

게다가 일반적으로 동원되는 이들의 육체 능력을 극도로 강화하는 신성 버프까지 쏟아부으면 한 달이 걸릴 작업이 고작 사나흘 만에 끝나는 기적을 볼 수 있다.

무슨 뜻이냐면.

공사에 착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부실공사는 절대 없다며 호언장담할 정도로 대단한 건축가들인 붉은 바위 부족의 드워프들이 혹시 부실공사가 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말할 정도였다.

“저…… 선생님.”

곰곰이 생각하던 요시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카데미가 생기면 마법 학부도 생기는 거죠?”

그 말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마법학을 가르칠 선생님은 구하셨어요?”

“이미 구해놨지.”

이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지금 당장 윈리와 함께 마법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 좋은 6서클 장로 출신 마법사가 말이다.

“그럼……, 저 편입할래요. 선생님이 만드는 학교, 거기서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배운 걸 후배들에게도 알려줄 거구요.”

단단히 벼르는 요시아 프랑소스의 눈빛에 담긴 감정은 권능을 사용할 것도 없었다.

“니가 당했으니까 그대로 학생에게 베풀어주겠다고?”

“헤헤.”

혓바닥을 쏘옥 내밀어 보이고는 요시아가 품 안에서 꺼낸 작은 무언가를 내 입에 쑥 밀어 넣었다.

“이건 뇌물이에요! 시험에 통과하면 절 거부하지 말고 꼭 채용해주셔야 해요!”

그리 말하고는 쏜살같이 도망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입안에 들어간 것을 손가락으로 집어 빼냈다.

그것은 작은 열매 씨앗이었다.

주로 빨고 있으면 단맛이 나는 기호식품인데, 요시아 프랑소스가 이런 것을 좋아했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픽 웃음을 흘리고 있던 나는 그녀와 교차하듯 들어온 베르닐 시종장을 바라보았다.

“시종장? 무슨 일이야?”

“저하…… 큰일 났습니다. 우려하셨던 일이……”

그 말에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에 마음이 풀어져 있던 내 얼굴이 살며시 굳었다.

“영지 내에 비축해두라 했던 약제들은?”

“전부 준비해두었습니다.”

“중앙 질병 관리단에 연락해. 직접 치료하러 간다.”

전쟁이 남기는 것은 사상자뿐만이 아니다.

누군가가 죽고 파괴되면서 생긴 것들로 인해 나도는 끔찍한 질병.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것이 가장 큰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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