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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79화 (378/1,559)

제 379화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해보자 식의 싸움에서 결국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것은 메가로드리아였으니 말이다.

“……”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져든 후.

나는 말없이 피가 뚝뚝 흐르는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이네스 힐]

우우웅!!!

놈의 힘이 침식되어 쉽게 회복이 되지 않지만 상관없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여기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놈이 침식한 내 몸은 성자가 된 탓인지 큰 무리 없이 독기들을 스스로 정화하기 시작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싸움에서 몸이 탈진할 정도로 마나를 사용한 건 회랑에서의 무식한 전투 훈련 이후 처음이었다.

그 미치광이 세계수, 이그드라실과 싸울 때도 이렇게까지 극한 상황에 몰린 적은 없었으니까.

우웅…….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숲을 둘러보던 내게 언제 다가왔는지 레이나가 물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보는 대로.”

“세상에! 심각하잖아요!”

다시 부러져 버린 팔, 피가 뚝뚝 흐르는 몰골은 좋게 말하려 해도 심각해 보였다.

또한, 내 왼쪽 복부의 의상은 모조리 찢어져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당신이 이렇게 다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 아니었나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녀가 중얼거렸다.

좀 전 싸움의 여파 때문인지 그녀의 몸은 아직도 옅게 떨리고 있었다.

“꼼수로 이겨 먹을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거고 아닌 대상도 있는 거야. 저놈은 제대로 제힘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만약 저놈이 멀쩡한 상태로 싸웠으면 이 정도 부상에서 끝나지도 않았을 거다.”

부상이 아무리 커도 이기면 장땡인 법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놈에게 치명상을 입혔고, 그 대가로 자잘한 부상을 얻었다.

“그렇다고 해도…… 섬뜩할 정도로 강하네요. 몸이 말을 안 들을 정도로……”

“그랜드마스터급 환수니까.”

“……”

그랜드마스터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무게감을 잘 아는지 그녀가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체 그런 괴물이 어디서……”

혼란스러운 그녀의 중얼거림에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마기에 잠식된 블랙드래곤 가르가스와 싸울 때도 전혀 주눅 드는 것 없이 싸웠던 그녀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는 건 놈이 그만큼 개막장 사이즈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전에 만났던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와는 격이 다른 수준으로 말이다.

그런 대단한 놈이 어쩌다가 이곳에 나타났고, 광신도 집단을 보호하고 있는지는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차원을 넘다가 돌부리에 걸려 머리통이 깨진 건지.

아니면 작정하고 거하게 약을 빨아서 돌아버린 건지.

현왕이라 불리던 메가로드리아가 이 말을 들었으면 거품을 물었을 테지만.

그놈과 나는 예전부터 상성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실제로 삼 환수왕 중 나와 만나서 화학반응을 가장 맹렬하게 일으키는 녀석이 바로 그놈이었다.

그런 점에서 놈이 사생결단 보다 후퇴를 선택한 건 내게도 다행인 일이었다.

남자가 한번 직진을 했으면 일방통행이지 어디 모양 빠지게 후진을 하나.

그런 내 모습을 괜스레 불안하다는 듯 바라보는 레이나와 다르게 페르세르크는 제법 느긋한 모습이었다.

처음 내 팔이 아작난 것을 보고 놀랐던 그녀였지만.

그때 레이나를 보호하던 방어마법을 정리하고 숨을 고르던 페르세르크가 초월의 종언을 끌어안은 채 내게 다가왔다.

제법 큰 스태프인 탓에 그녀가 들고 있으니 아이가 마치 자신보다 커다란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데이비.”

“안돼, 못 줘, 돌아가.”

“본녀에게 줘! 평생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보관할 자신이 있음이야!”

“쓰라고 만든 스태프를 보관만 하겠다니.”

“데이비, 제발!”

아 몰라, 안 들린다.

단호한 내 말에 결국 그녀는 마치 이산가족이 헤어지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딘의 스태프, [초월의 종언]을 내게 돌려주었다.

입을 삐쭉인 페르세르크는 손끝에서 느껴지던 감촉을 잊기 싫은 지 몇 번이고 작은 손을 오므렸다가 펴기를 반복했고, 이내 다시 몸을 소형화한 뒤 내 겉옷 주머니에 쏙 들어가 버렸다. 아마 무언의 시위이리라.

* * *

클로니 오프레시레가 이끌던 이단심판관들이 휩쓸고 간 소영지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아니, 초상집조차 되지 못한 흉흉한 분위기 그 자체였다.

살아남은 이들은 극소수로, 정말 운이 좋았던 이들을 제외하곤 거의 모두가 이단심판관에게 잡혀 재판이라는 이름의 검증되지 않은 절차를 거쳤고, 참혹하게 처형당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손을 못 쓴다.”

타국이라는 점, 그리고 국가 내부의 문제라는 점.

이놈의 왕족이라는 지위는 책임과 권리를 동반한다.

여기서 내가 날뛰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해선 조금 곤란한 게 내 입장이었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이 제게 이 일을 맡긴 거잖아요?”

레이나를 용사라는 직위로 만들어 삼 제국 황제의 비호를 받게 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녀는 멋대로 간섭할 권한이 있으니 말이다.

그녀의 존재의의는 대륙 평화의 유지.

지구의 기준으로 치면 각 국가가 연합하여 만든 UN과 비슷한 느낌의 존재가 바로 그녀였다.

“죽은 이들을 살릴 순 없겠죠?”

“한번 죽은 이를 되살리는 건 너와 페르세르크를 제외하곤 없어, 그리고 앞으로도 어지간해선 없을 거고.”

이미 죽어버린 이들을 되살릴 방법은 없다.

아니, 정확히는 살릴 방법은 있지만 내 수명을 깎아가며 그들을 살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성자라면 그 정도 이타심은 발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성자만의 생각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금기를 다루는 연금술사 그리고, 사령 술사의 입장에선 윤회의 흐름을 멋대로 뒤트는 짓은 그리 선호할 수가 없다.

레이나를 따르던 기사들은 이미 이 영지에 도착해 시신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새카맣게 타버린 시신을 들것에 실어 빠르게 분류하고 옮긴 기사 하나가 천천히 레이나에게 다가왔다.

“레이나 사령관님, 수색 종료를 보고하겠습니다.”

“고생했어요. 총…… 몇명이죠?”

“일백하고도 일흔셋입니다.”

“참혹하네요…….”

씁쓸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눈을 감았다.

이단심문회에서 이단심판이라는 핑계로 많은 이들을 죽여온 것은 어제오늘 일은 분명 아니었다.

실제로 과거 성국의 숨겨진 권력이라 불릴 만큼 압도적으로 속 편한 권한을 지닌 것이 이단심판관이었으니 말이다.

대부분 국가가 프리아 주신 교단을 국교로 모시고 있는 이상 이것은 모든 국가에 해당하는 일과 같았다.

물론, 그런 이단심판관도 귀족이나 돈이 많은 이들을 상대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반대로 힘이 없는.

특히 이런 소영지의 영지민들처럼 가축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은 이단심판관들에게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쳤다.

지금껏 이단심판이 이뤄진 사례는 많지만, 이렇게 무분별하고 용서 없는 심판은 유례가 없는 수준이었다.

성국의 힘이지만 반대로 너무 무분별하면 당연히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성국에서 독립된 집단이지만 가장 성국의 눈치를 많이 살펴야 할 이단심문회가 멋대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척 봐도 정상 범주가 아니었다.

“메가로드리아급의 환수왕이 그들을 돕기 시작했다면 뭐, 가능한 범위이긴 하지. 그만큼 항거불능의 깡패도 따로 없을 테니.”

내 겉옷의 커다란 주머니 속에서 머리만 꺼내놓고 있던 페르세르크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지만 사령안을 활성화한 내 시야에 이 영지는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탓에 죽음의 기운이 극도로 짙어져 있었다.

강제로 그들을 종속시켜 흩어버리느냐. 아니면 그들의 원혼을 진정시키고 성불시키느냐.

방법은 두 가지였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두 번째를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죄가 없는 이들이 적대적인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아공간 속에서 가벼운 현악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악기?”

갑작스런 악기의 등장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레이나.

그녀를 향해 나는 손에 쥐어진 리라를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사기가 너무 강해. 성불 못 하고 남은 원혼이 득실거리는데 그냥 넘어가면 쓰나.”

죽은 이들은 제법 그 집념이 강한 경우가 많으니까.

그들이 성불하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 장시간 방치되면 그들이 모두 악귀가 되는 것이다.

성자 가라사대 내 앞에서 원혼을 품은 악귀가 될 생각은 접어두어라.

강제로라도 모두 성불시켜주마.

디리링…….

리라의 얇은 현들이 잘게 떨리며 부드러운 음색을 흘리기 시작하자 모두가 침묵한 채 나를 지켜보았다.

시신들을 옮기던 레이나 휘하의 기사와 병사 그리고, 레이나 본인.

마지막으로 륀느나 페르세르크 까지.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나는 조용히 현의 한 부분을 가볍게 튕겼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하나의 장송곡을 만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음색이 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음색이로고.”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움직이는 음악인 만큼 음악 자체가 퍼뜨리는 마나 파장이 가져오는 영향은 그러했다.

마법 음유시인의 방식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현악기의 경우 현 한 가닥 한 가닥에 특유의 마나를 담아 천천히 밀착시키고 회전시킨다.

그리고,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그 마나를 퍼뜨려 효과를 끌어낸다.

추가적인 방식은 마법과 흡사한 술식의 계산이지만 마법 음유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시전자의 의지.

미련을 내려놓고 윤회에 굴레에 올라서기를.

당신들의 미련은 내가 가지고 갈 테니, 다 잊고 떠나도 좋다.

그냥 이뤄지는 마법 음악도 음악이지만 현재 나는 칭호라는 특수한 기능을 알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별 부수미를 실시간으로 장착하고 있지만 필요할 땐 바꿔야 하는 법.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건 [안식을 부르는 자]라는 칭호였다.

연주를 듣는 이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말없이 이어지는 연주에 좌중은 한참을 침묵했다.

동시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이 죽고 고요해진 영지 전역에서 푸른 빛의 가루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내 주변을 배회하고 천천히 하늘로 승천하듯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 저게 정말 성자의 힘이로구나…….”

레이나를 수행하던 기사 하나가 홀린 듯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몇몇은 기적을 본 것처럼 그대로 무릎을 털썩 꿇으며 양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신의 기적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저렇게 신을 찾아 부르짖는 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조금 다른 입장이었다.

-원통합니다…… 원통합니다……

[그래, 원통한 거 잘 알지. 그런데 어떻게 할 거야. 이미 죽었잖아. 죽어서 귀신 돼서 멀쩡히 죄 없는 사람이나 괴롭힐래? 그러다가 내 손에 걸리면 팔다리 부러지는 거로 안 끝나. 그러니까 얌전히 올라가. 원한은 내가 대신 갚아줄 테니.]

어차피 선을 넘은 이들이다.

이단심판관들은 내 손에 죽는다.

그 사실은 처음 정교 이단 심문회의 수장이 하인스 영지에서 깽판을 치도록 명령한 그 순간 전쟁으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신이 왜! 당신이 뭔데 나를 성불시키는 거야!

미련과 원한을 품은 영혼들은 극도로 공격적이다.

강제로 진정시켰음에도 내게 덤벼드는 혼도 존재했다.

사령안으로 바라보는 혼들은 그런 이들이었다.

비록 죄 없던 착한 영지민들이었지만, 그들은 극도의 원한과 공포 그리고, 고통 속에서 죽어간 탓에 영혼 일부가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당장 집어치워! 당신을 죽여버릴 거야!

-저주해! 전부 저주해! 내가 얼마나 뜨거웠는데!

-모두 태워 죽일 거야! 모두 홀려서 불에 타 죽게 하겠어!

그런 원혼들의 상태를 내가 모를까. 나는 그들이 가진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최대한 그들과 공감하며 그들을 진정하기 위한 신중한 한마디를 던졌다.

[니들, 영혼 상태에서 죽도록 처맞아 본 적 없지, 뒤질래?]

-……

때때로는 말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마디가 효과가 있을 때가 있는 법이다.

굳어버린 영혼 하나를 리라로 펼치는 음색의 마나로 감싸 빠르게 정화하고 성불시켜버리고는 천천히 시선을 주변에 돌렸다.

다들 줄을 서시게들, 빠르게 정화해서 훨훨 날려 보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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