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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18화 (417/1,559)

제 418화

조롱과 멸시, 비난으로 가득하던 거대 공동이 싸늘하게 식는 건 한순간이었다.

토병들 그리고 거석상, 마지막으로 이들의 왕으로 추정되는 왕관을 쓴 존재까지.

모두가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몸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단 한마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나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무릎을 꿇는 대규모의 토병, 그리고 석상들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부를 정도로 일사불란했다.

저들이 내게 충성심을 느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그것은 아니었다.

내가 한 것은 단순 그들을 규격 밖의 존재가 되어 명령을 내린 것뿐이었다.

보통 언데드라면 영혼 단위로 종속되어 내게 광적인 충성심을 보내왔을 테지만 이들은 언데드이면서도 미묘하게 무언가가 달랐다.

“크윽, 이럴 순…… 이럴 순 없다!”

그때 왕관을 쓴 토병이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며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왔다.

“오천 년이다! 오천 년간 나는 이곳을 통치해 온 섭정일지니!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를 네놈의 힘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고개를 조아려라.]

하지만 그의 부질없는 발악도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움찔거린 그 또한 결국 무너져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망자이되 망자가 아닌 자.

내 눈에 비친 그들의 정체는 그러했다.

“끄륵…… 끅……”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저항하는 그에게 다가가자 가까이에 있던 토병들이 더욱 몸을 납작 엎드리며 내게 두려움을 표시해왔다.

영혼이 쪼개지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는지 왕관을 쓴 토병은 제 손이 부서질 듯 바닥을 강하게 틀어잡았다.

그의 저항을 한번 볼까.

그런 생각이 든 나는 조용히 손을 휘저어 토병들의 왕으로 추측되는 그에게만 가해지던 압박감을 해제했다.

“프루그레프 문명 섭정의 이름으로 말하노라! 그 누구도 감히 나의 허락 없이 왕국과 백성들을 빼앗아갈 수 없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몸을 일으킨 그가 내게 덤벼들었다.

그의 허리춤에 채워진 흙으로 만들어진 검이 거칠게 뽑혀 나온다.

형태 고정이 되지 않아 바스스 흩어져야 할 검이지만 무슨 힘인지 검게 물들어 검의 형태를 고정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검이 지척에 닿았고 내 목을 치기 위해 휘둘러졌다.

콰앙!!!!

주변을 진동시킬 만큼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간다.

토검이 정말 날카로웠다면, 특이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내게 큰 상흔을 남겼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휘두른 검이 수십 미터 멀리 떨어진 토병들의 몸까지 반 토막 낼만큼 강렬한 검기를 만들어낸 건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검기는 토병들에 이어 내 뒤에 있던 에이리아에게 닿기도 전에 멈춰져 버렸다.

검은 기류를 끌어올린 내가 맨손으로 그의 검을 틀어잡아 검로를 막아버린 탓이었다.

흉폭하게 모든 것을 베어 넘기던 토검의 검기는 강제로 멈춰져 증발해버렸고 이내 힘을 잃은 토검이 풍화되듯 바스러져 사라졌다.

“여, 영혼조차 베는 검인 왕국의 보검, 크로노스가 어찌!”

“네 눈에는 내가 뭐로 보이나.”

담담하게 말하며 그에게 다가간 내가 그의 목을 틀어쥐고 그대로 짓눌렀다.

쿠웅!!

동시에 엄청난 양의 변질한 사령 마나가 뻗어져 나가며 그의 육신을 지면에 꿇려버렸다.

“이, 이럴 순……”

“다시 묻겠다.”

내 물음에 흙으로 이루어진 그의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네 눈에 보이는 나는 무엇이냐.]

내 말에 부들부들 떨며 반항하던 그의 몸이 이윽고 천천히 굳기 시작했다.

“……”

그리고, 짧은 침묵 끝에 그가 천천히 말했다.

“망자의 왕, 불완전한 심판자, 생명의 죽음 경계를 허물어뜨린……”

말끝을 흐린 그가 천천히 말을 끝맺었다.

“죽은 자의 지배자시여…….”

그의 목소리엔 좀 전의 적대의식은 사라진 경건함만이 남아있었다.

* * *

석상들은 멈췄고 토병들은 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을 프루그레프의 섭정이라 말했던 토병만이 남아내게 고개를 숙였다.

“지배자에게 경의를……”

굴종한 자의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지독한 불신이 어려있었다.

그것은 나를 향한 불신이 아닌 왕이라는 단어를 향한 불신이었다.

문득 궁금함이 생겼지만, 주객이 전도되는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멍하니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에이리아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긴장한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

그 눈빛에는 믿음보다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굳어있는 그녀에게 천천히 손을 뻗는다.

“읏……”

그러자 겁에 질린 그녀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녀는 인간보다 감각이 예리한 수인족이다.

그것도 보통 수인과 다른 특수한 힘을 다루는 나인테일 종족.

그런 만큼 그녀도 조금 전의 현상을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 알지 못해도 그 누구보다 피부로 깊게 체감했을 것이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섬뜩할 정도의 어두운 힘을 말이다.

자신에게조차 그 영향이 미칠까 두려워 눈을 감은 그녀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의아한 듯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말없이 내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나는 당신을 헤치지 않아요.”

내 담담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본능에 가까운 두려움 때문에 내게 두려운 시선을 보내왔다는 것을 스스로가 인지한 것이다.

“흑…… 흐흑. 미안해요, 미안해요.”

말없이 그녀를 끌어당겨 등을 토닥여주자 그녀는 내 품의 옷깃을 꼭 잡고 구슬프게 흐느꼈다.

종족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나인테일 종족에겐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의 힘은 혼령의 힘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사령 마나를 넘어 영혼 자체를 간섭하는 조금 전의 나의 힘은 그녀에게 치명적일 정도로 두렵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한참 동안 흐느끼던 그녀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그녀의 팔을 잡아 결계를 열어젖혔고 그녀의 손에 은율의 솔방울을 쥐여주었다.

투웅!!!

동시에 그녀의 육신이 크게 흔들렸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을 스르륵 감으며 쓰러져 버렸다.

조용한 숨소리만 내며 기절한 그녀를 바닥에 천천히 누이기가 무섭게 관조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가 바란 것이 정말 기억을 되찾는 것이라면, 그 솔방울은 반드시 대답할 걸세.]

그의 말에 평소라면 장난스럽게라도 받아쳤을 테지만 나는 무시로 일관한 채 섭정에게 다가갔다.

[이들은 불신으로 가득하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에 대한 불신으로.]

그의 말에 나는 섭정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말하라. 네 불신의 이유는 무엇이냐.”

내 물음에 그는 몸을 더욱 웅크릴 뿐 말하지 못했다.

“말하라.”

하지만 그런 그의 저항도 두 번째 질문에 완전히 무너졌다.

“왕은…… 왕국을 버린 왕은, 탐욕에 찌들어 해서는 아니 될 금기를 범했사오니……”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오만함이 하늘에 닿아. 신을 분노케 하였나이다.”

신의 분노를 샀고 그 결과, 저주를 받았다.

대체 어떤 금기를 범해야 간섭하지 않는 신이 한 왕국 전체를 저주받은 망자로 만들 수 있는 건지.

“왕은…… 우리를 버렸습니다. 왕은 우릴 기만하였고 속였나이다. 그가 받아야 할 저주는 왕국민이 받았고, 그런 왕국민을 구하겠다며 왕국을 벗어난 왕을 기다리기를 5천 년이 흘러나이다.”

그의 목소리엔 왕이라는 단어를 향한 증오심이 가득해 보였다.

“5천 년……. 왕은 우리를 버렸사오니! 신의 저주를 받아 오랜 시간 증오가 쌓여온 왕국민들에게 남은 것은 증오와 복수, 그뿐이오!”

생명체였다면 피눈물을 흘릴 것처럼 격노하는 그 모습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5천 년 전 잊힌 문명.

관조자의 안내를 받아 찾아온 이곳에선 저주받은 왕국민들과,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돌아오지 않는 왕을 향한 갈 곳 잃은 증오심만이 가득했다.

“절대적인 죽은 자의 지배자시여. 우릴 구원하소서.”

그 말에 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그들의 힘의 원천은 5천 년간 축적된 증오와 신이 내린 저주, 그리고 지켜지지 않는 왕의 약속이 맞물린 결과였다.

보통 언데드도 아니고 산 채로 신의 저주를 받아 망자가 된 자들이다.

이 정도의 사기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갈 곳 잃은 증오는 이 유적의 침입자인 나와 에이리아에게 쏟아지고 있었으니 그만한 힘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강대한 힘, 언데드이면서 그 누구도 다루지 못하는 절대적인 존재.

5천 년에 달하는 시간을 이 유적에 갇혀있었던 존재.

묵묵히 생각하던 내가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손끝에서 발현된 새카만 마법진이 천천히 떠오르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거대한 마법진으로 변했다.

[임퍼펙션 데스로드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다시 한 번 이어진 스산한 목소리에 토병들이 일제히 자신들의 무기를 뽑아 들고 제식을 맞추듯 검을 하늘로 향하게 세웠다.

망자에게 가해진 신의 저주.

그 저주는 신이 풀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는 가능했다.

모두가 침묵한 채 나를 보는 와중에 내가 천천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에게 가해진 모든 저주를 내가 가져가겠다. 비록 저주가 사라질지라도 너희들의 혼에 남은 힘은 적지 않을 터. 나를 섬겨라. 나를 따라라. 나를 도와 검을 들어라.”

그들의 영향이 닿을 수 있는 곳은 고작 이 평행세계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말과 함께 모든 토병들과 거석상들의 몸에서 검은 기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아니고 수천수만, 혹은 그 이상 될지도 모르는 수많은 영혼에게 가해진 저주가 마법진을 통해 모조리 내게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저주의 내용은 단 한 가지.

영원히 이곳에 갇혀 산자로서의 저주를 받아들이는 것.

그런 내 선택에 관조자는 물론이고 정작 구원을 바랐던 프루그레프 왕국민들조차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저, 절대자시여! 어찌하여!”

신의 저주는 신이 아닌 이상 풀 수 없다.

한둘도 아니고 왕국민 전원의 저주를 먹어치운 이상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프리아 여신이 지금 이 사태에 이르렀음에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바람이 지금 내 행동과 모두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란 소리일 터다.

아무리 영향력이 약해졌다 해도 평행선까지 넘어가서 무리수를 일으키고 있는 나를 그냥 둘리가 없으니까.

“아…… 아아!”

비통한 목소리로 무릎을 꿇고 소리치는 섭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외에 괴로워하는 왕국민들의 외침도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전신을 감싸는 새카만 기류에 시야가 흔들릴 정도의 저주가 몸에 내렸다.

마법진으로 저주를 받아들인 내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내 전신은 저주의 여파로 새카맣게 변해버렸고 마치 화염처럼 변해 검게 타올랐다.

자신들을 구속하는 힘이 사라진 프루그레프 왕국의 저주받은 망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저주를 모조리 삼켜버린 내 곁을 떠나지도 못한 채 바들바들 떨었다.

“이거면 됩니까?”

왕국민들을 구하겠다 약조하고 그 약속을 어긴 뒤 도망쳐버린 프루그레프 문명의 왕.

내 부름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둔한 자 같으니……. 그것을 자네가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네.]

“이제 숨기지는 않으시네.”

[자네는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지 않았는가. 이 유적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대충 짐작만.”

착잡한 목소리로 그가 조용히 말했다.

[늦지 않았네. 내게 모두 넘기게. 자네가 이 일에 휘말릴 이유는 없어.]

“뭐라는 겁니까.”

내 말에 목소리가 침묵했다.

그래, 확실히 신의 저주는 위험하다. 신이 아니면 풀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도 저주는 엄연히 신이 내린 하위저주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게는 신과 저주에 관련되어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두 가지 힘이 존재한다.

신의 힘까지 멋대로 간섭하고 독립하는 금기의 업보.

그리고, 로 아이아스가 내게 건 저주면역의 부가효과를 가진 [흐름 거부].

말없이 손을 뻗어 몸 안에 잠들어있던 한 가지 힘을 깨우기 시작하자 일대가 변하기 시작했다.

신의 저주가 강한 이유는 신의 힘이 지속해서 저주에 그 위대한 의지의 힘을 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링크를 끊어버리면, 결국 그놈의 저주도 주체를 잃은 잔재가 될 뿐이다. 또한, 내게는 그런 저주의 잔재 따위는 얼마가 뭉쳐지건 상관없었다.

또 한가지 힘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로 아이아스가 내게 건 흐름 거부의 저주.

콰직…….

내 몸 안에 스며든 저주의 덩어리가 거대한 균열을 일으켰다.

다른 그 어떤 존재도 할 수 없는, 내 스승이었던 로 아이아스조차 이것만큼은 나를 흉내 낼 수 없다.

오로지 영웅들의 모든 힘을 전수받은 나만이 가능한 복합적인 힘의 운용이니까.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져 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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