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1화
121. 순교자와 지키는 환수
스르륵…….
어둠 속에서 붉은 핏방울이 모여들며 한 여성의 형체를 만들어냈다.
“쿨럭……”
피를 울컥 토해낸 건 다름 아닌 뱀파이어 여성이었다.
후작급 뱀파이어이면서 급진파 소속 뱀파이어.
그리고, 뱀파이어 중에서도 유별날 정도로 특이한 개체라 불리는 인물이기도 했다.
“흥미롭지 않아…….”
그녀는 대뜸 인상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그녀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뿐이었다.
전투는 애초에 그녀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지만.
단 한 명의 인간으로 인해 그녀가 자주 이용하던 급진파 뱀파이어가 몰락하며 무너져 내린 게 문제였다.
전쟁의 패배.
그리고, 잔당을 찾아 소탕하는 용사라는 인간 여성.
거기에 흥미로움 그 자체였던 인간, 데이비 올 라운이 만들어 퍼뜨린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까지.
그녀는 엄연히 하프 뱀파이어였다.
본래대로라면 후작급 뱀파이어의 힘은커녕 보통 하급 뱀파이어 이상의 힘을 끌어내기도 힘든 존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녀를 구성하는 한가지.
대륙 전역을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는 핵인 현자의 돌을 몸에 품은 그녀는 하프이면서도 순혈 뱀파이어 이상급의 저항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 괴물화 바이러스에선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타격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현재 도망쳐버린 온건파와 다르게 이곳에 남은 급진파는 극소수만을 남기고 괴물이 되거나 죽임을 당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 또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대륙을 떠돌다가 레이나와 조우했고.
죽음 직전에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그녀에게 레이나의 무력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인간들의 정보를 여러 방면에서 수집해온 뱀파이어들이었기에 인간들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훤히 꿰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나온 첫 번째 변수, 데이비 올 라운으로 인해 모든 것이 망가졌다.
그것만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으리라.
하지만 두 번째 신흥강자의 출현은 예상 밖의 문제였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타난 빛의 용사.
레이나라는 이름의 여성은 아직 젊었으나 그들이 알고 있는 인간 중에서 단 한 명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그녀와 견줄 수 없을 만큼의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바로 그녀의 지식이었다.
어떻게 해야 뱀파이어를 몰아넣을 수 있고, 어떻게 해야 뱀파이어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지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힘과 검으로 찍어 누르는 데이비 올 라운과는 다르게 레이나라는 이름의 여성은 철저히 약자의 입장에서 강자의 입장인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법을 알았고, 강대한 힘을 지닌 그녀의 무력이 더해지면 거의 재앙에 가까운 두려움을 유발했다.
대부분 급진파 뱀파이어가 궤멸하고 남은 이들은 극소수.
밀피유는 이제 더 이상 급진파 뱀파이어를 이용한 연구는 불가능하다 판단하였고,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다만, 부상이 심각한 탓에 그 틈을 타고 뱀파이어에게 가해지는 지독한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윽……”
비명을 삼키며 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안 그래도 뱀파이어에게 부족한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며 괴로워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아직 할 일이……”
이대로 죽었다간 죽도 밥도 되지 않았기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힘을 끌어올리고는 품 안에 고이 숨겨둔 약품을 꺼내 거칠게 입에 물었다.
알싸한 맛의 액체가 입안에 감돌지만, 그녀의 흐려진 시야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피…… 피가 부족해…….”
힘겹게 중얼거리던 그녀는 결국 힘을 모두 다 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서서히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하프 뱀파이어 밀피유는 문득 누군가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발걸음과 함께 느껴지는 혈향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고.
그녀의 흐릿한 시야 너머로 마법사의 로브를 입은 한 소녀가 느긋하게 그녀에게 손을 뻗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은 유난히 빛나는 느낌이었다.
* * *
휘이이이이잉!!!
거대한 칼바람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직경 수 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알릭스 시드섬은 성국 발샤스가 보유한 대륙 최북단의 작은 해양 섬이었다.
독립된 부서인 정교 이단심문회의 본지가 있던 곳으로 웬만해선 성국 내에서 그 위치를 아는 이가 극도로 드물 정도로 알려진 바가 없는 곳이 바로 이 알릭스시드 섬이었다.
그런 작은 섬은 본래 특별한 용무 없이는 이렇게 대량의 인원이 체류할 일이 없는 곳이지만.
현재엔 그런 과거의 표현도 다 소용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성국 발샤스 본산의 병사 2만 8천여 명과 알릭스시드를 보호하듯 입구를 막고 버티고 있는 이단 성기사 5천여 명의 대치.
성전이라는 이름의 내전이 시작된 결과였다.
겉보기에도 그 수가 방대해 섬 전체가 빼곡하게 들어찬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눈에 봐도 소수 독립 집단인 정교 이단 심문회와 성국의 본산의 전력은 차이가 확연했다.
하지만 눈이 있다면 그런 숫자놀음이 지금 의미가 없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우욱!!”
공간을 넘기가 무섭게 무릎을 꿇고 입을 틀어막은 대주교 앨리스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헛구역질했다.
툭툭!
말없이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자 그녀는 수치심으로 얼굴을 찌푸린 채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물었다.
“대체…… 이게 뭐죠?”
“뭐긴 뭡니까. 그놈이지.”
담담하게 말한 나는 하늘에 뜬 채 고고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붉은 눈동자를 직시할 수 있었다.
놈은 내가 나타난 직후 고고하게 부유하며 피어를 뿌리던 것을 멈췄다.
동시에 언제 회복했는지 멀쩡해진 네 쌍의 날개를 천천히 펄럭이더니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서서히 기류를 뒤바꾸기 시작했다.
일순간 하늘에 새카만 흑운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미 놈과 내가 나타나기 전 한차례 전투를 치른 탓일까.
사방에 쓰러진 시신들이 가득했고 살아남은 몇몇 병사나 기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이단 심문회의 성 기사들의 손에 제압당해 있었다.
아마 1차적인 돌진을 했다가 큰 이득을 보지 못하고 후퇴한 결과이리라. 그 이유에는 메가로드리아의 난입을 예로 들 수 있었다.
한 차례 전투를 강제로 소강상태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 떠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
저 망할 환수왕 메가로드리아 때문일 확률이 아주 높았다.
“세상에…… 대체 저 생명체는……”
“비켜요.”
그때였다.
말없이 놈을 지켜보던 나는 놈이 나를 한참 동안 직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반사적으로 앨리스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겼다.
그리고는 한 손을 뒤로 펼친 뒤 그대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부족한 마나량을 생각하면 단 한 번.
그 이후의 공격은 마나가 아닌 다른 것을 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령마나나 마왕으로서 슬슬 각성하기 시작한 마기를 다루기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륀느의 출력으로는 메가로드리아에게 큰 타격을 주는 건 불가능하고 페르세르크의 마법은 효율상 뛰어나긴 하지만,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그녀는 단 한 차례, 아슬아슬하게 방어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래서 보는 놈이 없어야 하는 건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남은 마나를 모조리 끌어냈다.
부족하면 청단이 홍단이의 검에 모여있는 마나를 좀 빌리는 수밖에.
우웅!!
[8서클]
[미러포스 리플렉션]
쩌엉!!!!
내 마법이 발현되기가 무섭게 허공에 무형의 강대한 무언가가 내게로 빠르게 쏘아져 들어왔다.
폭풍의 힘을 담은 무형의 창.
단 한방이면 신창 롱기누스의 핵 죽창처럼 너도 한방 나도 한방 급의 위험한 공격이다.
저놈의 공격이 가장 위험한 것은 위력이나 연사력 측면의 공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은밀함.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로 날아오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든 공격이 바로 이것이었다.
메가로드리아의 주특기이기도 했고.
지겹게 당해봤기에 내가 가장 익숙하게 감지하고 쳐낼 수 있는 공격방식이기도 하다.
마법이 발현되기가 무섭게 전방으로 뻗어진 내 손이 거대한 반발력에 의해 뒤로 튕겨 나왔다.
와장창!!!
동시에 8서클의 강력한 방어마법이 일순간 박살 나버렸다.
“욱……”
강제로 마법을 파훼 당한 탓에 반작용이 육신에 그대로 가해졌지만 그대로 넋 놓고 있을 순 없었다.
놈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 놈의 힘으로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거짓말을 말이다.
실제로 시간이 필요한 건 나지만, 그런 약점을 대놓고 드러낼 만큼 나는 안일하지 않다.
자신의 주특기가 막혔다는 점 때문에 당황하고 있을 저놈에게.
지금 나와 싸웠다가 손해 보는 건 오로지 너뿐이라는 허세를 진짜로 믿게 할 필요가 있었다.
스르릉…….
곧바로 청단이를 뽑아 든 나는 홍단이의 몸 안에 차곡차곡 저장되어온 마나를 모조리 끌어냈다.
‘홍단이, 아빠에게 마나 좀 빌려줄 수 있지?’
-응! 홍다니 잘할 수 이써! 참을 수 이써!
동시에 청단이에게선 두 가지 힘 중 하나인 정령 마나를 끌어내며 내 정령 마나와 융화시켰다.
[나와라. 놈팽이들아. 정령 마나를 얼마나 쓰건 상관없다, 최대한 가슴에 바람 넣고 폼잡으면서 나와.]
내 말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허공이 찢어지며 물줄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지면이 뒤틀리며 거대한 거인이 발샤스의 병사들을 보호하듯 거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찌나 웅장하고 거대한 힘의 흐름이었는지 몇몇 이들은 그대로 주저앉은 채 모습을 드러내는 두 존재를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두 정령왕.
노아스와 엘라임의 등장에 메가로드리아의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지면을 마치 몸의 일부처럼 움직이며 나타나는 노아스와, 허공과 섬 밖의 물을 대량 끌어모아 나타나는 두 정령왕의 존재는 겉보기에 정말 대단하고 엄청난 존재처럼 보였다.
동시에 나는 아직까지 대기 중인 신수, 주작 불닭이와 청룡 쿠릉이 까지 불러내 그를 포위하듯 에워쌌다.
본성부터 흉폭한 청룡 쿠릉이의 경우엔 그저 놈이 마음에 안 든다는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불닭이는 달랐다.
불닭이는 똑같이 깃털과 날개를 가진 존재에게 내 관심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지 마치 불구대천의 부모 원수를 보는 듯한 격노를 내비쳤다.
내가 따로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확실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나중에 간식이라도 먹여줘야 할 기특한 행동이었다.
-끼이이이익!!!
광분하는 불닭이와 조용히 분노를 표하는 쿠릉이.
그리고 메가로드리아의 내부에 숨겨진 힘을 깨닫고 놀란 표정을 짓는 두 명의 정령왕까지.
갑작스레 나타난 네 명의 거대한 존재의 모습에 일대는 숨넘어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졌지만, 나는 이 무거운 대치에 더더욱 분위기를 가중해 나갔다.
“분명히 말하는데. 너는 나를 처음 볼 거다.”
하지만 나는 널 지독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놈에게 강조했다.
“덤비고 싶으면 덤벼. 이전엔 샨드라 미네아. 이번엔 네 녀석, 다음엔 베헤모스라도 넘어올 생각인지는 모르겠다만. 혼자서 날 감당할 생각이라면 감히 미쳐 돌았다고 해주마.”
[오만하다 인간이여.]
내 말에 놈이 처음으로 제대로 반응했다.
힘겹게 목소리를 낸 놈이 붉은 안광을 빛냈다.
[나는…… 환…… 수의…… 왕……셰인의……두 번째……환수.]
어렵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두 정령왕과 두 신수를 서서히 놈에게 접근시켰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내게 방해밖에 안 돼. 나는 기사가 아니라서 상대가 최적이 되기를 기다려주는 신사적인 인간이 아니야. 상대가 약해져 있으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숨통을 끊어버리는 쪽이다. 그리고 넌 지금 상당히 약해져 있잖아?”
나중에 회복하면 상당히 피곤해지는데 내가 이런 기회를 놓칠 거 같냐?
내 말에 놈이 긴장한 듯 앞발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나는 마나가 거의 고갈 직전이지만 반대로 놈 또한 무리한 힘의 사용과 정상적이지 않은 현 상황 때문에 회복기가 필요했다.
다만 둘 다 회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와.
자신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직감할 뿐 그 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놈의 판단은 달랐다.
[인간…… 네놈은 위험하다.]
이윽고 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단심문회의 성기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메가로드리아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직 이곳에서 죽을 수 없다.]
그 말과 함께 놈이 자신의 남은 힘을 모조리 끌어냈다.
전투에 사용해야 할 힘까지 모조리 끌어낸 그가 선택한 것은.
보류.
쩌적!!!쩌저적!!!
자신의 힘인 폭풍의 힘으로 공간을 찢어 단절시켜버린 것이다.
마치 반구체의 돔처럼 이단심문회의 성기사들과 자신을 감싼 그는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해줄 공간을 확보한 뒤 천천히 지상에 착지하고 짧게 그르릉 소리를 냈다.
“이 치졸한 새끼!!”
이에 내가 격분하며 빠르게 달려들었다.
쾅!!! 쾅!쾅!!
묵직한 중검의 일격이 수차례 가해지지만 마나까지 단절시키는 공간단절 때문에 제대로 된 타격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발샤스의 병력과 이단심문회의 병력들은 모두 멍한 얼굴로 메가로드리아와 나의 대치를 지켜볼 뿐 아무도 쉬이 나서지 못했다.
[사흘…… 이 공간은 사흘 동안 유지될 것이다. 인정하겠다. 네놈은 위험하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 상태로는 네놈을 이길 수 없다.]
아니, 지금 싸우면 네가 높은 확률로 이겨 등신아.
이래서 사람은 뻥카를 잘 쳐야 하는 법이다.
“망할 새끼!!”
그러면서도 나는 한 방 먹은 척 격노하며 단절된 공간에 검을 휘두르고 주먹과 발길질을 해댔다.
물론 이미 단절된 공간이 적당 선에서 휘두르는 공격으로 쉬이 깨질 리 없다.
“사정이 어찌 되었건 좋아. 회복, 어디 해봐. 어디 끝장내보자고 서로.”
담담하게 말한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동시에 분노에 어려있던 내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하게 돌아왔다.
마치 가면을 벗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내 표정의 변화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앨리스의 얼굴이 복잡미묘함과 당혹스러움으로 찌푸려졌다.
미친놈처럼 격노하던 내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서니 황당할 수밖에.
내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성국 본산의 성기사와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연기란 본래 아군도 속일 정도로 해야 적군을 속여먹는 것 아니겠는가.
저놈은 나를 의식해서 절대 공간단절을 회수하지 않을 테니 사흘간 나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사기꾼도 이런 사기꾼이 없군……. 그래…… 사흘 안에 저놈을 제압할 수단이 있어?’
‘저놈은 날 죽이면 그만이지만 나는 저놈을 죽이지 않고 제압해야 해. 그래야 광폭화한 존재들이 왜 이곳으로 넘어오는지 알 수 있을 테니.’
그냥 대화하면 되는데 왜 그러지 않냐고?
대화가 통하긴 하지만 놈은 마치 무언가에 반쯤 세뇌당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정상이 아닌 놈과 대화했다간 거기에서 무엇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판별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세뇌되어서 거짓을 말해주면 나는 그대로 물을 먹는 꼴이 되어버릴 테니까.
결국, 놈에게 걸린 세뇌를 모두 풀고, 놈을 제압한 상태에서 대화를 나눠야 멀쩡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흘 동안 대체 뭘 하려고. 그대의 힘은 현재 한계치까지 회복 중이야. 이 이상 속도를 올릴 방법은……’
“딱 하나 있어.”
그렇게 답하며 나는 아공간에서 황금빛의 빛을 옅게 내뿜는 열쇠를 손에 꽉 쥐었다.
어느덧 충전이 완료된 차원 열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