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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62화 (362/1,559)

제 362화

팔란 제국의 중앙 귀족인 버닝 백작과 디그 후작이 은밀하게 만났다.

“데이비 왕자가 또 나타났습니다.”

“좋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팔란 제국이 고작 소국의 왕자 따위의 눈치를 보게 되었단 말입니까.”

디그 후작이 짜증스레 말하자 버닝 백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별수 없지요. 그의 무력은 일개 군단이라 불리는 소드마스터급이 아닙니다. 알려진 무력이 사실대로라면, 그는 일개 국가 수준의 전투력을 한 영지 내에 가지고 있으니까요.”

압도적인 신성 마법, 그리고 마법 실력, 이외에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이종족을 연합하기 위해 숲에서 나온 생소한 이종족들 까지.

그야말로 그가 전쟁을 작정하면 제국도 긴장해야 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이번에 그가 무언가를 하게 두면 안 됩니다.”

“걱정 마십시오. 안 그래도 현재 돌림병이 도는 격리구역에 제 사람들을 보내두었습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질병 관리단의 병 치료를 늦추고 있고요. 뭐, 데이비 왕자가 간다고 했습니다만. 신성력도 먹히지 않는 병을 상대로 그자가 어쩌겠습니까. 운이 좋아 이전에 큰 병을 치료했다곤 하지만 이번 병은 다르지요.”

“흠.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자빠지면 황태자라고 해도 별수 없겠지요. 이번 일을 빌미로 크게 뒷덜미를 낚아챌 수 있을 겁니다.”

“일개 왕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 무능한 제국의 황태자라고 말이지요. 껄껄.”

버닝 백작의 웃음소리에 디그 후작이 고민하듯 말했다.

“평민들 몇몇 죽어 나자빠지는 거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지만 병이 워낙에 흉흉하다 보니 뒤처리만큼은 깔끔하게 해야 할 텐데요.”

“걱정 마십시오. 질병 관리단에 격리 후 소각을 담당하는 마법 병단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돈을 좀 쥐여주었으니 적당한 때에 일을 칠 겁니다.”

버닝 백작의 대답에 디그 후작이 씨익 웃어 보였다.

“역시 병에 걸린 무쓸모한 가축 노예 놈들은 모두 묻어버려야지요.”

그 말에 버닝 백작이 맞장구를 쳤다.

“그전에 새카만 잿더미로 만들어야겠군요. 껄껄.”

“자. 축배를 듭시다. 이번 일만 잘되면 황태자의 위신도 크게 흔들릴 겁니다. 그리고 그 순수해 빠진 황녀인 일리나 황녀의 화이트 버드도 천천히 우리 손에 넣으면 되는 일이지요.”

“모든 것은 12 황자 마마의 의도대로.”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귀족의 미소가 더욱 음산하게 변했다.

* * *

고르네오 남작의 편이라고 해봐야 질병 관리단에서 그를 믿고 따르는 의원과.

그 외에 연금술 학파에서 파견되어온 수석연구원 페니실린정도가 전부였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페니실린 수석연구원님. 이런, 추태를 보였군요.”

그의 말에 페니실린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닙니다. 당신이 이곳의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숭고한 노력은 이미 봐왔습니다. 잘못된 건 병자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여기는 저 부패한 귀족들이겠지요.”

“후우…… 제가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어찌 사람이 모든 일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제 스승님께서도 늘 말씀하셨지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더욱이 완벽이라는 경지를 위해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으, 으으 ……어르신……너무 아픕니다요…….”

그의 말에 고르네오 남작은 고통을 호소하는 병자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조금만 참으시게. 내 반드시 자네를 구해줄 테니……”

언제부터였던가.

과거의 그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오로지 의학은 의사의 길이며 그 과정에 다른 이들의 도움 따위는 없어도 된다고 여기는 주의였다.

모르는 이가 손을 대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의술은 없으니까.

하지만 오르뎀 영지에서의 일 이후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신의 오만은 의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실제로 그일 이후 그는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새로이 배워나갔고.

데이비 왕자가 건네준 몇 가지 의술에 관한 조예를 새로이 바라보며 더욱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의술을 펼치는 이로써는 그 어린 왕자에게 너무도 큰 은혜를 받은 꼴이었다.

‘데이비 왕자를 부르는 게 답이긴 하겠지……. 하지만 그에게 의존하는 건 옳지 않다.’

도움을 빌리는 것과 모든 것을 의존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복잡한 생각을 하며 그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번에 준비한 약도 먹히지 않았다.

차도가 없었다.

실질적으로 몇몇은 더 증세가 심해져 그 자리에서 급사해버리기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젊은 의원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려오는 그였다.

“과거 저는 제 이름을 딴 어떤 곰팡이를 발견해낸 덕에 이렇게 과분하게도 연금학파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당신 같은 훌륭한 의원이 있기에 제가 발견한 곰팡이도 약이 되었다는 것을요.”

“페니실린 수석연구원.”

“그러니 귀족들의 개소리는 듣지 마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의술을 펼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 대륙에서 의술 분야로 이름을 날린 이들이지만 이번 병은 단순히 그렇게 생각해 넘기기엔 너무 압도적인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이다.

“검은 죽음이라……, 참 오만하기도 한 병이지……”

씁쓸하게 중얼거린 페니실린이 품에서 꺼낸 약병을 흔들어 보였다.

“이번에 준비한 약들이 도움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쿠당탕!!!

“끄아아아아악!!!”

갑자기 치료소 내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몇몇 환자가 비명을 지르고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은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는지 꺽꺽거리며 온몸을 비틀어댔다.

“저, 정신 차리세요!”

“이봐! 어서 안정제를 가져와!!”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젊은 의원들은 갑작스레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보며 어찌할 줄을 몰랐고, 그나마 관록이 있는 이들은 필사적으로 상황을 하나하나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고르네오 남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과 마음이 잘 맞는 연금술사인 페니실린을 대동한 채 2년 차 의원이었던 베르나르도가 치료하고 있는 환자에게 급히 뛰어갔다.

“상황은?!”

“그, 그것이!”

“정신 차리게!! 의원이 허둥지둥하면 환자는 반드시 죽는 법! 냉정하게 분석을 하란 말이네!”

허둥지둥하면서 급하게 일을 쳤다가 한번 환자를 죽일 뻔하지 않았던가. 데이비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르뎀 영지에서 애꿎은 환자 하나를 죽여버렸을 테니까.

고르네오 남작의 호통에 베르나르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환자의 몸을 더듬었다.

당장 병이 옮길지도 모르는데에도 그는 전혀 거리낌 없이 손을 환자에게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발열이 심합니다. 역류 증상이 계속되고, 그로 인해 목이 부어오르면서 숨을 쉬기도 힘든 지경입니다. 폐에 병균이 옮아서 진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허면, 당장 폐에서 진물을 빼야지!”

고르네오 남작의 말에 베르나르도가 울먹거리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찌 그럽니까! 한번 실수했다간 이 환자는 죽습니다!”

“내가 전부를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네! 잊지 말게! 자네가 아니면 이제 이 환자를 구할 사람은 없어!”

그의 외침에 베르나르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시약을 관에 부어 소독시킨 후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푸욱!!

그리고는 폐에 구멍을 내어 진물을 빼내기 시작했다.

“서, 성공입니다! 폐에서 검은 진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효능이 있는지 환자의 발작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쿨럭! 끄으으으으으으!!!!”

처절한 비명 끝에 갑자기 환자가 경련하더니 그대로 추욱 늘어져 버렸다.

“아……”

동시에 베르나르도의 눈이 부릅떠졌고, 고르네오 남작과 페니실린 수석연구원의 표정이 검게 죽었다.

“이럴 수가……”

“대체 어찌 이리 지독한 병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아는 최대의 지식을 통해서도 치료가 실패했다.

도대체 이것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아연실색하던 찰나였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같은 병에 걸려 들것에 실려 오던 작은 소녀가 추욱 늘어진 사내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몸을 굴려 그에게 기어 다가온 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일어나봐! 오라버니!!”

“……”

베르나르도와 고르네오 남작, 그리고 페니실린 수석연구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해 생명 하나가 꺼진 것이다.

“안돼…… 안돼! 오라버니 이번에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서 꼭 동생들 맛있는 걸 사준다고 했잖아! 왜 눈을 감고 있는 거야? 제발 눈 좀 떠봐!”

오열하며 남성을 붙잡고 우는 소녀의 모습에 병사가 쓴 표정을 지으며 소녀를 떼어냈다.

“사망한 환자에게선 시독이 흘러나온다! 어서 떨어져라! 너도 죽고 싶은 거냐!”

“이거 놓으세요! 피를 나눈 가족이 죽었는데 내가 살아서 뭐해!”

그렇게 외친 소녀가 엉엉 울며 베르나르도의 옷깃을 잡고 통곡했다.

“선생님! 아니, 나으리! 제발……! 제발! 저희 오라버니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선생님은 뛰어난 의사이시잖아요!”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베르나르도는 덜덜 떠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생명은 소중하다. 그것은 계급을 논하지 않는다.

고르네오 남작에게 배움을 받았던 베르나르도에겐 귀족이건 왕족이건 평민이건, 한 사람의 생명이 이렇게 사라진 것에 대해 끔찍한 죄책감을 느꼈다.

“안돼!! 안돼! 이렇게 갈 수 없어! 오라버니!!”

처절하게 오열하는 그 말에 고르네오 남작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베르나르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천천히 말했다.

“베르나르도……. 여기서 멈춰있을 시간이 없네. 의사의 본분을 다하게.”

“저는…… 당장 새로운 약을 연구해야겠습니다……. 더는 사람이 죽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어요.”

마음이 약해졌는지 눈물을 흘리며 페니실린이 슬퍼했다.

베르나르도는 터질 듯 충혈된 눈으로 시신을 바라보며 천천히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꼭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그의 눈을 가려주며 천천히 말했다.

“현재 시각…… 제국력……”

현 시각을 말한 그가 천천히,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 사망…….”

사망선고. 그것은 왜 해야 하는지 베르나르도는 처음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은 이는 죽은 것이지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해야 하는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손을 떠나 죽은 환자를, 마음속에서 놓아주는 하나의 의식이었으니까.

이 환자는 내 손을 거쳤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 거는 족쇄이기도 했다.

죄책감이라는 단어의 족쇄로 말이다.

그렇게 사망선고를 완성하려던 베르나르도였다.

챙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성큼성큼 걸어와 베르나르도의 어깨를 확 밀쳤다.

“죽긴 누가 죽어, 비켜 인마.”

싸늘한 목소리에 눈을 부릅뜬 베르나르도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긴 머리카락은 늘어뜨린 채 보호복이나 병균 차단용 성국의 아티펙트도 차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언 듯 보면 소녀로도 보이지만, 체형은 여성이라고 보기엔 상당히 탄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들이 입는 왕족의 정복을 입고 있었다.

푸욱!!

이윽고, 그의 눈앞에서 그 소녀는 끝이 깨진 날카로운 관을 그대로 찔러넣은 뒤 이 환자에게 절대로 투여하면 안 된다고 판단된 약을 거침없이 투약했다.

말릴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던 베르나르도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남성 정복을 입고 있던 그 소녀의 멱살을 틀어잡고 악을 썼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환자가 당신 장난감처럼 보여?!!”

그 외침에 돌아온 것은.

빠악!!!

“커헉?!”

묵직한 죽빵이었다.

“뭐라는 거야, 이 등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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