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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13화 (412/1,559)

제 413화

순식간에 엎드리는 마족들의 행동거지에 나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뿔이 없는 모양새 때문에 척 봐도 인간과 마족을 구분할 수 있지만, 이놈들은 좀 전 내가 내뿜은 마왕 특유의 힘에 이미 압도된 후였다.

이에 나는 조금 고민하다 망설임 없이 마기를 풀어헤쳤다.

쿠웅!!

“흐읍!”

동시에 엎드려있던 마족들이 더더욱 몸을 파르르 떤다.

“모두 꺼져라. 이곳은 나의 영역이니. 그 어떤 마족도 발을 들여선 아니 될 것이다.”

“하, 하오나 이곳엔 인간이…….”

“멍청한 놈.”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천천히 다가간다.

동시에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내 형태를 바꾸었다.

그러니까.

페르세르크의 모습은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순식간에 환영이 변했고, 저들의 눈에 내가 은발의 긴 머리를 가진 소녀로 보였을 것이다.

“폐, 폐하!”

동시에 쓰러져서 골골대던 소드마스터의 힘을 가진 마족이 눈을 부릅뜨고 필사적으로 기어왔다.

그 정도 스펙이 된다면 그는 페르세르크를 직접 마주한 경험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 어이하여 이곳에……”

“네놈 때문에 내 계획이 틀어질 뻔하였다. 알고 있느냐.”

내 말에 그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내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찧기 시작하며,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지, 지고한 폐하께서 하시고자 하신 일에 불충을 저지른 저를 죽여주옵소서!!”

가만히 두면 스스로 머리를 바닥에 깨 죽어버릴 것 같은 그 행동거지에 나는 조용히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고개를 들라.”

“어, 어찌 저 같은 비천한 마족에게……”

“나는 관대하다.”

“아, 아아…… 폐하!”

내 미소에 그는 마치 신을 영접한 사제처럼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모, 모주구즈라 하옵니다…….”

“그래 모주구즈.”

담담하게 말한 내가 조용히 물었다.

“나는 널 용서하마.”

“가, 감사하옵니다! 폐하!”

모주구즈를 포함한 마족들은 자신들의 신이나 다름없는 왕을 만났다는 것에 극도의 경외심을 보내온다.

반대로 내가 마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인간들의 표정은 거멓게 죽어갔다.

또 한차례 머리를 찧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허, 헌데, 폐하께서 어찌 이곳에……”

“그 질문을 네가 하는 것이더냐?”

“죄, 죄송합니다!”

급히 머리를 숙이며 그가 와들와들 떨었다.

“그래, 닉스가 시킨 것이더냐.”

“그, 그렇사옵니다! 닉스 참모장께서 군단의 사단장들을 모아 명령을 내리셨나이다! 대륙 각지에 퍼진 인간들을 잡아들이라 하옵시어……”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애초에 페르세르크는 상징이고, 무력의 일부, 그리고 권좌를 차지할 뿐, 이 사태의 메인 주범은 그놈일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던 참이다.

레이나의 말대로라면 이 사태의 모든 주범은 닉스의 부활과 동시에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폐, 폐하! 명령을!”

“그래. 너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향한 곳이 어디더냐.”

그 말에 그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를 내게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마왕의 힘은 누구를 거치건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페르세르크가 가진 특유의 힘보다는 그녀가 얻은 마왕의 힘이 그들을 움직이는 주 원동력일 테니까.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이 아는 마족들의 움직임에 대해 내게 술술 불고 말았다.

“그래. 알겠느니라.”

“허, 허면, 이 인간들을 어떻게 할까요, 폐하.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아니, 인간들을 억압하는 건 그만두도록 하지.”

내 말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어찌하여……”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이미 우리 군단은 많은 것을 얻어내지 않았더냐. 그리고 이들은 내가 중요한 실험에 써야 하니 털끝 하나 손대지 말도록.”

내 말에 그는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알겠사옵니다.”

“당장 이 숲을 수색하는 모든 병사를 데리고 떠나. 그리고 중앙 마왕성으로 향하고 있는, 노예로 잡힌 인간들을 모두 한곳에 모아라.”

“한곳에 모으란……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반발의 가능성이……”

“명을 듣지 않겠다고? 네놈의 앞에 있는 건 누구더냐.”

내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왕의 마기였다.

“지고의 존재이신 마왕 폐하이시옵니다!!”

“그런데 그대는 닉스 따위의 말이 감히 내 말보다 중하다 그리 말하는 것인가?”

“아, 아니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그의 외침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단순한 새끼들.

“닉스는 감히 나를 두고 스스로 마왕의 행세를 하려 드는 것인가?”

“그, 그것은……”

“감히!!!”

내 말과 함께 마기가 강렬하게 터져나간다.

마족들은 마왕의 마기를 알아보지만, 인간들은 그저 내 몸에서 특유의 힘이 터져 나온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충성심 하나는 대단한 놈들이다.

다만, 모주구즈와는 다르게 일반 마족들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모주구즈님. 하오나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닉스 참모께서 큰 벌을……”

그나마 머리가 좋은 한 마족이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그에게 반박했다.

하지만 모주구즈는 이미 내게 속아 넘어간 후였다.

“뭐라? 닉스 참모께서 큰 벌을 내려?”

그의 말에 마족 부하가 와들와들 떨었다.

동시에 모주구즈가 곁에 있던 몬스터 부하가 가진 거검을 높이 빼 들었다.

“큰 벌?! 감히 누가! 왕께 직접 명령을 받고 움직인 나를 누가 벌한단 말인가!”

“하, 하지만.”

“이 불경한 놈!!!”

퍼석!!!

잔뜩 격노한 그는 온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그렇기에 분노한 그의 얼굴은 더더욱 흉흉해 보였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져 버린 그의 몸을 대검으로 난도질한 모주구주는 곧이어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아…… 폐하, 불충한 자를 처리하였나이다…….”

“그, 그래, 잘했다.”

떨떠름하게 답하자 그는 마치 신을 영접한 광신도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가라, 닉스 참모가 감히 나를 향해 반기를 들었을 수도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너희가 알려주었다. 모주구즈.”

“예 폐하!”

“특명을 내리겠다. 이대로 모든 병력을 이끌고 닉스를 포함한 그와 함께하는 자들의 동태를 파악하라. 그리고 대륙 각지에 퍼진 사단장급 마족들에게 전부 내 명령을 비밀리에 전해라.”

“명 받들겠습니다!!”

내 명령을 들은 그는 벌떡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의 충성심은 대단하지만, 나는 그의 충성심을 십분 이용해먹었다.

“움직여라! 이 굼벵이 같은 놈들! 폐하의 명령을 어길 생각이더냐!”

부하 마족들은 멍하니 그와 쓰러진 부하를 바라보다 광기 어린 외침에 빠르게 답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늑대를 타고 사라져 가는 그들을 뒤로한 채 나는 겁에 질려 와들와들 떨고 있는 인간들을 스윽 바라보았다.

그중 에오니샤는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조금 기이한 물건을 손에 꼭 쥔 채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들 뭐합니까. 무기 안 내리고.”

“우, 웃기지 마라, 마왕!”

“인간의 원수!”

이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물론, 마족이야 살살 구슬려서 여러 정보를 캐내는 데 필요했기에 마왕의 티를 내긴 했지만, 이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당신들 눈에는 내가 마족으로 보이나?”

내 물음에 몇몇이 멈칫했다.

확실히 그들의 눈에는 내가 뿔이 달리지 않은 인간으로 보였을 테니 말이다.

“하, 하지만 방금 마족들은……”

“그놈들은 단순히 환상에 넘어간 멍청이들이고.”

이렇게 말하며 내 몸에 새겨진 환각 마법을 누구든 볼 수 있게 살짝 뒤틀어주자 내 주변으로 옅은 마나의 파장이 움직이며 내 형태가 일그러졌다가 다시 본래대로 돌아갔다.

“마…… 마법!”

그런 형태는 모르는 이가 봐도 무언가 마법이 걸려있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는 이들은 존재했다.

그런 그들을 어찌해야 할까. 애초에 갱생 여지도 없는 이 촌락의 인간들을 안심시켜봐야 무슨 의미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이었다.

“아악!!”

나를 바라보며 표정을 굳히고 있던 에오니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남편, 혹은 보호자로 추정되는 사내가 그녀를 부축했지만, 그녀는 쉬이 몸을 가누지 못하며 이를 악물고 고통을 호소했다.

“에, 에오니샤!”

“이런! 진통이 온 겐가!?”

“으윽…… 윽!!”

당황한 사내들과 아낙네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의원! 의원 없는가?!”

“없어요! 고른 영감님이 얼마 전에 숲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가 크게 다치는 바람에……”

“젠장!”

당황한 이들의 모습에 에이리아가 내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아이가…… 나오려는 건가 봐요.”

“그러네요.”

담담하게 말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몇몇이 나를 제지하기 위해 몸을 던져왔지만 나는 가볍게 그들을 밀어내고는 에오니샤에게 다가갔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이 아이는 내가 사는 곳에선 고작 십 대 초반의 천재 소녀일 뿐이었다.

대륙에서 시계의 왕녀라 불리며 휴대용 시계를 만들어내 엄청난 업적을 세웠지만, 이곳에서의 그녀는 힘없는 여성에 불과했다.

같은 사람일진대 주변에 누가 있었냐, 상황이 어찌 되었냐에 따라 한 사람의 미래가 바뀐 것이다.

“떨, 떨어져라, 마족!!”

내가 에오니샤의 곁에 다가가자 그녀는 필사적으로 내게서 물러나려 했고 다른 이들은 내 앞을 막아섰다.

“……그냥 죽게 두게?”

내 말에 주변인들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쌍둥이에 시기도 안 좋고, 병균도 드글드글하네. 이대로 애 낳다간 산모가 죽든지 애들이 죽든지.”

“네놈이 뭘 안다고!”

“적어도 당신네보다는 의술에 대해 잘 알아. 한 번만 더 개소리하면 입을 찢어버릴 테니 좀 닥쳐.”

싸늘하게 쏘아붙인 나는 에오니샤의 배를 손으로 잡아 신성력을 쏟아부으며 말했다.

“더 늦기 전에 수술한다. 깔끔한 방과 물을 준비해.”

“무, 무슨……”

“의원 말이 개같이 들리냐?! 빨리 움직여! 이 굼벵이들아!”

내 호통에 촌락민들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후다닥 뛰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에이리아는 나를 따라 수술을 돕겠다며 정령을 소환하려 했다.

하지만 세상이 다른 이곳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청명한 정령 마나를 활용하는 것뿐 정령이 소환될 리 만무하다.

“정령 마나면 충분합니다.”

물론, 정령 마나만으로도 충분했기에 나는 그녀가 나를 돕고자 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사, 살릴 수 있소?”

“잠자코 지켜보기나 해.”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바닥에 누워 끙끙 앓는 에오니샤의 배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눈을 가볍게 감고 마나를 살짝 퍼뜨려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통각경감]

[쇼크면역]

[6급 정화]

두 가지 마법과 한가지 신성 마법을 섞어 쏟아부은 나는 곧바로 메스를 들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피부가 갈라지는 모습을 본 에이리아는 창백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끝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고 에오니샤의 몸에 정령 마나를 쏟아부었다.

그녀가 가진 정령 마나는 다른 정령사들보다 더욱 청명한 느낌이 강했다.

아마 종족의 특징 때문이리라.

“으윽. 제발, 제발 아이만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자신의 아이를 살리려는 건지 에오니샤는 나를 향해 애원해왔다.

“애 아빠는 누구지? 어딨길래 코빼기도 안 비추고.”

내 물음에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뜨고 나를 노려본다.

답할 리는 없으니 나는 침묵하고 수술을 진행했다.

그녀에게 행할 수술은 간단했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분만될 수가 없는 상황이니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내는 수밖에.

현대 의학에선 이걸 두고 제왕절개라고 했었다.

자주 써먹는 수술방법이긴 한데. 과거엔 이 수술방식이 도입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죽기도 했었다.

에오니샤가 아이를 쉽게 낳지 못하는 체형이라는 건 알았다만, 실제로 보니 막막한 기분이다.

‘나중에 그 에오니샤가 아이를 낳기 전에 이 수술방식을 완전히 도입해야겠구만…….’

수술여건은 좋지 않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병균은 빠르게 정화마법으로 지워버리고 그녀의 육신에 가해지는 부담은 마법으로 처리한다.

내 손이 마치 신들린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의 히포크리아, 그녀가 가르친 기술이 여김 없이 발휘되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날카로운 금속음과 진통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에오니샤의 신음이 전부였다.

그런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나는 빠르게 그녀의 배를 갈았고 그녀의 몸 안에서 태어나기 위해 버둥거리는 쌍둥이 아이를 꺼내는 데에 성공했다.

고요하게 침묵하던 아이들은 내 손이 가볍게 엉덩이를 때리자 우렁찬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으아아앙!! 으아앙!”

“으아아앙!”

두 아이의 울음소리에 몇몇 촌락민이 눈을 크게 뜨고 안도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아이를 받아들고 탯줄을 자르는 나를 보던 에이리아는 깜짝 놀라 내게 소리쳤다.

그녀는 피가 묻어있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놀라 내게 소리쳤다.

“데, 데이비님! 이상해요! 아이가 울어요! 어, 어디 아, 아픈 게 아닐까요?!”

“아이가 태어나면 울어야 정상입니다.”

“우, 울어야 정상이라구요? 이, 이렇게 서럽게 우는데……”

“아이는 우는 것 말고는 자신의 상태를 표현할 방법이 없어요.”

“아……”

마치 진리를 깨달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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