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40화 (439/1,559)

제 440화

135. 예술가와 사신

찾았다.

내 눈에 냉기가 서렸다.

내 시선이 닿은 곳은 륀느가 가져온 고깃덩어리의 환부가 아니었다.

그녀의 발치였다.

“데이비님?”

내가 말없이 침묵하고 있자 륀느는 내 눈앞에 대고 들고 있던 환부를 들이밀었다.

“음……, 그래. 총상?”

“륀느의 정확한 분석에 의하면 탄환에 의한 파열과 99.8퍼센트 동일하다고 분석해.”

륀느의 말투는 나름대로 진지하고 심각했지만, 나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그녀의 말을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이 망할 놈의 연쇄 살인마를 잡기 위해 나는 영지 곳곳에 함정을 설치했다.

하지만 놈은 마치 함정을 곧바로 식별할 수 있는 것처럼 유유히 내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놈은 자신이 저지른 아주 사소한 실수에 덜미를 잡힐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 * *

게임이 쉬우면 재미가 없다.

예술가 그림은 뼛속까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여타 다른 인간과는 달랐다.

“웃어! 웃어야 보기 좋지.”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지만, 그의 말에 따라 웃을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그의 목소리는 지독한 가학성을 띠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실제로 지독한 사이코패스라 불리기도 했다.

사람들이 죽는 광경을 다음 희생자에게 보여주고, 그 극도의 공포 속에서 자신들도 죽어갈 거라 생각하게 유도한 다음 죽인다.

그래야 더욱 생생한 공포를 담은 예술작품이 탄생한다고 믿었고, 그것을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내가 두렵니?”

벽면에 돋아난 쇠창살에 묶인 작은 소녀를 보며 그가 흰 가면을 쓴 채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가 바라보는 이들은 모두가 어린아이였다.

“세 번째 작품은 너희들이 장식해주면 좋겠구나.”

와들와들 떠는 아이들의 뺨을 쓸어내리며 그가 울상을 짓고 있는 흰 가면을 톡톡 건드렸다.

“이렇게 웃어보렴.”

양 검지로 가면의 입가를 끌어올리는 시늉을 해보지만, 아이들의 얼굴엔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현재 이곳에 잡혀 와있는 이들은 대부분 아이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번째 악장의 주제는 바로 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엔 좀 더 색다른 예술작품을 펼쳐볼 거란다. 너희가 도와주었으면 좋겠구나. 순수한 감정을 내게 보여주거라.”

“사, 살려주세요.”

“엉엉!”

지독한 피 냄새, 살점과 피가 묻은 도구들.

끔찍한 그 참상 속에서 아이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너무 두려웠다.

이곳에 잡혀 온 아이의 수는 약 12명, 정말 놀라운 숫자였다.

그토록 많은 결계를 펼쳐놓았는데 아이를 12명이나 소리소문없이 납치해온 것이다.

외부에서 데려왔는가.

그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하인스 영지의 아이들이었다.

그는 자신을 잡지 못하는 무능한 이곳의 인간들을 조롱하는 것을 좋아했다.

“으…… 으읏……”

그때 한쪽에 쓰러져 있던 소녀가 힘겹게 눈을 떴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정말 아름다운 소녀였다.

“일어났구나.”

“흐윽!”

깜짝 놀란 소녀가 와들와들 떨자 그는 가면을 쓴 얼굴을 소녀에게 들이밀었다.

“넌 정말이지……, 정말 황홀한 눈을 가지고 있구나.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내 너는 꼭 생생한 표정을 남겨놓을 테니.”

“어, 어째서 이런 일을 하시는 건데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떠듬떠듬 말하는 그 모습에 그림이 빙그레 웃었다.

“궁금하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것이라곤 흐느끼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전부였다.

“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단다. 그래서 궁금했지. 고통이란 무엇인가. 내가 알아낼 수 없으니 남에게서 봐야 하지 않겠니? 너희들이 숭고한 모습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나는 더욱 고통이라는 감정에 다가갈 수 있는 거란다.”

아이에겐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정신병이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그였기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극도로 집착하고 있었다.

“ 여, 영주님이 저흴 구, 구해주실 거에요!”

아이는 엉엉 울며 소리쳤다. 소녀는 분명 낮까지는 꽃을 팔며 광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곳에서 잘 생겼지만, 한량 같은 오빠를 만나 꽃을 팔고 선물까지 받아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저녁엔 자신의 생일이었으니 어머니가 특별식을 만들어준다고 했었다.

그래서 심부름한 물건을 들고 돌아가던 중 소녀는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말이다.

마치 누군가를 홀리는 듯한 그 노랫소리에 그녀는 넋을 놓고 어둑어둑한 곳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커다랗고 기괴한 무언가를 늘어놓고 음악을 흥얼거리며 손짓을 하는 인물을 만났다.

그 기괴한 살덩이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소녀는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런 무리한 움직임 때문에 그에게 들키고 말았다. 필사적으로 도망쳐 봤지만, 아이의 작은 발로는 성인의 보폭을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붙잡힌 그녀를 그가 제압하려던 그 순간.

소녀의 목걸이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반사적으로 그를 튕겨낸 소녀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소녀를 제압하려던 사내는 멍하니 몸을 일으킨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타앙!!

그리고 갑작스레 허리춤에서 철 덩어리 같은 것을 꺼내 찰칵 당기자, 천둥이 울리는 소리가 나며 소녀는 의식을 잃었다.

“영주가 너희를 구해준 다라. 어째서 구해준다고 말하는 거니?”

“뭐, 뭐라고요?”

“나는 그저 예술을 하는 것뿐이란다. 너흰 그런 숭고한 예술작품 일부가 되는 것이야.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 안 그러니?”

미친 발언에 소녀는 섬뜩함을 느끼고 바들바들 떨었다.

“이런, 이제 슬슬 시작해야겠구나.”

담담하게 말하며 그가 어디론 가로 사라졌고, 이내 커다란 자루를 하나 들고 왔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된 간이침대에 자루를 올려놓고 날카로운 칼로 자루를 찢었다.

“우우웁!! 우우웁!!”

그 자루 속에 있는 것은 소녀에게 익숙한 인물이었다.

“어, 엄마!!”

바로 얼마 전 그녀와 함께 이 영지로 찾아왔던 소녀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다.

저항하다가 폭력에 노출되었는지 여기저기 멍이 들어있는 그녀는 두려움에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보지만, 여성의 팔다리는 우악스런 밧줄에 묶여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허어, 벌써 이렇게 안달 나면 좋지 않은데.”

그림의 말에 여성이 두려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주변에 묶인 아이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읍……”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처절하게 묶여있는 소녀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우우우우우웁!!! 우우우웁!!!”

처절한 절규였다.

자신에게 생긴 상처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지 그녀는 온몸을 비틀며 묶여있는 소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 엄마!! 으아아앙!! 엄마!”

자신의 엄마가 피투성이가 되어 자신을 향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소녀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한 명이 크게 울자 전염이라도 된 듯 창고가 떠나가라 울어댔다.

“모든 예술작품은 그래, 진실한 감정에서 나오는 법이지. 사신은 그렇게 말했다.”

담담하게 말하며 피가 덕지덕지 묻은 메스를 가져온 그가 여성의 뺨에 메스를 가져다 대고 슬쩍 그었다.

동시에 연약한 피부가 찢어지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으으읍!! 읍!!!”

“너희가 보여주었으면 하는구나. 이번만큼은 정말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망설임 없이 여성의 옷을 가차 없이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이런 천들은 예술에 방해만 될 뿐이니까. 부끄러워하지 말게, 자네의 예술적 행위는 저 아이들이 물려받고 더욱더 생생한 감정을 전신에 담아줄 테니까.”

“우우웁!! 우웁!!”

비명 속에서 그는 여성의 팔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잘라내기 시작했다. 끔찍한 고통과 자신의 딸의 존재로 인해 여성은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아이 또한 덩달아 소리를 지르자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으음!! 정말이지 시끄러워서 못 살겠군! 예술작품을 하는 데에 성대는 필요 없겠지!”

견디기 힘들 정도의 소음에 짜증 난 그가 여성의 목을 찌르려던 순간이었다.

쩌적…….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

동시에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무언가가 빠르게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침입자? 도망치라고?”

의아한 듯 중얼거린 그가 하던 것도 멈추고 턱을 어루만졌다.

“그럴 리가. 여긴 내 공간일 텐데?”

다른 이는 그의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없다.

그래야 했다.

그런데.

쩌적…… 쩌저저저적!!!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공간이 일그러지고 부서지며 흑발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독한 피 냄새. 아주 개X끼네.”

붉은 눈을 번뜩인 소녀가 흐릿하게 사라지는 그 순간 그의 육신이 단단한 벽면에 그대로 처박혀버렸다.

지독한 피 냄새가 울려 퍼진다.

그 속에서 사내의 육신을 벽에 처박다 못해 몇 차례고 끄집어내 다시 처박기를 반복한 소녀, 요시아 프랑소스는 굳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요시아의 뒤를 이어 은발을 가진 소녀와 흑발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닿았다.

“끔찍하군…….”

은발의 소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고 소년은 말없이 주변의 참상을 바라보았다.

기둥에 묶인 채 오줌까지 지리며 엉엉 울고 있는 아이들.

척 봐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안면이 있던 작은 소녀.

마지막으로 팔의 피부가 거의 다 벗겨진 채 필사적으로 비명을 쥐어짜 내는 여성까지.

“으음…… 이게 무슨.”

소년은 말없이 여성에게 다가갔고 이내 천천히 힘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동시에 성스러울 정도로 밝은 빛이 휘감아지며 여성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기적에 가까운 변화였다.

방금까지 피부가 전부 벗겨진 그녀의 팔에 새하얀 살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온몸에 생긴 멍은 제 존재감 따윈 없었다는 듯하나 둘 사라졌으니 말이다.

“특질능력자일 줄은 알았는데. 설마 제 독립공간이 있을 줄은 몰랐지.”

담담하게 말한 소년이 손짓하자 은발의 여성이 가볍게 박수를 쳤다.

뚜두둑!

동시에 검은 힘이 휘몰아치며 아이들을 묶고 있던 밧줄을 모조리 끊어버렸다.

순식간에 움직일 수 있게 된 아이들은 다리가 풀린 아이 몇몇을 제외하고 모조리 달려 나와 소년과 소녀에게 안겨 엉엉 울어댔다.

“그래, 그래. 괜찮단다. 이제 다 괜찮아.”

흑발의 소년, 데이비는 자신보다 여성에게 다가가 엉엉 울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친 데는 없니?”

“흑, 흐흑…… 어, 엄마가…… 엄마가……”

그 여성이 소녀의 엄마였다는 사실에 데이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 네 어머니이니?”

“네……. 흑, 흐흑…….”

엉엉 우는 그 모습에 데이비는 이내 자신의 얼굴에 환각을 걸어주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오빠 기억하지?”

“아…… 그때 꽃을 사 갔던.”

“그래. 오빠가 한량이라 시간이 남아서 말이야. 우리 꼬마 아가씨를 구하러 왔어요.”

빙그레 웃으며 다시 환영마법을 푼다.

“여, 영주님이셨어요?”

놀란 질문에 데이비는 말 대신 소녀를 끌어안아 토닥여주었다.

“네 어머니는 오빠가 반드시 살려줄 테니 오빠만 믿으렴.”

“네…….”

진정하지 못하던 소녀는 자신과 안면이 있는 사람과 만났다는 것에 안도한 듯 그대로 추욱 늘어져 버렸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것이다.

아이들의 구출이 완료되자 요시아가 천천히 물어왔다.

“선생님. 이 자식 어떻게 해요?”

그 말에 데이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발 자체는 제법 신선했다.”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거지?”

그 질문에 데이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한 손으로 그의 머리통을 낚아챈 뒤 단단한 벽면에 그를 다시 한 번 처박아버렸다.

좀 전 요시아가 그를 몇 차례 처박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래도 제법 몸은 튼튼한가 보다? 개자식아.”

콰앙!!

데이비는 또 한차례 그의 머리를 잡은 채 그를 끌어냈고 그가 저항하기도 전에 벽면에 처박아버렸다.

지독한 소음에 데이비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페르세르크.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다른 희생자도 찾아줘.”

“그대. 그놈, 쉽게 죽이지 마라.”

“알고 있다.”

담담한 그 목소리.

페르세르크조차 잔뜩 화가 난 듯 냉기가 풀풀 날리는 그 목소리에 데이비가 픽 웃었다.

그때였다.

“아아…… 아아 사신님. 나는 예술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보통사람이라면 곤죽이 되고도 남을 공격을 버텨낸 그가 가면을 쓴 채 괴성을 질러댔다.

이에 데이비가 고개를 돌린 그 순간.

그는 일그러진 팔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주머니 속에서 커다란 무언가를 꺼내 데이비에게 겨누었다.

“너는 보스 몬스터인가? 그래. 마스터레벨을 찍었으니 이런 방해요소가 나올 법도 하지!”

그는 괴성과 함께 그 손에 쥐어진 것에서 불을 뿜어냈다.

타앙!!

뭉툭한 탄환이 불을 뿜으며 순간적으로 음속을 돌파한다.

그리고 정확히 데이비의 이마로 날아들었다.

팅!!

하지만 그림의 눈에 비친 것은 탄환을 맞고 당황하거나 그대로 즉사해버리는 데이비가 아니었다.

시뻘건 피가 탄환을 감싸 그에게 닿지 못하게 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선생님 피가 얼마나 귀한지 알아?! 선생님의 피는 내 거야!”

콰앙!

그 말에 이어 흑발의 소녀, 요시아 프랑소스가 눈을 부라리며 손에 쥔 작은 스태프로 그를 후려쳐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