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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69화 (368/1,559)

제 369화

그녀에 대한 공포가 뼛속까지 각인되었는지 류티스마 자작은 발작하듯 소리 질렀다.

“아아악!! 죽이라 하였소! 주, 죽이라 했소이다! 병에 걸린 이들을 전부 죽이라 하였소! 그렇게 많은 수가 죽으면 살리반 황태자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소! 당연 기회를 잡아 황태자를 실각시키는 것도 가능했겠지!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병을 사전에 발견해놓고 방치했고?”

“그, 그렇소이다! 병이 퍼지도록 그냥 놔두었소!”

“그렇겠지. 그런데 내가 나타나서 갑자기 병을 치료하기 시작하니 똥줄이 탔을 거야.”

내 말에 그가 눈물기 어린 눈으로 절규하듯 소리 질렀다.

“사, 살려주시오! 내가 잘못했소! 내 다시는 그런 짓을……”

우드득!!

순간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그의 신형이 그대로 무너졌다.

순식간에 그의 관절을 꺾어 뭉개버리는 아이나의 행동에 입을 쩍 벌리며 그대로 무너져 내려버린 것이다.

감전된 것처럼 경련하는 그를 내려다보며 내가 천천히 말했다.

“입바른 소리 하지 말고.”

스산한 내 목소리에 그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서?”

“그, 그게 전부요! 그게 전부란 말이오! 살려주시오! 내 다시는 그러지 않겠소이다!”

그의 격렬한 외침에 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보통 팔란 제국에선 이런 경우 어떻게 합니까?”

“죄 없는 수많은 이들을 죽이려 했던 놈입니다. 나는 가끔 제가 황태자라는 사실이 그렇게 고맙습니다. 이 악마 같은 놈들을 태워버릴 힘이 있으니까요.”

목소리가 들려오며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허…… 허억! 사, 살리반 황태자 저하!”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는가. 류티스마 자작.”

“그…… 그것이.”

“팔란 제국의 지하 감옥일세. 자네들은 역적모의에 버금가는 음모를 꾸몄고.”

담담하게 말한 살리반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그의 어깨를 관통했다.

“죄 없는 수많은 사람을 네놈들의 이권을 위해 죽이려 들었다.”

“끄아아아악!!”

“할 말이 더 남았나?”

격분한 살리반은 침착하고 냉정했다. 하지만 그만큼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일리나가 보는 앞에선 최대한 선을 지키지만, 그는 선을 넘은 자에겐 정말 악마 같을 정도로 자비가 없었다.

“끄아아악!!!”

살점을 검으로 후벼 파며 살리반이 으르렁거렸다.

“네놈들 때문에 아이와 함께 미래를 그려가던 가정이 무너졌다. 네놈들 때문에 병든 노모를 모시며 힘겹게 살아가던 청년들이 죽었다. 네놈들 때문에!”

“……”

격분한 살리반의 외침을 말없이 보고 있던 나는 조용히 물러났다.

“네놈들 때문에…… 나는 또다시 혈육의 피를 손에 묻히게 되었다. 또한, 네놈들 때문에 팔란 제국은 수많은 불쌍한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

담담하게 말하며 그가 조용히 선언했다.

“단언컨대, 네놈들을 절대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담담하게 말한 그가 단검을 뽑아 들자 내가 그를 제지했다.

“가세요. 제국 내부에 썩은 놈들까지는 내가 손 안 댑니다.”

내 말에 살리반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 자들은……”

“그쪽이 우선 아니었습니까? 제가 12황자였다면 일이 이렇게 되는 순간 재빨리 황성을 떠나 도망칠 텐데요.”

내 말에 그가 이를 악물었다.

“추태를 보였습니다.”

“맡겨놓고 가세요. 마침 저도 이놈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말입니다.”

마왕이 된 뒤로 딱 한 가지 변화가 스멀스멀 찾아오기 시작했다.

상위 네크로맨서와는 다른 고통받는 자의 원념소리.

저들을 제발 벌해달라는 처절한 원념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니까.

이 새끼들 내가 처리 안 하면 불면증 오게 생겼다는 소리다.

마왕의 자리.

이 빌어먹을 옥좌는 강한 힘을 내 몸 안에 품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책임을 요구했다.

결국, 살리반은 류티스마 자작을 포함한 귀족들을 노려보곤 등을 돌렸다.

“이런 일에 끼어들게 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제국의 황태자로서 당신에게 부끄러운 꼴을 보였군요.”

그 말에 나는 말없이 손사래를 쳤다.

이에 그는 조용히 나를 지나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자, 그럼 방해꾼은 갔고.”

담담하게 말한 내가 그들을 보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욕심도 좀 부릴 수 있고. 이기적으로 좀 살 수도 있지. 내가 얼마 전에 새삼 다시 생각한 일이지만, 나라고 해서 무슨 자격이 있어 당신들을 심판하나.”

내 말에 류티스마 자작은 실낱같은 희망을 찾았는지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나는 용서하지.”

내 말에 그는 희망의 끝이 황금 동아줄이라 여겼는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우웅!!!

곧 이어진 검은 마법진이 그를 포함해 네 명의 귀족들의 발밑으로 나타나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니들을 용서할까?”

만들어진 공간. 만들어진 심판자.

한 존재를 위해 만들어진 지독한 형벌의 권능.

검은빛으로 만들어진 마법진을 보며 버둥거리는 그들을 향해 나는 페르세르크의 뿔을 장난스레 내 머리에 가져다 붙이며 말했다.

“지금의 나는 니들이 알고 있는 성자가 아니야.”

너희들을 지옥 끝까지 끌어내려 무한한 고통을 주려고 작정한 마왕이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내가 마족의 왕이 앉는 옥좌를 강탈한 지 좀 됐거든.

복잡한 건 몰라도 이런 건 가능한데.

[원념의 손.]

자, 움직여라. 원한 품은 영혼들아. 너희들의 복수를 내가 도와주마.

콰드득!!!

마법진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새하얀 손이었다.

하지만 기괴하게도 손가락 마디마디와 손바닥에 새빨갛고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 달려있었다.

푸욱!!

“끄읍!! 끄으으으으으읍!!!”

무수히 뻗어져 나온 손이 그들의 몸을 관통한다. 그리고 그들을 찢어발기듯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살점이 찢기고 눈알이 뽑혀 나온다.

말없이 페르세르크를 주머니에 밀어 넣고 륀느의 눈을 가리자 륀느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손가락을 벌리며 참상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네놈들은 살아도 살지 못할 거고, 죽어도 죽지 못할 거다.”

망자화 마법.

생살이 찢기고 썩어들어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시 달린 손에 찢겨 제압당한 그들의 몸이 서서히 썩어들어가는 고통에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 그아아아아아!!!”

급기야 찐득거리는 무언가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죽고 싶다고? 왜들 이래, 분명 말하지만 나는 너희들을 용서한니까.”

하지만, 그 손들은 너희를 용서할까.

그 손, 너희 손에 죽은 원념들을 불러서 만든 건데.

이권을 위해 수많은 이들을 죽게 한 네 귀족의 처참한 비명소리는 등을 돌린 내 귓가에 처음부터 끝까지 각인되듯 울려 퍼졌다.

* * *

대륙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대륙을 강타한 극도로 위험한 돌림병을 질병 관리단이 해결했다는 소문이었다.

치사율이 100퍼센트라고 말할 정도로 지독한 병이 퍼진 것으로 인해 수많은 여론이 들끓었고 대륙의 사람들이 불안해했다.

얼마 전에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었고, 그 이후 곧바로 찾아온 재앙이었으니 말이다.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있던 교역로는 병이 해결되었다는 소식이 점차 퍼져나가며 재개되기 시작했고, 대륙은 다시 활기를 되찾는 듯싶었다.

당연히 질병 관리단의 주축이었던 의회원들은 이번 일의 가장 큰 공로자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입을 모아 한 사람을 논했고, 그 사람이 없었다면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생명을 살리지 못했을 거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

소문이 상인과 호사가, 음유시인들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한 사람의 이름값이 극도로 치솟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성자라는 명성은 그야말로 그들의 생각 이상의 축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반대로 성자의 위신이 극도로 올라가니 성국에서는 곧 성녀가 되는 성녀 후보, 리나에게 가해지는 프레스가 점점 막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성자와 성녀는 성별만 다를 뿐 같으니 말이다.

압도적인 능력, 무력, 재력, 하나도 빠지는 게 없어 보인다. 실제로 파고들면 아닌 걸 알 테지만, 성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그가 그렇게 된 게 성자라는 이름값이며 신의 사랑을 받은 증거라 여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제 그들의 시선에 성자나 성녀는 그야말로 출현했다 하면 그 시대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겼다. 실제와는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성자가 가능한데 곧 성녀가 될 리나가 각성하면 과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지 궁금해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실제로 어떤 국가에서는 그녀가 성녀가 되기 전에 친분을 쌓아두려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으으…… 머리 아파요.”

울상을 지으며 책을 보고 울먹거리는 리나를 보며 앨리스가 인상을 대뜸 찌푸렸다.

“지금 누군 며칠째 잠도 못 자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 머리가 아파요? 아파요. 정말? 진짜로 아프게 해줘요?!”

쾅!!

“흡!”

두꺼운 성경의 모서리를 붕붕 휘두르며 앨리스가 이를 뿌득 갈며 묻자 리나가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책 볼게요!”

“……”

리나 성녀 후보의 상태를 확인한 앨리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일주일.

긴 시간도 아니었다.

그동안 잠도 못 자며 이 빌어먹을 광신도를 찾아 헤맨 그녀는 며칠간의 피로로 인해 생긴 피부 트러블에 머리가 푸석푸석해진 것을 보고 더욱 짜증이 나 있었다.

그래도 외모 면에서 어디에 뒤진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성직자에게도 외모라는 것은 스스로 외면을 가꾸는 신성한 일로 치부된다.

신이 내려주신 외모를 함부로 대하는 자 어찌 신께 다가가겠는가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녀가 이토록 망가진 이유는 데이비 왕자의 압박도 압박이지만 마치 기회라도 잡은 양 미쳐 날뛰는 이 정신 나간 광신도 집단의 대처 때문이었다.

“저…… 앨리스 대주교님…… 보고입니다.”

“네. 고마워요.”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받아든 앨리스의 손에 힘이 콱 들어갔다.

“누군 잠도 못 자고 있는데 겁도 없이 계속 사고를 쳐? 이 빌어먹을 작자들이……”

[서부 상트롤레 소 영지 산하 화전 마을. 마녀로 추정되는 소녀 5명을 생포. 고문 끝에 자백을 받아내고 일가족을 화형에 처해 본보기를 다했다고 보고.]

[동부 아시리아 왕국의 폴트 영지의 영주 셋째 딸에게 특이한 힘이 발현됨. 마법이 아닌 허공에 물건을 떠올리는 힘을 매우 위험한 마녀의 힘이라 판단하여 구금 및 심문하였으나 자백 전에 사망.]

[동부 북부대륙에서 스스로를 선녀라 칭하는 존재가 출현하였다 하여 이단으로 추측. 이단심문관 다수를 파견.]

[계시에 따라 라운왕국의 하인스 영지 내에 마족과 뱀파이어가 존재한다고 추측. 성자의 권한 때문에 조사가 쉽지 않으나 신의 이름 아래에 잠복수사를 지속한다는 명분으로 다수 파견.]

오로지 신만 믿고 겁도 없이 까불어대는 정교 이단 심문회는 본거지까지 숨긴 채 교단 본산의 명령을 무시하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신의 계시라는 모호한 명분을 들이밀고 있으니 그들에게 두려울 건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성국의 입장에서도 그들을 남겨놓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뮤리스 신관님. 법왕께 제가 찾아간다 연통을 주세요.”

“무어라 여쭐까요?”

“말이 안 통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성경에선 미친개도 사랑으로 보듬으라 했나요?”

“아…… 네.”

“나는 말이에요. 미친개는 패서라도 교화시켜야 한다는 주의에요. 아시겠죠? 성전을 일으켜서 이 망할 구박 덩어리들을 짓밟아야겠네요.”

내전은 전쟁으로 치부되지 않으니 대륙 평화조약에 어긋나지 않는다.

정교 이단 심문회는 엄연히 성국 발샤스의 소속단체였다.

“서, 성전 말입니까?! 하, 하지만.”

“지금 한 번만 더 저들이 데이비 왕자를 자극하면 그땐 다 끝이에요! 그러니까 저들이 사고를 더 치기 전에 놈들을 짓밟아 놔야 한다 이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망할 사태판단 못 하는 사고뭉치들이 앞뒤 안 보고 성국의 모든 사람을 죽이게 둘 수 없어요!”

건드릴 인간이 있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인간이 있지.

지금껏 봐온 대로라면 최악의 상황만큼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입장인 앨리스였다.

다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 시각 데이비는……

“……이거 진짜 차원문 열쇠였냐?”

손에 쥔 황금 열쇠를 허공에 비틀어 균열을 만들어내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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