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8화
“죄송합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어?”
“네.”
정보 길드의 답변을 대신해서 전해주는 아이나 헬리샤나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대륙 6대 미녀 베르단데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라 일렀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알아낸 게 거의 없었다.
다른 6대 미녀들은 대부분 생각 이상으로 알려져 있고 정보도 구하기 쉽지만, 애초에 베르단데라는 이름의 평민 출신 그녀는 시작부터 정보가 모호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나 헬리샤나는 자신이 석 달 동안 구해온 정보를 모조리 털어놓았다.
보통 석 달이면 황족의 속옷 색까지도 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이 베르단데라는 여성에 대한 정보는 정말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뜬구름 잡는 소문만 많았다.
6대 미녀 중에서도 유일하게 평민이지만 그런 점을 모두 무시해버리고 단번에 입지가 오를 만큼 아름다운 여성이다.
사람을 얼굴로 평가하는 건 우스운 짓이지만, 미남 미녀를 선망하는 건 어느 세계나 동일한 법이고, 그것에 대해 내가 딴지를 걸 생각은 없었다.
“대부분이 헛소문이거나 뜬구름 잡는 소문들이어서 제 요령껏 추려낸 것들입니다."
아이나의 보고에 나는 걸음을 옮기며 손에 쥐어진 서류를 빠르게 훑었다.
“이름은 베르단데, 나이는 현재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그녀를 만난 이들의 정보를 종합해보면 40대에서 70대 정도로 추정됩니다.”
“장난하냐?”
걸음을 멈춘 내가 돌아서자 그녀가 크게 움찔거렸다.
“흐읏…….”
“똑바로 말해봐. 어떻게 조사해야 40대에서 70대 사이라는 개차반 정보를 가져오는 건데.”
“그게…… 만난 이마다 증언이 다 달라요. 실제로 그녀가 자취를 감춘 건 오래전의 일입니다. 최근의 정보들은 대부분 목격담뿐이고요. 이제 와서 유령 같은 그녀의 정보를 찾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요?”
베르단데는 실제로 오래전에 유명했던 대륙의 미녀이다. 그녀가 노파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이따금 그녀가 정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뜬구름 잡는 소문이 그녀를 지금까지 유지시켜왔다.
불만 가득한 그 모습에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해고당하고 싶냐?”
“읏……”
당황한 그녀가 움찔거렸다.
그러면서도 혹시 후드가 넘어가지 않을까 당황한 모습이었다.
“정보 길드에서도 그녀에 관한 정보는 정말 1급 특수정보에요. 알리지 않는 게 아니라 못 알리는 거라고요.”
정보가 있어야 넘겨주지.
그녀에 대한 소재조차 제대로 파악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대체 무엇을 알아낼까.
“유일하게 알고 있는 건 그녀가 6대 미녀 중 하나로 불리게 된 사건이에요. 오래전 집시들과 돌아다니며 음악을 하고 춤을 추던 그녀를 본 한 왕족이 첫눈에 반해서 그녀를 멋대로 왕실 연회에 데리고 갔다고 하더군요. 수많은 귀족이 있는 곳에서 그녀의 외모가 빛을 발하자 여러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입지가 굳어졌어요. 하지만 그것을 끝으로 그녀는 다시 종적을 감췄고요. 본래대로라면 그 후로 30년이나 더 흘렀으니 대륙 6대 미녀라 불리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중요한 건 그 후에 간혹 그녀를 만났고, 그녀가 여전히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존재라고 말하는 이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애초에 젊은 나이에 환골탈태를 겪은 이들은 평생을 젊게 살아간다.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았다.
“숨바꼭질하자는 건가.”
결국, 석 달 전의 사태를 주도하고 사라져버린 [울드]라는 이름의 여인에 대한 단서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어버린 나는 미련 없이 그것에 대해 손을 놓아버렸다.
카드 속에 현재 잠들어있는 메가로드리아의 정신을 침식하고 있는 심연의 힘을 슬슬 걷어낼 방법을 찾았으니 말이다.
적어도 놈에게 직접 들으면 그 [울드]라는 여인에 대해 잘 알게 되리라.
“어서 오십시오.”
어느덧 검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아이나를 뒤로한 채 나를 반기는 노신사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고생했어. 베르닐 시종장.”
“아닙니다. 이 일…… 제게 꼭 맡겨달라 간청드리지 않았사옵니까.”
“그렇게 좋아?”
내 물음에 평소 무표정을 고수하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모노클 너머 눈동자에 만족스러움이 묻어났다.
“배우고 싶은 이는 이 세상에 많습니다. 하지만 여러 요소로 인해 그 배움의 기회가 한정적이지요. 하위귀족들 혹은, 돈이 없는 평민들, 재능이 있지만 여러 요소로 인해 그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
“저하께서는 그런 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드시는 게 아니셨습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대뜸 저었다.
“아닌데?”
“예?”
“아니라고, 내가 뭐 자선사업가인 줄 알아?”
비웃음을 던지며 말하자 그가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헛기침을 했다.
“신이 나이를 먹더니 머리가 많이 굳었나 봅니다. 저하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군요. 허면, 대체 무슨 이유이신지…….”
그의 물음에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펜스를 둘러보았다.
학교 부지는 그 어떤 아카데미보다 거대했다.
황색 바위 부족의 골고다 장로와 골다 장로가 건축의 대가라 불리는 붉은 바위 드워프들에게 기술 몇 개를 공유해주기로 하고 그들을 섭외해온 덕분이었다.
정령왕의 힘에 마법, 연금술, 그리고 빵빵한 자금력, 최고의 건축 기술자들의 기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학교를 감싸고 있는 동서남북의 거대한 첨탑과 그 중앙에 설치된 수많은 아름다운 외관의 건물들은 고작 몇 달 만에 만들어졌다고 보기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정교했다.
“이유라……”
아직 아카데미는 빈 건물이다. 제대로 된 물자도 들여오지 않았고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들도 없다. 또한, 그들이 없으니 학생이 있을 턱이 없다.
그렇기에 이곳은 아직 주인을 기다리며 새 단장을 하는 건물일 뿐이었다.
“베르닐 시종장. 사람이 모이면 집단이 생기고, 집단이 발전하면 국가가 된다는 건 알고 있겠지.”
내 말에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그렇지요.”
“인간은 그런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 더 나은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겠지만, 태생적인 본능은 어디 안 간단 말이지.”
“흐음…….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실 순 없으신지요.”
그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잡설일 뿐이야. 질문하나 할게. 그런 집단 속에서 가장 이루기 힘든 것이 무엇일까.”
내 물음에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 내 의도를 깨달은 듯 조용히 답했다.
“공평한 기회군요. 제아무리 평등함을 강조하는 세상에서도 사람이 개개인인 이상 절대 공평한 기회는 주어질 수 없으니까요.”
“그래 공평한 기회. 그렇다면 다시 질문할게. 자선사업가도 아닌 내가 왜 공평한 기회를 들먹이면서 이런 학교를 만들었을까.”
내 말에 그는 침묵했다.
설마설마하는 표정으로 내 의도를 떠본다.
“설마 지원금을 노리시고…….”
“눈치 빠르네. 아주 좋아.”
좋은 의도로 학교를 만들었고, 다른 여타 아카데미처럼 졸업 후 학생의 진로를 독점하는 조건으로 지원금을 받는 시스템도 채용하지 않았다.
즉, 이곳에서 졸업한 재능있는 학생들이 어디 갈지는 모두 자신들의 자유이며 그들을 섭외하는 국가들의 마음이다.
아직 이 학교를 거친 아이들이 어떻게 클지 입증이 되지 않았다고?
이사장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교수가 학생을 가르친다면, 실력이 기준치에 못 미치는 교수는 내 손으로 바꾸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저하.”
그때였다.
조용히 있던 베르닐 시종장이 입을 열었다.
“의도 자체는 좋습니다만……, 아마 평민 중에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극도로 적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혜로운 인물답게 이 계획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내게 제시해왔다.
“저하. 평민들의 삶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하인스 영지는 이전과 달리 많은 여유가 생겼습니다. 저하의 은덕이지요. 무식한 복지 세례에 영지민들이여유가 생기면서 교육에 대한 욕구가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소중하지 않을까.
그런 자식이 만약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드러내 뛰어난 사람이 되면 좋아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하지만.
“다른 영지는 다릅니다. 저하, 평민들은 대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대부분 까막눈도 많지요. 그런 이들을 무슨 수로 불러들이시렵니까. 그 아이들이 재능이 좋아도 부모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내일 당장 해야 할 일에 아이들도 데려가야 하는 마당에 아이들을 머나먼 이국땅에 교육을 받으러 보내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
“바로 그겁니다.”
평민들은 자신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없는 것에 대해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글자를 몰라도 사는 데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아무리 머릿속을 채워도 당장 내일 배를 굶으면 딴생각을 하는 게 사람입니다. 결국, 교육은 돈에 여유가 있는 중산층 이상의 이들에나 가능한 것이지요.”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뛰어난 학문, 검술, 마법.
뭐, 말은 좋은데 정작 메인이 되어줄 학생들이 부족하면 이건 본말전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일리는 있어. 괜히 섣부르게 손댈 부분은 아니지. 그럼 베르닐 시종장이 보기엔 어떤 방법이 좋아 보여?”
“그건……”
“없지?”
내 말에 그가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신의 능력이 미흡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신경 쓰지 마. 시종장이 한 말은 근본적인 문제야.”
귀족의 자식들, 부유한 이들은 가르치는 이들이 대단한 존재라면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지만, 학생들의 일부를 차지해줄 평민들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방법 하나를 생각해낼 수밖에 없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단시간에 바꾸는 건 절대 불가능하니까.
“허면, 어찌하시려고.”
“최근에 전쟁이 터졌어. 베르닐 시종장.”
내 말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우선으로 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꿀 선례를 만들 거다. 그 우선 대상은 전쟁고아. 하루하루 살아가기조차 쉽지 않은 그 아이들에게 선택의 여지 따윈 없어. 난 그 녀석들을 이용해 아카데미 첫 졸업생들을 괴물로 키워낼 거다.”
내 말에 그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 *
[쯧쯧. 인간은 언제고 이런 게지. 부질없는 것들]
처음 들은 말은 그것이었다.
사내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벌써 30년이 흘렀다. 시간은 변했고 세상은 그녀를 반쯤 잊었다.
그녀가 대륙 전체를 경악하게 만든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려왔던 것도 벌써 30년 전의 과거일 뿐이다.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었고, 부푼 소문이 그녀를 만들었던 만큼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었다.
집시와 함께 세상을 유랑하던 그녀가 30년 전 자취를 감춰버렸고, 가끔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자신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어…….”
수염이 짙게 난 사내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흔들의자에 앉아 잠들어있는 20대 초반의 외향을 가진 너무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흑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은 흔들의자에 몸을 맡긴 채 품에는 작은 마법서를 끌어안고 잠들어있었다.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사내는 과거를 떠올렸다.
[버려진 아이야, 넌 이대로 죽을 테지. 버러지 같은 인간 하나 죽는다고 누가 뭐라 하겠느냐.]
[……이거 놓거라. 나는 바쁜 몸이다. 한 번만 더 내 옷을 잡고 늘어지면 당장 불에 태워 죽여버릴 것이다.]
처음은 싸늘했고 무섭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을 찢어 죽인 참상의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었다.
[……그래. 알겠으니 놓거라. 뭐. 당분간 인간을 탐구한다고 생각하자꾸나. 적어도 내 집의 청소를 시킬 수는 있을 테니.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게다. 네가 게으름을 피우는 순간 넌 당장 솥에 던져져 잡아먹힐 게야.]
수많은 기억이 떠오른다.
[왜 먹지 않냐고? 아직 살이 더 붙어야 맛이 나지 않겠느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것도 먹거라. 저것도.]
[멍청한 걸 나는 가장 싫어한단다. 춤이든 노래든. 검술이든 뭐든 배워야 하는 게지, 뭐 네 녀석은 증오심이 가득해 보이니 검이 어울리겠구나. 그래. 마침 저기 이쑤시개 대용으로 쓸만한 것이 있으니 한번 휘둘러보던가.]
[이 멍청한 녀석! 네 녀석이 다치면 내일 빨래를 누가 한단 말이냐! 이거나 먹고 잠이나 자거라!]
“어머니……”
짧게 중얼거린 그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