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7화
[최후를 지키는 잿불.]
(근본에 저항하며 덧없이 타오르는 잔불을 사용해 부활하는 데에 성공한 이에게 내려지는 칭호)
-칭호 착용 시 두 개의 달의 기적을 사용 가능.
-첫 번째 달의 기적(한 시간 내에 사망한 존재의 꺼진 불씨를 다시 미약하게 지핀다. 페널티 존재.)
-두 번째 달의 기적(첫 번째 달의 기적을 무효화 하고 페널티를 무효화)
-잿불의 바램(피 시전자에게 상시적용.)
세 가지 효능.
그러니까.
지금 나는 무슨 페널티가 올지 모르는 이 위험천만한 도박을 했다는 소리였다.
우우웅…….
에이리아의 몸에 손을 올려 신성력을 아주 천천히 끌어올리며 시간의 변동을 확인한다.
이전 유르기안 대륙에서 나는 마나의 사용으로 시간이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점검했다.
유르기안 대륙에도 마나와 비슷한 힘은 있지만 정확히 마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다고 알려진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유르기안 대륙은 연금술과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세계이기도 했고 말이다.
만약 내가 있는 이 정체 모를 세계가 신성력과 마나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시간은 반드시 정상적으로 차감되어야 한다.
[110 : 32]
“빙고.”
우우웅!!!!
신성력이 존재하는 세계라는 게 입증되기가 무섭게 나는 빠르게 신성력을 끌어올려 그녀의 육체 안정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마나나 사령 마나는 울드와의 전투에서 상당량 사용했지만, 상대적으로 신성력은 아직 많이 남아있는 편이었다.
그리고는 추가로 아공간에서 꺼내둔 소독수와 침, 그리고 작은 칼을 바르게 나열한다.
콰앙!! 쾅!!
“화하하하하하!!”
“저거 죽이자!”
“그러자!”
미친놈들마냥 날뛰는 세 미치광이의 외침과 그들을 향해 덤벼드는 수천 마리의 바퀴벌레 떼가 옆에서 시끄럽게 굴지만, 공간 자체를 잠깐 단절시킨 지금 나를 방해할 이는 하나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단절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만큼 놈들은 제 임무를 확실히 수행했다.
겉보기엔 단순 미친놈들이지만 실제로 저놈들의 힘은 내 카드술사로서의 메인 전투력이나 다름없는 놈들이니 말이다.
혼의 주인이 강해질수록 놈들도 강해진다.
통제가 어렵다는 점만 제외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빠르게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주물러 근육을 풀어준 뒤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의 복부 부분을 찢어냈다.
동시에 피가 잔뜩 묻은 덜 아문 상처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미련 없이 소독수를 부은 뒤 칼을 가져다 대었다.
[통각경감]
[지혈]
두 가지 마법이 발현되고 나는 짧게 숨을 들이켠 뒤 망설임 없이 그녀의 상처를 찢고 헤집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심연의 생명에게 당했다면 혹시나 하는 확인작업은 필요했다.
실제로 이전에 심연의 생물을 잡아 포획했을 때.
놈에게 상처를 입은 적이 한번 있었다.
자잘한 자상이었지만 문제는 그 상처를 타고 환부 내로 스며든 흔적들이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신성 마법을 받고도 제대로 아물지 않는 그녀의 복부 상처엔 새카만 무언가가 잔뜩 끼어 있었다.
“……”
짧게 숨을 고른 나는 한 손에 마나를 끓이듯 일으키고는 나머지 한 손으로 천천히 환부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며 망설임 없이 그 검은 것들을 찢어내고 태워내기 시작했다.
* * *
까드드드득!
“화하하하하학!”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푸른 눈동자를 가진 미치광이 중 한 놈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모포를 덮고 고이 잠들어있는 에이리아를 말없이 바라보더니 이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뭐.”
“흐흐.”
짧은 웃음을 흘린 녀석은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검지와 엄지로 원을 만든 뒤 검지로 애먼 장난을 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망설임 없이 주변에 떨어진 바퀴벌레의 등껍질로 추측되는 파편을 던져버렸다.
퍼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놈이 튕겨 나가지만 나머지 두 미친놈 또한 예상대로의 행동을 보여주었다.
한 놈은 다가와 에이리아의 뺨을 쿡쿡 찌르더니 이내 음흉하게 웃으며 입을 맞추려 한다.
빠악!!
거침없이 놈을 걷어차 날린다.
이후 나머지 한 녀석은 말없이 에이리아를 바라보다 천천히 일어나 가죽으로 된 자신의 바지춤을 풀기 시작했다.
“3초 준다. 동작 그만.”
“화하하하하하!!”
기이한 웃음을 터뜨린 녀석이 마치 항복한다고 말하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때 그의 뒤로 아직 살아남은 듯 보이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찰나의 기습이었다.
사람보다 거대한 바퀴벌레의 습격에 어지간하면 놀랄 법도 하건만.
퍼엉!!
녀석은 허리춤에 꽂아둔 도끼를 뽑아 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는 자세 그대로 주먹을 뒤로 뻗어 바퀴벌레의 머리통을 터뜨려버렸다.
성질머리들이 저 지경이긴 하지만 무력 하나만큼은 쓸만한 녀석들이다.
물론.
나는 그런 녀석들의 공로 따윈 상관없다. 놈들의 행동에 복장이 터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미련 없이 카드첩에서 빈 카드를 꺼내 놈들에게 뻗었다.
“꺼져 새끼들아!”
하나같이 도움이 안 돼요. 대체 누굴 닮아서 저 지경들인지.
비명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카드 속으로 쏙 하고 빨려 들어간 녀석들의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장난꾸러기 광대]
말없이 카드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카드첩에 그것을 집어넣어 버리고는 아공간에 밀어 넣었다.
에이리아의 상태는 안정되었다.
내게 가해질 페널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아 목숨과 관련된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째깍…… 째깍……
시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 세계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
수술에 대부분 시간을 보냈고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츠츳…… 츠츠츠츠츳!!
이윽고 돌아갈 기미가 보이는지 슬슬 시간이 깜빡깜빡하기 시작하자 나는 말없이 에이리아을 등에 업은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가볍게 주변의 지형지물을 밟고 내가 떨어진 곳으로 올라갔다.
“……”
동시에 시간이 다 되어 주변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내 시야 한쪽에서 보이는 시계가 노이즈를 일으키더니 이동이 멈춰버린 것이다.
영향력이 약해지더니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말없이 주변을 둘러본 나는 주변이 새빨간 망망대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파도 하나 없는 바다 한가운데.
그리고 노아의 방주마냥 거대한 주제에 인기척이라곤 좀 전의 바퀴벌레 놈들 말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바다였다.
더 웃긴 건 새파란 빛을 띠어야 할 바다가 새빨간 색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나 신기하기 짝이 없는 세계였지만 나는 느긋하게 에이리아를 나무 갑판 위에 다시 뉘이고는 주저앉았다.
열쇠가 계속해서 힘을 방출하는 것으로 보아 조만간 이 사태는 다시 해결될 듯싶었다.
그게 몇 시간이 되었건 사실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휴식이었으니까.
* * *
“으읏……음……”
에이리아가 깨어난 건 그로부터 약 50분 정도가 더 흐른 후였다.
큰 수술을 한 것치고는 제법 이른 시간에 깨어난 그녀는 멍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가 나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아…… 아아아아!!”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온몸을 버둥거리고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에 나는 반사적으로 뛰어가 뒤에서 그녀를 제압하듯 끌어안고 한 손으로 빠르게 눈을 가렸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아…… 아아아아아!!”
정령사인 그녀답게 그녀가 발작을 할 때마다 그녀의 주변으로 정령 마나가 펑펑 쏟아진다.
그리고 나인테일 특유의 특질능력자 종족이 가지는 힘이 넘실거렸다.
그녀의 발작은 예상 내의 범위였다.
“아아아악!!”
눈을 가린 손으로 뜨거운 액체의 촉감이 전해져 온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마나 슬펐는지 그녀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더욱 강하게 그녀를 끌어안고 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안정시켜나갔다.
“괜찮습니다. 에이리아 황녀.”
“아아…… 아.”
“나에요 데이비.”
그 말에도 그녀는 쉽게 진정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그녀가 스스로 진정할 때까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손을 푸는 순간 그녀는 그때의 공포를 못 이겨 몸을 자해하려 들 것이다.
극히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한 그녀가 나인테일의 힘까지 써가며 자해를 했다간 그건 단순 자해가 아니라 자살의 범위까지 넓어질 테니 말이다.
딸꾹질이 서서히 멎어 들자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눈을 가리던 손을 떼어냈다.
공허하게 변한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에는 그 어떤 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저……”
이윽고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기억합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어디……까지요.”
“네.”
“분명 새빨간 게 날아들었고…….”
그녀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보통 이게 정상이긴 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는데, 별로 의미는 없었던 듯싶었다.
“여긴 다른 차원입니다. 당신은 살아났고요. 당신을 호위하던 기사들이 다수 죽긴 했지만 카트린느 대공이나 벨로스 경은 살아있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안전할 거에요.”
내 말에 그녀가 크게 움찔거렸다.
“아…… 아아……”
어찌할 줄 몰라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끌어안아 안정시킨 게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결국 양손으로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어, 어떻게 해…….”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고 한 것 같은데 내 귀에는 선명하게 들릴 혼란이었다.
한참 동안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그녀는 내가 그녀를 뒤에서 안고 감싸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얼굴 붉혔다
“세상에…… 세상에…… 데이비 왕자님이 이렇게 가까이……”
본인 딴에는 들리지 않게 중얼거린다고 하는 것 같은데 청각이 좋다 보니 아주 미약하게 중얼거리는 것도 다 들릴 지경이었다.
애초에 그녀와 내 거리가 거의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미 아웃이나 다름없다.
파르르 떨면서도,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그녀는 퍽 귀여운 모습이었다.
쫑긋거리는 귀가 추욱 늘어졌다가 다시 쫑긋 세워지길 몇 차례 반복한다.
이게 아닌 걸 알아서 당장 떨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은 하는 주제에 내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말없이 내 품 안에 포옥 안긴 채 갑판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던 에이리아는 결국 잠깐 이어질 이 꿈 같은 상황을 차라리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마음먹은 듯 편안하게 내 품에 안겨들었다.
따스한 체온과 함께 아직 긴장한 듯 파르르 떨리는 촉감이 전해져 온다.
그때였다.
“왕자님……. 저는 한번 죽었나요?”
“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고개 뒤로 돌려 나를 슬쩍 올려 보았다.
“그래서일까요……? 이상하게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에요. 저는 왜 하인스 영지로 가고 있었던 걸까요?”
그녀의 말에 느긋하게 그녀를 바라보던 내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 그게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왜 제가 하인스 영지로 향하고 있었는지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내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럴 리가요. 기억을 못 할 리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인스? 하인스…… 하인스……”
하지만.
“죄, 죄송해요. 하인스 영지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녀는 하인스 영지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단순히 큰 사고를 겪어 단기 기억상실이 생기는 건 주로 있을 수 있는 의학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그녀가 잃은 기억은 조금 특이한 부류에 속했다.
“하인스 영지가 어디 있는 곳인지 모른다고요?”
하인스 영지는 그녀가 한번은 실제로 찾아왔었던 영지였다.
직접 찾아와서 내게 이것저것 건네주고 기뻐했던 것도 그녀였다.
그런데 기억을 못 한다고?
“저기 에이리아 황녀.”
“네…… 네?”
“불여우 대공은 기억합니까?”
“네…… 네? 아아, 네. 기억하고 있어요.”
불안한 듯 그녀가 조심스레 답했다.
“그럼 당신의 오라버니는요?”
“알버스 오라버니…… 기, 기억해요.”
“린디스 제국이나 데오르트 황제는 기억합니까?”
재차 진행되는 내 물음에 에이리아는 불안함과 막연한 두려움을 품은 채 조심스레 답했다.
“네……. 기억해요.”
“그럼, 말입니다.”
이윽고 내가 천천히 물었다.
확인작업이 필요했다.
“당신이 나를 처음 만난 건 언제입니까.”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당연히 제국 황실에서……”
이럴 거 같더라니.
그녀가 나를 처음 만난 건 제국의 황실이 아니었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게 피부에 확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