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1화
아직 이름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빈 아카데미의 내부.
학생은 하나도 없지만, 좀비는 존재한다.
아니, 좀비와 흡사하게 변해버린 무언가들이 흐느적흐느적하며 걸어 다니는 꼴이 가관이었다.
인간이 극한의 상황까지 몰리면 어찌 되는가를 직접 보여준 사례였다.
“사, 살려……”
거의 죽어가는 마법사들을 뒤로한 채 후련한 표정으로 걸어 나온 나는 거의 반쯤 시체가 된 교수진들을 뒤로한 채 느긋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기술자 건 교수들이건 인간이란 갈아 넣어서 안 되는 게 없다.
며칠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자비를 호소하는 앨리스 대주교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던가.
물론 그들과는 다르게 정신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내게는 익숙한 고생 정도일 뿐이지만 말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훈련을 지독하게 받아본 경험상 이건 그야말로 간단한 운동 거리에 불과한 짓이었다.
교수진은 이 속도라면 충분하니 이제는 괴물로 성장해줄 학생을 확보하는 일만 남았다.
아카데미를 사업처럼 굴려 먹고 있지만 상관없었다. 실질적으로 내가 해야 할 것이 그 분야일 테니까.
모든 것은 뮤우에게 학교에 다니게 해주겠다는 약속으로 시작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대접을 받아야 할 유공자의 유가족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국가의 차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워온 이들인데 출신이 무슨 상관인가.
“데이비, 그런 것치고 바리스나 윈리에겐 어떤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지?”
“사람마다 성장 방식이 다르니까.”
담담하게 말한 나는 드워프들과 고민하며 커다란 연못을 만들고 있는 에오니샤를 바라보았다.
울상을 지은 것치고는 제법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입은 싫다고 해도 몸은 정직한 모양이었다.
“아이나.”
말없이 녀석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그림자 속에 숨어있을 이를 불러내었다.
“네.”
“여전히 그 두 여자에 대한 정보는 들어온 게 없나?”
“울드라는 여성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없습니다.”
단시간에 뭔가 나올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베르단데라는 여성의 특징을 몇 가지 조사해본 결과 딱 한 가지는 찾았습니다.”
“왜 이제 말해.”
내 말에 그녀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말 안 하셨잖아요.”
듣는 사람이 당황할 정도로 허탈한 답변을 내놓는 그녀였다.
보통 같으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릴 만한 소리였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손에 낀 반지 하나를 가볍게 털어냈다.
“메라몽.”
스르르륵…….
동시에 바닥에서 꾸무럭거리는 액체 같은 것이 모여들며 형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러 기능추가로 인해 아직 언어적인 부분에 관해선 보완이 필요한지 녀석은 그저 묵묵히 나를 지켜보며 대기했다.
“쟤 묶어라.”
내 말에 형체를 완성한 메라몽이 순식간에 한 손을 수십 가닥의 촉수로 변형시켜 쏘아 보냈다.
“읏?!”
비명과도 같은 침음을 삼키며 아이나가 내게서 물러났다.
“저……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그녀가 핼쑥하게 질린 얼굴로 항변해왔다.
그런 주제에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숨은 거칠어져 있다.
“좋은 말할 때 말해. 판단은 내가 한다.”
다시금 메라몽을 저지시킨 뒤 내가 조용히 경고했다.
아이나 헬리샤나라는 이 빌어먹을 다크엘프는 어지간한 행동은 포상이나 다름없을 만큼 변태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전에 이단심판관들의 심판 목록 리스트에서 선녀라는 존재를 언급한 적이 있어요.”
메라몽을 흘끗흘끗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이 얻은 정보를 전해주었다.
“선녀?”
“네. 자신을 선녀라고 말하는 인물이 나타나 다친 이들을 치료해주고 불구가 된 이들을 다시 낫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게 베르단데와 무슨 상관인데.”
베르단데라는 그 여자는 예상대로라면 심연에서 넘어온 위험한 힘을 품은 공주였다.
일단 목적부터가 티오니스의 분란에 있는 그녀가 인간을 치료하고 다닌다고?
말이 되지 않지만 미심쩍은 건 사실이었다.
“세상에 특질능력자는 얼마든지 있어. 인간의 육신에 관여하는 특질능력자라면 얼마든지 가능하긴 한데.”
“데이비. 이 대륙에서 선녀라는 이름을 쓰는 존재가 있을 것 같아?”
가장 큰 의문은 그것이었다.
이곳에선 선녀라는 개념이 천족으로 통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본다면…….
“조사해볼 가치는 있겠네.”
“베르단데가 마지막으로 발견되었다고 한 곳이 동부대륙의 북부입니다. 그런 마당에 선녀라는 존재에 대한 소문의 근원지 또한 동대륙의 북부였고요.”
위치 또한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다만 베르단데라는 인물에 관한 소문이 있는데 선녀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소문이 나돈다는 점에서 조금 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원하는 걸 말해.”
“에나벨을 보내주세요.”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나벨은 아직 조정이 필요한 생체 골렘이다.
분명 은밀 잠입용 엘프 형태를 지닌 생체 인형을 만들었는데 대체 그 과정에서 뭐가 잘못된 건지 어디 지구에서나 볼법한 호러 영화의 귀신같은 행동을 자주 하곤 한다.
문제는 그 행동거지가 워낙에 은밀하고 음침한 느낌을 주어서 공포심을 극도로 자극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에나벨을?”
“사령 마법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말없이 내 곁을 따라오는 륀느를 바라보았고 녀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푸르게 빛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코드 엑세스 857-262 에나벨 단독 임무를 허가. 현 시간부로 소유자를 데이비 올 라운에서 아이나 헬리샤나로 이전.]
자아가 제대로 없는 골렘, 혹은 인형을 다루기 위해선 소유자의 각인이 가장 중요했다.
에나벨의 소유권을 잠시 넘겨주자 아이나는 조용히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이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시나요?”
그녀의 말에 내가 미소를 지우고 물었다.
“그래.”
“언젠가 도움을 주시겠다는 약속……. 아직 잊지 않고 있어요.”
그 말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그녀의 목소리엔 묘할 정도로 씁쓸함이 어려있었다.
* * *
일주일이 더 흘렀다.
나는 이제는 나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친다.
처음엔 열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한번 누군가를 단기 강화하려 할 때 얼마나 지독해지는지를 말이다.
급기야 열정이고 나발이고 이젠 내 그림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이 퍽 우습기 그지없었다.
똑똑똑.
“올만경.”
“쿨럭!! 쿨럭쿨럭!”
물자를 숨겨놓은 창고는 분명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그곳에 들어선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또 느긋하게 올만경을 부르자 상자 더미 속에서 누군가가 격한 기침 소리를 내었다.
“거, 배고프시면 말씀을 하시지.”
“데, 데이비 왕자님 여긴 어떻게……”
그래도 팔란제국의 수석 황실 기사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올라온 양반이다.
상당히 젊은 나이에 소드마스터가 될 만큼 재능도 출중하고 정의감도 투철한 사내이지만.
지금 그는 상자 더미 속에 쪼그려 앉아 감자를 입안에 욱여넣고 있었다.
초코파이라도 갖다놓아야 하나.
“쿨럭…… 쿨럭쿨럭!”
나를 보고 얼마나 경기를 일으켰는지 결국 감자가 목에 막혀버린 그가 괴로워하자 나는 물 흐르듯 그에게 다가가 등을 소리 나게 두드리며 아공간에서 물병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제가 말했던 건……”
“저…… 데, 데이비 왕자님.”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가 내게 물어왔다.
“혹시…… 제게 원한이 있으신 겁니까?”
절박한 목소리였다.
* * *
“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손에 쥔 것들을 마구잡이로 던져버리는 대주교 앨리스는 그야말로 히스테리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괴물이야……. 그 인간은 괴물이라고!”
앨리스는 어릴 적부터 성녀 후보로 내정되어오며 야망을 품은 전적이 있었다.
확실한 성녀 후보가 되기 위해 최후의 선을 넘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잠을 아껴가며 고생하고 또 고생한 그녀는 그 빛을 보았고 그 덕분에 성국에서도 몇몇을 제외하면 그녀의 신성 마법에 경악할 정도의 수준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끔찍한 성자가 시키는 신성 마법 숙련방식은 그야말로 무식하기 그지없었다.
신관에게 신성 마법이 메인이 되는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실한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데이비는 그런 말을 했었다.
[일단 실력부터 늘리죠. 그다음에 세상의 진실을 알 건 신을 모시건 하는 겁니다. 신실한 마음이요? 사람마다 다른 그 마음을 내가 무슨 수로 개조합니까. 생판 처음 들어오는 애들도 아니고.]
그는 그녀를 신성력이 가득한 마법진 위에 가둬놓고 무한정 고생을 시키기 시작했다.
[신성 마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말입니다. 숙련도입니다. 지금부터 나는 앨리스 대주교의 신성 마법을 죄다 강탈할 겁니다. 그리고 그걸 다 앨리스 대주교에게 쓸거구요. 살고 싶으면 안 빼앗기게 해야겠죠? 하하]
저벅…… 저벅…….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필시 제각각 흩어져 숨어버린 기사들을 찾으러 간 본체와 다르게 그의 머리카락에서 변형된 그 분신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들이리라.
고작 분신체에게도 그렇게 농락당한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끼익…….
다크서클이 가득해진 얼굴로 앨리스는 문을 열고 들어온 화사한 미소를 지닌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주신 프리아를 향해 필사적인 기도를 올렸다.
‘주신 프리아 여신이시여. 당신의 어린양이 신음하고 있음에 당신의 자애와 자비를 한 줌만 내려주시옵고…….’
믿으면 기적은 반드시 찾아온다.
“데이비 왕자님……. 우리 사람 대 사람으로서 제발……”
“시작합시다.”
기적 따윈 없었다.
* * *
헬리슨 발레스티아의 추천으로 하인스 영지로 찾아온 마법사들은 대개 4서클에서 5서클정도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데이비 왕자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었고, 몇몇은 헬리슨의 추천을 받아온 이들이었다.
본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율리스가 오기로 되어있었지만, 아직 프로젝트가 완성되지 않은 탓에 그의 합류는 상당히 늦어지고 있었다.
먼저 왔으니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탐구욕에 영혼까지 팔아넘길 수 있는 작자들인 마법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부터 뒤틀렸다.
[여러분들은 애들하곤 다르죠? 다들 튼튼한 어른입니다. 참을성도 좋고요. 그러니까 강도를 조금만 올릴게요. 지금부터 제가 나눠드린 양피지에 적힌 수식들을 해석하시면 됩니다. 방법이요? 알아서 생각하세요. 다만, 한 시간 내에 못 풀면……]
그 뒤에 날아든 건 지옥 같은 마법 세례였다.
세상에 마법사가 저렇게 차원이 다를 수가 있다는 걸 현실로 볼 수 있었지만 이제 더는 사양이었다.
알려주지도 않은 수식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마구잡이로 갈아 넣는 데 실패하는 순간 지옥이 펼쳐진다.
당연, 살아남기 위해 마법사들은 지금까지 해온 것 그 어떤 것 이상으로 필사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돈이 어디서 났는지 수많은 참고서적을 제공하는 건 좋은데, 살면서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마법을 연습하고 수식을 연구한 적이 있던가 싶은 그들이었다.
저벅…… 저벅…….
그리고.
시간이 다 된 그들의 귓가로 지옥을 불러오는 그 악마 같은 성자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프리아 여신이시여 제발…….”
나이 70이 넘은 지긋한 노인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장 신을 찬양하지 않는 마법사가.
신을 부르짖게 하는 방법은 제법 간단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