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4화
122. 폭풍 용왕과 회랑의 미친놈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륀느의 어깨에 앉아 빠르게 멀어지던 페르세르크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품에 안고 있던 스내프를 덮고 있던 천을 풀어냈다.
원치 않았던 모습까지 보여줘 가며 데이비에게 받아낸 초월의 종언이었다.
물론, 조건은 잠깐 만져만 본다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조건이었지만, 환수왕이자 타차원에서 넘어온 창공의 폭풍 용왕 메가로드리아에게 정신이 팔린 데이비는 그것을 받아가지도 않았다.
“……”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륀느의 어깨에서 훌쩍 뛰어내린 페르세르크는 옅은 마나를 끌어올려 자신의 몸을 띄운 뒤 본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륀느가 달리기를 멈추고 돌아본다.
“륀느 의문, 현재 데이비님의 명령이 하달 중. 페르님을 모시고 빠른 이탈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잠시 기다려보겠느냐.”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마족 특유의 마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육신은 만들어진 마족의 육신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기를 혼의 힘으로 불러들여 육신에 적응시키는 번거로운 과정을 몇 차례 거쳐온 바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그녀는 예전 그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효율이 나쁜 힘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힘의 양도 상당히 적은 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알량한 마기로 데이비를 돕는다는 선택 따윈 내리지 않았다.
게다가 바로 곁엔 같이 도망치던 앨리스 대주교가 있지 않은가.
자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데이비에게 피해가 가게 둘 만큼 그녀는 허술하지 않았다.
다만.
“이 녀석은 다른 게지.”
그녀가 아직 손에 쥐고 있는 스태프, 초월의 종언은 그녀와 달랐다.
말없이 마나를 공명하기 시작한 그녀는 데이비 이외엔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는 이 스태프가 가진 특유의 권능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역시 데이비에게 돌려주기 너무 아까운 무구로고.”
[커져라. 뚝딱]
쩌엉!!
그 말과 함께 거대한 마나의 상승기류로 커져 나가던 순백의 화염 구체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초월의 종언이 가진 스태프의 능력.
마법을 키우거나 줄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시 몸을 작게 만든 그녀는 륀느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뒤 속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야, 륀느, 가자꾸나.”
“륀느, 페르님의 결단을 매우 높게 평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이며 만족스러운 듯 저 멀리 보이는 백광의 마법을 보는 륀느였다.
“세상에…… 이 미치광이들…… 지도를 바꿔버리려고 작정했어!”
미련 없다는 듯 말하는 그녀와는 별개로 그녀가 저지른 일이 무엇을 유발했는지 발견한 앨리스는 더더욱 커지는 순백의 마법에서 쉬이 눈을 떼지 못했다.
* * *
거대한 마나의 상승기류.
직접적인 마나의 흐름은 전해져오지 않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그 힘만으로도 메가로드리아는 전신에 깃털이 뻣뻣하게 서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상대는 조금 특이한 인간이었다.
메가로드리아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 절대적인 영웅이라 불렸던 환수 소환사.
셰인 스크리프트의 환수이자 오랜 시간 그와 함께하며 환수들의 왕이라 불리는 위치까지 오른 현왕.
폭풍 용왕이라 불리던 메가로드리아는 오랜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이런 경험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액면가를 확인하면 고작 어린 인간이다. 처음 자신의 공격을 팔 하나 부러지는 정도로 막아내 버리는 그를 보며 메가로드리아는 자신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실제로 소년의 몸에 있어야 할 마나를 거의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오랜 살아온 그는 이게 뭘 뜻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자신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방대한 마나를 품고 있는 괴물 같은 저 소년의 마나를 측정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소년은 예상대로 강했고, 당장 그의 정신지배를 저항하는 데 많은 힘을 쓰고 있는 메가로드리아로선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소년은 이상한 존재였다.
마치 자신을 알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의도와는 맞지 않게 이 작은 섬으로 끌려와 원치 않는 자들을 보호하고자 했을 때.
그때 소년과 다시 만났다.
소년의 말은 조금 놀라웠다.
자신뿐만 아니라 같은 환수왕이라 불리던 나머지 두 존재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그 빌어먹을 룩스대륙의 침략자였던 정체불명의 그 여자와 혹시 한통속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있던 참이었다.
죽을 순 없으니 어떻게든 힘을 회복하여 그를 제압하고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메가로드리아는 결국 싸움을 강제로 미뤄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게.
이런 사태를 불러올 줄도 모르고 말이다.
“세…… 세상에…… 저게 뭐야……”
묵묵히 서 있던 이단심문회의 성기사들도 기겁한 듯 중얼거려온다.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메가로드리아의 힘으로 흑운이 가득 낀 탓에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새하얀 타원구체였다.
빠르게 회전하는 그것은 사방의 마나를 모조리 집어삼키며 어마어마한 크기로 불어나기 시작했고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공간을 절단하여 이틀에서 삼일 정도를 벌어 그동안 힘을 축적하려 했던 메가로드리아였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고 나니 오히려 그 자신보다 소년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지만.
소년의 입 모양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빨리 해제되면 좋겠다. 그치?
이거 한 방 먹여버리게.
그제야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시간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저놈이었구나.
놈은 시간을 벌었다는 확신을 얻자마자 대놓고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며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섬에서 자신과 대치할 때 보여주었던 정령왕과 정체불명의 존재들은 마치 허세였다는 것처럼 말이다.
상대의 마나를 가늠할 수 없으니 멍청한 판단을 해버린 꼴이었다.
결국, 그대로 싸우지 않고 상대에게 준비할 틈을 줘버린 이상 당장 어찌할 수단이 없었다.
어떻게든 균열을 메꾸고 지금이라도 싸우는 게 좋은가.
그건 아니었다.
아마 자신이 균열을 회복시키려 드는 순간 소년은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인데.
문제는…….
저 소년이 만들어낸 거대한 백색의 타원형 마법을 직격당했다간 그도 쉽게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 뿐이다.
“어…… 어서 수장님을 모셔와라!”
다급한 성기사들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곧이어 이단심문회의 성당에서 검은 법의를 입은 한 사내가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하늘에 뜬 태양과도 같은 빛의 구체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 어찌합니까? 수장님!”
“저, 저만한 마법은 대체……”
겁을 먹은 성기사들과 이단심문회의 사제들을 보던 이단심문회 수장 콜로서스 그리암은 곧 몸을 당당하게 폈다.
그리고는 메가로드리아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의 곁엔 신의 사도가 함께하십니다.”
그 말이 가져온 파급력은 거대했다.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현재 자신의 의지를 침식하는 힘이 더 강해져서 목소리도 채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지는데 저 망할 인간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한단 말인가.
“저런 마법은 겉보기엔 대단해 보이나 실상 씨 없는 열매일 뿐입니다. 그렇지요?”
콜로서스 그리암의 물음에 메가로드리아는 필사적으로 아니라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크르르르릉…….
하지만, 정신을 침식하는 힘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그저 울음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사제들을 모두 모아 방어마법을 준비하라고.
그리해야 한번을 겨우 버틸 수가 있다고.
직격하는 순간 모두 끝장이라 외쳐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자 보십시오! 사도께선 근엄하고 위엄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아니야. 지금 깃털 빳빳하게 선거 안보이냐.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그, 그렇군요!”
“역시 신의 사도!”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믿음인지 모를 그 모습에 메가로드리아는 이 대륙의 인간들을 고평가했던 것을 다시 취소시켰다.
빌어먹을 빡대가리들도 이런 빡대가리들이 없다.
‘이 개자식들아! 아니라고! 당장 방어마법과 방해 마법진을 설치하라고!’
시간이 부족하다 빨리 그것들을 완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겹게 부지해온 자신의 목숨 또한…….
“자! 모두 기도합시다! 저희는 신의 사도께서 지켜주고 계십니다. 두려워할 건 없습니다! 제가 누구입니까! 신의 사도의 인정을 받은 존재입니다! 저런 사술이나 쓰는 간악하고 타락한 성자 따위가 아니라!”
그의 외침에 성기사들이 마치 광신도처럼 소리를 지르며 무기를 높게 세웠다.
빌어먹을.
그런 생각을 하며 메가로드리아는 이 막막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빠르게 모색했다.
종속된 자신의 금제에서 벗어나는 건 일다 살아남고 나서 할 일이다.
그렇다면.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저 마법이 있는 공간 자체를 이격시켜버린다면…….
“저, 저길 보십시오!!!”
그때였다.
갑자기 소년의 마법이 무언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통의 크기에서 수십 배로 불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식은땀이 흐른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깃털이 빳빳하게 서고 전신의 비늘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이건 아니잖아. 이 개자식아.
대체 필멸자인 인간이 어떻게 저런 힘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안 그래도 거대한 마법이 이젠 수십 배 이상 거대해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리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힘을 끌어내도.
저건 막기가 힘들다.
그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법을 시전하고 있는 저 빌어먹을 소년은 빙글빙글 웃고 있고…….
“걱정 마십시오! 신의 사도께 저런 사술같은 마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오!”
“역시 신의 사도!”
자신을 신의 사도라 외치는 이 미치광이 광신도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믿고 있다.
곧 균열이 회복되는데…….
벌써 균열이 일부가 이어지기 시작했는데…….
목소리도 안 나오고 대처방법도 없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발악 정도.
결국, 입에 거대한 뇌기의 브레스를 모으기 시작한 그였다.
하…… 빌어먹을 될 대로 되라지.
지들 다 뒤지는 거야 상관없다만.
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공간을 단절시킨 것이.
도망칠 공간을 완전히 지워버린 꼴이다.
이윽고.
“균열이 회복됩니다!”
성기사의 외침과 함께 찢어졌던 균열들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자! 돌진하십시오! 적은 혼자입니다! 두려워할 건 없어요!”
빌어먹을 콜로서스 그리암의 외침과 함께 성기사들이 일제히 데이비라는 이름의 소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위세에 겁을 먹을 데이비가 아니었다.
“오래 기다렸냐? 미안해서 어째. 선물이 좀 큰 거 같은데. 미안하지만 여기서 내가 보호할 인간이 단 하나도 없거든.”
마음껏 날뛰고 부숴도 누가 뭐라 안 한다고.
데이비는 정확히 하늘에 뜬 새하얀 태양을 그대로 움직여 지상을 향해 내리 꽂아버렸다.
쿠웅!!!
옅은 빛과 함께 거대한 힘이 쏟아지자 메가로드리아는 필사적으로 모은 브레스를 모조리 토해냈다.
물론, 그 결과는 뻔하다.
반사적으로 몸의 기류를 모조리 끌어내 보호하듯 감싼 메가로드리아는 다시금 제정신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의지를 내뱉었다.
근엄하고 현명한 환수왕으로서의 의지가 아니라 과거 자신의 계약자와 함께했던 자신의 성격대로 말이다.
“하…… 빌어먹을……될 대로 되라.”
거대한 섬광과 함께 섬을 포함한 인근 영역 바다가 일순간에 증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