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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01화 (400/1,559)

제 401화

“왜……, 그러세요?”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 주변을 둘러보는 내 모습에 에이리아가 불안하게 물어왔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은 곧 다시금 사라져버렸다.

주신 프리아 여신이 아무런 거래도 던지지 않았던 세계다.

보통 차원 열쇠가 활성화될 때마다 무언가 요구사항을 던지던 프리아 여신이 침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번엔 꽝이구나 싶었지만, 실상 그건 또 아닌 듯 보였다.

이후 나는 말없이 그녀의 다리를 잡아 펴고는 그대로 머리를 베고 누워버렸다.

“꺅!?”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녀는 이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시선을 피해버렸다.

“소원 이루어졌네요.”

“그러…… 네요. 정말 꿈만 같아요. 단 하룻밤의 꿈이라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을 거예요.”

조심스레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엔 어느 정도 힘이 빠져있었다.

슬슬 수마가 몰려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마, 자고 일어나면 그녀는 나에 대한 기억을 또 다수 잃거나.

아니면 나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릴 공산이 컸다.

말없이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있던 나는 문득 그녀의 시선이 내게 향해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말없이 나를 보던 에이리아의 목울대가 침을 삼킨 것처럼 한 차례 미동했다.

그리고는 마치 홀린 것처럼 내게 다가왔다.

아주 잠깐이었다.

각성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마치 달빛에 취한 것처럼 그녀는 내게 입을 맞춰왔다.

멍하니 있던 나는 그녀의 기습적인 키스에 침묵했다.

“……”

순간적으로 머리에 피가 쏠렸는지 순식간에 고개를 들어 보인 에이리아는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린 채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에 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려던 찰나.

내 시선이 일순간 도시의 절반을 막아서고 있는 장막으로 향했다.

분명 뭔가 변화가 생긴 거 같은데.

“그러니까 이건 저도 모르게……”

그 말과 함께 그녀의 고개가 다시 한 번 떨구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기습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아주 자연스럽고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

고요하게 잠든 것이다.

지쳐 쓰러질 만큼 눈물을 흘리던 그녀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조용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나는 슬슬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페르세르크에 어느 정도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에이리아에겐 다른 묘한 느낌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조용히 숨소리만 내며 잠들어있는 그녀를 천천히 안아 든 나는 4방향에 설치한 알람 말뚝을 박은 뒤 아공간에서 푹신하고 커다란 나뭇잎 수십 장을 꺼냈다.

한 장 한 장 크기가 사람의 상체만 해 그것들이 쌓이니 보통 크기가 아니다.

푹신한 침대를 완성해 그녀를 조심스레 눕혀주고 모포로 덮어준 뒤 카드를 꺼내 들었다.

스르륵…….

동시에 세 미친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리아를 지켜. 아마 별일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에이리아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너희 전원을 내 손으로 아작낼 거다.”

내 말에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던 도끼를 든 녀석이 에이리아를 바라보고 자신의 바지춤을 흔들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바스타드 소드를 든 녀석이 이를 따다닥 부딪치며 물어왔다.

“거. 사.”

“주둥이 함부로 놀리다가 죽는 수가 있다.”

“……”

괜히 불만 어린 표정으로 물러나는 녀석을 뒤로한 채 나는 그나마 가장 멀쩡할 것으로 추정되는 세 번째 놈을 향해 말했다.

“당장 위험 요소는 없을 거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너희는 에이리아를 지켜.”

아마 날이 밝으면 그녀는 더 많은 기억을 잃을 확률이 높다.

아마 나를 향해 보여주던 그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더 이상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경계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야 약간의 괴리감만 있을 뿐이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진짜 문제는 앞으로였다.

아무리 미친놈들이라 해도 말을 듣게 하는 법은 있다.

“말 잘 듣고 임무 수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니들이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하게 해주마.”

거짓말이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속은 놈이 잘못이니까.

당장 페르세르크가 보았다면 내로남불의 화신 그 자체라며 혀를 찼을 소리를 하는 나였다.

* * *

시선은 어디서 오는 건지 쉽게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세 미치광이 광대 녀석들에게 에이리아의 신변 보호를 맡겨놓고 배를 떠나 다시 해안 도시 발카스로 들어온 나는 진입을 막고 있는 장막을 두어 차례 두드렸다.

이곳은 조금 신기한 곳이었다.

아직 제대로 조사된 것은 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시선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초월적인 무언가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그 위치 특정이 안 될 정도로 넓은 범위에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퉁…… 퉁퉁…….

옅은 장막을 두 차례 두드려본 나는 이내 한 손을 강제로 반투명한 장막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통과가 안 되는 장막 내부에 내 손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츠츳…….

다만 그 결과는 내 예상과는 달랐다.

“어?”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절대 내 침입을 허용하지 않던 장막이 처음으로 내 손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문득 누군가의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그렇게 속삭인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장막을 통과한 내 육신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그동안 걸려있던 리미트가 이 장소에 한해서 폭주하기라도 하듯 멋대로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내가 방금 통과한 장막을 기준으로 세계의 흐름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내 몸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모든 힘이 내 육신에서 넘쳐 흐르며 주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전, 초대 리치 닉스를 단순히 마나의 방출만으로도 짓눌렀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와 큰 양의 차이는 없지만 지금 내 상태가 가장 중요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었길래.

장막을 넘어서기가 무섭게 내 육신과 혼이 완전동기화를 이루기 시작한 것인가.

뭐가 되었건 이놈의 세계는 이상하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장막 밖으로 다시 걸어나간 나는 마치 스위치가 내려가는 것처럼 다시 괴리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육신과 혼의 동기화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쿠웅!!

하늘을 날던 거대한 무언가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를 향해 다가왔다.

분명 방금까지 없던 존재로 다름 아닌 거대한 흑비룡이었다.

드래곤 과의 몬스터로 주로 마족들이 사육하여 기르는 몬스터다. 흉폭한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마족과 비슷하게 강한 힘을 가진 존재를 다룬다는 말도 있다.

인기척도 없었고 이만한 크기의 존재가 근처에서 대기 중이었다면 장막이 있어도 모를 리 없는 나였다.

하물며 이렇게 거대한 존재라면 말이다.

놈 크기는 약 10여 미터에서 크게는 30여 미터 정도로 흑비룡의 주식은 주로 육식, 그리고 주공격은 무기가 안 통하는 압도적인 내구력을 기반으로 한 육체 공격과 검은 마기를 내뿜는 브레스가 메인인 위험 몬스터이기도 했다.

놈의 비늘은 보통 검이 잘 먹히지 않기로 유명했고 놈의 날개는 지상에 있는 수단을 매우 화가 나게 하기로 유명했다.

치악력은 보통 악어형 몬스터의 수배에 달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으며, 마나 또한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서 상위급 몬스터로 분류되는 희귀종이기도 하다.

보통 같으면 놈은 내게 다가오기도 전에 꼬리를 말았어야 했다.

실제로 9서클 마법사조차 내뿜는 마나로 짓누를 정도로 방대한 마나가 내 몸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혼과 육신의 동기화.

보옥의 힘을 통해 회랑의 힘을 내 육신과 강제로 싱크로 한다.

본래는 불가능한 방법이다.

하지만 [보옥]은 그것을 아주 잠깐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보옥은 현세계수 알이 부활할 때 주신 프리아 여신이 자신의 힘을 응축하여 만들어내게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대체 이놈의 세계는 뭔데 장막을 넘어서자마자 내게 이런 말도 안 되는 변화를 일으킨단 말인가.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이미는 흑비룡을 개무시한 채 나는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이곳의 존재 자체가 괴리감을 불러일으키는 세계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존재해선 안 되는 세상이기에 여기서 벌어지는 어떤 일도 상식적인 선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이곳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잠깐만, 그렇게 제멋대로 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에이리아의 기억을 어떻게 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입을 쩌억 벌리고 나를 한입에 삼키려 드는 흑비룡의 검은 그림자에 시선을 돌렸다.

퍼엉!

동시에 아주 깔끔하고 옅은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는 이 거대한 비룡의 입을 빠져나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언제 뽑혀 나왔는지 모를 홍단이가 허공에서 춤을 추듯 움직이며 내 손에 가볍게 안착했다.

툭…….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놈의 머리 위에 달린 뿔에서 홍단이의 날카로움에 잘려버린 듯한 브로치를 볼 수 있었다.

마족의 문양, 그리고 익숙한 한 소녀를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마왕 페르세르크.

이곳을 마족이 지배하게 한 실질적인 1등 공신 중 하나.

내가 살던 세상과 같은 소녀였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달라지며 비운의 존재가 되어버린 인물이다.

쩌억…….

이윽고 느긋하게 놈의 거대한 입에서 걸어 나온 내가 미련 없이 걸음을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 놈의 거대한 비늘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놈에게서 한참 동떨어진 순간, 불균형한 육신을 지탱하던 것들이 모조리 끊어지며 흑비룡의 거대한 몸체가 수십 조각으로 나뉘어 무너져 내렸다.

뭐가 되었건.

퍼드득…… 퍼드드득…….

“침입자다!”

“인간? 인간이 어떻게 이곳에……”

“뭣들 하나! 움직여라!”

중요한 건 한가지다.

심연의 간섭이 없어서 극도로 이지한 난이도를 지닌 이세계의 놈들에게.

동기화가 끝난 울트라 나이트메어급 난이도를 클리어한 놈이 떨어지면 어떤 재앙이 벌어지는지 뻔하다는 것을.

그리고 내 관심사는 이놈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는 흑비룡을 시작으로 서서히 몰려드는 하늘에 뜬 블랙와이번과 마족들을 보며 시선을 돌리고 무시해버렸다.

그리고는 가볍게 마나를 모조리 방출하여 거대한 폭기를 만들어냈다.

콰앙!!!

동시에, 마나에 민감한 블랙와이번 한 마리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한 채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현재 내 관심사는 한가지.

이 정체 모를 꺼림칙한 시선의 주인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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