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0화
118. 차원 너머의 파편
“도대체 알 수가 없네.”
나는 손에 쥐어진 황금색의 고풍스러운 열쇠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주신 프리아 여신이 넘겨준 물건들치고 정상적인 범주 내에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죽은 이를 살리는 잔불부터 해서 규칙을 개무시하고 완성되었던 내 혼을 육신과 강제 동기화, 아주 짧은 순간 내 모든 힘과 저력을 발산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보옥.
그리고,
이번엔 열쇠.
문제는 이번 열쇠는 이전과 다르게 주신 프리아 여신의 영향력이 갈수록 약해지면서 그녀가 급하게 내게 건네준 물건이라는 소리였다.
이 이상 시간을 끌면 내게 건네주지 못할 물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뭔가 다급하다는 느낌은 분명 받았는데.
이걸로 대체 뭘 하길 바랐던 것일까.
“심연의 힘으로 봐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라곤 문의 열쇠라는 것뿐인데. 그게 어디 문 열쇠인지 알 수가 없으니…….”
“생각보다 그 힘 쓸모가 없다?”
“끄응……”
할 말이 없는지 페르세르크가 앓는 소리를 내며 내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잡아당겼다.
“아파, 그만 당겨.”
“싫다네~”
빙글거리며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치는 그녀를 무시한 채 열쇠를 한참 바라보던 나는 결국 결론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도저히 문제의 답이 보이지 않으니 답안지를 좀 베끼는 수밖에.
“읏?!”
갑자기 내가 벌떡 일어나버리자 신나게 장난치던 페르세르크가 균형을 잃고 내게서 떨어질 뻔했다.
그 탓에 페르세르크가 느긋한 미소를 지우고 묘하게 불만 어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오로지 열쇠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쩌저적!!
거대한 나무가 열리며 녹빛에 휩싸여있던 늘씬한 여성이 천천히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굉장히 느긋한 미소.
언뜻 보기엔 뇌쇄적인 여성이지만 그녀를 향해 음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사실 그렇게 오랜만인 것도 아니지요. 별일 없었습니까?”
느긋한 말투로 그녀가 내게 손을 천천히 뻗었다.
“내가 불편할 게 무에 있겠는가. 네 녀석이 신목의 성지가 가진 외교권을 가져가 버린 덕에 신목이 발견되어도 이곳을 공식적으로 방문하여 무언가 해보려는 치들이 없음이니.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노예 사냥꾼에게 노출된 신목의 아이들이 전부로구나.”
그녀의 말에 내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직도 겁도 없이 엘프를 노리는 놈들이 있습니까?”
“없다마다. 네 녀석이 그렇게 크게 한바탕 들쑤셔놓았는데 누가 목숨 아까운 짓을 하려 들까.”
쿡쿡 웃어 보인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줘 보아라. 한번 봐줄 터이니.”
그녀의 말에 나는 익숙하게 열쇠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세계수에게 이런 태도는 엘프들이 거품을 물 정도로 거친 것이었지만, 알이나 나나 서로 그런 복잡한 것을 신경 쓸 관계는 분명 아니었다.
한가지 목적을 두고 굳건한 동맹을 하고 있으니까.
우웅……
허공에서 멈춘 열쇠는 곧 그녀의 손에 부드럽게 안착하였고, 곧 그녀의 손에서 기이한 힘을 내뿜으려 빛의 구체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말없이 눈을 감은 채 열쇠와 공명하던 그녀는 곧 빛을 꺼뜨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무언가를 여는 열쇠는 분명한데.”
“그건 나도 봐서 압니다.”
내 말에 그녀가 입을 살짝 삐쭉였다.
“예끼 이놈, 그냥 문이 아니라는 소리 아니더냐. 이를테면.”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원문.”
그 말에 나는 대뜸 인상을 찌푸렸다.
“차원문이요? 장난합니까?”
“내가 장난이나 칠 성격으로 보이더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열쇠를 내게 휙 던졌다.
“가져가거라. 주신께서 네게 그걸 넘기셨다면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겠지.”
“결국, 소득은 없네요.”
“사용법은 네 스스로 알아내야 할 것이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나서려던 나는 문득 그녀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데이비. 주신의 가호가 약해지고 있다.”
“……”
“네 녀석 대체 주신께 무슨 짓을 한 게냐?”
“인과응보.”
짧게 답한 뒤 나는 그대로 페르세르크를 데리고 공간을 넘었고, 나를 복잡하게 바라보던 알은 결국 한숨을 푸욱 내쉬며 짧게 중얼거렸다.
끝까지 들리진 않았지만.
“주신께선 어쩌다 저런 막무가내 싸이코패스를 신부……”
* * *
페르세르크는 영지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혼은 아직 완전히 안정된 단계가 아니기에 시시각각 그녀에게 휴식을 요구했고, 그 탓에 그녀는 언제든 쉴 수 있는 소형 육신을 선호했다.
잠든 그녀를 침대에 뉘인 뒤 자리에 앉아 열쇠를 바라보던 나는 륀느가 고개를 빼꼼 내미는 걸 볼 수 있었다.
“데이비님, 륀느의 분석능력 높게 평가. 해당 물질의 분해를 요청해.”
“해봐.”
열쇠를 던져주자 녀석이 눈을 번뜩인다.
동시에 푸른 글자들이 그녀의 눈동자에 빠르게 출력되기 시작했고.
정확히 10초 만에 륀느는 결론을 내려주었다.
“륀느, 분석능력을 매우 낮게 평가. 불량품이라 분석.”
한없이 정직한 녀석이었다.
결국, 륀느의 물질 분석으로도, 페르세르크의 심연도, 세계수 알의 능력도 이것을 구분할 수 없었다.
말없이 열쇠를 던졌다가 받아내길 반복하던 나는 곧 창문을 열어젖히고는 그대로 뛰어내렸다.
무언가 답답한 기분에 바람을 쐬고 있으니 퍽 머리가 시원…… 해지기는 얼어 죽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거 뭔데 허공에 뭐 넣고 돌리면 되나?”
장난스레 중얼거리자 륀느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무표정은 무표정인데 한없이 한심해 보인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데이비님, 그건 매우 불확정한 발언이라고 분석해.”
“혹시 모르지? 이거 봐라. 허공에 가져다 대고 말이야. 열려라. 참깨.”
변화가 있을 리가 있나.
치직……
“어?”
그때였다.
허공에 닿은 열쇠가 갑자기 반응하며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쩌저적!!
낄낄거리며 웃어넘기던 나는 물론이고, 상황을 지켜보던 륀느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륀느……, 이게 맞는 모양인데?”
“경고, 대량의 에너지 반응 검출. 데이비님 이것을 매우 위험하다 평가해.”
“……이거……”
말없이 균열에 손을 가져다 대 본 나는 다시 열쇠를 허공에 대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열려라가 되면 닫혀라도 되겠거니 하는 심정이다.
“닫혀라. 참깨.”
쩌저적!! 쿵!
동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열렸던 허공이 천천히 닫혀버렸다.
“…… 다시 가자.”
하루에 워프만 몇 번을 쓰는 건지 모를 지경이지만 중요한 일에 마나를 아낄 생각은 없었다. 이걸 두고 개고생이라고 칭하리라.
망설임 없이 나는 몸을 돌렸다.
세계수 알은 내가 보여주는 광경을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데이비.”
“이게 뭔 뜻인지 나도 압니다.”
“차원 이동 마법은 본래 불가능해. 주신의 가호가 있기 때문인 게지. 그런데 이 열쇠가 그 문을 연다는 뜻. 그리고 주신께서 그걸 네게 건네주었다는 건 주신의 가호가 약해졌다는 뜻. 그리고, 그곳에 네 힘이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거겠지.”
이곳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과 관련하여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허…… 이게 진짜 차원문 열쇠였나?”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린 나는 곧이어 아무렇지도 않게 열려있는 차원문을 말없이 톡톡 건드렸다.
“넘어가서 주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해달라는 것인가?”
“…… 아무래도 맞는 거 같네요.”
담담하게 중얼거린 내가 상태창을 활성화했다.
[균열을 넘어 흔들리고 있는 심연의 존재를 제거. 거래에 응할 시 환골탈태 스택1 중첩. 초월급 물건 1개 해금]
이젠 내 육신 강화를 해주시겠다?
말없이 고민하던 나는 곧 결정을 내렸다.
동시에 륀느가 내 다리에 착 달라붙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균열 너머로 몸을 던지며 말했다.
“갔다 올 테니 혹시라도 지켜봐 주세요.”
“겁이 없는 게냐?”
“겁이 없어요? 왜 없어요. 무서워 죽겠구만.”
담담하게 말한 나는 망설임 없이 균열 너머로 몸을 던졌다.
동시에 거대한 스파크 음이 울려 퍼지며 시야가 뒤틀렸고 나는 좀 전까지만 해도 알이 있던 거대한 정원이 아닌 삭막한 분위기의 공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비님! 전방에 대량의 에너지반응!”
그때 내 다리에 붙어있던 륀느가 빠르게 소리치며 내 앞을 막아선다.
기이이이잉!!! 철커덩! 철커덩!
이에 고개를 들어 확인한 내 시야에 보인 것은.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거대한 기차의 돌진이었다.
아니 돌진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내가 있는 곳이 기차의 선로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냥 기차가 아니라 거대한 검은 물질에 반쯤 뒤덮인 기차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내가 아는 그런 기차와 흡사하지만, 많이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중요한 건 기차가 아니라 그 기차로 추정되는 이동수단 위에 들러붙은 것이다.
척 봐도 저것이 어디서 기어 나온 놈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심연.
심연은 티오니스 뿐만이 아니라 영향력을 얻으며 다른 차원 쪽에도 손을 뻗기 시작한 듯 보였다.
반사적으로 눈을 크게 뜬 나는 피하기에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륀느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기며 한 손을 말아 쥐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만. 내 시야의 한쪽에 작은 숫자가 보인다.
[30:00]
카운트 다운이었다. 내가 차원 열쇠로 넘어가 있을 수 있는 시간의 한계치.
이곳에서 내게 바라는 것은 저 심연의 존재로 추정되는 거대 괴물의 처리.
한 마리 사냥하고 보상이 두 개.
제법, 꿀이 아닐 수 없다.
“후딱 해치우고 돌아가자.”
짧게 중얼거린 내가 오른손을 말아쥐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저 기차, 아니 기차와 흡사한 무언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천마공]
[혈마폭쇄장]
손에서 검붉은 악마의 형상이 일렁이며 나를 향해 달려드는 기차의 정면을 향해 그대로 손을 내질렀다.
콰드드득!!!!!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던 압도적인 중량과 속도를 지닌 기차가 정면에서 찌그러지며 일그러졌고, 뒤따라오던 열차 칸들이 허공을 나르며 검은 심연의 괴물 또한 튕겨 나갔다.
챙그랑!!!
유리창들이 박살 나며 내부의 물건들이 튀어나온다.
동시에, 죽음에 물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간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기차에, 죽음의 냄새를 품은 인간.
“뭐야. 니들 전부 부산 가냐?”
내 감상은 제법 단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