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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96화 (395/1,559)

제 396화

빠르게 격변하는 균열 속에서 사라져 버린 울드가 도망쳤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도망칠 곳도 없거니와 좀전의 반응은 당황스러움이었지 두려움이 아니었으니까.

울드는 강했지만 그렇기에 실수를 저질렀다.

애당초 그녀는 무력의 경지나 깨달음 같은 단순한 계산이 아닌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아직 완전하지 않은 나를 피포식자로 판단했고.

나를 가지고 놀겠다는 여유로운 선택까지 내렸다.

애초에 그녀에게 나라는 존재는 이 세계에서 조금 알려진, 조금 특이한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실제로 내 시야에서 사라져 검은 연기가 되어버린 그녀는 기가 격변하는 급류 속에서 마치 기회를 엿보는 맹수처럼 내 주변을 배회했다.

아직 정신을 잃고 침묵하고 있는 에이리아에게 관심이 사라졌는지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내게로 향한다.

어느 세계건 달은 존재하지만 유일하게 지금 내가 있는 이차원의 균열만큼은 그녀가 어찌할 수단이 없다.

차원을 넘어가는 순간 그녀와 내가 사용하는 힘의 격차가 커질수록 시간은 빨리 줄어들 것이고 120분이라는 긴 시간도 결국 몇십 초 내로 증발해버릴 수도 있을 만큼 큰 위험부담을 지니게 된다.

그러니.

스르륵! 콰아앙!

이 격류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그녀에 큰 엿을 먹여준다.

순식간에 몸을 재생시켜 주먹을 뻗어오는 그녀의 공격을 팔뚝으로 막아내자 가까스로 붙였던 오른팔이 다시 부서질 것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웬만해선 단단한 도끼도 맨몸으로 막을 만큼의 도검불침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녀의 무식한 힘은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궤도에 존재하는 위력을 품고 있었다.

쾅!! 쾅!!

계속해서 파고드는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시간을 끌던 나는 격류의 흐름을 예의주시했다.

그녀의 힘은 확실히 약해져 있었다.

다른 모든 세계가 그녀의 힘을 증폭시켜주는 달이 존재한다.

보름달에 가장 강하다고 하지만 달이 초승달이라고 해서 그녀의 힘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차원 사이의 격류에선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곳에는 달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까.

달은커녕 천체도 없는 공간인 만큼 그녀의 힘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못 할 만큼 약했다.

슈르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한 손에서 붉은 채찍이 뻗어져 나온다.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하는데.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교묘하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채찍은 자칫 잘못 닿으면 그대로 잘려나가 버릴 것처럼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을 마나를 무식하게 두껍게 뭉쳐 상쇄시키는 식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치지직…….

그리고, 아주 순간적으로 균열 너머에서 변화가 일어났을 때.

나는 준비해온 것들을 이용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드웨어는 좋지만, 소프트웨어가 딸린다.

다른 말로 하면 성능에 비해 경험이 많이 떨어진다는 소리였다.

너무 강하기에 자잘한 잔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다.

그저 찍어누르면 그만이니까, 굳이 경계할 필요가 없다. 위험에 처할 일이 없으니까.

너무 강한 힘은 때때로 소유자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아직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를 만나 본 적이 없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재능은 있는지 한번 먹힌 건 두 번 먹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물론 그 대가가 싸게 먹히진 않는다.

그녀의 방심을 끌어내고 치명타를 가할수록 저항도 점점 거세졌고 그 우연이 겹쳐 한 번의 상처를 만들어내는데 그 상처가 상당히 치명적이다.

진짜와 가짜를 섞어 그녀를 농락하듯 치고 빠지며 계속해서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녀가 한눈을 판 그 순간.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반대로 그녀의 경우 뭔가 잘못되었음을 무겁게 직감한 듯 보였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지 반사적으로 내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나는 그녀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그녀를 단단히 옭아맸다.

“읏?!”

뒤늦게 내 손에 검은 무언가가 머금어졌음을 깨닫고 그녀가 몸을 뒤틀었지만 이미 달이 없어 약해지고 당황하여 틈이 생긴 만큼 제대로 된 방어가 있을 수 없다.

뒤이어 아공간을 익숙하게 열어 성수 병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뿌린다.

여신께서 함께 하신다. 이 망할 괴물아.

당연히 효과는 미약하다 못해 없는 수준이지만 애초에 디버프를 위해 뿌린 성수가 아니었다.

내 힘을 증폭시키기 위한 밑밥일 뿐.

“꺼져.”

[마왕 유르그 식(式) 군중 제어기]

[초근접]

[명치 X나 세게 치기]

이전까지 해왔던 방식이 아닌 초 지근거리까지 파고든 주먹이 순간적으로 가속하며 그녀의 명치를 후려갈겼다.

금속을 때린 것처럼 효과가 없던 공격이 아니었다.

자신의 규칙을 이용해 몸을 보호하는 심연의 힘은 딱 두 가지로 파훼할 수 있다.

그 힘보다 더 강한 힘으로 찍어 눌러 부수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규칙에서 독립되는 힘인 금기의 업을 사용하던가.

하지만 그녀의 힘은 그랜드마스터급 환수도 어찌 못할 만큼 강했으니.

내게는 심연의 자유 규칙을 한정으로 한 프리패스 권한인 금기의 업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순식간에 검은 기류가 내 손에 머금어졌고 그녀의 육신이 거대한 무언가에 맞은 듯 그대로 꺾이며 튕겨 나갔다.

쩌저적!

그리고 빠르게 격변하는 격류의 벽면을 부숴버리며 균열 저편으로 튕겨 나갔다.

이에 나는 망설임 없이 에이리아를 안아 들고 그대로 근처의 다른 균열 속으로 몸을 던져버렸다.

차원의 균열 속에 무기한 가둬놓는 것.

그것만큼 그녀를 상대로 했을 때 지금 내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 앞뒤 분간도 안 되는 격류 속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동서남북 앞뒤 위아래 구분되지 않는 아비규환일 테니 말이다.

운이 나쁘면 점점 꼬여서 영원히 갇혀있을 수도 있겠네.

마치 나를 뱉어내듯 튕겨내는 균열 넘어 허공을 나르며 에이리아를 품에 꼭 안은 나는 착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미련 없이 등으로 바닥에 내려앉았다.

콰작!!!

나무 바닥이 부서지는 소리가 격하게 울려 퍼진다.

철퍽!!

동시에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액체가 고인 바닥에 처박히고 나서야 멈춘 나는 온몸을 찌르는 격통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후우…….”

심장이 벌떡벌떡하는 게, 경험에 없는 존재와 싸운다는 것에 내 몸 자체가 스스로 꽤 긴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래 그녀와 싸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카트린느의 무리한 힘의 운용을 깨닫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것이 빙고였다.

싸워서 당장 그 자리에서 죽일 수 없는 적이라면 어지간해선 충돌하지 않는 게 내 신조인데 에이리아가 죽어있던 모습을 깨닫기가 무섭게 꼭지가 조금 돌아버린 것도 있었다.

지금이야 그녀가 방심했으니 차원 균열 너머에 처박아놓고 빠져나왔다지만 다음에도 이런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녀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지 멍청한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

아주 잠깐 숨을 고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나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 이 물기가 가득한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나 에이리아를 안아 들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사각사각사각.

좀 전부터 들려오는 이 미세한 소음이 굉장히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미약한 사령 마나를 사용해 눈을 뜨자 어두운 공간 내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곳도 낮처럼 볼 수 있는 사령안정도라면 시간의 소모도 많지 않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120분. 2시간가량, 처음에 비하면 정말 후할 정도로 늘어난 시간이었다.

이윽고 환해진 시야로 주변을 둘러본 내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지.”

내 주변에 널린 물기들은 다름 아닌 피로 이루어진 바닥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고깃덩어리가 난잡하게 파헤쳐져 있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는데.

사각사각…….

저 빌어먹을 놈들이 문제다.

하늘에 뻥 뚫린 나무 바닥을 부수고 지하로 내려온 탓에 고개를 들자 미약한 빛이 나를 보호하듯 감싼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내리자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보다 거대한.

사람의 키보다 더 긴 더듬이.

어지간한 인간의 팔다리보다 두꺼운 6개의 다리.

끔찍한 외향.

“바퀴벌레……”

이건……

“도저히 수술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네.”

마나를 사용해보려 하지만 어림잡아도 수백 수천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바퀴벌레들을 정리할 만큼의 시간이 나오지 않는다.

이에 나는 미련 없이 그녀를 안아 든 손 하나를 아공간에 밀어 넣은 뒤 카드첩을 꺼내 들었다.

현재 활성화되어있는 카드는 두 개였다.

메가로드리아가 잠들어있는 카드 한 장과.

회랑에서부터 이곳으로 오면서 모두 사라졌지만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은 세쌍둥이가 하나 있다.

“나와라. 미친놈들아.”

이윽고 세 명의 기괴하게 생긴 인영이 그려진 카드를 검지와 중지로 집어 든 내가 카드를 허공에 던지자 빛과 함께 내 앞으로 세 인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놈들은 내 혼을 쪼개서 만든 놈들이다.

애초에 카드 술사인 신마는 어떤 경우에서든 잃지 않아야 할 자신의 분신은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나도 멋진 내 혼의 가디언을 만들고자 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놈들이 이런 놈들이더라.

스르르륵…….

딸그락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놈들은 앙상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허름한 가죽 경장을 입고 있는 놈들은 한 놈은 샴쉬르를 한 놈은 바스타드 소드를 또 한 놈은 우악스런 도끼를 들고 있었다.

까드드드득!!

회색빛의 피부에 앙상하기 짝이 없는 육신을 가진 놈들은 분명 해골처럼 생겼지만, 엄연히 해골이 아니었다.

이놈들은 내 영혼을 비추어 만들어진 녀석들이다.

그러니까, 이놈들의 근원은 나라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내가 혼을 이동시킬 때도 이놈들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 혼과 함께 성장해온 이놈들은 그만큼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긴말 안 한다. 여기 벌레 새끼들 깡그리 정리해.”

오랜만에 만나 내린 첫 명령이지만 세 미치광이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따다다다다닥!

이를 부딪치며 깔깔 웃어넘기는 세 놈의 모습에 내 인상이 찌푸려진다.

“맞고 할래. 그냥 할래.”

따다다다다닥!

누굴 닮은 건지 말을 지독하게 듣지 않고 서로 낄낄대는 녀석들이었다.

그리고는 저들끼리 툭툭 치고 장난을 치며 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 놈은 건들건들하며 내게 다가오더니 낄낄거리며 비웃기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는 깔깔대는 녀석이 말하는 바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놈 꼴 좀 보라지 깔깔깔.

그에 동조하듯 다른 놈들도 같이 낄낄 대기 시작하자 내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그만하라 했다.”

뭉개지는 소리가 흘러나오지만, 놈들은 낄낄 꺼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에 결국 나는 한 놈의 등을 가차 없이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썅. 까라면 까 이 새끼들아!”

내가 이래서 이놈들을 카드에서 꺼내기 싫었는데.

바닥에 쓰러진 한 놈은 곧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보더니 기겁을 하며 버둥거리기 시작했고, 나머지 두 녀석이 그를 일으켜 세워 호들갑을 떨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짜증 난 듯 나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뭐, 눈 안 깔아? 콱 씨.”

팔꿈치가 밖으로 향하게 팔을 들어 때릴듯한 시늉을 하자 녀석이 크게 움찔거린다.

그래. 맞은 기억은 안 사라졌다 이거지.

결국, 내게서 물러난 녀석들은 내가 피워낸 광구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어두 컴컴하던 지하 공간이 순식간에 밝아지면 사령 안으로 비추지 않아도 훤히 수천 마리의 거대 바퀴벌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세 미치광이 중 하나가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푸른 빛이 머금어진 눈동자를 움직이며 떠들기 시작했다.

“적이다! 죽이자!”

“그러자!”

“화하하하하!”

거봐! 저놈들 말할 수 있다니까.

한 녀석의 외침과 동시에 세 놈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낄낄 웃어대더니 겁도 없이 바퀴벌레의 무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다.

애초에 이 세 미치광이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성질머리를 보유하고 있다.

대체 누굴 닮은 건지. 쯧.

투쾅!!!

동시에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일어나며 일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그리고 나는 시간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일대 주변을 빠르게 불태워 깔끔하게 만들고는 에이리아를 뉘었다.

심장 소리가 약하다.

보통 잔불이라면 그녀에게 추가적인 응급조치는 필요 없다.

하지만 내가 사용한 것은 그냥 잔불이 아니었다.

칭호 [최후를 지키는 잿불]

효과는 제법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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