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1화
철퍼덕!! 그으으으으으으…….
처참하게 튕겨 나간 시체와 같은 죽음의 기운을 풍기는 인간들은 겉보기엔 인간과 흡사하지만 내면은 인간과 달랐다.
분명 보통 인간이라면 즉사하고도 남을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처럼 느짓느짓하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괴한 인간을 제외하고서라도 가장 우선적인 목표였던 거대한 검은 생명체.
심연의 괴물은 죽지 않고 빠르게 몸을 수복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기차에서 떨어져 나간 놈의 육신은 언뜻 보아도 10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에 수십 가닥의 가느다란 촉수가 흐느적거리는 조금 흉물스러운 형체를 지니고 있었다.
“페르세르크가 봤으면 기겁을 했겠네.”
가장 먼저 든 감상은 그것이었다.
물론, 그녀와는 정반대로 나는 저런 형체에 제법 흥미가 있지만 말이다.
“륀느. 조사해봐.”
“륀느, 정밀한 분석능력 다시 한 번 신뢰해.”
짧은 답변과 함께 녀석의 한쪽 팔에 입자들이 모여든다.
지이잉!!!
동시에 한 손에는 환하게 빛나는 라이트세이버가.
남은 한 손은 역시나 그러하듯 빠루가 만들어졌다.
“그……그어어어어……”
“캬아아아악!!”
온몸에 피를 질질 흘리면서 육신의 일부가 망가지고도 멀쩡히 서 있던 그들은 곧 나와 륀느를 직시하기가 무섭게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파바바박!!
동시에 륀느가 내 앞을 막아서기가 무섭게 라이트 세이버로 가장 먼저 달려드는 괴인의 심장을 관통했다.
푸욱!
저항 없이 밀고 들어가는 광검은 곧 괴인의 심장을 완전히 걸레 짝으로 만들고 불태워버렸지만, 괴물은 제 몸이 뚫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륀느를 향해 점차 다가왔다.
그리고는 침과 피가 가득 고인 이빨로 그녀를 물어뜯으려 들었다.
퍼엉!!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륀느가 재차 휘두른 빠루가 그대로 괴인의 머리통을 터뜨려버리자 녀석의 얼굴에 핏자국이 튀었다.
“데이비님. 대상의 혈액에 다수의 바이러스로 추정되는 것들을 감지. 생체 골렘엔 영향이 없지만, 인간에겐 치명적이라 분석.”
“진짜 부산 가는 놈들인가 보네.”
마치 좀비와 흡사하지만 티오니스 대륙에서 가끔 보이는 던전의 좀비와는 달랐다.
놈들은 영악하고, 지능적이며, 불합리할 정도로 뻔뻔한 육체성능을 지니고 있다는 소리였다.
“캬아아아악!!!”
한 놈이 당하는 걸 시작으로 무차별적으로 나와 륀느를 향해 덤벼드는 놈들의 모습에 륀느의 눈이 살짝 꿈틀거리더니 곧 그녀가 쥐고 있던 빠루에 거대한 빛이 모여들었다.
“힘 조절해라!”
“륀느! 높게 평가!!”
투쾅!!!
단순한 묵빛의 빠루가 아니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거대한 폭음과 함께 일대를 모조리 날려버리는 파괴력에 혀를 내두르던 나는 문득 내 앞에 떠 있던 제한시간에 이상이 생겼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24:42]
“처음엔 분명 삼십 분이었는데. 륀느, 우리가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지?”
내 물음에 박살 나버린 빠루를 입자화해 사라지게 한 륀느가 라이트세이버조차 지워버린 뒤 답했다.
“륀느의 생체시계 매우 정확하다고 분석해. 데이비님과 륀느가 이곳에 온 지 약 2분 32초 정도 경과.”
고작 2분지 났는데.
제한시간은 약 5분이 사라졌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으으으으으……]
이유를 찾기도 전에 나를 방해한 것은 저 좀비로 추정되는 놈들이 아닌, 검은 심연의 생명체였다.
놈은 내가 자신을 보지 않는 틈을 타 지면 속에 촉수를 박아넣었고 내 바로 아래에서 촉수를 뽑아내 나를 그대로 옭아맸다.
[우리는]
[하나다.]
[하나의 목적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리라.]
익숙하리만치 기괴한 의념들이 들려온다.
심연 놈들이 하는 말이야 늘 그런 법이지.
양손과 목, 다리를 포박한 채 나를 찢어버릴 듯 압박하는 놈을 보며 나는 다시금 제한시간을 슬쩍 보고 조용히 마나를 끌어 올렸다.
[6서클 화염계]
[번 바디]
마치 불의 정령처럼 내 육신이 일순간 화염과 코드를 맞추며 빠르게 불타오른다.
순식간에 촉수가 새빨간 화염에 익어 문드러지자 나는 그대로 촉수를 끊어내고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23:05]
“빙고.”
역시나.
제한시간은 30분. 하지만 2분이 지났음에도 9분이라는 시간이 날아가 버린 이유는 이것 때문인 듯 보였다.
촉수를 떼어낸 나는 다시 실험을 위해 마나를 모조리 재워버렸고 륀느가 날뛰는 걸 지켜보았다.
녀석은 다시금 입자를 구현해내더니 이내 무식하고 흉흉하기 짝이 없는 거대 전기톱을 만들어냈다.
“륀느, 좀비를 상대로 최고의 효율을 자랑한다고 판단.”
기잉!! 기잉!! 기이이이이이잉!!!
오한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맹렬하게 회전하는 톱날을 보며 륀느는 거침없이 괴인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속 내부는 상식적으로 거의 구성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진 전기톱인 만큼 륀느만이 구현 가능하고, 사용 가능한 무기라는 건 변함이 없다.
녀석이 전기톱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괴인들은 하나둘 처참하게 피를 튀기며 쓰러져 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날뛸수록 시간도 일반적인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반대로 내가 힘을 발현하지 않은 덕분인지 그 시간이 줄어드는 속도는 처음에 비하면 상당히 더디게 흘러갔다.
“힘을 쓸수록 시간이 줄어든다 이거지.”
시간 내에 저놈을 처리하기 위해선 강한 일격이 필요한데.
문제는 제한시간이 깎이는 비율이 생각 이상으로 빨라 자칫했다간 이도 저도 못하고 튕겨 나갈 가능성이 크다.
‘반드시 죽일 수 있는 수단이 생겼을 때 시간을 모조리 쓰던지.’
그것이 아니라면……
“힘을 사용하지 않고 제한시간 내에 다른 요소로 놈을 처리하던지.”
기회가 단 한 번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잔머리 굴리는 수밖에.
“륀느. 한 놈만 가지고 철수해.”
내 말에 륀느는 전기톱으로 갈아버리던 괴인, 아니 좀비를 쳐낸 뒤 근처에 있는 녀석을 향해 폴짝 점프했다.
콰득!!
그리고는 공격의 주체라 판단되는 입을 주먹으로 후려쳐 뭉개버린 뒤 양팔을 꺾어 뜯어버렸다.
푸확!!
잔혹할 정도로 거침없지만 자아가 인간과 다른 만큼 취향부터가 괴이쩍은 륀느에게 제대로 된 상식을 주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좀비의 공격 능력을 모조리 앗아가 버린 륀느는 곧바로 좀비의 뒷덜미를 낚아채 그대로 바닥에 처박아버렸고 나를 따라 빠르게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네가 쓰든 내가 쓰든 힘을 사용하는 순간 우리가 이곳에 있을 시간은 줄어들어. 그러니까, 남은 20분 남짓에 저놈을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다.”
“그, 그으으으으……”
옅은 괴성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좀비를 질질 끌며 달리던 륀느가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는 나를 쫓아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거대한 촉수를 움직이고 있는 심연의 괴물을 가리켰다.
“데이비님, 매우 강력한 마법 한방이면 충분할 거라고 판단.”
“염두에 두자.”
짧게 말한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곧 바닥에 떨어진 철도 위의 돌멩이를 강하게 말아쥐고는 옅게 마나를 코팅하듯 덧씌웠다.
그리고는 심연의 괴물을 바라보며 왼발을 강하게 굴렀다.
쿠웅!!!
거대한 폭음과 함께 내 왼발이 지면에 닿은 곳을 기점으로 거대한 파장이 일어났고 그 힘을 그대로 실어 돌멩이를 놈이 있는 곳을 향해 내던졌다.
[암기술]
[정밀철갑탄]
터엉!!!
순식간에 날아드는 돌멩이의 존재를 눈치챈 심연의 괴물이 촉수를 뻗어 공격을 저지하지만.
거침없이 섬광을 만들며 날아든 고열의 돌멩이는 촉수째로 찢어발긴 채 놈의 몸 일부에 커다란 구멍을 내버렸다. 분명 치명상에 해당하는 공격이었다.
실제로 그 한방에 또다시 40초가량이 사라져 버렸다.
남은 시간은 20분가량.
하지만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경고, 대상의 빠른 세포 활성화 감지. 이것을 초속 재생으로 판단. 정밀 분석 결과 초속 재생을 이뤄내는 기관이 존재한다고 분석.”
“선을 넘는 순간 아웃이라 조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내 말에 륀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데이비님 그렇다면 주변 지형을 이용하는 것을 높게 평가.”
“그게 또 쉽지는 않아.”
담담하게 중얼거리면서도 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하지만 마땅히 공격수단이 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번 튕기는 것을 감안하고, 놈이 절대 살아남지 못할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반드시 이곳에서 튕겨 나가겠지만, 주목적인 저놈만 처리한다면야 문제 될 것도 없다.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오고 있는 좀비들과 제자리에 서서 꾸무럭거리고 있는 심연의 생물이라.
묘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던 나는 이내 인상을 찌푸린 채 한 손에 마나를 서서히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기회는 한번.”
단 한 번.
가장 좋은 방법은 일대 전체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범위가 한정적인 검술이나 박투술, 혹은 궁술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폭이 넓다면, 가장 효율적인 것을 고르는 수밖에 없다.
일대를 날려버릴 화력에 시간이 사라지기 전에 초단기간 캐스팅할 수 있는 마법이라면.
고민을 마친 내가 양손을 끌어올렸다.
“그아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악!”
그런 와중에도 실시간으로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수십 마리의 좀비는 어느덧 추가되어 수백 마리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보통 인간이라고 보기엔 질긴 육신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근력의 움직임.
단순 하나하나의 위력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지만, 수가 많으면 보통 곤란한 적이었다.
“아 모르겠고, 일단 터뜨리고 보자.”
고민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땐 터뜨리는 게 제격이다.
일순간 손에 마나를 빠르게 회전시킨다. 초단기간에 이곳을 지워버리려면 반발력을 이용한 물리적 폭발만 한 것이 없다.
륀느의 감시로 일대에 생체반응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9서클 초월 성운계]
[퀘이사]
초소형의 성운폭발을 모방한 마법을 발현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마법의 조율을 완전히 흩어버렸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평소와는 다른 느낌에 나는 미련 없이 공격이라는 선택을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내가 마법을 포기한 그 순간.
팅!!
허공에 금속으로 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푸쉬이이이익!!!
금속물체는 연막탄처럼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시야를 잠식하며 좀비의 공세를 훌륭하게 흩어버렸다.
“데이비님, 생체반응 감지, 빠르게 접근.”
륀느의 보고와 동시에 나는 16분가량 남은 시간 넘어 새카만 넝마를 뒤집어쓴 작은 소년이 내게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소년은 특이하게 생긴 천을 한 겹 더 두르고 있다가 벗어던졌고, 그 때문에 느껴지지 않던 충만한 생명력이 빠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쪽! 이쪽이에요!”
다급하게 외치며 내게 뛰어와 손을 잡는 소년의 모습에 멍하니 있던 나는 문득 그대로 손을 뻗어 소년이 뒤집어쓰고 있던 넝마의 후드 부분을 넘겨버렸다.
“앗?! 무, 뭐하는 짓이에요?!”
내 돌발행동에 깜짝 놀란 소년의 외침이 들려온다.
하지만 곧 내가 물러나자 소년은 급히 후드를 덮어쓰고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전 [이바]라고 해요. 이바노프 반. 쓸데없는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달려요!”
이바라고?
영웅의 회랑, 최고의 광기를 섭렵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라 스스로 자칭하던 이바?
가만, 조금 닮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