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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37화 (436/1,559)

제 437화

134. 싸이코패스

콰지지지직!!!!!

어마어마한 스파크와 함께 공간이 찢어지고 드러난 풍경은 같은 농도의 마나를 지닌 세상이었다.

하지만 폐허투성이였던 그곳과는 달리 이곳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

말없이 저벅저벅 걸어 어두운 숲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그대로 털썩 무릎을 꿇고 흙을 손에 쥐고 천천히 문질렀다.

그래, 이 맛이로구나.

“돌아왔다.”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에 절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상당한 시간을 의도하지 않게 다른 세상에 내던져진 탓에 괜히 더 피로하게만 느껴졌다.

[이곳은…… 같은 마나의 농도를 지닌 곳이로군. 그래, 네 녀석과 처음 만난 곳이다.]

“그래. 에이리아 황녀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원하는 바는 이룬 듯 보이더군.]

“그래?”

[그보다 데이비, 네놈에게 한가지 말해야 할 것이 있다.]

“내게?”

[이 여아에 관한 것이다.]

정신침식에서 일면 해방된 메가로드리아는 내가 안아 든 에이리아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생명이 둘이다.]

“음?”

스르르륵.

한참을 고민하던 메가로드리아는 이내 빛의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는 한 장의 카드가 되어 내 손에 안착했다.

“이놈을 꺼낼 방법을 찾아야겠는데.”

아주 잠깐 활성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장기간 세상 밖에 있다간 다시 울드의 잠식에 장악당하리라.

해결방법은 딱 한 가지.

셰인의 유전자 정보를 내 몸에 적용하는 것.

거래는 완료되었으니 주신 프리아 여신은 내게 내 스승이자 환수 소환사였던 셰인 스크리프트의 유전자 정보를 새겨놓았을 것이다.

바꾸는 방법?

금기의 업이란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게 아니던가.

문제는 어떤 부작용이 올지 잘 알 수 없다는 점이지만 말이다.

“우웅…… 아빠아…….”

그때 아공간에서 스스로 튀어나왔는지 두 아이가 내게 포옥 안겨왔다.

초단이에서 내 힘이 사라지며 융합이 풀린 것인지 본래의 청단이와 홍단이의 앙증맞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청단이 홍단이.”

“홍다니 졸려어……”

눈을 비비며 중얼거리는 게 상당히 많은 힘을 사용한 듯 보였다.

이에 나는 두 아이를 검으로 바꾼 뒤 허리에 채우고는 말했다.

“가자. 적색경보도 풀어야지.”

울드는 적어도 당분간은 나오지 못할 테니 말이다.

* * *

새까만 공허.

본래엔 한 개의 세상이었지만 이제는 공허로 변해버린 세상이다.

세상이 이렇게 된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샐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건 분명했다.

적어도 울드 그녀가 깨어나기 전부터 이러했다는 건 분명했다.

세상에는 많은 차원이 존재하고 심연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세상을 하나하나 잡아먹어 왔다.

“아……”

공허한 균열 속에서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시험관을 바라보고 있던, 키가 작은 흑발 소녀가 탄성을 흘렸다.

“슬리지아가 죽었어.”

그리고는 앙증맞은 입으로 웅얼거렸다.

“언니.”

소녀, 스쿨드의 말에 시험관 속에서 침묵하고 있던 여성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놀랐다는 증거였다.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슬리지아…… 분명히 언니를 구하고 언니를 그 지경으로 만든 놈에게 갔다고 했지?”

끄덕거리는 울드의 모습에 그녀는 시험관의 버튼을 이리저리 누르며 말했다.

“후, 후후후…… 슬리지아가 쓰러졌다라…….”

어처구니가 없는지 키득거린 그녀가 조용히 음산하게 말했다.

“뭐, 슬리지아 그년은 우리 중에서도……”

말끝을 흐린 스쿨드는 쓰고 있던 안경을 빼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휙 던져버렸다.

“정말 강했는데…… 우리 어떻게 해?”

당황한 그 목소리에 울드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건 알고 있다.

슬리지아는 의지를 가진 심연의 공주 중에서도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객체였다.

그런 그녀가 고작 인간 하나에 당했다?

“언니의 말대로라면 그는 절대 슬리지아를 죽이지 못해. 만에 하나 요행이라도.”

그게 정상이어야 하는데.

그를 찾아간 슬리지아가 죽었다는 말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그가 숨기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베르단데 언니는 아직도 못 찾았는데. 이거 괜찮은 거야?”

그 물음에 울드는 침묵을 고수했다.

“당분간 그 땅은 건들지 말자. 다른 년들 다 죽어도 상관없어. 나는 두 언니만 무사하면 되니까.”

스쿨드의 말에 울드는 가늘게 뜬 시선으로 시험관의 바닥을 멍하니 직시했다.

심연의 공주, 그 일좌의 죽음은 심연 전체에 퍼졌고.

끝도 없이 퍼진 그 어둠 속에서도 거대한 술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저벅…… 저벅…….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의 하인스 영지.

데이비의 명령에 충실하게 하인스 영지를 지키고 있던 륀느는 문득 자신의 소유자인 데이비에 대한 의심이 무럭무럭 돋아나기 시작했다.

“데이비님, 륀느가 낮게 평가.”

이건 이상했다.

분명 적색경보가 터졌고 하인스 영지는 현재 초긴장 상태에 돌입해 있다.

데이비가 사라지고 며칠 정도.

륀느가 아는 그라면 죽을 리가 없다고 막연하게 믿는 게 전부였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는 건강한 느낌을 주는 피부를 가진 여성이었다.

“제국에서는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륀느, 제국에서 대규모 병력을 파견 준비하고 있어. 륀느, 이것은 국제적인 분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지금이라도 황녀 저하를 찾아야 합니다. 이대로 언제까지고 드러누워 있을 순 없어요.”

“데이비 님의 명령. 빠른 회복 우선시해. 회복마법을 받고 있지만, 부상이 워낙에 극심했다고 앨리스 대주교가 판단. 현재 영지의 대리관리인인 에이미님의 말에 따르면 하인스 영지 적색경보 시 어떤 외부의 출입도 금한다고 명시.”

하인스 영지엔 상당량의 상급 신관들이 현재 체류 중이다.

다름 아닌 하인스 아카데미 때문이었다.

그런 이들이 치료마법을 걸었음에도 치료가 쉽지 않았다.

“잘려나간 부위의 접합은 천운이 따랐다고 판단. 데이비님이 오실 때까지 대기하라고 륀느가 권고해.”

“그래도 간다면?”

“륀느가 제압.”

평소라면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륀느도 강하지만 카트린느는 그런 륀느보다 더 강한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같은 부상상태에선 륀느의 변칙적인 공격 하나 막아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돌아버리겠네. 제국에서 아주 난리가 났겠어.”

그 말에 륀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를 무심하게 눌러 침대에 눕혀버리고는 몸을 돌렸다.

“륀느, 정찰. 빠른 회복 후 가담할 것을 요청해.”

“얼마든지요.”

그녀를 뒤로한 채 어두운 복도로 나온 륀느는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오는 한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존재보다 아름다운 외모, 인간이 아닌 뿔을 가진 소녀였다.

데이비의 말에 따르면 저 뿔은 탈부착식이라는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그 뿔을 달고 있었다.

“마님.”

“마님이라 부르지 말래도.”

“주모?”

“주모도 아닌 게야.”

“페르님?”

“……그래, 그리하자꾸나.”

힘없는 목소리로 쓰게 웃어 보인 그녀가 핼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페르님, 현재 심박수가 매우 비정상적, 혈압도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분석해. 빠른 진료를 받을 것을 권고.”

“아니, 괜찮은 게야.”

“페르님의 육체 상태 악화는 데이비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륀느가 분석, 이것을 륀느가 낮게 평가.”

“괜찮은 게야. 한때 마왕이었던 본녀가 그것도 구분을 못 할까.”

괜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페르세르크는 말없이 허리를 숙여 륀느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뭔가 복잡한 심경이 묻어나는 한숨 소리와 함께 침묵하던 페르세르크가 천천히 일어났고 이내 륀느를 지나쳤다.

“본녀는 조금 더 데이비의 기운을 찾아볼 터이니 혹시라도 발견되면 바로 알려주도록 하마.”

“페르님, 휴식을 권고해. 며칠째 수면을 취하지 않았다고 륀느가 판단. 이것은 생체리듬에 매우 악영향을 끼친다고 분석.”

“괜찮은 게야.”

쓰게 중얼거린 그녀가 지나가자 륀느는 뭔가 묘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단 한 명이 없어진 것으로 영지 전체가 난리가 났다.

영지민들부터 근위대, 영주성 내의 사용인들까지.

그 외에 아카데미에 왔었던 각국의 교수진들도 그러했다.

데이비가 이곳에서 잠시 사라진 것은 분명 알 수 있었다.

아마 차원 열쇠를 통해 다른 곳으로 갔겠거니 하는 륀느였다.

그렇다면 그가 안전하게 돌아온다는 가정하에 그가 나타나는 즉시 알아낼 수 있으리라.

그때까지 자신은 데이비의 명령에 따라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는 게 전부였다.

그때였다.

“흥미로운 연구소재.”

“륀느는 생체 골렘 륀느. 흥미로운 연구소재가 아니라고 명시.”

“흥미로운걸.”

“한 번만 더 륀느를 분석하려 들면 륀느의 무기로 머리통을 부술 거라 경고해.”

묘하게 싸늘하게 받아치는 륀느의 행동에 분홍빛 머리카락의 여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피 냄새가 나.”

“피 냄새?”

“그래, 아주 짙어. 지금까지 이 영지에서 이만한 피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없어.”

그 말에 륀느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는 등허리에 돋아난 날개를 펄럭여 살짝 떠오른 뒤 밀피유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데이비님은 그쪽과의 거래 이후 행방불명 상태. 륀느는 현재 그쪽의 존재 자체가 매우 불쾌하다고 분석. 이것을 격한 분노라고 판단.”

“그 전에 한 번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야 어찌 되던 내 알 바가 아니지만, 이 정도 피 냄새가 이곳까지 퍼질 정도라면…….”

“퍼질 정도라면?”

“못해도 사람 일고여덟은 토막을 쳐야 나오는 혈향인데.”

그 말에 륀느의 푸른 눈동자가 무섭게 떠졌다.

* * *

데이비가 적색경보를 때리고 사실 영지가 비상상태에 돌입한 건 맞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

실제로 어떤 습격도 존재하지 않았고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데이비 한 명이 없어진 것일 뿐 다른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곳이야.”

밀피유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륀느는 밀피유가 가리킨 폐창고를 바라보았다.

본래 영지의 식량이나 물자를 보관하던 창고였지만 창고를 신축하면서 현재는 방치되고 있는 공간이었다.

그 탓에 이 근방에 사람이 있을 순 없었다.

“엘더브레인 명령인계. 닫힌 창고 문을 개방할 것을 요구.”

[메라몽 명령 인수.]

그 말과 함께 수인 형태를 취하고 있던 두 번째 생체 골렘 메라몽이 손을 마치 슬라임처럼 쭈욱 늘어뜨렸다.

그리고는 굳게 닫힌 창고의 문을 슬쩍 움직이는 듯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었다.

본래 륀느의 곁에는 디셉티콘 편대의 메가트론이나 어벤저 편대의 에나벨이 주로 동행하고 있지만, 메가트론을 포함한 디셉티콘 편대 전원 개체들은 모두 위장 모드를 유지한 채 영지를 순찰 중이었고 에나벨은 아이나 헬리샤나와 함께 영지 밖으로 나가 있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메라몽을 대동했지만 제법 효율이 좋다. 그 외에 그녀와 대동한 것은 근위 조장이었던 몬미더였다.

그는 데이비 이외엔 여러 인물을 의심하며 이 사태의 근원을 찾으려 애쓰는 듯 보였다.

그런 그의 행동거지는 나름대로 충성심이 깊었으나 륀느의 입장에선 쓸데없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 탓에 그를 데려온 것이었다.

“이런 곳에 뭐가 있다는 겁니까.”

“륀느가 확인해, 몬미더는 륀느를 신뢰할 것을 요구.”

“아니 누가 안 믿는다고 했나, 쩝.”

끼이익.

기름칠이 되지 않은 창고 내부로 걸어 들어간다.

동시에 마치 밀폐되어있던 것처럼 피 냄새가 짙게 퍼지기 시작했고 륀느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두운 창고 내부를 둘러보다 눈을 번뜩였다.

그러자 마치 전등처럼 그녀의 눈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륀느, 안광 효과 매우 높게 평가!”

그새 자신의 능력에 심취한 그녀가 빠르게 창고 내부를 스캔했다.

그리고는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평소 어지간해선 무표정인 륀느가 얼굴을 살짝 찌푸릴 정도로 지독한 무언가가 있었다.

“역시…… 피 냄새가 매우 짙다 했어, 하지만 의문이야. 어떻게 이 상태가 될 때까지 피 냄새를 숨겼지? 영지 내의 피 냄새는 어지간해선 맡을 수 있는데.”

짧게 중얼거린 밀피유가 아무렇지 않게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륀느의 눈에서 쏟아져나온 빛에 비친 그곳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세워져 있었다.

“이런, 미친……”

눈을 부릅뜬 몬미더가 그 참상에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오랜 시간 검을 들고 훈련을 받아온 그였지만 그런 그조차 이 참상은 그냥 넘기기 어려울 정도였다.

검은 피부를 가진 남성의 팔,

흰 피부의 어린 소녀의 얼굴,

근육질 남성의 하복부와 가녀린 체격의 여성의 상복부 등등.

척 봐도 7~8명에 달하는 사람의 육체 부위를 꿰매놓은 참상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 하인스 영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더 개 같은 상황은 다름 아닌 이 일을 저지른 작자의 의도에 있었다.

마치 자신의 예술작품을 봐달라는 듯 너무도 대놓고 방치되어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근육질 남성의 하복부가 이어진 복근에는 날카로운 무언가로 새긴듯한 글귀가 쓰여 있었다.

“매우 흥미로운 행동거지야. 인간은 역시 역겹지만 신기해.”

[환희의 악장 제 첫 번째.]

륀느의 무표정에서 싸늘한 냉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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