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2화
[오늘부터 네게 연금술을 가르쳐줄 이바다. 복잡한 이름이 있긴 하다만, 이바라는 이름으로 기억해두면 된다.]
연금술사 신. 연금술의 대부.
살아있는 연금혁명 그 자체.
아무것도 없던 일반인의 몸으로 회랑에 불려올 정도로 수많은 업적을 세웠던 인물.
내 연금술사 스승의 이름은 분명, 그 업적을 기려 호엔하임이라는 위대한 칭호를 얻었고.
이바 반 호엔하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이바노프라는 이름은 금시초문이지만, 이상하리만치 그와 닮은 어린 소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이바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년을 따라 내달리면서 시계를 계속 확인하던 나는 문득 다른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본인인가? 아니면, 관련된 인물인가? 뭐가 됐건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닌데.’
마냥 본다고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대규모 마법은 너무 성급해.
마법뿐만이 아닐 것이다.
심연의 생물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 정도의 공격은 도박성이 짙었다.
한번 실패하는 순간 그대로 거래의 실패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마나의 흐름, 공기의 역학, 공간좌표, 밀도, 모든 면에서 내가 알던 세상과는 달랐고 뒤틀려 있었다.
당장 9서클 마법인 초소형 퀘이사를 폭발시켜버리려 했다만, 만약 그대로 시행했다면 화력이 극도로 줄어들거나 시간만 까먹고 마법이 발현되지 않을 확률도 다소 존재했다.
그렇기에 나는 미련 없이 마법을 흩어버린 것이다.
적어도 이곳의 규칙들을 찾아낼 몇 분은 더 필요했다.
쾅!!! 쾅!!!
“끄으으으으으으!”
“키아아아악!!”
끔찍한 괴성을 지르는 좀비 떼의 습격은 그야말로 난전을 방불케 했다.
좀 전까지 고요하던 벽면으로 좀비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쫓아오는 것은 물론, 도망치던 방향에서 밀고 들어와 방향을 억지로 틀게 하기도 했다.
지능은 없지만 미묘할 정도로 사냥본능이 좋았다.
“이쪽!”
다만, 나를 이끄는 이 녀석, 역시 보통 잔뼈가 굵은 게 아닌 듯 보였다.
겉보기에 나이는 대략 11살에서 12살 정도.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해낼 수준의 나이는 분명 아니었다.
“이쪽으로!”
빠르게 폐허 속으로 들어간 이바는 주변의 도구를 이용해 좀비들의 진격을 막고 품 안에서 꺼낸 약병을 깨뜨려 독연을 만들어 길을 틀어막았다.
“저건?”
“숙주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바이러스들을 저지하는 독연이에요. 아주 잠깐 시간을 버는 정도지만 도망치기엔 충분하니까요.”
작은 다리로 열심히 내달린 소년은 곧 허름한 창고에 숨겨진 작은 지하 입구 문을 열어젖혔고 나와 륀느를 먼저 들어가게 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지만 나는 주변의 마나를 체크하고 확인하면서 저항 없이 그 내부로 들어갔고, 이바는 나와 륀느가 들어간 걸 확인한 뒤에야 자신도 들어오며 문을 강하게 닫아 잠가 버렸다.
“휴…….”
사다리를 타고 지하로 내려온 이바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익숙하게 근처의 호롱불을 꺼내 불을 붙였다.
어두컴컴한 지하 내부로 들어가자 누군가가 지내고 있었던 흔적들이 잔뜩 보이기 시작했다.
인공적으로 길러지고 있는 식물부터, 특이한 장치로 돌아가고 있는 여과장치까지.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농성해온 것인지는 사실상 알기 어려웠다.
“식사는 했나요? 정말 오랜만에 생존자를 만나는 거라 조금 들뜨네요. 조금만 기다려요. 간단한 요깃거리라도 가져올게요.”
* * *
이바노프는 그대로 어디론가 작은 구멍으로 기어들어가더니 작은 그릇에 특이한 죽을 두 그릇 가져와 내밀었다.
“이곳에서 특수재배해 만든 식자재들로 만든 것들이에요. 요깃거리로는 충분할 거에요.”
그의 말에 륀느가 말없이 그릇에 코를 가져다 댄다.
그리고는 눈을 반짝였다.
“미각데이터의 발전에 매우 큰 효능을 감지.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눈을 번뜩인 녀석이 저렇게 반응한다는 것은 저 죽이 희대의 괴식(怪食)이거나 반대로 미각을 자극하는 극상의 맛이거나.
극단적인 혓바닥의 주인인 륀느의 미각 센서는 제법 날카로운 편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어디서 온 거죠? 이곳은 최근까지 군이 떨어뜨린 폭격으로 인해 공기까지 오염되어 있었는데……”
제 나잇대에 맞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녀석의 물음에 나는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이바노프라고?”
“당신은요?”
“데이비 올 라운, 이쪽은 륀느.”
륀느는 대답 대신 눈을 반짝이며 죽을 정신없이 흡입하고 있었다.
“데이비…… 데이비 올 라운. 조금 특이한 이름이네요. 어느 지방이죠? 쿤탈라스? 켈레스도라? 슈프렌트?”
“티오니스 동부대륙 출신.”
내 대답에 녀석의 표정이 다시 찌푸려진다.
“티오니스? 거긴 또 어디래……, 혹시 기억에 혼선이 있거나 어디가 아프거나 그렇진 않은 거죠? 괜히 RC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데려온 건 아닌지 몰라.”
“RC 바이러스?”
“당신을 쫓던 그 괴물이요. 급소를 터뜨려도 걸어오고, 인간의 근육한계량까지 사용하는 영악한 식인귀.”
잡히면 산채로 뜯어먹히죠.
아그작 아그작 하면서요.
그 말을 하는 이바노프의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가늘게 떴다.
“RC 바이러스에 대해 모르나 봐요?”
“일단은.”
“후우…… RC 바이러스는 분노 제어 바이러스예요. 샘플을 조사해본 결과 기본적으로 좋은 용도로 만들어졌지만, 제작과정에서 뭐가 잘못된 건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되어버렸죠. 유르기안 대륙이 뒤흔들린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래. 유르기안 대륙이라 이거지……”
짧게 중얼거린 나는 손에 쥐어진 수저로 죽을 한 숟가락 입에 머금었다.
알싸하면서도 달콤한 특이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맛있죠? 나는 이곳에서 너무 오래 먹어서 지겨워지긴 했지만, 맛은 제법 보장할만해요.”
“…… 이놈의 풀죽 실력도 비슷하고.”
나는 생각하던 고민을 멈추고 눈앞의 이 기묘한 소년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이바 반 호엔하임이라는 인물을 아나?”
“이바…… 반 호엔하임이요?”
짧게 고민하던 녀석은 곧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죠. 모르면 저 RC 바이러스 보균자의 첩자겠지.”
좀비에게 첩자가 어딨겠느냐마는.
“이바 반 호엔하임. 이곳 유르기안 대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금술사. 나이 44세에 사망했지만, 그가 세웠던 수많은 업적은 지금도 남아서 남은 사람들을 지켜주고 삶을 보장해주고 있죠.”
담담하게 말한 녀석이 한쪽에 비치된 화단을 가리켰다.
“저것도 대 연금술사 이바 반 호엔하임의 발명품이죠. 이것도, 이것도.”
하나하나 짚어내며 설명하는 이바노프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오래전 사람이지?”
“뭐야…… 당신 그것도 몰라요? 11살인 저도 알고 있는데?”
“뭐, 모를 수도 있지.”
“2천 년 전 사람이에요. 연금술사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연금술의 아버지인 이바 반 호엔하임을 모를 수 없죠.”
히히덕거리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고작 몇 분 사이에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 그동안 사람과 대화를 하지 못해서 쌓인 게 많았구나 싶을 정도였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이바 반. 그리고 제 이름은 이바노프 반. 이름이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엔 주변 이웃들이 가끔 묻기도 했죠. 대 연금술사의 숨겨진 후손이 아니냐고. 하. 웃긴 일이죠?“
2천 년 전의 사람의 후손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리가 없잖아요.
냉소적으로 말하지만 나는 단언컨대 강력하게 확답해줄 수 있었다.
후손 맞을 거라고.
행동거지, 눈빛, 외모, 거의 습관처럼 밴듯한 풀죽의 맛까지!
무엇보다.
“저것들은?”
“아……, 제가 만든 것들이에요. 부끄럽지만 저도 연금술사니까요.”
연금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은 진짜배기였다.
여기서 이바노프에게 네가 이바와 완전히 닮았으니 후손이 맞을 거라고 해본들 미친놈 취급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교수님, 교수님 후손이 여기 있는데 말입니다.’
그동안 당한 게 있잖아요? 좀 괴롭혀도 될까요.
당연히 안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 *
이바노프는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았다.
하나같이 영양가 없는 것들이지만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웠는지 수다는 멈출 줄을 몰랐다.
자신의 꿈은 이바 반 호엔하임처럼 뛰어난 연금술사가 될 거라는 둥, 위에서 날뛰고 있는 검은 심연의 괴물이 사라지면 이곳을 벗어나 생존자들의 도시로 향할 거라는 둥.
자잘한 이야기들이었지만 녀석은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삐릭.
[05:00]
슬슬 시간의 한계가 다가왔다.
“어? 어딜 가요.”
“온다.”
내 말과 함께.
쿠웅!!! 콰르르르르릉!!!
지하 은신처의 한곳이 거대한 굉음을 울리며 무너져 내렸다.
“으, 으악!!”
그런 갑작스런 기습에 놀란 이바노프가 벌떡 일어나 허리춤에 채워진 총과 흡사한 무기를 빼 들었다.
“달려요! 안쪽에 바깥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어요! RC 바이러스 보균자들은 빠르고 강하지만 머리는 나빠요! 본능에 몸을 맡기기에 가끔 치명적인 행동을 하긴 해도 결과적으론 멍청한 돌대가리들이니까!”
정말 위험한 건 바이러스 보균자가 아니라 얼마 전부터 나타난 저 거대한 검은 생명체라고 말하는 이바노프였다.
심연의 생물은 본래 이곳에 존재해선 안 되는 존재였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좀비와 비교하기엔 놈의 위치가 확실히 위험하긴 했다.
“녀석은 군이 떨어뜨린 수소 폭격을 대량 적중당하고도 살아남은 괴물 중의 괴물이에요. 만났다 하면 죽음 확정이라 봐야 할 만큼요!”
달리는 와중에도 말을 멈추지 않는 녀석을 따라 이동하던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뒷덜미를 망설임 없이 낚아챘다.
“꾸억!”
카앙!!!!!
동시에 벽을 뚫고 튀어나온 새카만 촉수들이 무형의 막에 막혀 튕겨 나갔다.
깜짝 놀라 굳어있던 이바노프는 촉수들을 무수하게 뽑아낸 거대한 검은 생명체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흐끅!”
급기야 딸꾹질까지 하며 지하로 밀고 들어온 거대한 생명체를 바라보던 녀석은 호신용인지 모를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총과 흡사한 무기를 덜덜 떨며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반사적으로 거대한 촉수의 다발에 금속탄을 발사했다.
날카롭고 가느다란 한발이 꽂히거나 말거나.
사실 저런 형태의 무기가 당장 큰 효력을 발휘할 리가 없었다.
“젠장! 뭐,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기회에요! 뛰어요!”
다급한 외침.
필사적인 도망을 치는 녀석을 보던 나는 말없이 남은 제한시간을 확인했다.
[04:02]
이제 남은 것은 아주 잠깐의 시간.
아주 잠깐 긴장을 놓고 마나를 끌어 올리는 순간 저 시간은 제로가 되고 나는 거래를 실패하게 된다.
그렇게 기회를 날리라고?
어림도 없지.
게다가 눈앞에 내 연금술 스승의 후손으로 보이는 이가 있다.
적어도.
그들에게 받은 은혜가 있다면.
단 한 번 정도는 이 녀석들의 목숨을 구해주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터다.
우선순위가 꼬이고 꼬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한 만큼 머리가 복잡하게 가열되는 느낌이었다.
콰앙!!!
“우아아아악!!!”
나를 이끌고 냉큼 달려가던 이바노프는 지하통로의 앞쪽을 부수며 튀어나오는 거대한 검은 촉수들을 보며 기겁한 표정을 짓고 멈췄다.
지금까지 저런 적은 없을 거다. 저렇게 심연의 생물이 미친 듯이 널 쫓아온 적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바노프는 착각을 거하게 하고 있었다.
심연의 생물이 작정하는 순간 이런 상황은 어렵지 않게 일궈낼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캬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
쾅쾅쾅쾅!!!!
이윽고 지하 내부로 RC 바이러스 보균자 아니, 그냥 좀비 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웃긴 점은 놈들의 몸에 심연의 생물이 촉수를 꽂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눈치에 삘이 온다.
저거, 척 봐도 놈이 좀비 놈들을 조종하고 있다.
순식간에 포위되자 갈팡질팡 못하던 이바노프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오랜 시간 홀로 생존해왔을 테지만 이런 사태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그 견고한 비밀통로가……”
허탈하게 중얼거리는 이바노프의 중얼거림에 나는 말없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데이비 씨?”
“걱정 마라. 까짓거 너 하나 못 살리겠냐.”
내 말에 그가 어이없다는 실웃음을 흘려 보였다.
웃어? 웃겨, 새끼야?
체념한 그 미소에, 기적을 처박아줘야 시야가 트일 모양이렷다.
오랫동안 계산만 해오던 나는 검산 역산까지 완벽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양손을 펼쳐 들었다.
한 손에는 공간 전이 마법 워프를, 또 한 손엔 다른 막대한 기운을.
빠르게 시간이 소모되거나 말거나.
이바노프가 갑작스런 내 변화에 놀라거나 말거나.
나는 정확히 심연의 생물의 촉수를 직시하며 말했다.
“륀느. 카운트 다운 10초. 동안 접근하는 놈들을 모조리 태워버려.”
“명령 수행.”
철컥 철커덕!!
금기의 업보가 현재 비활성화 상태인 만큼 초월계통 흑마법은 사용이 용의치 않으니 화력 면에서 최고봉이 9서클 초월계 원소 마법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내 변화에 이바노프의 눈에 경악이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