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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07화 (406/1,559)

제 407화

128. 평행선의 규칙

내 절규에 주변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하게 뒤틀렸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보건 내겐 전혀 신경 쓸 부분이 되지 못했다.

지금 당장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울드]와 처음 마주쳤을 때 골렘 연구실을 깡그리 털어 가져왔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뭐 때문에 그놈을 만들었는데!”

절규하듯 무너지는 나를 보는 표정들이 심상찮았다.

“폐하……, 이상한…… 인간 같은데요.”

배꼽과 허벅지 아래가 드러난 야시시한 복장을 한 페르세르크는 확실히 달랐다.

공허한 눈동자의 그녀가 입은 복식은 마족 특유의 개방적인 전통 복식의 느낌이 물씬 들었다.

마족도 파괴를 좋아하기보다는 오랜 시간 증오가 억눌려온 케이스였으니 말이다.

내 외침에 조용히 눈을 내리깐 그녀의 위협적인 힘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나 강자가 아닌 이상 절대 나와 같은 이런 기이한 기행을 벌일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시선에 보인 것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나는 쓰디쓴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안된 것을 무작정 후회한다고 일이 해결될 리는 없으니 말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나는 천천히 발끝부터 머리에 돋아난 뿔의 끝까지 아주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스릉…… 서걱!!

그때였다.

가만히 보고 있던 내 앞으로 검은 갑옷을 입은 칠흑의 기사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검을 뽑아 휘둘러온 것이다.

실로 놀라운 속도였지만 나는 한발 슬쩍 빼 몸을 튕기는 것으로 공격을 상쇄시켰다.

“피해?”

나를 향해 서늘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사내의 음성에는 살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감히 그 음흉한 눈빛으로 폐하를 직시한 죄, 눈을 뽑아야……”

상당히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최단거리로 파고들어서 숨통만을 노리는 걸 보면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많이 해온 이들의 손놀림이었다.

적당히 거리를 벌린 채 나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 거리를 벌렸는지 뇌광의 화살에 대량의 마기를 머금고 당장에라도 견제할 듯한 그 행동에 내가 움직이려던 찰나.

“그만…… 두어라.”

한 손으로 머리를 짚고 있던 페르세르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묘하게 저항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만…… 쓸데없는 살생은…….”

“폐하! 인간은 모두 척살해야 하옵니다!”

“폐하. 이곳은 저희에게 맡겨주시고 세계수의 잔재를……”

“죽이진 말거라. 가능하면 생포해야 할 게야.”

짧은 명령이었다.

이에 칠흑의 갑옷을 입은 사내가 들리지 않게 짧은소리로 혀를 찼다.

“있어 봐, 아직 할 게 있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공격이 파고들어 왔다.

문제는 두 남녀뿐만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나타난 새카만 복장을 한 다크 엘프 살수들의 살기가 피부에 저릿하게 전해져왔다.

한 치의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덤벼들어 와 내 급소란 급소에 모두 칼을 들이미는 다크 엘프들은 확실히 마왕의 직속 호위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믿음직스러웠다.

“움직이지 마라, 인간. 폐하께서 넓은 아량으로 인간인 네놈을 살려두라 하셨다. 움직이면 급소를 노리는 검들로 인해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야.”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의문스럽네요. 특별히 강한 마나를 품은 인간은 아닌데……”

애초에 주변의 난장판을 보면 눈치를 채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담담하게 말한 내가 천천히 움직였다.

“움직이지 마라!”

그런 내 행동을 눈치챈 사내가 급히 소리쳤지만, 그보다 내 눈을 찌를 듯 겨누어진 검을 낚아챈 내 손이 더 빨랐다.

“비켜봐 이것들아. 지금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콰자작!!

그 말과 함께 내 손에 쥐어진 단검이 마치 과자처럼 부서져 내렸다.

그 결과에 놀란 이들의 공격이 쏟아졌지만 나는 가볍게 한 손을 움직였다.

쩌엉!!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와 함께 흑색복장의 다크 엘프 하나가 피를 뿌리며 튕겨 나갔다.

깜짝 놀란 그들이 반격하려 했지만, 그보다 내 손이 더 빠르게 파고들었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암살자 하나가 바닥에 처박힌다.

순식간에 나를 향해 공격해 들어오는 이들의 검은, 분명 약한 생물의 살갗 정도는 금장 찢어발길 만큼 날카로웠고, 거기에 오러까지 둘려서 어지간한 바위나 금속도 종이처럼 베어버릴 예리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자랑하는 그런 검을 맨손으로 낚아채 버리자 복면 사이로 드러난 눈에 경악이 어린다.

콰직!!

그리고 또 한 번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몇 명이 당해버리자 저들도 머리가 있는 이상, 이상을 눈치챘을 것이다.

빠르게 내 심장을 노리고 날아드는 뇌광의 화살을 한 손으로 낚아챈 뒤 목을 벨 듯 검을 휘둘러오는 검사의 공격을 막아낸 나는 그의 투구 아래로 보이는 섬뜩한 붉은 빛의 눈동자에 눈을 천천히 감았다.

투웅!!

그리고 뇌광의 화살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의 공격이 내게 쏟아졌다.

검을 낚아채기가 무섭게 검을 버린 그가 내게 육탄전을 시도해온 것이다.

순식간에 파고든 그의 주먹이 내 명치를 후려쳤고 나는 그대로 몸을 뒤로 튕겨 가볍게 그 공격의 힘에 편승해 거리를 벌렸다.

펑!! 펑펑!

뒤이어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공격이 들어온다.

묵묵히 그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겉에서 보기엔 내가 계속해서 밀려 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죽어라!!!”

그리고, 내 신형이 근처의 폐허가 된 나무에 처박히기가 무섭게 내 몸에 맹공을 가하던 그의 주먹이 급소를 노리고 정확하게 파고들려던 그때.

나는 계속해서 페르세르크에게 보내던 시선을 거뒀다.

이상한데.

페르세르크도 시선의 주인은 아니었다.

콰앙!!!

인중을 노리고 파고든 주먹을 빗겨내듯 쳐내자 그 충격파가 내 손끝을 따라 일대 지형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날려버렸다.

그래도 마왕 호위대라고 그 일대 수 미터를 그대로 뒤집어버리는 위력이라는 건 제법 흥미로웠다.

“윽?!”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은 것을 누구 탓을 할까.

계속해서 밀려나는 모습만 보여주었던 나는 곧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털어내 버렸다.

생각보다 묵직하긴 한데, 결국은 저쪽이나 이쪽이나 심연과 손을 잡지 않은 마족들의 수준은 뻔할 뻔 자였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퇴행한 인간보단 낫네.”

전쟁을 잊고 평화에 찌들어 살았던 인간들은 고대 시대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으니까.

그나마 척박한 곳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면서도 인간을 향한 복수심을 꺼뜨리지 않은 마족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뭐라고 지껄이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다른 세계에서 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다. 새겨들어라.”

뜻은 알아서 해석해도 좋다.

그 말과 함께 내 눈이 번뜩이고.

묵빛의 그의 투구가 허공을 날았다.

회색빛의 짧은 머리칼이 드러나고 사내의 경악 어린 표정이 내게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효과가 없지는 않구나.

그는 마치 믿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는 듯 움직이지도 못한 채 굳어있었다.

이후 나의 행동은 간단했다.

가볍게 팔을 움직여 그의 몸 일부분을 빠르고, 절도있게 격타한 것이다.

소리가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러운 공격은 반격하려는 그의 공격까지 모조리 궤도에 넣고 멋대로 휘저어버렸다.

투웅!!

청명한 소리와 함께 오른쪽 가슴 윗부분을 갑옷 채로 격타당한 그가 엉거주춤하며 물러났다.

그리고는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석상처럼 멎어있는 그를 향해 나는 좀 전 그가 내게 공격을 퍼부었던 부분을 가볍게 털어내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남은 초월자는 딱 하나뿐인데.”

콰직…….

짧은 스파크와 함께 누가 끼어들기도 전에 내 손에서 새카만 뇌전이 번뜩였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굉음이 사라졌을 때 모두가 본 것은 갑옷 채로 새카맣게 익어버린 채 내게서 수십 미터는 튕겨 나간 사내의 모습이었다.

“멜바크!!!”

깜짝 놀란 다크 엘프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인간!!”

그리고는 격노하며 내게 활시위를 당겼다가 그대로 멎어버렸다.

페르세르크가 혹시 도망갈까 봐 억눌러두었던 힘들을 모조리 개방하면서 저들도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것이다.

쿠웅!!

그대로 지상에 추락한 다크 엘프 여성은 피를 울컥 토하며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운 좋은 줄 알아.”

담담하게 말한 나는 다크 엘프 여성을 무시한 채 페르세르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으려다 멈췄다.

“흐음.”

애초에 그녀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뮤우의 시신을 보고 충동과 광기에 그저 몸을 맡기고 세계수를 불태워버렸지만, 그로 인해 생길 이세계에서의 여파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런 마당에 현재 이세상의 주축인 마왕까지 죽인다면.

친딸과 같이 키웠고, 그 어떤 이들보다 부모의 마음으로 사랑을 쏟았던 검신 하레스는 종족 전쟁을 끝내겠다는 일념으로 결국 그녀를 베어 넘겼다.

사명 하나로 버틴 그와 다르게 나는 그럴 생각도,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 정체가 대체 무어야.”

공허한 눈동자로 경계하며 나를 향해 물어오는 페르세르크의 질문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정체라…….”

조용히 읊조린 내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 세상에서 인간과 마족이 서로를 대면하고 보일 수 없는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리고는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름대로 심연의 마왕으로 각성한 바 있는 그녀였지만.

심연이 보여주던 힘에 비해 정작 마왕으로 각성한 그녀가 보여준 저력은 단순히 역대급 마왕수준의 힘 정도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강하다 해도 지금 내게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심연의 힘을 극도로 꺼리던 그녀가 힘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여왕이라 불리던 그녀의 위치는 심연에서 무력과는 연관이 없는 것인가.

갑작스런 내 행동에 그녀는 한발 한발 내게서 뒷걸음질 쳤다.

다시 대륙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인간을 봐왔을 그녀였지만 아마 나와 같은 케이스는 처음일 것이다.

“심연의 권능이 먹히질 않다니……. 대체, 그대.”

“아, 그거.”

나도 그랬지.

레이나를 처음 봤을 때.

미지의 적에 대한 경계심으로 날을 잔뜩 세운 그녀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었다.

무엇이 되었건 나는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었고, 그녀를 데리고 본래 세계로 간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플갱어 시스템이라고 하였던가.

한 세계에 같은 존재가 둘이 되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파멸한다는 시스템.

이미 레이나를 통해 한 차례 확인한 바가 있었던 나였다.

그러니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내가 해줄 거라곤 그녀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는 제어의 끈을 살짝 느슨하게 만들어주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마족의 영역을 인간이 어떻게 다루냐고?

내 직급은 마왕에 대적하기 위한 대적자이며.

벨리얼을 통해 정식으로 한차례 마왕위계를 승계받은 마왕이기도 하다.

그녀가 사용하는 권능만큼의 숙련도는 없지만 조금씩 조금씩 내 손에 마기의 운용이 익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렇게 손을 뻗으려던 나는 곧 들려온 목소리에 멈칫했다.

[멈춰라.]

속삭이는 듯한 노인의 그 목소리에 나는 순간적으로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처음부터 나를 바라보던 시선과 같은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그녀에게 손을 대면 규정치 이상의 간섭이 된다. 이미 손에 세계수의 피를 묻힌 자여, 이 이상 이세계에 간섭하면 자넨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네.]

“뭐?”

[그래도 손을 대고 싶다면 대어도 좋네.]

그 말에 나는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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