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9화
정보를 캐오는 일에는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게 좋다.
현재 내게 가장 효율적인 정보 수단은 아이나 헬리샤나였지만, 그녀는 에나벨과 함께 장기 임무를 수행 중이기에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순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잠깐 다른 세상에 가있는 동안 유명한 연쇄 살인마가 하인스 영지를 타겟으로 잡았다, 이 말이야.
“그에 대해선 그가 가장 잘 알게야.”
말없이 끔찍한 몰골을 한 시신을 조사하던 내게 페르세르크가 조언을 해왔다.
“그?”
“제국의 황태자, 살리반.”
살리반 황태자가 그에 대해 잘 안다고? 애초에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페르세르크,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해. 그놈이 다음 희생양을 만들기 전에 찾아내고, 놈에게 진짜 예술을 내 손으로 직접 보여주는 거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는 살인마 [그림]이라 불리기 전부터 이런 미친 짓을 해왔어. 처음엔 서부의 작은 왕국이었다고 했을 게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한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로 내 귀를 가지고 놀며 쿡쿡 웃어 보였다.
“자세한 건 그 아이에게 듣지그래?”
“누구.”
“데이비. 연쇄 살인마 [그림]에 대한 대륙의 추적이 왜 끊어졌는지 알고 있는가?”
그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야 모르지.”
“그가 죽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야. 그렇기에 대륙은 그에 대한 추적을 그만두었었지. 설마 이렇게 살아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녀의 말에 나는 시신에 사령 마나를 살살 불어넣었다.
“심연의 힘으로는 알아낸 게 없어?”
“애석하게도. 기억을 들춰 보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해. 현재의 본녀는 그 정도의 힘까지 사용할 순 없어. 누구 덕분에.”
그녀의 말에 나는 심연의 힘을 빌리는 선택을 집어치웠다.
“누구에게 정보를 캐내고 뭐고 이런 여유를 부릴 틈이 어딨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놈이 이 영지 안을 활보하고 있다 이거 아니야.”
“어찌하려고?”
“직접 찾아야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시신을 내버려둔 채 나는 사건이 일어난 지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사실 이만한 일이 터지면 단서는 반드시 남는다.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 건 없네.”
밀피유와 륀느의 안내를 받아 참상이 벌어져 있던 곳에 도착한 나는 놀라울 정도로 단서 하나 남지 않은 현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피 냄새가 가질 않아. 오랫동안 묵혀져 있다가 터져 나온 것처럼.”
“네 말대로라면 아무 혈향도 없다가 갑자기 맡아졌다고 했나?”
“그래.”
말없이 내 뒤를 따르는 밀피유를 흘끗 본 륀느가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사뿐사뿐 다가왔다.
“데이비님. 힘이 더 강해졌다고 판단.”
환골탈태를 한 건 아니지만, 장시간 육신과 혼을 동기화시켜놓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강해질 수밖에.
나는 성장이 아니라 회복이다.
그렇기에 힘을 얻는다는 표현은 조금 맞지 않았다.
말없이 륀느의 머리를 푹푹 쓰다듬어주자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느끼던 녀석이다.
“피의 기억으로 본 건 흰 가면을 쓴 괴인이 산채로 사지를 자르는 모습뿐이었어. 그 전의 기억은 마치 뒤틀린 것처럼 조작되어있었고.”
그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남의 기억을 뒤흔들고, 흔적 하나 없이 일을 저지른다.
잡힐 걱정도 하지 않는 대담한 범행수법으로 볼 때, 단순한 인간이라 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마법사나 흑마법사인가.
그건 아니었다.
시신은 물론 근처 어느 곳에서도 마나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한 것인가.
나는 대지의 정령 노움을 다수 불러낸 뒤 땅의 기억을 활성화 시켰고, 그러자 내 손바닥을 기준으로 갈색빛의 마법진이 존재감을 뿌리기 시작했다.
[어떤 걸 도와드릴까요]
아이 같은 물음에 나는 조용히 내 목적을 밝혔다.
‘이곳에서 있었던 기억을 보여줘.’.
내 말에 노움은 그대로 땅속에 흩어지듯 사라지더니 이내 내 머릿속에 큰 환상을 보여주었다. 새카만 창고에 커다란 자루를 들고 들어온 사내가 보였다.
자신보다 큰 자루를 도구를 이용해 들고 들어온 그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체격은 보통 체격보다 조금 왜소한 편이지만 물건을 다루는 것을 보면 힘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지의 정령이 파르르 떨 정도로 끔찍한 살기를 품고 있는 그는 곧이어 창고를 개조하기 시작했고 시신을 보란 듯 건 뒤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신의 하복부에 글귀를 새겼다.
환희의 악장 제 첫 번째.
“첫 번째라는 말은 두 번째도 있다는 소리겠지.”
다만 이건 놈의 뒤틀린 성적 취향이지 단서와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였다.
마치 지휘라도 하듯 시신의 앞에 선 그는 품 안에서 작은 지휘봉을 꺼내 들었고 무음의 창고 속에서 혼자 신들린 것처럼 팔과 지휘봉을 흔들며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그리고 그런 기행동이 끝을 맺었을 무렵.
그는 자신의 앞 허공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무언가를 하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
공간 이동? 장소 전이?
어떤 흔적도 없다.
혼란이 가득한 시점에서 나는 창고를 둘러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숨어버린 놈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영지민 전원을 모아놓고 수색을 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에 가깝다.
그렇다고 영지민들을 그대로 방치하는가.
그건 아니었다.
“함정을 설치해야겠어.”
노움의 기억으로 본 그는 마법사나 기이한 무언가라기보다는 특질능력자에 가까웠다.
태생부터가 다른 초능력자.
그 원리를 알 수 없으며 부모가 없이 홀연히 나타난 이들이 다수다.
이 세상에 속하면서도 이질적인 존재라면 그들뿐이었다.
특질능력자가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들이 가진 능력은 사실상 다수였다.
그런 만큼 나는 이번 일을 해결할 방법이 딱 하나뿐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 * *
날이 밝았다.
나의 귀환 소식에 영지민들은 환호했다.
본래라면 연쇄 살인마가 영지 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에 떨어야 할 영지민들이지만 나는 그것을 선뜻 공표하지 못했다.
괜한 공포심 조장은 혼란만 불러일으킬 뿐이니 말이다.
대신 조용히 사람을 시켜 희생자나 그와 관련된 일을 겪은 이들을 모두 소집해 정보를 캐냈다.
결과?
정말 놀라울 정도로 건진 게 없었다.
함정을 설치하긴 했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놀라울 정도로 내 함정들을 모두 피해내며 며칠째 침묵하고 있었다.
그가 다른 곳으로 갔는가.
그건 아니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시신의 사망 추정시간을 계산하면 그는 반드시 이곳에 남아있다.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외부인들을 모조리 조사하겠습니다.”
“외부인까지 합치면 그 수가 1만을 넘는다, 몬미더. 그걸 모조리 점검하는 건 미련한 짓이야.”
적당히 얼굴에 환영마법을 걸고 영지의 중앙 광장의 벤치에 앉아 주변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평상복을 입고 한숨을 내쉬는 몬미더를 바라보았다.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다른 나라 인간들도 못 잡은 살인마라면서? 그런 살인마가 무슨 수로 네게 잡혀.”
“예?”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몬미더.”
“……”
뭔가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럴 땐 빈말이라도 믿는다, 해주시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불신의 상징인 네가?”
피식 웃자 그가 짧게 혀를 찼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괜히 무리하지 말라고, 특질능력자의 능력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 시점에서 그놈이 무슨 짓을 해올지 몰라.”
내 말에 그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단서가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공간 전이도 아닌데, 공간을 뛰어넘는 힘 하며, 뱀파이어의 후각을 속일 정도로 위장술도 좋다. 그리고 이외에 잡기들도 좋은 편이며, 속도도 신출귀몰하고 신중하다.
괜히 대륙 희대의 살인마라 불리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놀라울 정도였다.
그는 내가 걸어놓은 함정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떤 방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함정의 유무와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듯한 행동거지였다.
“오빠.”
그때 나는 내 앞에 다가온 작은 한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이제 갓 7살 정도 되었을까, 갈색 머리칼의 소녀는 앙증맞은 얼굴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꽃…… 꽃 사실래요?”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주머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그래 두 개만 주렴.”
내 말에 소녀는 뛸 듯이 기뻐하며 가지런히 놓인 꽃 두 송이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오빠!!”
“그래,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내 물음에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헤헤. 저도 오빠를 처음 보는 걸요?”
“그런가?”
“사실 며칠 전에 엄마를 따라 이 영지로 이주해왔어요. 이곳의 영주님은 영지민들을 가족처럼 아끼고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많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들었어요.”
소녀는 행복하다는 표정이었다.
“영주님 덕분에 엄마와 저는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걸요? 예전엔 매일 매일 굶었지만 여기선 달랐어요!”
뭐가 그리 기쁜지 소녀가 순수하게 헤실거렸다.
“저는요! 크면 하인스 영지의 왕자님과 결혼할 거에요!”
다른 이가 들었다면 기겁했을 소리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순수한 아이들이 무조건 미래이다.
아이가 집단의 미래를 걱정하는 순간.
그 집단은 미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 넌 예쁘니까 크면 영주님과 결혼할 수 있을 거야.”
내 장난기 어린 말에 소녀는 순수하게 웃어 보였다.
“정말요?”
“그럼? 이 오빠가 영주님을 잘 아는 데 말이야.”
“에이, 거짓말. 오빠가 그 높으신 분을 어떻게 아는데요?”
“내가 왜 모르는데?”
내 물음에 소녀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옷도 후, 후즐근하고…… 하, 한량! 그래 한량 같아요!”
순수한 독설에 나는 그대로 황당한 얼굴을 했다.
반대로 내 곁에 인비저빌리티를 하고 있던 페르세르크는 당장에라도 터져버릴 듯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아댔다.
“오빠가 한량 같다고?”
“네! 엄마가 그랬어요! 대낮에 일도 안 하고 놀고 있는 사람은 한량이랬어요!”
그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그럼 오빠가 한량 소리 안 듣게 이제 일을 좀 하러 가볼게.”
“일이요?”
그 질문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아공간에서 작은 물건을 하나 꺼내 들었다.
“이건 오빠가 귀여운 아가씨에게 주는 선물.”
“우와! 예쁘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녀가 나무장식이 채워진 아기자기한 목걸이를 이리저리 들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나는 소녀의 목걸이에 마법을 하나 걸어주었다.
저건 그래도 오래전에 내가 조각 연습을 할 때 만들었던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나와의 유대가 깊어 몇몇 마법이 사용 가능했다.
우우웅…….
몇 가지 축복과 마법을 걸어주고 나서야 소녀를 돌려보낸 나는 표정을 굳히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저 어린아이의 미소를 지켜주려면 영주로서 일을 제대로 해야 하는 법이니까.
* * *
그래야 했다.
나는 어두운 밤하늘 두 번째 희생자들을 발견했다는 륀느와 밀피유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 희생자는 무려 10명에 달하는 희생자의 각기 다른 육신을 기워 붙인 끔찍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미 행방불명된 자들.
슬픔의 악장 제 두 번째.
마치 도발하는 듯한 그 문구를 무시한 채 시신을 바라보던 나는 함정을 유유히 빠져나간 이 빌어먹을 살인자 새끼의 행동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 그때.
내 눈에 의아한 것이 비쳤다.
“이건……”
내 손에 쥐어진 건 무언가에 맞아 부서진 나뭇조각이었다. 바로 내게 꽃을 팔던 작은 소녀에게 주었던 그 목걸이였다.
그 목걸이가 왜 여기 있는가.
웬만해선 검으로 내리쳐도 부서지지 않을 내구성을 지닌 조각품인데 그것은 깨져있었다.
그러니까.
그 어린 소녀의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서 다짐했는데.
고작 하루 만에 이 빌어먹을 놈이 나를 비웃듯이 소녀를 납치해 갔다, 이 말이잖아.
“데이비님. 데이비님!”
그때 창고를 뒤지던 륀느가 내게 달려와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다름 아닌 참상이 벌어진 육신의 일부였다.
“데이비님의 기억과 흡사. 이것을 총상이라고 륀느가 분석.”
그 말에 내 눈이 차갑게 식었다.
찾았다. 개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