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3화
일주일이 덧없이 흘렀다.
아이나에겐 선녀라 불리는 쿠이나라는 이름의 인물 이외에 다른 이들도 추가 의뢰를 했다.
다만, 이번엔 아이나 혼자가 아닌, 나와 손을 잡은 정보 길드 메아리 전역의 힘을 빌렸다.
어떻게든 나와 다리를 놓고 싶어 하는 메아리 길드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었으리라.
물론 그들을 찾아서 무언가 조치를 취할 생각은 없었다.
솔직한 말로 그 원리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 정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흥미였으니까.
그저 모종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만 해두면 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선녀라는 존재가 혹여 베르단데라는 심연의 공주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해서 정보를 캐내던 게 전부였던 만큼 실질적으로 내게 큰 의미로 와 닿진 않았다.
아직 이놈의 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
주신 프리아 여신은 태초부터 존재해온 위대한 의지이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게야?”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의문을 던져졌다. 그러면서도 아카데미 내부를 돌아다니는 자동마차의 조종간을 놓지 않는 것이 상당히 재미를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확실히 처음에 비하면 그녀의 운전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상승했으니까.
고요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이동하는 마차를 타고 주변 아카데미의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잘도 내 목에 매달려있는 륀느의 머리를 푹푹 쓰다듬으며 물었다.
“륀느, 네가 구현하는 무기들은 전부 내 기억의 일부에서 가져간 건가?”
“륀느, 부정한다고 해명해. 륀느의 두뇌 회로에 초기부터 설치되어있던 지식이라 판단.”
륀느의 무기는 주로 입자를 구현하고 뭉쳐서 만들어내는 무기들이다.
인류의 구원자니 뭐니 하며 빠루를 뽑아내는 건 그저 륀느의 개인 취향일 뿐이지만, 그 외에 그녀가 사용하는 고열포나 특수한 형태의 라이트세이버는 내 기억에도 없는 부류였다.
초기부터 설치되어있다는 소리인데.
애초에 그녀가 어디 출신인지 생각해보면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1만 년 전의 고대문명은 이미 여러 차례……”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륀느가 만들어낸 무기와 관련된 유물이 출토된 적은 없어. 그리고 심연의 괴물들도 륀느에 대해 자세히 아는 놈들도 없었고.”
내 물음에 페르세르크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카데미의 거대 중앙 강당 홀로 향하면서 나는 간단히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심연의 존재가 륀느의 존재를 자세히 모르고, 륀느의 무기에도 딱히 익숙함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딱 하나뿐이지. 모른다는 거다.”
문제는 1만 년 전의 유적에서 이미 헤라클래스의 클론이 심연과 싸우고 있었던 흔적이 있었다.
그 말인즉.
“륀느가 만들어진 시기는 1만 년이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심연이 이 동전의 앞면 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 사라진 초상위 문명.
그렇게 생각하면 이야기가 빨라진다.
“하인스 영지도 아마 비슷한 계통일 거다.”
“하지만 말이 안 되잖아 데이비. 유적의 구조방식은 모두가 같았을진대.”
가장 의문점은 그것이었다.
헤라클래스의 클론이 있던 유적과 하인스 영지의 모든 권한을 조종하는 유적들.
마지막으로 륀느의 육신과 기계장치의 신(데우스 엑스 마키나)이 있던 유적은 모두 동일한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시대의 간격이 길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게 이루어졌는가.
“글쎄,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아직 의문이긴 해. 생각해볼 수 있는 거라면……”
“데이비님. 중앙 강당에 도착했다고 륀느가 보고.”
륀느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자 나는 녀석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당도해있기에 중앙 강당 홀은 상당히 부산스러운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볼 수 있는 건 하나뿐이지. 륀느와 관련된 종족이나 기술력이 1만 년 전에도 극도로 비밀리에 이루어진 것이거나.”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가설이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문명이 한번 뒤집혔을 경우.”
이 경우 륀느가 만들어진 문명이 빠르게 멸망하고, 헤라클래스의 클론이 만들어진 두 번째 문명이 빠르게 생겨나고 녹아들었다.
이것도 가능성은 작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게 가능하게 하려면 간단한 인과의 흐름이 아니라, 신의 의지로 문명이 통째로 증발하고 새로이 모든 생명이 창조되었다는 뜻일 테니까.
* * *
“표정이 좋지 않은데?”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좀 전에 그 이야기를 나눈 뒤로 영 표정이 좋지 않은데.”
“아, 아무것도 아니야. 데이비.”
뭔가를 숨기는 듯한 표정이지만 나는 구태여 그녀에게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이끄는 이가 아니라 이제는 존중해야 할 상대였으니 말이다.
그녀의 고민을 내게 풀어놓으라 강요할 순 없었다.
강당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시선이 내게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십 대 초반이거나 대부분 그보다 훨씬 어린아이들이었다.
지구로 치면 이제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들어갈 만한 아이들.
이곳에 모인 아이들 모두는 이미 몇 차례 벌어진 전쟁, 그 전쟁에서 희생된 참전용사들의 유가족이었다.
부모를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 아이들이라는 소리였다.
참전용사의 유가족을 홀대하는 주제에 큰 뜻을 품겠다니,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티오니스 대륙은 제법 자유롭고 상식이 통하는 대륙이지만, 그래도 역시 이런 부분에선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희생당한 참전용사들에게 남은 것은 명예뿐 실질적인 보상은 없었다.
그러니 나라도 그들을 포용해야지.
물론, 그런 아이들을 골라 받아들인 건 단 한 명의 어린 소녀를 위해서이긴 했지만 말이다.
한쪽에 시선을 돌리자 깔끔한 아카데미 교복을 입은 뮤우가 나를 발견하고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게 보였다.
학교 다니고 싶다고 했지?
다른 곳에 맡길 바에 내가 만들고 말지.
* * *
전쟁으로 희생된 참전용사들의 유가족에게 보상을 한다.
이건 솔직히 해당 사항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경계의 대상이었다.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나라님들이 시켜서 도와준다지만 어느 정도 현실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달랐다.
아무리 무식하고 까막눈이라고 해도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평민들에게 귀족은 함부로 바라볼 수 없는 까마득히 높은 존재일 뿐이었다.
언제든 이유를 가져다 붙여 목숨을 거둬가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무서운 존재 말이다.
성년으로서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이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제 부모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작은 아이들에겐 유가족이라는 딱지는 더욱 살기 팍팍해지는 요소일 뿐이었다.
그런데 변화가 생긴 것이다.
당장 오늘 굶어 죽나 내일 굶어 죽나 걱정해야 하는데 그것을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아버지가 팔란 제국의 병사로 참전했다가 사망한 평민의 아들 로시드는 십 대 초중반의 소년이었다.
실력 좋은 사냥꾼이었던 아버지는 나라를 지키고 터전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병사로 자원해 전쟁에 참여했고.
그렇게 돌아오지 못했다.
아침에 아버지와 사소한 말다툼을 한 것이 아버지를 본 마지막이었다는 소리였다.
참 씁쓸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낡긴 했지만, 날만큼은 날카로운 단검과 관리가 잘된 활이 전부였다.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사냥꾼이 되고자 해도 아직 그에게 사냥꾼이라는 일은 버겁기 그지없었다.
당연, 일을 할 수 없으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식량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주변 이웃의 도움을 받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부딪히면 결국 목숨을 걸고 사냥에 나서거나 길거리에 나앉아 몸을 납작 엎드리고 구걸을 해야 할 판이었다.
참 불공평하다 생각하면서도 로시드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한 번씩 하던 사냥을 나섰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지만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그는 숲에서 야생 몬스터를 만났고,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다시는 사냥을 뛸 수 없는 몸뚱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조차 할 수 없게 된 로시드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제대로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해졌고 그의 건강은 나빠져만 갔다.
주변의 도움도 한계가 있었다. 자신들 먹고살기도 바쁜 마당에 남을 돕는 정도가 있었으니까.
서서히 한계에 다다랐던 로시드가 더는 견딜 수 없어 자결을 결심했을 때.
그는 나라에서 찾아온 귀족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몸도 치료해주고, 교육을 해주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겠다.
처음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귀족들이란 다 그런 것들이 아니던가. 이전의 영지에서 미모가 아름답던 어머니에게 음심을 품고 하룻밤 수청 대상으로 징집해간 귀족의 횡포를 아직도 그는 잊지 못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단도 없었기에 그는 결국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하인스 영지로 왔다.
하인스 영지는 지금껏 봐온 다른 영지와는 조금 다른, 몽환적인 느낌의 영지였다.
생전 처음 타보는 고급마차에 올라 이동하던 그는 대체 자신을 어디에 쓰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가 싶었지만 이내 거대한 건물로 들어서자 생각을 멈췄다.
그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가득 모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아버지의 공로를 인정하여 보상을 해주려는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솔하는 여성을 따라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간 그는 신비로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분명 귀족자제들이 다니는 아카데미인데.“
“꺄악?! 유, 유령!”
“으악!”
아카데미 내엔 도저히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로시드를 포함한 아이 몇몇이 발견한 건 반투명한 색을 띠고 있는 기이한 차림의 남성이었다.
5천 년 전 잃어버린 문명의 저주받은 망자이지만 이제는 저주가 풀린 이들이다.
본래 다른 평행선에서 해방된 이들이지만 일주일 사이 이쪽의 유령들 또한 똑같은 해방의 날을 맞이한 상황이었다.
[뭐? 유령? 이 자식이 죽으려고! 콱 씨!]
뭔가 화가 많은 듯 짜증을 부린 남성 유령은 허공에 둥둥 뜬 채 다가와 로시드를 노려보았다.
[야.]
“네, 네!”
[너 내가 유령으로 보이냐?]
“아니요!”
일단 아니라고 하자, 유령이라고 하면 화를 냈으니까.
하지만 유령은 보통존재가 아니었다.
[유령 맞는데 유령으로 안 보인다는 뭐냐, 멍청이냐?]
빠드득.
심드렁한 남성의 말에 로시드의 이가 절로 갈렸다.
뭐하자는 거지? 미친 유령인가?
아니, 대체 애초에 유령이 이곳에 왜 있는 것인가.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선 아카데미의 기숙사를 배정받고, 여러 물품을 보급받았다. 그리고, 아카데미 내부를 구경하던 중 그는 수많은 유령을 보았다.
귀족들의 아카데미는 이런 곳일까. 이곳에는 수인족, 드워프, 엘프 수많은 종족이 있었고, 놀랍게도 유령도 거기에 추가되어있었다.
물론 유령은 학생이 아니었다.
[꺄악!! 여긴 여성화장실이야! 여기서 나가!!]
‘마, 망할! 화장실을 틀어막고 있는 유령이라니!’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거의 히스테리를 부리듯 유령 하나가 나타나 그를 쫓아내기도 했다.
대체 뭐가 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 여자 화장실이래.”
“여자 화장실? 화장실에 남녀가 따로 있어?”
로시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어보자 다른 소년이 설명해주었다.
보통 평민들의 화장실은 공용이건 개인용이건 남녀를 나누지 않았으니 말이다.
2~30년 전만 해도 화장실조차 제대로 없는 영지도 많다고 들었다.
“나도 몰라. 어쨌건 저 문양은 여자 화장실이라고 했어, 그리고 이쪽이 우리 남자용 화장실.”
그렇게 말하며 로시드를 잡아끄는 소년을 따라 들어가자…….
[음, 이 놀라운 근육. 정말 더없이 만족스럽군. 음? 여긴 무슨 볼일이지?]
“아……”
[하기야 볼일이 있으니 이곳으로 왔겠지. 난 신경 쓰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며 스르륵 흩어져버리는 근육질 유령의 모습에 로시드가 입을 쩍 벌렸다.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내부 구경이 끝나기가 무섭게 중앙 강당으로 향한 아이들은 말도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기이한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가장 앞자리에 앉은 인간 한 명이 손으로 느긋하게 무언가를 조작하니 마차가 스스로 움직인다.
그것도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이윽고 평민의 삶으로썬 평생 가도 못 볼 그런 으리으리하고 아름다운 홀에 도착한 로시드는 횡렬 종렬 나란하게 선 수많은 학생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리고 앞 단상에 올라서는 몇몇 사람들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흐흐흐…… 어서 와…… 어서 와…….”
손에 감자를 쥔 채 음산하게 웃는 기사님이다. 분명 굉장히 잘생기고 젊은 분 같은데, 이상하리만치 위험하다는 신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만 당할 수 없지. 내 모든 교육을 너희에게 때려 박아주마.”
그가 뒤에 중얼거리는 소리만 듣지 않았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안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자애의 상징, 주신님의 딸이라 불리는 신관 여성분들도 보였다.
정말 아름다운 분들이었지만 그분들의 자애로운 미소 속에 담긴 감정을 눈치챈 로시드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누구든 걸리기만 하세요. 괴물 같은 실력의 사제로 만들어버릴 테니.”
“아아…… 아아! 힘이 넘쳐흘러,”
뭔가,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 같은 말투들이었다.
이상하다.
로시드는 귀족 나리들이 다니는 아카데미가 이런 곳인가 심각하게 고민해보았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애초에 단상 위에 있는 이들이 보통 아카데미에선 볼 수도 없는 엄청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로시드를 포함한 아이들이 알 순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이 모든 일을 시작한 대륙의 영웅, 그리고 유일한 성자라 불리는 인물이 나타났다. 나이 차이는 로시드와 크게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에 담긴 느낌은 지금껏 봐온 어떤 귀족들과도 달랐다.
아버지가 보여주던 노련함과 관록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느껴지지만 어떤 면으론 한없이 장난스러운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을 따라 걸어들어오는 은발의 소녀를 보고 모두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가난하게 자라온 출신이지만 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소년의 옆을 따라 걸어오는 소녀는 그만큼 아름다웠다.
모두의 시선을 받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은발의 소녀가 곤란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본래라면 그렇게 쳐다봤다는 이유만으로도 목이 날아갈 수 있을 텐데, 마치 홀린 것처럼 눈을 쉬이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침묵을 깬 것은 기사님과 신관님, 마법사님들이 서 있는 단상 중앙에 도달한 검은 머리의 소년이었다.
“다들 환영한다. 여기 모인 모두가 조금 의아할 거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말이야.”
이어서 소년의 말에 모두의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단순히 보상하는 거로 생각해도 좋아. 누가 됐건 해야지? 다들 고맙다. 너희들의 부모님이 힘을 써주신 덕분에. 대륙은 한 차례 위기를 넘겼고 평화가 유지되었으니까.”
입에 발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눈치 좀 있는 큰 아이들은 다 그런 편이지만 어린아이들은 그저 잘생기고 예쁜 언니 오빠, 혹은 형 누나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입에 발린 말에 체통이고 품위고 뭐고 떠들기만 하던 아이들 대부분이 침묵했다.
“비록 너희 부모님의 존재를 대신할 순 없겠지만, 대륙 성자의 이름으로 약속하지. 너희 부모님들은 대륙을 구한 위대한 분들이며 그 공헌을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거다. 내 말을 들을 수 없는 너희 부모님을 대신하여 너희들에게 말한다. 고맙다.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살았으니.”
복잡하지도 않은 그 한마디는 느낌이 묘했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코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땐 잘되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살기 팍팍한 곳이라면 차라리 죽고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는 게 나을 거라고. 괜찮다고, 본래 평민의 삶은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흑…… 흐윽……”
“흑흑흑……”
왜 눈물이 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