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3화
“대체 이게 무슨?!”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모든 법칙은 물리계통의 역학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그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나누어진다.
이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저것은…….
주변의 공기마저 빨아들이듯 새파랗게 빛나는 손가락 마디 하나만 한 작은 구체는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먼저 들린 것은 거대한 굉음이었다.
무언가 거대한 중량을 가진 것이 하늘로 뛰어올랐다가 추락했을 때.
그때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본래 소리의 근원지로 향하려 했던 이바노프는 가는 길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은발의 소녀와 잘생긴 흑발의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 세상의 양식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정장을 입은 소년은 그저 장난으로 입었다고 보기엔 너무도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옷이었다.
본능적으로 굉음을 일으킨 주인공이 그 두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바노프는 곧 수많은 RC 바이러스 보균자들과 검은 생명체가 두 사람을 향해 접근하는 것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물품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저들을 구해야 하는가.
자신은 과거 인류를 구원했다는 대 연금술사 이바 반 호엔하임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저들이 RC 보균자일 확률도 있었다.
그런 짧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슨 직종이건 사람 살리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다른 RC 바이러스 보균자가 그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감염되지는 않았다고 그는 판단했다.
예비용으로 가져온 연막탄의 핀을 뽑아 빠르게 허공에 던졌고, 그 틈을 타 두 사람을 이끌고 재빨리 그가 사는 은신처로 데려왔다.
그동안 갖은 고생 끝에 자립할 수 있는 물품과 탈출구까지 만들어놓은 완벽한 비밀 은거지였다.
나름대로 오랜 시간 살아왔기에 이바노프는 은거지에 꽤 정이 들던 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대화 상대,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라 생각 이상으로 들떠있었던 이바노프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술술 털어놓았다.
저들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도 아직 판단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자신이 건네준 스프를 맛있게 먹는 은발의 소녀도 고마웠고,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년도 고마웠다.
이 빌어먹을 RC 바이러스가 퍼진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바노프는 8살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이 은신처를 만들어 숨었었고 2년 전쯤 부모님마저 잃고 홀로 생존해온 독종 같은 소년이었다.
유일하게 영재급으로 영특하다는 사실이 그를 지금까지 살려온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렇게 말한 이바노프는 차라리 이렇게 된 거 만난 지 얼마 안 된 인연인 이 두 사람과 함께 생존자의 도시에 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손님, 대화 상대를 그렇게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쿠웅!!
하지만 그런 그의 행복한 상상의 나래는 얼마 가지 않아 끊어졌다.
RC 바이러스 보균자는 물론 그 검은 생명체조차 지하 5미터 아래에 존재하는 이곳을 눈치챈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주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침입자 경보를 울리는 센서가 작동했는지 몸에 부착시켜둔 장치들이 순식간에 맹렬히 위험신호를 보내왔다.
은신처는 안전하지만, 결국 좁은 곳일수록 더욱 위험해지는 법이다.
어차피 벗어나야 하는 일. 이바노프는 차라리 깔끔하게 이곳을 포기하자는 심정으로 냉정하게 판단, 필요한 물품만 몇 개 챙겨 들고 두 사람을 빠르게 지하 비밀통로로 안내했다.
아무리 그래도 비밀통로까지 쫓아올까.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 말은 없더라.
이바노프는 마치 함정을 팠다는 듯 촉수를 쏘아내는 거대 괴물의 존재에 기가 막혔다.
설상가상으로 RC 바이러스 보균자들까지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가 들고 있는 네일건은 엄연히 단일대상의 적을 경직시키는 정도이지 이곳의 설비로는 제대로 된 화력을 가진 무기를 만들 수가 없었다.
결국, 네일건으로 제대로 된 화력을 볼 수 없다는 사실과 소년과 소녀가 마땅한 무기도 없었다는 사실에 이바노프는 절망했다.
하지만 말없이 자신을 따라와 주던 소년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너 하나 못 살리겠냐고.
사방에는 괴물이 득시글거리며 토끼몰이하듯이 우리를 조여오고, 우리는 무기도, 방어수단도, 은엄폐할 장애물도 없다.
그런데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런 생각에 그가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였다.
이바노프는 생에 처음으로 기이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가만히 있던 소년의 양손에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손에 모인 것은 붉은 광구.
나머지 한 손에 모인 것은 검은 광구였다.
두 가지 광구를 만들어낸 그는 곧이어 그것을 양손을 모아 뭉쳐버렸고 부숴버릴 것처럼 뒤틀어 주물럭거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며 이바노프를 포함한 세 사람을 향해 RC 바이러스 보균자, 이 망할 좀비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지잉!!!
하지만 그들의 접근은 침묵한 채 식량만 축내는 것처럼 보이던 은발 소녀의 움직임에 차단되었다.
양손에 새파란 광선으로 만들어진 칼날을 만들어 베어 넘기는 모습에 그는 자신의 눈을 비비고 당혹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투웅!!! 퉁!!!!
그와는 별개로 소년은 말없이 한 손에 거대한 구체를 만들어냈다.
처음엔 붉은 구체.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희게 변하던 구체는 곧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른색을 띠기 시작하는 구체를 강제로 압축시키기 시작했다.
처음 크기는 수십 센티미터의 구체였지만 이제 남은 구체의 크기는 고작해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륀느, 돌아와.”
담담하면서도 익숙한 한마디와 함께 미친 듯이 날뛰던 은발의 소녀가 빛으로 된 검을 지워버리고는 빠르게 소년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동시에, 멍하니 있던 이바노프는 자신과 데이비라는 이름의 소년, 그리고 륀느라는 이름의 은발의 소녀가 있는 아주 좁은 공간만 마치 격리되듯 뒤틀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심연의 생물은 내가 처리해주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을 거다.”
담담한 그 말에 멍하니 있던 이바노프는 곧 눈이 아플 정도로 환하고 푸른 작은 구체가 허공에 떠오르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피잉!
옅은 공명음이 들려오고.
미묘한 기류 속에서 천천히 눈을 뜬 이바노프는 곧 볼 수 있었다.
물리법칙으론 절대 불가능하다 판단되는 거대한 푸른 화염의 지옥불이 일대를 모조리 전소해버리고 잿더미만 남은 광경을 말이다.
“세, 세상에……”
기겁한 듯 주저앉아버린 그는 곧 물이라도 부은 것처럼 꺼져버리는 푸른 화염과 기괴한 공간 뒤틀림 속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좀 전까지 목숨을 위협하던 바이러스 보균자는 단 한 개체도, 가장 위험하다 판단되어 군에서 수차례 수소 폭격을 가할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던 새카만 생명체도,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그리고.
이바노프는 이 상황을 설명받기 위해 고개를 돌린 곳에서.
소년과 은발의 소녀가 마치 허깨비처럼 사라진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꿈인가.
내가 꿈속의 이바노프인가, 꿈속의 이바노프가 현실의 나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바노프는 멍하니 바닥에 생긴 모든 것이 익어버린 흔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사라져버린 두 사람이 혹시 연금술사들이 부정하는 신의 사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기에 이르렀다.
우웅…… 우우우우웅!!!
그때였다.
이바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익숙하지 않은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손을 밀어 넣은 그는 작은 큐브 하나를 꺼내 들 수 있었고 깜짝 놀라 그것을 허공에 던졌을 때,
기겁한 얼굴로 눈을 부릅떴다.
작은 큐브가 빠르게 커지기 시작하더니 두 가지로 나뉘며 특이하고도 날렵해 보이는 골렘으로 변신해버린 것이다.
“사용자 등록을 요구합니다. 이름을 말씀해주십시오.”
“사용자 등록을 요구합니다. 이름을 말씀해주십시오.”
두 개체의 골렘은 쌍둥이라 부를 정도로 똑같이 생겼지만, 연금술에 조예가 있는 이바노프는 알 수 있었다.
이 두 골렘.
단순히 뛰어나다 말할 수 있는 수준의 골렘이 아니라고 말이다.
크기는 사람만 한 골렘이지만 그 힘은 압도적이리라.
왜 이런 골렘들이 작은 큐브의 형태로 자신의 주머니에 있었던 것일까.
멍하니 있던 그는 이 초현실적인 사태의 주범이, 데이비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바노프는 자신이 겪은 일을 과연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극심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 *
츠팡!!!
거대한 스파크와 함께 나는 품에 안고 있던 륀느를 데리고 세계수 알의 정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이쿠!”
반사적으로 손을 뻗은 나는 상태창을 활성화 시켜 상황을 확인했고 이내 그 안에 적힌 내용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특수 추가 미션을 수행하였음, 추가 미션 : 유르기안 대륙의 두 번째 희망의 별을 반드시 생존시킬 것.]
희망의 별이 누굴 뜻하는지는 애초에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리 오래가있지도 않았건만, 간 일은 어찌 되었느냐?”
알의 질문에 나는 상태창의 바뀌는 문구를 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냥 게임 한 판하고 왔습니다.”
“게임?”
그래, 게임 같은 개 같은 미션.
삐리릭!!
이윽고 정보 산출이 완료되었는지 상태창에 내려진 거래항목의 문구가 모조리 변했다.
[초월병기 1개 해금, 환골탈태 스택 1추가, 차원 열쇠의 총량 200% 상승]
[칭호, 별부수미를 획득.]
이게 단순히 어떤 행동으로 결론을 내냐에 따라서 추가보상이 갈린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열쇠, 일회성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써먹을 수 있는 최고의 파밍 장소라는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