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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29화 (428/1,559)

제 429화

132. 심연의 공주와 동기화를 마친 괴물 (2)

일주일은 정작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겐 큰 시간이지만 주변인들에겐 그렇지 않을 수밖에 없다.

서로 간을 보는 정도.

나와 손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한 은신처의 잔류 저항군들은 처음엔 단순히 어차피 죽을 목숨,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데려가고 죽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와 함께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고작 소수의 인원을 수용하던 동굴은 이제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며 주 거주지로 삼기엔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고, 일대의 마족을 몰아내며 빼앗은 요새가 이들의 쉼터이자 거주지가 되었다.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천연요새인 만큼 뚫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한 마족들이 방비를 허술히 하다가 토병들에게 머리통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동안 패배는 인간의 몫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방패 삼아 도망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인간들은 평화에 찌들어 위험에 대비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렇게 희망이 모두 사라져 가는 줄로만 알았건만, 단 한 명의 인간이, 그리고 그가 이끌고 나타난 존재들로 인해 모든 것이 변했다.

수천, 수만, 그 수를 정확히 특정하기 힘든 토병과 거석상.

그들은 수도 많은 주제에 그 힘도 보통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마치 신이 내려준 군대 같은 그 엄청난 위용에 좌절하던 사람들은 그 속에서 죽어있던 한가지 감정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 자신들의 땅에서 저 적들을 몰아낼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당연히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소수의 저항군과 함께 일대의 마족들, 그리고 추가로 출정해온 마족들을 몰아내는 토병들은 그야말로 신의 사도 취급을 받을만했다.

“아…… 아아…… 신의 군대가 돌아온다!”

“신께서 역시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어!”

또 한차례, 근처 요새 하나를 날름 털어먹고 돌아오는 토병들의 모습은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다.

본래 자신들의 일을 마치면 흙으로 돌아가던 그들이었지만 내 명령에 따라 그들은 마치 신의 군대가 된 것처럼 행동하며 대놓고 지상을 활보했다.

홍보 효과란 그런 것이니까.

그런 위풍당당한 토병과 거석상. 그리고 저항군들의 모습에 눈물까지 흘리며 감격하는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허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희망이 없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 말하던 주제에 정말 희망을 눈앞에 들이밀자 인간은 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족을 들쑤셔 전쟁을 멈추려던 것은 실패했으니 이쪽을 손보는 수밖에.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세상을 주무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성 높은 곳 망루에 기댄 채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내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쟁반을 들고 있는 에이리아와 촌락에서 만났었던 내 배다른 동생, 에오니샤였다.

그 작은 아이가 이제는 남을 챙길 나이가 되었다는 게 새삼 기특했다.

에오니샤와 에이리아는 각기 한 아이씩 품에 안고 있었는데 두 아이 모두가 에오니샤의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이들이었다.

“이름은 지었나?”

괜스레 조카라는 사실에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숨기고 조용히 묻자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뇨. 아직은 짓지 않았어요.”

“왜?”

“당신이 지어주었으면 해서요.”

아이의 아빠는 행방불명이었다.

하지만 포로들의 수용소를 부수고 그들을 구해내는 과정에서 에오니샤는 자신의 남편을 알고 있는 포로를 만났고, 그가 끝까지 저항하다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며칠간은 상실감에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빠르게 슬픔을 딛고 일어났다.

“두 아이와 저, 우리 셋은 당신의 손에 목숨을 이어붙였어요. 당신 덕분에 새 생명을 얻었다는 거예요.”

나를 보면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 움츠러든 모습만을 보여주던 에오니샤였다.

그나마 내 곁에 있으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놓긴 했지만, 본능적으로 에오니샤는 내게 겁을 먹곤 했었다.

내 원수였던 리네스 왕비의 막내딸이었지만, 겁이 많았던 탓에 나와의 접촉조차 함부로 하지 않고 홀로 연금술에만 관심을 가졌던 소녀였다.

그러나, 이곳의 그녀는 확실히 달랐다.

아이의 엄마는 강하다고 했던가.

“데이비님! 아,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요!”

반짝거리는 눈으로 잠들어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에이리아의 외침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 작은 아이를 그렇게 품에 안고 직접 볼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을 테니 에이리아에게 작은 아기의 존재는 그야말로 지대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신생아는 주변 환경에 약해. 자잘한 신성 마법으로 보호해놨지만, 너무 찬바람을 쐬게 하진 마라.”

“아…… 그런가요?”

“그래.”

단답형으로 답하자 그녀가 입을 삐쭉였다.

“당신은 이곳 모두의 영웅이에요.”

“내가 아니라 저 토병들이겠지.”

“질투하시는 건가요?”

“아니, 오히려 잘된 일이야.”

처음부터 내가 노린 일인데 거기에 질투를 하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없다.

다시금 개선문으로 들어서며 서서히 사라지는 토병들을 보던 내게 에오니샤와 에이리아가 다가왔다.

“그 누구도 당신을 우습게 여기지 않아요. 당신은 희망을 잃어버렸던 우리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으니까. 그러니 같이 내려가요. 이번에 저항군 사령관 자리에 오른 유리나씨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이들을 위해 연회를 준비했다고 해요.”

사령관이라.

유리나는 분명 마족 사단장이었던 크리드의 손에 죽을뻔했던 것을 내가 구해주었다.

그녀는 나를 데려왔다는 웃기지도 않은 이유로 현재 저항군의 사령관으로서 사람들에게 추대되고 있다.

반대로 나의 경우는 조금 웃긴 상황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놀라울 정도의 지략을 가진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일신의 무력은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정작 촌락민들을 잡아갔던 마족들과 그들을 지휘하던 닉스를 단신으로 깨부숴버린 건 나라는 존재였지만 그걸 직접 목격한 이는 사실상 촌장을 따르던 유리스나 에오니샤가 전부였다.

촌장은 극심한 구타에 정신을 잃었었고 나머지는 모두 감옥에 갇혀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본 것은 이미 끝나버린 싸움과 내 명령에 따라 일대를 불태우는 흑룡들이 전부였다.

“어서 가요.”

어느새 다가와 내 팔을 잡아끄는 에오니샤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벌써 몇 차례고 슬리지아를 도발했다.

이쯤 되면 저쪽에서도 꼭지가 돌만큼 돌았을 테니.

이제 계획대로 일이 굴러가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지성체들은 모두가 머릿속에 한가지씩 그럴싸하나 계획을 세우고는 있다.

뒤통수 시원하게 후려맞기 전까지는 말이야.

* * *

“이제 어쩔 겁니까!! 고작 수천 명 밖에 안되는 적을 상대로 벌써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마왕 폐하를 구금하고 배신한 대가가 고작 이것이었습니까, 아스타로트 대공?”

격분하는 몇몇 마족의 모습에 아스타로트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적들의 수는 소수가 아니오. 그 정체불명의 토병과 거석상들에 대한 보고는 이미 들어 알고 있을 터.”

점잖은 인상의 마족이 쏘아붙이자 아스타로트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상대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소.”

“허면, 대책을……”

“하지만 그래 봐야 부질없는 저항일 뿐이오.”

“……벌써, 허무하게 죽어간 마족 병사들의 수가 수천수만을 넘었습니다. 그런 변명이 통할 거라 보시오?”

“적들의 수가 그만큼 많다면 희생도 각오했어야지.”

“이보시오. 아스타로트!! 다른 이도 아니고 대공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오! 아오?!”

“그래서, 이제 와서 다 내버려두고 저 인간들을 그냥 두겠다 이 말입니까?”

“……”

고요해지는 회의장을 보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들은 승리에 도취해 있을 겁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을 내야지요. 인간들은 이제 최후의 희망이랍시고 동아줄을 붙잡고 있지만 그게 썩은 동아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이미 중서부를 잇는 통로의 요새 여러 곳이 함락되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우리 보급 요새와 포로수용소만을 공략하여 수를 불려가고 있습니다.”

“그리하게 두시지요. 이제, 전면전을 할 때가 되었으니.”

마족 본대의 숫자는 수십만.

거기에 마수와 몬스터까지 합치면 50만에 가까운 숫자가 모인다.

그 정도 숫자라면, 제아무리 잘난 놈들이라도 버티지 못하리라.

“그렇겠지요?”

아스타로트가 고개를 돌리며 묻자 어둠 속에서 적발의 여성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전쟁 놀이는 역시 금방 질린다니까.”

느긋한 목소리이지만 마족들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눈에서 보인 감정은 섬뜩한 어둠이었다.

“자, 놀이는 이제 끝을 내야지.”

“직접 가서 그놈들을 모조리 처리하였으면 하오만.”

“귀찮은 벌레는 벌레들끼리 싸우라고 해. 나는 그 인간만 죽이면 되니까. 다만 그 발악하는 모습이 원체 재미가 있어서 이렇게 지켜보는 거지만.”

“당신이 직접 나서주었으면 하오만.”

“죽고 싶으면 계속 요구해봐.”

키득거리는 슬리지아의 말에 마족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곳에 모인 마족들은 알고 있다.

지금 마족 내부의 분위기가 내분이 일어나기 직전이라는 것을 말이다.

마족으로 태어나서 자신들이 모셔야 할 마왕을 구금하고 제압하고 있는 게 정상은 아니었다.

그들의 왕은 절대 안 된다며, 이 이상 애꿎은 피를 흘리지 말라며 필사적으로 부르짖고 있지만.

이미 아스타로트에게 감화된 마족들은 그를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뭐, 그래도 슬슬 질릴 만큼 즐긴 건 사실이니까.”

“놈들은 이제 모두 바깥으로 나왔으니. 이제 박멸을 시작하시지요.”

아스타로트의 말에 모든 마족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 * *

마족들이 후퇴하고 찾아온 꿀 같은 평화에 사람들은 심취했다.

다시 찾은 희망에 기뻐했고, 앞으로의 미래에 행복한 상상을 펼쳤다.

연회가 벌어진 거리는 한창 잊혔던 음악이 다시 울려 퍼졌고, 사람들의 입에선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간, 수인, 드워프, 오크 할 것 없이 과거 서로를 견제하고 천시하던 종족들도 이제는 하나가 되어 모두가 미소를 머금었다.

“하! 근육 돼지인 줄만 알았는데 제법이잖나!”

“흥! 우리 오크는 명예로운 종족이다! 이 술 또한 명예롭다!”

“파하하하하하!! 술이 명예롭다라! 껄껄 내 드워프 종족 출신이지만 자네 같은 골 때리는 놈은 처음일세!”

수염이 덥수룩한 드워프와 오크가 독주를 들이키며 대작을 펼치고 있었다.

드워프 쪽은 포로로서 잡혀 마족을 위해 망치를 두드리던 이였고, 오크는 다름 아닌 유리나와 대화를 나누며 서로 명예로운 죽음 타령하던 그 오크였다.

“음! 이번 승전의 영웅이군! 한잔 받아라!”

호탕하게 웃으며 독주를 내게 건네는 오크를 보며 나는 말없이 잔을 들고 침묵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기를 원하시더니.”

“그건 그때다. 당신은 우리 모두에게 저항의 불씨가 되어주었다. 당신 한 명이 나타남으로써 시체 같던 우리에게 활기가 생겼다.”

벌써 어느 정도 취한 듯 주절주절 늘어놓는 그의 말에 내가 조용히 물었다.

“내가 없으면, 그땐 다시 시체 노릇이나 할 겁니까?”

“자네가 없긴 왜 없는가!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하게! 모두가 자네의 공로를 알고 있네!”

저들은 내가 당장 사라진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나타나긴 했지만 사라지는 건 아닐 거라고.

뭐 그렇게 속 편한 생각을 하는 꼴이다.

다시금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그들을 지나친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 술잔을 들고 노래를 부르는 드워프와 인간.

한쪽에는 거대한 고기를 놓고 언제 익혀지나 기다리고 있는 순수한 아이들도 보였다.

모든 종족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힘들다.

말없이 그 장면을 뇌리에 각인시킨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축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가.”

그때, 나를 향해 다가오는 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아크튜러스라고 했던가.

속내를 읽기 힘든 얼굴로 내게 다가온 그는 허허로이 웃어 보이며 뒷짐을 졌다.

“지금 이 요새 내에서 모두가 자네와 자네의 토병, 그리고 유리나를 칭송하고 있다네. 알고 있는가.”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침묵을 고수했다.

이들에게 내가 중요한 위치로 자리를 잡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맹신은 가장 위험한 독이니 말이다.

“내게 의존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구심점이 되는 존재가 필요하네. 비록 지금까지는 원로라는 직위가 그것을 해왔지만, 이제는 젊은이들이 이끌어 나가야겠지.”

그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크튜러스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내 물음에 그가 조용히 대답했다.

“자네. 유리나와 혼인하여 인류의 왕이 되어주게.”

그 말에 나는 잠깐 그를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놀라운 제안이다.

하지만 내 관심을 끈 것은 아크튜러스의 말이 아니었다.

에이리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며칠간 침묵하던 관조자의 목소리였다.

[에이리아 황녀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찾았네. 역시나 그 빌어먹을 외부에서 온 괴물이 문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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