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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78화 (377/1,559)

제 378화

120. 칭호 (2)

새카만 화염은 닿는 모든 빛을 집어삼킬 정도로 어두운 느낌을 풍겼다.

온도의 개념을 벗어나 상대를 단순히 태운다는 개념을 가진 9서클 마법인 헬파이어와 흡사한 출력으로 내리꽂히는 화염은 그 범위부터가 이 일대 숲 전체를 감쌀 정도로 거대했다.

“쯧.”

이를 악물고 브레스를 향해 손을 뻗은 나는 대량의 마나가 증발하며 브레스를 겨우겨우 막아내는 것을 보고 혀를 짧게 찼다.

역시 브레스 위력 하나는 어마어마하구나.

아니, 예상 이상의 힘이었다.

비록 셰인 스크리프트라는 존재는 오래전에 죽었지만, 그와는 급이 다른 수명을 살아가는 환수, 그것도 환수의 왕 중 하나라 불리는 저놈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척 봐도 뭔가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기에 모든 힘을 끌어내서 싸울 순 없을 거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어느 정도 약해진 주제에 이만한 화력이라니, 웃기지도 않을 일이다.

뿌드득…….

힘을 주어 버티고 있던 다리에서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강대한 압력이 가해지자 레이나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와 일대 전체를 짓누르는 거대한 브레스를 번갈아 보았다.

물론, 한번 쏘아진 브레스가 영원히 지속하진 않았다.

대량의 마나를 사용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저놈의 브레스를 한번 막아내는 데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었다.

“후웁……”

짧게 숨을 고른 나는 파르르 떨리는 오른손을 보며 인상을 굳혔다.

놈의 힘이 내 예상 이상으로 강했다. 오랜 시간 살아왔으니 더 강해지는 건 맞지만, 이런 식으로 계산이 빗나가는 건 그리 선호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게다가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는지 손끝은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려왔다.

“헙?! 세상에 팔이!”

내가 어지간해선 부상을 입는 것을 보기 힘들었던 탓에 페르세르크가 놀라 소리쳤다.

“알고 있으니까 떨어져 있어.”

담담하게 말한 내가 청단이와 홍단이를 뽑아 들었다.

한쪽 팔이 부러진 탓에 한 손으로 홍단이를 뽑아 허공에 던지고 청단이를 다시 뽑은 것이지만 상관없었다.

하늘에 뜬 거대한 그림자의 존재에 레이나가 급히 신창 롱기누스를 겨누었다.

하지만 그녀가 제대로 기세를 끌어올리기도 전에 하늘을 새카맣게 물들인 그림자의 전신으로 검은 기류가 쏟아져 나와 그녀를 제압해버렸다.

유형의 힘이 아닌 단순한 공포심.

그것만으로도 검선급에 달하는 강자가 일순간에 무력화되어버린 것이다.

“으윽…… 윽……”

레이나는 공포에 질려있으면서도 필사적으로 기류를 방출해 거대한 막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마귀로 몰려있는 두 남매.

거품을 물고 기절해있는 남매는 엄연히 일반인인 만큼 이 정도 공포에 장기간 노출되면 결과는 뻔했다.

실제로, 훈련받은 병사와 기사들이 단번에 패닉상태에 빠지지 않았던가.

“첫대면부터 아주 작정하셨구만.”

부러진 팔을 튕겨 뼈를 맞추고, 강제로 신성 마법을 끌어올려 뼈를 임시방편으로 붙였다.

그리고는 허공에 떠 있던 홍단이를 오른손에 안착시키기가 무섭게 나는 몸을 가볍게 웅크린 뒤 놈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어째서 이놈이 갑자기 여기 나타나서 이단심판관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지만 그걸 알아낼 방법은 지금 존재하지 않았다.

대화로 풀어?

그건 상대의 힘을 파멸을 부르는 주둥이로 깎아내리거나 내가 우위에 있는 경우에나 먹히는 방법이렷다.

지금처럼, 누가 뒤져 나자빠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이놈의 입은 다물고 있는 게 오히려 상책이다.

창공의 폭풍용왕은 특별히 상성이랄 것이 존재하지 않지만.

내 경험상, 녀석이 가장 대처하기 어려워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무공분야였다.

[천마공]

순식간에 팔을 뒤틀어 두 자루의 검 끝을 놈을 향하게 겨눈 나는 전신에 흉폭하게 날뛰는 검붉은 기류를 여지없이 터뜨렸다.

[제 이도 이기어검술.]

[천충쌍아]

쩌엉!!!

하늘을 뚫겠다는 오만한 일념으로 만들어진 검술이다.

상대가 하늘을 지배하는 자라면, 이 정도의 패기는 가지고 덤벼야 하리라.

네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에 떠 있던 그림자가 두 자루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물론, 그냥 놈이 방해하게 둘 생각 따윈 일절도 없는 나였다.

-크르르르릉!!!

흉폭한 성질머리를 지닌 청룡이 순식간에 놈의 육신을 묶어 움직임을 방해한 것이다.

-끼이이익!!!

동시에 순간적인 피어에 움찔해있던 주작이 맹렬하게 분노를 터뜨리며 거대한 화염창을 만들어 놈의 날개를 관통했다.

그랜드마스터급 환수.

창공의 폭풍용왕 메가로드리아의 피어는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단순 사신수의 힘으론 놈을 이기기는커녕 오래 붙잡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수의 위상이 어디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불닭이와 태생부터 흉폭하기 그지없는 청룡 쿠릉이의 방해로 놈에게 순간적인 틈이 생겼다.

그리고.

그 틈은 곧 두 개의 섬광에 노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푸욱!!!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메가로드리아의 육신을 꿰뚫은 청단이와 홍단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선회하여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아앙!!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일격에 놀란 녀석은 자신에게 데미지를 먹인 내게 맹렬하게 분노했고, 급기야 자신의 몸을 꽁꽁 묶고 있던 거대 신수 청룡 쿠릉이의 몸체를 물어뜯어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화염이 되어 쏘아져 들어오는 불닭이와 몇 차례 부딪히는 듯하더니 붉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바스러져라, 하찮은 놈!]

일순간 하늘에 새카만 흑운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반사적으로 위험성을 눈치챈 불닭이가 도망치려 했지만, 메가로드리아는 다섯 개의 발톱을 지닌 앞발을 허공에 휘둘렀다.

-끼이이익!!!

공간을 찢어버리는 위력에 불닭이가 추락하자 녀석은 곧 내게 시선을 돌린 채 다시 한 번 눈을 번뜩였다.

동시에 일대 주변에 거대한 토네이도가 생겨나기 시작하며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마치 경고하듯 나를 노려보는 놈의 모습에 나는 한 손을 가볍게 튕겼다.

저 녀석에게 나라는 존재는 생판 처음 보는 하찮은 존재로 보일지 몰라도.

나는 저놈과 지겨울 정도로 엮여왔다.

“그러니까.”

그만 이제 내려올 때 되지 않았냐.

당장 널 때려죽일 방법은 없지만, 마냥 당해줄 정도로 내가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건 눈치챘을 거다.

카가가각!!!

나를 노려보며 힘을 끌어올리던 놈이 일순간 크게 휘청였다.

놈의 상처에서 생겨난 반투명한 무언가가 놈의 몸을 지상으로 잡아당겨 버린 것이다.

핏방울이 흘러내리며 반투명한 마나의 실 위로 형체가 드러났다.

물론, 당장 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한 번이 안 되면 두 번, 두 번이 안 되면 세 번.

힘으로 버텨내는 놈의 뒤로 다시금 날아오른 청룡 쿠릉이가 한 차례 몸통박치기를 가한다.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휘청거리는 놈의 모습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래도 안 내려와?

콰앙!!!

뒤이어 새빨간 화염이 된 불닭이가 놈의 몸에 화염의 고리를 만들어 포박하고는 그대로 몸을 처박아버렸다.

세 차례에 이어진 공략 끝에 결국 환수의 왕 메가로드리아가 지상에 강제로 추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그 와중에도 왕의 고고함을 잃지는 않겠다는 듯 녀석은 처박히려던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 강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네 다리로 강하게 버틴 놈의 육중한 신체가 충돌한 탓에 거대한 지진이 일었지만, 놈이나 나나 그 정도 진동에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다.

거대한 뿔이 달린 용의 머리에 이어 등 뒤에 난 상처 입은 네 쌍의 날개.

비늘과 깃털이 공존하는 근육질의 육신과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만드는 붉은 안광까지.

너무도 반가울 정도로 익숙한 모습이었다.

[감히.]

“감히고 나발이고, 규율을 준수하던 현명한 왕이라 불리던 메가로드리아의 꼴이 퍽 우습다, 그치?”

내 빈정거림에 광기 어리던 놈의 몸이 순간적으로 크게 움찔거렸다.

물론, 대화는 나중에 할 일이고.

콰지지직!!

몸을 일으키는 메가로드리아를 바라보던 나는 레이나가 여전히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건 말건 청단이를 납도하고 홍단이를 양손으로 틀어잡았다.

환수의 왕 중 가장 현명하다 알려져 있던 것이 바로 이놈이었다.

그런 놈조차 차원 이동 시 가해진 힘에 무너져 내려 반 정도 광기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 보아 문제는 심각하다고밖에 볼 길이 없었다.

우우웅……

아래로 내려 세워진 홍단이의 검신에 검붉은 기류가 넘실거리기 시작하자 나는 짧게 숨을 고른 뒤 놈을 정확히 노려보았다.

단 한 번에 필요한 건 다 챙겨온다. 그 대가로 팔 하나 정도 증발한다면.

싸게 먹히리라.

[오라, 미물이여]

“오냐. 가주마.”

투쾅!!!!

순간적으로 왼발을 지탱하고 있던 지면이 과도한 중압을 이기지 못하고 일그러졌고, 내 신형이 일순간 사라지듯 없어졌다가 놈의 지근거리에서 나타났다.

내가 정면으로 밀고 들어 올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지 놈은 거대한 주둥이를 벌려 폭풍이 담긴 충격파를 순식간에 완성해냈다.

당장 그대로 들이닥치면 내가 제대로 한 방 먹을 구도이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어쭙잖은 견제나 속임수가 오히려 이쪽이 당할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듯 끌어올려 진 내공이 내 전신을 장악하며 전신에 검은 핏줄 같은 것을 만들어냈고 흰자위에도 혈관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천마공]

[발검]

[경계참수]

뒤로 당겨져 있던 홍단이의 검신이 맹렬하게 울리며 검붉은 빛이 일순간 놈의 공격을 포함하여 일대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 * *

단 한 사람이 일검에 일대 수백 미터에 달하는 숲을 날려버릴 수 있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괴물과 싸우는 인간의 탈을 쓴 괴물, 데이비의 싸움을 지켜보던 레이나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려 충격파에 대비했다.

콰지직!!

하지만 거대한 괴물과 데이비의 충돌은 그런 그녀의 방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허무하게 부숴버렸다.

“꺄악!!”

절로 비명을 내지른 레이나는 자신이 끌어안고 있던 두 어린 남매와 함께 육신이 부웅 뜨는 느낌에 눈을 부릅떴다.

저 두 괴물의 싸움은 정도를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흉폭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마나가 빠르게 고갈되어감을 느낀 레이나는 강제로 다리를 움직여 그 여파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지켜주려 했던 이 두 아이만이라도 제대로 지켜내야 하리라.

자신의 몸은 인간의 수준에서 벗어난 만들어진 육신인 만큼 튼튼하기엔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어느 정도 희생해 충격 여파를 대비하던 그녀는 그녀의 등 뒤에서 걸어 나온 은발의 소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손에는 언젠가 본 적이 있던 스태프가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눈앞의 싸움이 어떻건 상관없어 보였다.

오로지 손에 쥐어진 스태프에게만 시선이 고정되어있었으니 말이다.

“흐흐…… 본녀가 이날만은 어찌나 기다려왔는지 모를 게야. 세상에, 이 고운 자태를 어이할까, 본녀를 따라 오거라. 본녀가 평생 너를 정성스레 사용해줄 터이니.”

무언가 굉장히 흥분한 듯한 미성이었다.

“당신은……”

레이나는 그녀가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는 레이나가 알던 존재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왕 페르세르크.

그녀가 살았던 평행선에서 절대 악으로 군림하며 대륙을 무너뜨린 존재였지만.

이곳에선 그저 데이비에게 휩쓸려, 그의 집착을 받는 불쌍한 소녀일 뿐이었다.

그녀가 마왕 페르세르크라는 증거?

그녀의 양 머리에 돋아나 있는, 참 손으로 잡기 편해 보이는 뿔만 봐도 알만하지 않는가.

[심연의 마왕이 가진 이름으로 명한다.]

이윽고, 은발의 소녀, 마왕 페르세르크의 입에서 신비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신비로운 음성인데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흥분이었다.

동시에, 레이나가 펼치던 방어 장막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단단한 장막이 그녀를 포함한 일대를 완벽하게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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