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7화
과유불급과 다다익선.
그래, 넌 어떤 결과를 줄 테냐.
데이비는 그렇게 말하고 환골탈태에 돌입했다.
솔직히 페르세르크의 입장에선 데이비가 이토록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기본적으로 단단한 육신을 지니고 있지만 강대한 존재가 나타나 데이비를 지금 공격한다면 환골탈태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자신이 있는 것이다.
짝!!
양손을 마주쳐 부딪힌 페르세르크는 미리 데이비에게서 받아놓은 물건을 꺼내 들었다.
무표정으로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뽐내던 페르세르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흐흐흐, 본녀에게 오거라. 어찌 널 기다렸는지, 넌 모를 게야.”
마치 변태처럼 스태프의 자루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린 그녀는 한참 동안 홀린 것처럼 스태프에 뺨을 비벼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륀느가 조금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페르님의 그런 행각을 륀느가 매우 낮게 평가.”
“크흠, 거 각기 취향이라는 게 있는 법인 게야.”
머쓱해진 표정을 애써 숨기며 헛기침을 두어 번 한 그녀는 스태프를 양손으로 쥐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우웅…….
동시에 그녀의 주변으로 작은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며 곧이어 작디작은 결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크기는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효율.
“커져라. 뚝딱!”
이윽고 초월의 종언으로 커지기 시작한 검은 장막이 데이비와 마법진을 감싸기 시작하자 그녀는 스태프를 그대로 지면에 꽂아 세운 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앉았다.
“페르님?”
“데이비는 오래 걸릴 거야. 혹여라도 그에게 위해를 끼칠 존재가 없게 해야겠지.”
“륀느가 방호를 높게 평가!”
그렇게 외친 녀석이 주머니에서 작은 큐브 두어 개를 꺼내 던졌다.
철컥!! 철커덩!!
동시에 그 크기를 불린 큐브가 일순간 모습을 바꾸며 거대한 두 골렘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엘더브레인의 이름으로 명령을 인계 이 일대 위협이 되는 존재를 모조리 배제.]
[퓨마, 명령인수]
[스나이퍼, 명령인수]
아직 륀느 만큼의 인공지능은 없는 골렘들이지만 수많은 알고리즘을 통해 녀석들은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디셉티콘 편대는 방어와 섬멸에 특화된 전투 골렘들이다.
압도적인 중량을 지닌 마나 광자포를 쏘아대는 스나이퍼와 단단한 두 개의 검을 빠르게 휘두르며 적진을 교란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퓨마.
초기와 비교하면 이미 수차례의 업그레이드를 거쳐 이놈들의 개개인 전투력은 소드마스터와 싸워도 상성을 따진다고 말할 정도로 강력해져 있었다.
일개 골렘이 소드마스터급? 연금학파에서 들으면 기가 막혀 할 소리이지만 페르세르크의 입장에서 륀느가 다루는 골렘들은 이미 이 대륙의 기준을 예전에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보통 골렘은 버티기용이나 분쇄용, 혹은 축성용으로 사용한다. 디셉티콘 편대처럼 이렇게 다양한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하는 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게 만들어졌으니.
이젠 그냥 골렘이라 부르기도 뭣한 수준이었다.
“주변 탐색을 시작, 광입자포를 채택. 화력을 륀느가 높게 평가.”
평소엔 효율의 차이로 잘 꺼내지 않지만, 화력만큼은 확실히 보장되는 광입자포를 만들어내 장착한 그녀가 커다란 무기를 이리저리 겨누었다.
마치 아이의 애교 같아서 웃음이 나오는 페르세르크였다.
“방금 전의 파장은 그냥 보기 애매한데. 제발 별일이 없기를.”
* * *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륙의 인간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사실 티오니스 대륙의 극지에는 극도로 위험한 초상위 마물들이 보금자리를 트고 오랜 시간 생존해오고 있었다.
실제로 중부대륙 북부의 판도라 영역에 있는 라스트 위스프.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이 그 극빙지에서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를 막아서던 것과 비슷했다.
실제로 판도라 영역의 심층에는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 이외에도 분명 강력한 마수왕들이 존재했다.
그곳이 그럴진대.
다른 곳이라고 다를까.
데이비가 퍼뜨린 거대한 파장은 강대한 존재들은 느낄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절대 좋은 의미로만 다가올 순 없었다.
“젠장 막아!!”
마치 도포 같은 정복을 입은 사내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접근하는 거대한 괴물을 막아선다.
“빌어먹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서부에 있는 라스트위스프 중 하나인 이곳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다.
서부대륙의 중남부에 있는 하이샤스 대숲의 끝에서 서식하고 있던 마물왕 하나가 마치 홀린 것처럼 대규모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단신으로 세력을 일굴 만큼 거대한 이 괴물은 머리가 무려 4개나 존재했는데, 주변에선 이놈을 두고 [기가드라] 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실제로 이 하이샤스 숲의 바깥에는 알게 모르게 이 기가드라의 전설이 퍼져 나오고 있는 판국이었다.
계속 울면 기가드라가 나타나서 한입에 꿀꺽 삼켜버린다며 부모가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그놈을 본 이가 없기에 단순 괴담 정도로 치부되었지만, 실제로 마경을 두고 누구도 모르게 지키고 있는 이들에겐 기가드라는 실존하는 존재이며 괴물 그 자체였다.
오랜 시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던 놈이 마치 홀린 것처럼 이동을 시작한다.
비밀 기사단인 라스트위스프의 힘으로도 놈을 제압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놈을 유도하거나 감시하는 게 전부였던 만큼 놈의 태동에 초비상상태가 걸릴 수밖에 없었다.
“놈이 밖으로 나가면 모든 게 끝장이다. 막아!”
소드마스터로 막아? 어림도 없는 소리.
대현자의 마법?
어림도 없다.
마족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용사 레이나? 불가능하다.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미친 4두룡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젠장! 온다!”
이윽고 길을 틀어막던 기사단이 거슬렸는지 4두룡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고 반사적으로 기사단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몸을 피했다.
쩌억!
동시에 그들이 있던 공간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마치 거대한 브레스가 지나간 것처럼 어마어마한 빙산이 생겨난 것이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 피하는 속도가 느렸던 이들은 그 영구 빙산에 그대로 갇혀 반응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어 버렸다.
끔찍한 참상에 살아남은 이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이 미친 괴물이 제발 멈추고 돌아가 주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4두룡 기가드라는 멈추지 않았다.
놈이 향하는 방향은 숲으로부터 조금 위쪽에 있는 작은 왕국.
활의 국가라 불리는 ‘현’국에서 신성시하는 대숲이었다.
짜드드득…… 짜득!
그때였다.
허망하게 기가드라를 지켜보던 이들은 놈의 등에 단단한 피부가 찢어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돋아난 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저…… 저건!!”
그것은 거대한 두 쌍의 날개였다.
4족 보행으로 걸어 다니는 것만 목격된 기가드라가 날개를 펼쳤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거대했다.
“전 기사단에 알려! 모두의 지원을 받아 놈을 저지한다.”
“하지만 단장님!”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라! 놈이 새어나가면 대륙은 끝장이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수백 년간 이곳을 지켜온 거라 생각하나!”
그 외침 속에서도 기가드라는 날개를 펄럭이며 감각에 적응하는 듯하더니 이내 날아올랐다.
어마어마한 풍압이 일대를 갈랐고 기사단은 결국 손을 써보기도 전에 기가드라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대체 기가드라가 향하는 방향이……”
“이 방향대로라면 그곳이다.”
‘현’국에서 가장 신성시하던 숲, 시험의 숲.
수호신이 지키고 있다고 알려진 그 신비한 숲 말이다.
“좀 전에 그곳에서 거대한 힘의 파장이 흘러나왔습니다. 그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자네도 느꼈는가.”
“네. 소드마스터급 이상의 단원들은 모두 느낀 듯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군……. 가세, 모든 병력을 총집합시켜. 놈이 시험의 숲으로 갔다면 오히려 기회다. 그 넓은 숲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놈을 제압하던지.
아니면 죽이든지.
“실패는 없다고 생각해라.”
실패는 곧 죽음이니.
그들은 몰랐다. 기가드라가 홀린 듯 향하는 그곳에 누가 있는지를 말이다.
* * *
놈이 지나간 곳은 거대한 태풍을 일으킨다.
정령의 힘이 충만한 이 거대한 숲에 도달한 기가드라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어마어마한 시선을 끌었다.
그저 괴담, 전설로만 기가드라를 치부해온 이들조차 하늘을 나는 4두룡의 모습에 모두가 얼어붙었고 두려움에 떨었다.
신화나 전설에나 나오는 포악한 괴물이 나타났으니 두렵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쉽게 나설 수 없는 이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절게 하는 그놈의 모습 때문이었다.
쿠웅!!
-크아아아아앙!!!
거대한 포효와 함께 숲에 도달한 기가드라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놈은 거대한 숲을 둘러보다 이내 이동하기 시작했다.
갈 길을 방해하는 거대한 거목들을 모조리 부서뜨리며 진행하는 기가드라를 막을 존재는 없었다.
숲에 서식하던 희귀한 동물들은 이미 도망친 탓에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그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포효를 울리며 놈이 계속해서 전진해나갔다.
피잉…… 퍼어엉!!!!
그때였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기가드라의 머리 하나가 마치 폭탄에 직격한 것처럼 폭발하며 거대한 연기를 일으켰다.
피잉! 펑!!! 펑!! 펑!!!
뒤이어 수차례 광탄이 날아들며 기가드라의 몸체를 후려쳤고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던 기가드라도 계속되는 포화에 주춤거렸다.
스릉…… 철컹.
동시에 숲 아래에서 튀어나온 새카만 골렘 한기가 엄청난 속도로 파고들어 놈의 급소란 급소에 모조리 검을 꽂아넣었다.
생명에겐 반드시 존재하는 급소가 존재하는 법이니 말이다.
순식간에 제압당하는 거대한 존재, 기가드라는 수차례 괴성을 내질렀다.
그 괴성은.
고통으로 인한 것이 아닌, 짜증이었다.
쩌적…… 쩌엉!!
이윽고 연기 속에서 광탄에 직격했던 머리가 멀쩡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입을 쩍 벌리더니 그 범위 내에 있는 모든 것들을 얼려버렸다.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의 폭거였다.
어마어마한 냉기가 담긴 극빙의 냉기 브레스.
실제로 기가드라의 네 머리는 각기 다른 힘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머리는 폭염을.
두 번째 머리는 극빙을.
세 번째 머리는 태풍을 일으키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뇌광을 머금는다.
세상을 얼려버릴 것처럼 강렬한 냉기 브레스가 작렬하기가 무섭게 놈의 또 다른 머리가 입을 쩍 벌렸다.
쿠아아앙!!!
동시에 어마어마한 폭염의 브레스가 숲 일부를 증발시키듯 불태워버렸다.
-그아아아아아아!!!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섬뜩할 정도의 힘을 품은 그 존재의 모습에 멀찍이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륀느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대량의 에너지반응을 검출,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보다 상위의 개체라고 판단. 륀느가 상황을 낮게 평가.”
좋지 않다.
판도라 영역의 마물왕으로 자리 잡고 있던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만 해도 재앙 급에 가깝건만.
그보다 더 상위의 개체라니.
데이비가 있으면 몰라도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페르세르크를 제외하고 놈을 막을 존재는 륀느가 전부였다.
문제는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계산해보아도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 손에는 크로우바를, 또 한 손엔 고열을 머금은 라이트세이버를 구현해 낸 륀느는 말없이 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륀느가 방어. 이 이상 한 발자국도 못 간다고 명시.”
안 되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륀느에겐 그것이 지금이었다.
* * *
콰아아앙!!! 쾅!!
숲 저편에서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려 퍼진다.
환골탈태에 돌입한 지 나흘째 되는 날. 데이비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페르세르크는 불현듯 찾아온 갑작스런 사태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싶어 결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륀느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멀리서도 느껴질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의 포효소리와 폭음은 보통이 아닌 적이 나타난 것임을 말이다.
콰아앙!!!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의문은 곧이어 숲 저편에서 날아든 새카만 숯검댕이를 보고 나서야 풀릴 수 있었다.
“륀느!!!”
평소 즐겨 입던 새하얀 원피스나 발과 발목을 감은 붕대가 새카맣게 타버린 게 보였다.
몸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만큼 처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륀느였다.
무릎을 꿇고 앉아 결계를 유지하고 있던 페르세르크는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륀느가 결계에 부딪히며 바닥에 추락하자 표정을 대번에 굳혔다.
침입자가 있다. 문제는 륀느의 상태을 보기 위해 몸을 일으키면 결계가 사라진다. 데이비가 무방비하게 노출이 된다는 소리였다.
“륀느! 대답해보아! 괜찮은 게야?!”
다급하게 소리쳐보지만, 바닥에 대자로 뻗어 쓰러져 있는 륀느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죽은 건지 산 건지도 알 수 없다. 륀느가 어디 보통 존재이던가.
스스로 성장하는 기계장치의 신을 심장으로 이식한 고대의 생체 골렘이 바로 륀느였다.
각성 초기부터 소드마스터급 이상과 싸울 만큼 강했고 지금은 어지간한 소드마스터는 어렵지 않게 이겨버릴 만큼 성장한 녀석이기도 했다.
그런 륀느가 당했으니 상대가 보통 존재가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펄럭…… 펄럭…… 쿠웅!!
그런 페르세르크의 의문은 곧 풀어졌다.
륀느가 날아온 방향의 창공에서 거대한 황금빛 비늘을 지닌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머리가 6개, 단단한 비늘과 두 개의 앞발, 두 쌍의 날개와 두꺼운 뒷다리까지.
마치 신화 속에나 나올법한 괴물의 모습이 이러할까 싶었다.
저 괴물이 륀느를 이지경으로 만든 범인이리라.
죽은 듯 침묵하는 륀느를 바라보던 녀석은 조금 특이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머리 두 개는 몸에서 곧바로 이어져 있지만 4개의 머리는 마치 하나의 머리가 갈라진 것처럼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섬뜩한 기세에 페르세르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결계를 해제하고 놈을 상대한다면 이길 자신은 있었다. 비록 그녀가 부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그녀의 머릿속에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륀느를 구하기 위해 결계를 거두는 순간.
데이비가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지독한 딜레마에 빠진 페르세르크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제발 륀느가 깨어나 주기를 말이다.
우우웅…….
이윽고 자신과 결계, 그리고 데이비를 바라본 괴생명체 기가드라의 몸에 방대한 양의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막을 순 있다. 하지만 그냥 두면 륀느는 저 브레스에 휘말려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 아주 짧은 순간 수많은 고민을 거듭하지만 누굴 선택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심연의 힘을 제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마왕의 힘을 모두 각성한 상태였다면 이처럼 수치스럽고 굴욕적이진 않았을진대.
속으로 그렇게 울분을 삼키며 그녀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마치 카운트 다운하듯 모여드는 광원은 곧 륀느가 있는 방향을 기준으로 결계를 정확히 노렸다. 환골탈태 중인 데이비를 보호하느냐 아니면, 치명상으로 보이는 륀느를 보호하느냐. 짧은 고민 끝에 그녀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무렵.
놈의 6개의 머리에서 각기 다른 속성의 거대한 브레스들이 모여들며 점차 그 크기를 불리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좀 일어나게 데이비!!”
가장 상책은, 환골탈태 중인 데이비가 일어나 주는 것.
하지만 나흘째 침묵하고 있는 그가 지금 와서 일어나 줄 확률은 너무 낮았다.
절망감이 앞선 그녀가 눈물 고인 얼굴로 브레스의 범위 내에 쓰러져 있는 륀느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그 순간.
“메가로드리아, 서열정리 한번 하자.”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들어 허공에 떠올라 있던 기가드라의 육신에 날아 차기를 꽂아넣었다. 순식간에 충격파가 터지며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기가드라의 육신이 지면에 처박히고 수십 수백 미터를 날았다.
[고개를 조아려라, 하찮은 미물아. 나는 진정한 환수의 왕, 내가 바로 폭풍이니라.]
섬뜩하면서도 위엄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굳어있던 페르세르크는 좀 전까지 알처럼 변해 침묵하고 있던 빛의 광원이 서서히 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쿠아아앙!!!!
동시에 거대한 알이 부서져 내리며 어마어마한 힘의 폭풍이 알에서 나온 데이비를 기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