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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98화 (397/1,559)

제 398화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무언가가 변했다.

죽음을 한번 겪으면서 생긴 후유증? 그 때문이 아니라는 건 직접 진찰을 한 내가 가장 잘 알았다.

그녀는 모종의 힘으로 기억이 변질, 혹은 삭제되어있는 상태였다.

단순히 봤을 때 단기 기억상실인가 싶지만, 과연 그렇게 어눌한 문제가 아닐 거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그녀는 나와 첫대면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하인스 영지에 대한 정보도 잃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나에 대한 그녀의 연심과 내가 그녀의 병을 치료해주었다는 사실, 그리고 꼬리를 보이는 것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나인테일 종족의 특성이 발현되었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또, 그녀의 기억은 여러 부분에서 불안정했다.

그녀는 내가 불여우 대공인 카트린느 카라벨라와 벨로스 경의 생존소식만으로도 안도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녀는 평범한 평기사라 하더라도 그녀를 지키다 죽어가면 눈물을 흘리는 이타심 많은 소녀였다.

그런 그녀가 수십 명의 기사가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이건 이상했다.

“저…… 뭔가 잘못되었나요?”

괜스레 불안한 듯 물어오는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확정되지 않은 요소로 안 그래도 불안해하는 이 소동물같이 작고 연약한 황녀의 멘탈을 흔들 필요는 없다.

“아뇨. 아무 문제 없네요.”

“휴…… 다행이에요.”

“뭐가 다행입니까?”

“저 때문에 이런 일을 겪으셨는데……, 제가 또 민폐를 끼쳤을까 봐…….”

빨개진 얼굴로 어찌할 줄 모르며 제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녀였다.

그때였다.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그녀의 배에서 공복을 알리는 아주 미약한 소리가 들려온다.

“읏……”

당황한 그녀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는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눈치를 살피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곱게 자란 그녀에게 이 같은 상황은 아마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런 걸 신경 쓸 내가 아니지만, 그녀가 내게 가지는 감정은 그러할 것이다.

부끄러운 모습은 하나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

누군가를 마음에 품어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걸 나는 모르진 않았다.

“일단 식사라도 해야겠네요.”

사실 식재료는 밑에 많은데, 그것들 정화마법으로 싹 한번 정리하면 못 먹을 것도 아니긴 한데……

굳이 먹을 게 있는데 그것들을 입에 댈 이유는 없다.

일리나와 함께 떨어졌던 심판자 도깨비들의 세상과는 다르게 이곳에는 딱히 큰 제약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죄, 죄송해요…….”

울어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모포를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카드첩에서 광대 놈들을 꺼내려다 멈췄다.

제어가 안 되는 이 미치광이들을 에이리아의 곁에 풀어놨다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빠르게 머리카락 두 가닥을 뽑아 분신체를 만들어낸 나는 깜짝 놀라는 에이리아의 곁에 놔둔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 어디 가시는 건…… 가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담담하게 답했다.

“아무래도 느낌이 영 싸한 게 확인해볼 게 좀 있습니다. 여기 잠시만 기다려요.”

그 몸으로 따라 나올 생각하지 말고.

내 말에 그녀는 풀이 죽은 듯 조심스레 고개를 파묻고 침묵했다.

* * *

나와 에이리아가 떨어졌던 거대한 배는 인기척이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던 것이라곤 처음 떨어졌을 때 그 광대 세 놈에게 신나게 썰려나간 바퀴벌레들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정말 유령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배는 누군가가 분명 큰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갑판을 지나 선실이 있는 내부로 들어가는 문은 누군가가 할퀸듯한 상처로 가득했다.

범인은 아마 그 거대한 바퀴벌레들일 것이다.

끼이익…….

사가가가각!!

내 예상대로 문을 열기가 무섭게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에 나는 카드첩을 열어 그 미치광이 세 놈을 다시금 소환해냈다.

우우웅!

동시에 제법 위풍당당한 자세로 세 명의 회색빛 피부를 가진 미친놈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따다다다다닥!

이를 부딪치며 웃는 녀석.

“화하하하하하하하!”

기이한 웃음을 육성으로 터뜨리는 녀석.

“……”

말없이 눈을 빛내며 나를 보고, 제 바지춤을 풀어 내리려 하는 녀석까지.

하나같이 멀쩡한 자식이 없다.

“뒤지기 싫으면 정리하자. 넌 한 번만 더 그 흉물 꺼내려고 들면 손수 잘라버릴 줄 알아라.”

싸늘한 내 경고에 마지막 녀석이 짧게 혀를 차고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어둠 속에 펼쳐진 소리의 근원을 향해 안광을 빛냈다.

[라이트]

“5분이면 충분하지?”

내 말에 녀석들은 대답 대신 오러블레이드를 마구잡이로 뽑아 들며 파고들기 시작했다.

성질머리가 저 모양이라서 그렇지 놈들의 힘은 내 영혼이 본래 힘을 찾을수록 점차 강해진다.

물론 그래 봐야 소드마스터 정도에서 조금 더 강해지는 수준이지만 이런 놈들을 상대로 가정했을 때 그 무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화하하하하하!!”

기이한 웃음을 터뜨리며 한 놈이 순식간에 숨어있는 거대 바퀴벌레들을 향해 덤벼든다.

바퀴벌레들은 갑작스런 공격에 빠르게 반응하여 반격을 개시하지만…….

퍼석! 콰앙!

미치광이들은 그딴 것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학살극을 벌이기 시작했다.

난장판이 되는 내부를 무시한 채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피로 추정되는 얼룩들이 잔뜩 묻어있는데 시체로 추정되는 것들은 단 하나도 없다.

“전부 먹어치웠나.”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 나는, 곧 커다란 문이 굳게 잠긴 곳을 발견했다.

이에 말없이 문을 바라보고는 바퀴벌레의 등껍질을 썰매 타듯 타며 놀고 있는 한 놈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마스터키.”

내 발언에 녀석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더니 이내 도끼를 들고 거대한 문을 한 차례 후려쳤다.

콰직!!

동시에 삭을 대로 삭아버린 목재 문이 우지끈 부서지며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

그 내부의 모습을 바라본 내 시선에 딱 한 가지가 걸렸다.

적당히 커다란 선실은 지휘실로 추정된다. 거기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가장 상석으로 보이는 곳에 새겨진 문양은 이곳이 어디인지, 또 왜 이런 꼴인지 금방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할 순 없다.

존재하는 것은 딱 한 가지.

내 눈에 보인 문양은 다름 아닌 린디스 제국의 황실을 상징하는 쌍두룡의 문양에 피가 잔뜩 묻은 모습이었다.

* * *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온몸을 비비 꼬던 에이리아는 고요하디고요한 바다를 흘끗 바라보았다.

너무 조용하고 평화롭다.

오히려 그 때문에 무서울 법도 한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데이비라는 인물이 이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에게 데이비라는 존재는 너무 든든한 사람이었고, 안도감을 주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의 무력은 관계없이 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안심된다는 건 정말 설레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데…… 어째서 내가 데이비 왕자님만 보면 이러는 걸까…….”

자신이 언제부터 그에게 이렇게까지 반해있었던 것일까.

분명 그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그를 향한 마음은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원인을 되짚어보자면 실상 잘 떠오르지 않았다.

막연하게 좋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한 남자를 사랑한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엔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좀 더 소중하고, 좀 더 필요한 무언가가 있었을 텐데.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 무언가를 되짚기 위해 생각을 거듭했다.

조금만 생각하면 될 듯한데……, 조금만 더 하면 될 듯한데…….

그렇게 생각하던 중 그녀는 왜 자꾸 좀 전부터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향기를 찾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순간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에 핑하고 도는 두통에 크게 비틀거렸다.

“우웁…… 웁!!”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형용할 수 없는 절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왜 이게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일까.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그녀였다.

그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그 여자의 습격에서 자신은 죽었고, 카트린느는 죽음 직전의 상황에 놓였다.

벨로스 경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상황에 놓였었다.

그 사실을 직접 들은 주제에.

왜 자신은 그녀 본인을 지키기 위해 따라나선 수많은 기사의 죽음을 떠올리지 못했는가.

“아아…… 아아……”

눈이 크게 뜨여지고 시선의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힘이 빠진 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파르르 떠는 손이 나무 바닥을 부술 듯 강하게 긁어 내렸다.

뚜둑…… 뚝…….

결국, 검지 손톱이 부러졌다.

눈물이 뚝뚝 흘러내려 당장 통곡하고 싶은데 목소리조차 쉬이 나오지 않았다.

타다다다닥.

파악!!

그때였다.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에이리아는 쓰러진 자신의 몸을 누군가가 황급히 끌어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아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아아…… 와…… 왕자님……. 기사…… 기사분들이…… 저 때문에 기사분들이!!”

대체 자신은 무엇을 위해 기억도 나지 않는 하인스 영지라는 곳을 향해 가고 있었던 건가.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것만 아니었다면, 이토록 전부가 죽음을 맞이할 일도 없었을 텐데.

“괜찮아요. 괜찮아. 그들 모두 살아있습니다. 전부요.”

조용하게 다독이는 목소리에도 에이리아는 쉬이 진정하지 못했다.

그저 통곡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패닉에 빠져 계속해서 고장 난 인형처럼 계속해서 고통스런 신음을 흘렸다.

“괜찮아요.”

어지간해선 당황하거나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데이비는 그저 말없이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두 괜찮아요. 황녀님.”

그 말에 어째서 안정되는 것인가.

분명 자신은 그를 사랑하는데, 그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그에게 치료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분명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녀였다.

“아무래도 주변 조사를 좀 더 해봐야 할 거 같습니다. 여기 아무래도 굉장히 익숙한 곳 같거든요.”

“……”

파르르 떨던 에이리아의 눈빛이 그에게 향했다.

그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굳어있었다.

“와, 왕자…….”

“푹 주무세요. 일어날 때까지는 곁에 있을 테니.”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졸음이 몰려왔고, 에이리아는 반응도 못 한 채 쓰러져 버렸다.

* * *

기억의 혼선? 웃기는 소리다.

에이리아는 단기 기억상실에 걸렸다.

아니, 정확히는 단기 기억상실이 아니라 기억 말소 중이다.

[피시전자가 평생에 걸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의 삭제.]

처음엔 페널티가 내게 올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페널티라는 게 꼭 내게 오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웃긴 것은 그녀가 평생에 걸쳐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것이, 가족이나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고작 몇 번 만난 게 전부인 나와의 기억이라는 점이었다.

그 시작으로 그녀는 하인스 영지라는 정보와 나를 처음 만난 순간을 잊었고, 그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게 시작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그녀는 황실에서의 일도, 오늘 일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나와 만난 모든 사실을 잊어버릴 것이다.

일생에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게 한 사람과의 기억과 그 사람에 대한 일이라니 처참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기억 삭제는 조금 이상한 면이 있었다.

어째서 기억이 지워졌는데.

그녀의 나를 향한 연심은 지워지지 않았는가.

기억이 아직 남아있어서? 본래대로라면 첫 기억이 지워졌을 때 그녀의 나를 향한 애정도 반쯤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게 언제 증발할지는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그녀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나인테일 종족의 특질능력은 기억과 연관되어 본능이 발현되니 말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있는 이 바다가 문제였다.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이 슬슬 보이자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태초의 달, 사일러스.

최후의 달, 크리아스.

저 두 개의 달이 뜬 세상은 딱 하나뿐이고, 그 세상은 다른 곳에 있다.

내가 아는 같은 세상이되 다른 세상이 되어버린 유일한 변수는 딱 하나뿐이다.

나는 확인을 위해 빠르게 신궁 아폴론의 마법을 사용했고, 한쪽 눈을 극도로 강화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확인한 뒤 마법을 해제하며 한 손을 허공을 향해 뻗었다.

[템페스트(폭풍)]

다량의 마나를 쥐어짜 폭풍을 일으킨 나는 그 힘으로 이 거대한 배를 빠르게 밀어붙였고 시야에 닿은 검은 땅덩어리 쪽을 향해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잔잔한 바다 위를 움직이는 배의 상태를 확인한 뒤 나는 기절한 에이리아를 천천히 업었다.

동시에 나를 따라 흘끗 나왔던 세 미치광이 중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 나와 자신의 바지춤을 또 풀기 시작한다.

퍼억!!

망설임 없이 놈의 고간을 걷어차 버린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놈이 나를 노려보더니 짧게 혀를 차고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저 미친놈……

“본체.”

그때였다.

장난만을 일삼던 광대 중 하나가 기이한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고민한다.”

“그래 고민 중이다. 기억 말소를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지만 잊어버리면 모르게 된다.

차라리 모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아주 잠깐이라도 그녀가 그 기억을 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인지시켜주어야 하는가.

그건 여러 면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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