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4화
“커헉…….”
마법사 로브를 가볍게 여미며 시신의 바다가 되어버린 야영지를 둘러보았다.
카트린느는 엄연히 무인 중에서도 상위 무인이다.
그 무력은 검선급인 레이나에 비견될 정도로 강했고, 실제로 그녀는 하늘을 나는 중형 본드래곤이라 불리는 프로스트 웜을 상대로 밀림 없이 싸워온 전적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반응도 못 할 공격을 사용했다.
마법과 흡사하지만, 마법이 아닌 다른 무언가.
기사들이 이용하는 응축된 오러와 흡사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무언가였다.
시체의 밭이 되어버린 야영장에 쓰러져 있던 카트린느는 본능적으로 보호하듯 감쌌고 있던 에이리아가 눈을 부릅뜬 채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빠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강하게 주먹을 말아쥔 카트린느는 얼굴에 튄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유일하게 서 있는 여성을 노려보았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우후훗.”
옅은 미소를 흘리며 손가락 끝에서부터 이어진 붉은 채찍을 스르륵 빨아들인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이런, 그래도 가급적이면 고통 없이 보내주려 했는데.”
“정체를 밝혀라. 황녀 저하를 암살하러 온 암살자냐!?”
다른 이도 아니고 린디스 제국의 무력이라 불리는 대공이 호위하고 있는 황녀를 건드리다니 암살자치고는 간이 부을 대로 부은 작자였다.
아니,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일대를 모조리 참살해버렸으니 그만큼 무력에 자신 있는 괴물이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튀어나온 것인지.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에이리아를 뒤로 숨기며 일어난 카트린느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법 실력 있는 황실기사들 대부분이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사망했다.
그리고.
그 뛰어나고 인자하던 소드마스터 벨로스 경 또한 아직 숨이 붙어있지만, 치명상으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스르륵…… 스르륵……
그러거나 말거나.
흑발의 여성은 붉은 채찍을 휘두르지 않은 손을 뻗어 희끄무레한 연기 같은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하아……”
그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해요. 나는 당신들의 영혼을 먹지 않으면 안 돼서.”
담담하게 말한 그녀의 왼손 검지와 중지에서 굵직한 한 가닥의 채찍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눈 감아요. 절대 아프지 않게 해줄 테니.”
또 한 번 붉은 섬광이 번뜩인다.
반사적으로 공격을 막았지만.
카트린느는 마나를 강하게 두른 자신의 팔에 감각이 사라진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
“황녀 저하!!!!!”
연분홍빛의 간소한 드레스가 새빨간 피로 뒤덮이고 있는 것을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멍하니 선 채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보던 청록빛 머리카락의 소녀는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녀는 쓰러졌다. 척 봐도 에이리아가 버티기엔 너무 큰 치명상이었다.
그녀도 무력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태생적으로 정령친화도가 좋아서 하급 정령에서 중급정령까지는 어느 정도 부릴 수 있지만, 압도적으로 강한 적에게 정령을 소환할 틈 따위도 없었다.
“이 빌어먹을 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상대가 단순 에이리아를 암살하러 온 암살자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대륙 내엔 그녀 같은 이들이 존재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을 두고 마녀라 일컫는데, 적어도 카트린느가 알고 있는 마녀는 그녀처럼 강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는 아니었다.
대부분 그저 특이한 힘을 지닌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저, 저하…… 거짓말이죠? 하하……”
쓰러진 에이리아를 받쳐 들고 카트린느가 울먹거렸다.
이건 아닌데.
자신이 보호하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그녀가 죽었다.
오랜 시간 병환으로 고생해왔던 그녀다.
이제 와서 구원을 받고 빛을 볼까 했는데 너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앞에서.
“아니죠? 아니라고 말 좀 해봐요. 제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가 외쳤다.
어릴 때부터 수인 천대 풍습 때문에 힘들게 살아왔던 에이리아를 안쓰럽게 봐왔던 카트린느였다.
그녀의 인품에 반해 다른 건 몰라도 그녀만큼은 꼭 자신의 손으로 지키자고 생각했다.
아이가 없는 카트린느에게 에이리아는 딸이나 사랑스러운 조카와도 같았다.
그녀가 다시 빛을 보고 가면을 벗었을 때 가장 기뻐한 것이 사실 그녀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녀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리 죽어야 하는가.
전신에 화염 같은 기류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던 카트리는 자신의 한쪽 팔이 잘려나간 것도 잊은 채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섬뜩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아프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당신이 생각보다 강하네요.”
담담하게 말하는 여성의 모습에 카트린느가 이를 빠득 갈았다.
“인간의 영혼은 제 식량이에요. 그렇기에 나는 살기 위해 당신들을 먹어야 해.”
“x까.”
욕설을 내뱉으며 카트린느가 몸을 일순간 숙이는듯싶더니 거대한 잔상과 함께 폭발적인 속도로 날아들었다.
콰앙!!!!
반드시 저년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죽이리라. 팔다리 사지 육신을 모조리 찢어 죽은 에이리아의 원수를 갚으리라.
어마어마한 폭음이 숲 전체를 감쌌다.
* * *
“난 누구에게 고통을 주는 취미는 없어요.”
담담하게 말하는 여성은 멀쩡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마법사 로브 또한 아무런 흔적도 없이 멀쩡했고 긴 머리카락엔 먼지 하나 묻지 않았다.
“……”
반대로 그녀의 손에 제압당한 채 침묵하고 있는 카트린느는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정말 놀랍네요. 인간 중에 당신 같은 강자가 더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담담하게 말한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카트린느의 어깨를 가볍게 놓았다.
털석…….
동시에 그녀의 육신이 힘없이 쓰러졌다.
일어날 힘도 말을 할 힘도 없는지 쓰러진 채 여성을 노려보는 카트린느의 시선을 바라보던 여성은 다시금 붉은 채찍을 꺼내 들고 조용히 말했다.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줄게요. 먹는 건 미안해요.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하잖아?”
빙그레 웃는 그 광기 어린 미소에 카트린느의 눈에 극도의 분함이 어렸다.
하인스 영지와 가까웠다면 차라리 영주이자 가장 강한 존재라 판단되는 그 소년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도움 요청을 받고 오기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눈 감고 기다려요.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
울드는 말을 이으며, 천천히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부드럽게 내리쳐졌다.
저 손짓 한 번에 머리통이 잘려나가겠지만 저항할 힘도 없었다.
천천히 눈을 감는 카트린느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끝없이 후회하며 모든 것을 포기했다.
아니. 포기하려 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한 소년을 보지 못했다면 말이다.
콱!!
“읏?”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그녀가 움찔하며 내리치려던 팔을 멈췄다.
크진 않지만 단단한 손이 그녀의 팔을 강하게 틀어잡았고 붉은 눈동자에 피가 튀어 어둡게 변해버린 숲 속에서 번뜩였다.
촤악!!!
그리고, 그 눈동자가 섬뜩할 정도로 차갑게 빛남과 동시에 여성의 팔이 잘려나갔다.
붉은 궤적은 너무도 깔끔하고 부드러운 일검이었다.
고요한 가운데 울려 퍼진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여성의 신형이 일순간 튕겨 나가며 순식간에 붉은 눈동자의 주인과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그녀의 눈에 흥미가 식었다는 듯한 따분함이 어렸다.
“아…… 재미없네……”
담담한 중얼거림과 함께 그녀는 잘려나간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참을성이라곤 1도 없지. 재수도 없고.”
담담하게 말한 소년은 쓰러진 카트린느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잘려서 날아갔던 팔을 언제 주워왔는지 그녀의 잘린 부위에 가져다 대고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대체 여긴 왜 온 겁니까”
착잡한 물음에 카트린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상황이 되지 못했다.
옅은 빛이 퍼져나가며 서서히 몸을 회복시켜주었지만, 아주 잠깐의 싸움으로 그녀는 중상에 가까운 치명상을 입었다.
처참한 몰골은 회복마법으로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상황 개판 오 분 전이네.”
담담하게 말한 소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소년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에이리아가 힘없이 쓰러져 있는 곳이었다.
“……”
말없이 침묵하는 에이리아는 이미 사망했다. 육신이 당장 차갑게 식진 않겠지만, 심장은 이미 활동을 멈춘 후였다.
제발 황녀 저하를 살려주세요. 필사적으로 외치고 싶다. 이미 죽은 이를 살리는 건 성자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카트린느는 제발 에이리아만큼은 살리고 싶었다.
물론 기적 자체는 일어나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에이리아의 뺨을 쓸어내리던 소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소년의 목을 새빨간 채찍이 감쌌다.
“어머, 데이비 올라운? 안 그래도 소문이 자자해서 한번 확인해볼까 했는데. 네가 이 땅의 수문장이었구나.”
대적자.
모든 대륙에 위협요소를 막아서는 대적자의 존재.
카트린느는 그런 여성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한걸, 수문장이 원래 일인이역은 아니었을 텐데.”
이 대륙에서 마왕이란는 존재는 대적자의 반대 측에 있는 존재다.
“마왕에 수문장(대적자)이라……. 당신 정말 특이하네요. 이 대륙에 손을 쓰기가 왜 어려웠는지도 알 거 같아.”
담담하게 말한 그녀는 천천히 목을 잘라버릴 듯 채찍을 조였다.
간단하게 휘둘러지는 것만으로도 부드러운 목은 잘려나갈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그저 침묵한 채 에이리아의 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피가 묻은 얼굴을 천천히 닦아주던 소년은 곧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선택해라…… 선택.”
짧은 고뇌였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손해 보는 게 훨씬 낫지.”
소년은 곧 아공간에 손을 밀어 넣었고 미련 없이 주홍빛의 광석을 하나 꺼내 들었다.
광석의 내부엔 마치 누군가의 영혼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환한 잔불이 머금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