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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61화 (361/1,559)

제 361화

115. 흑백의 재앙

사방에서 놀라움으로 가득 찬 눈빛이 쏟아졌다.

팔란 황실의 귀족 중 살리반을 따르는 이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 찾아온 내 모습에 놀라움과 의아함을 품었다.

실제로 이 상황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이상 이렇게 타이밍 좋게 찾아와서 제안한다는 것도 퍽 웃긴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

결국, 한 귀족이 참다못해 내게 의문을 표하려던 찰나.

살리반이 한 손으로 귀족을 제지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에게 보고를 올리던 사내에게 물었다.

“그루누이 재정관. 왕자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제국의 자금 상황은?”

“그, 그것이…… 데이비 왕자께서 말씀하신 대로의 물량이 제때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상황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요. 네.”

그 또한 같은 생각인 듯 보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두 푼도 아니고 어지간한 소국의 국가 예산을 털어 약재와 의약품을 사 들고 찾아왔으니 의심이 먼저 갈 수밖에.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그루누이라 불린 재정관이 내 눈치를 살폈지만, 나는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의심되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오만…….”

“뭐, 같은 입장이라도 당연할 겁니다. 갑자기 대량의 지원이라니 웃기지도 않죠.”

담담하게 말한 내가 살리반과 눈을 마주했다.

“하지만 이유는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두 가지뿐입니다.”

현재 하인스 영지의 특성상 팔란제국이 벌써 흔들리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서 타국에게 이 평화의 흐름을 깨게 둘 수 없다.

전쟁이 터진 상황에선 먼저 전쟁이 우선권을 가지기에 과격한 결단을 내렸지만, 그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회피할 방법은 존재했다.

“팔란제국이 흔들리면 하인스 영지도 타격이 큽니다. 이 사안은 이미 라운왕국의 국왕 폐하이신 크리아네스 올 라운 폐하와 상의 후 결정이 난 항목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거듭 말하지만, 사람이 사람 구하는 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내 말에 몇몇 귀족들의 표정에 놀라움이 어렸다.

“거절하지 않소. 당연 왕자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아바마마께서 지켜오고자 하셨던 대륙의 평화를 위해 팔란 제국은 언제고 굳건하게 수호국가로 남을 것이며, 중립적으로 대륙의 평안에 힘쓸 것이오.”

살리반이 벌떡 일어난 채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데이비 왕자.”

“그래요?”

내 미소에 그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럼 잊지 마세요. 그 은혜.”

남들에겐 들리지 않게.

나는 살리반에게만 말을 했다.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지 말이다.

동시에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약제와 의약품은 이미 황실 창고에 소환해두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환자들이 격리되고 있는 격리구역으로 향할 겁니다.”

“아! 저희 황실의 자랑인 그리핀을 내어드리겠습니다. 그리핀이라면 그곳까지 금방……”

“아뇨.”

그냥 공간 채로 넘어갈 겁니다.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살리반이었지만 나는 할 말만을 끝낸 채 부랴부랴 회의실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숨을 짧게 고른 뒤 인상을 왈칵 찌푸렸다.

챙그랑!!!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내 몸에 둘려 있던 얇은 마나의 막이 깨어져 버렸다.

동시에 내 시야가 다시 낮아지며 귀찮을 정도로 치렁거리는, 잘라도 잘라도 계속해서 생겨나는, 거지 같은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게 보였다.

벌써 이 모습이 된 지 이주가 다 되어가고 있다.

얼마 남지 않았다지만 그 조금의 시간이 마치 10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내 몸은 현재 환각 마법으로 모습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도구를 이용해 내 겉에 그것을 덧씌우면?

결과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지속시간이 너무 짧았다.

말없이 목걸이를 풀어 꺼내보자 그 귀한 마정석으로 만든 마법 아티펙트가 산산조각이 난 게 보였다.

마나석도 아니고 수백 배의 출력을 내는 마정석이다.

그 마정석 하나를 통째로 사용한 환각 마법인데도.

고작 몇 분 버티고 박살이 나버렸다.

“거 참……”

대가의 파워가 얼마나 강했던 것인지.

결국, 내 육신 위로 환각 마법을 덮어씌우는 것도 어지간해선 시도 못 할 짓이라는 것이 증명된 꼴이었다.

“륀느, 변신 지속시간은?”

“7분 28초 정확한 계산, 륀느가 높게 평가해.”

“어지간해선 못 써먹겠네.”

내가 값비싼 마정석을 투자하여 만든 환각 아티펙트가 버틴 시간이었다.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는 륀느의 머리를 푹푹 쓰다듬은 채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걸음을 옮겼다.

“가자. 어차피 며칠 뒤면 바뀔 몸이니까.”

괜한 심술이 돋은 나는 뭐가 되었건 딱 하나만 걸려라 라는 심정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 * *

“으으……”

“아……아아……”

죽음의 냄새.

죽어가는 이들의 신음.

지옥이 과연 이런 모습일까.

티오니스 대륙은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륙 곳곳에서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여러 도시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이 전염병은 솔직한 심정으로 전쟁의 사후문제라고 보기엔 너무 영역이 방대했다.

“사망……했습니다.”

“망할……”

질병 관리단을 은퇴하고 새로이 의술을 배우는 의학도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던 전 중앙 질병 관리단의 의회원 고르네오 남작은 최근 들어 거의 담지 않았던 쓴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의 눈앞에는 몸의 반절이 새카맣게 변질한 환자가 누워 있었다.

“의술은…… 아픈 이를 살리는 것이지 죽은 이를 되살리는 금기는 아닐지니…… 이보게, 베르나르도.”

담담한 질문에 젊은 의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예의 바르게 그에게 다가왔다.

“예, 남작님.”

“그래. 자네가 내게 배우기 시작한 게 얼마나 되었나.”

천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고 들것에 실려 나가는 환자를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천막 밖으로 나간 그는 약초담배를 입에 물고 거칠게 불을 붙였다.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쯧쯧 젊은이가 겁도 없이 사지로 걸어들어왔군.”

“사지라니요. 의사에게 이곳만큼 가장 최적의 전장은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베르나로도의 모습에 고르네오 남작이 껄껄 웃어 보였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는가? 당장 자네도 사람인 만큼 저 악마 같은 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정확히는 사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끌어 올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겠죠.”

단호한 태도를 표하는 눈매에 고르네오 남작은 약 냄새가 잔뜩 풍기는 약초담배를 깊게 빨아 들이쉬고는 짧게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이놈의 약초담배는 익숙해지질 않는군.”

“축복의 잎이 아니면 당장 치료를 하는 저희도 어찌 될지 모르니까요. 자신의 관리를 게을리한 의원 두 분이 며칠 전에 병상에 드러눕지 않았습니까.”

“두렵지 않은가.”

“남작님. 전쟁터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무기를 들고 싸우지요.”

베르나르도의 말에 고르네오 남작은 쓰게 한숨을 내뱉었다.

언제였던가, 고르네오 남작은 이런 경험을 해본 바 있었다.

신성력이 전혀 먹히지 않는 병.

‘그래, 오르뎀 영지 때와 비슷하군.’

오르뎀 영지에서 보았던, 사람을 녹여 죽여버리는 끔찍한 악마의 병, 분명 이름은 융해 가속 바이러스라는 기괴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곳의 상황은 그때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좋지 않은 것도, 좋은 것도 반반 존재했다.

그때엔 데이비 왕자라는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나타나 기적 같은 의술을 펼쳐 보였지만.

이곳에서는 믿을 것이라곤 몇 없는 상황이다.

“남작님.”

시계의 왕녀라고 하였던가. 고작 열 살 조금 더 먹은 라운왕국의 왕녀가 만들었다는 간단하고 편리한 손목시계로 인해 굳이 시간을 확인하는 데에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어졌다.

“남작님. 곧 중앙회의 시간입니다.”

* * *

회의장은 솔직한 심정으로 개판 오 분 전 그 자체였다.

정작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원들의 눈빛에 의욕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팔란 제국의 발 빠른 대처로 인해 환자 대부분이 있는 곳을 격리 수용한 탓일까.

크게 병이 퍼져나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안도해야 할 것이다.

“전염성이 어마어마합니다. 자칫 조금이라도 잘못되었다간 몇 달 안에 대륙 전체에 이 빌어먹을 죽음이 나돌 겁니다.”

그 말에도 주변 회의에 참석한 의원, 귀족들은 하나같이 산만한 모습을 보였다.

“듣고들 계시오? 이번 병은 정말 위험하다 말하고 있는 것이오. 전염경로를 알 수 없으니 대처가 어렵고, 예방이 어렵소이다. 그렇다고 딱 부러지는 해결책도 없는 이 마당에……”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더욱 커진다.

고르네오 남작의 브리핑에 맞춰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게 아니었다.

“이봐, 교대는 언제야.”

“예 백작님. 백작님께서는 세 시간 후에 포퓰리스 후작님과 교대를 하시면 됩니다. 허면 할당량은 끝납니다.”

“거참 더러운 평민 놈들이 병 걸려 뒤지거나 말거나……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지, 까놓고 내가 의술을 배운 게 어디 저딴 놈들이나 살리려고 그런 줄 아는 겐가.”

더러 이런 이들도 존재했다.

“해결책도 없는데 주야장천 탁상공론이라니. 이딴 걸 구경할 바에 쓸만한 노예를 더 사 모으는 게 경제적이겠군.”

“오, 발티스 백작, 요즘 수인족 노예를 모으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아하하 그렇습니까? 사실 얼마 전에 묘인족 성노예 하나를 사들였는데 말이지요. 그년이 얼마나 명기이던지……”

그 와중에도 고르네오 남작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예상되는 전염경로는 수류에 흐르는 바이러스나 새를 통해 옮겨지는 바이러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염 직후 생겨나는 증상으로는, 구토, 발작, 복통, 환각 등등. 현재 수도 없이 상황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피부에 피가 고여서 전신에 검은 반점이 드러나며, 심해지면 급기야 전신이 새카맣게 변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

“아니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결론이.”

잡담하던 귀족 하나가 짜증스레 물어왔다.

질병 관리단의 의회원 이외에도 의료 계통 관련 귀족들이다.

그들의 입지가 낮은 편은 아니었기에 과거 질병 관리단의 의회원이었을 뿐인 고르네오 남작은 성질을 죽이고 차근차근 설명할 뿐이었다.

“지원 요청을 해주십시오.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발병한 지 벌써 시간이 이만큼 흘렀는데 제대로 된 원인조차 찾지 못하고 있어요. 삼 제국 폐하께 보고를 드려 인력과 자금을 더 지원받아야……”

“아니 이 사람이!! 지금 질병 관리단에 들어가는 돈이 얼만지 알아?!”

격노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당신 말이야. 당신같이 무능한 의원이라도 의원이라고 믿고 금화를 풀고 계시는 삼 제국 황제 폐하께 송구스럽지도 않아?! 엉?!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 당장에 이깟 전염병 하나 원인도 못 찾아서 빌빌거리고 말이야.”

그 외침에 고르네오 남작에게 호의적인 질병 관리단의 의원들이 벌떡 일어나려 했으나 그가 제지했다.

“맞습니다. 지금 저희의 기술로썬 이 병을 모두 단시간에 잡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를 포기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그러니 요청합니다. 당장 인력과 자금의 지원이 힘들다면 단 한 명에게 도움을 요청해주십시오.”

하인스 영지의 성자, 데이비 올 라운왕자에게.

고르네오 남작의 표정은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었다.

되도록 그의 도움은 빌리고 싶지 않았다.

그 한 명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절대 옳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가 아니면 정말 해결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참담한 상황이었다.

“하! 그놈의 데이비 올 라운 데이비 올 라운. 그 왕자가 뭐라고 그 난리들인지……”

“맞소이다. 신성력도 먹히지 않는 병을 상대로 그 애송이 왕자가 뭘 어쩌겠소.”

“혹시, 질병 관리단에 책정되는 예산을 빼돌려 그에게 뇌물을 주고 있었던 것 아니오?”

“그러고 보니 고르네오 남작은 이전에도 라운왕국에 들렸고 그와 면식이 있었지.”

“허어……”

“네 이 인간들을 그냥! 쓸데없는 짓으로 제국의 국고를 탐내려거든 내 당장 단매에 당신, 그리고 당신과 작당한 데이비 왕자를 때려죽일게요! 알아듣겠소?!

역으로 의심하는 시선을 보내오는 그 모습에 고르네오 남작은 기가 막히기 시작했다.

때려죽인다고? 누가 누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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