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8화
깨어진 알은 곧 빛의 부스러기가 되어 사라졌다.
쿠우우웅!!!!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나가며 지진을 일으킨다.
제어되지 않은 흉폭한 기운이 사방에 몰아친다.
“으읏…….”
본능적으로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다.
페르세르크는 굳은 얼굴로 6두룡을 날려버린 메가로드리아와 알에서 튀어나온 소년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려움을 느껴야 할 대상은 아닌데, 그가 내뿜는 힘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이게 정상적인 환골탈태라고? 그럴 리가.
소드마스터나 6서클 급 마법사, 혹은 상위 신관에 이르는 극소수의 인간들은 이미 환골탈태를 겪었다.
비록 그 과정이 특출나게 애매하기도 하고 종족이 인간에 한해서 굉장히 유한 편이기에 잘 보기 힘들지만, 그녀도 오랜 시간 살아온 만큼 환골탈태를 하는 이들을 많이 봐왔었다.
문제는 그 증폭수준이었다.
환골탈태를 하면 자연적으로 전신이 강화되는 건 사실이지만.
이토록 무서울 정도로 강하게 강화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무슨 말이냐 하면.
환골탈태는 일종의 육체 진화라 할 수 있다.
육신의 기본 베이스 잠재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 변화의 증폭량은 올라간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데이비의 기본 베이스가 너무 아득히 상위의 하드웨어라는 것.
“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야…….”
그녀는 분명 본 적이 있었다.
해상국가에서 초대 리치 닉스를 아작내버릴 때 그가 내뿜던 진짜 본래의 힘을 말이다.
물론 그때도 모조리 끌어낸 게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직감하고 있었다.
그때의 힘을 모두 되찾은 것일까.
그녀가 아는 데이비가 모든 힘을 되찾는다면 애초에 걱정거리는 사라진다.
회랑의 영웅들이 규격 외일 뿐, 실상 그들의 제자인 데이비는 다른 의미로 굉장히 위험한 놈이니 말이다.
다양성에 한해선 회랑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그런 주제에 분야마다 스승들을 거의 턱 끝까지 따라간 수준이다.
과연.
이번 환골탈태로 그는 얼마나 강해졌을지 괜스레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되는 그녀였다.
실제로 데이비는 스승들의 힘으로 내면의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게 풀려버린 이 세계에서 만약 그가 힘을 되찾아버린다면…….
‘안돼. 그것만큼은 막아야 해.’
데이비가 가끔 와인을 홀짝이며 지나가듯 하던 말.
홀연히 나타났으니 홀연히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게 이 빌어먹은 현실이라던.
그 말이 왜인지 모르게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 * *
알이 있던 자리에 몸을 살짝 숙이고 있던 나는 마치 온몸의 감각이 개방된 것 같은 개운함을 느꼈다.
의식이 돌아온 것은 조금 전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별 같잖은 6두룡이 륀느를 숯검댕이로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결계를 펼치고 있는 페르세르크를 향해 브레스를 장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꼴에 보아하니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급의 힘을 지닌 마물왕 정도 되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내가 환골탈태를 하면서 퍼져나간 힘의 파장을 느끼고 몰려든 녀석으로 보인다.
세상에는 수많은 오지가 존재하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마물과 마물의 왕이 존재한다.
6두룡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바 있다.
아니, 정확히는 4두룡, 기가드라, 우는 아이는 기가드라가 잡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녀석인데 머리가 두 개나 더 많다.
-끄우어어어어어어어어!
기괴한 울음소리를 흘리며 메가로드리아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애초에 메가로드리아는 저깟 녀석이 감당하기 힘든 상위의 환수왕이다.
그랜드마스터급 환수, 아니 아직 계약되지 않아서 그 반절이라 해도 그 정도 급이 되는 환수가 저런 녀석에게 당할까.
[하찮은 것!]
콰앙!!!
놈을 지면에 처박은 메가로드리아는 특유의 거대한 육신에 달린 앞발을 이용해 기가드라의 머리 하나를 쥐고 지면에 처박았다.
뜨드득!!!
그리고 거기에 만족 못 했는지 급기야 힘으로 놈의 머리 하나를 잡아 뜯어버렸다.
푸화아아아악!!!!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야말로 괴물 그 자체.
자신이 폭풍 그 자체임을 말하던 메가로드리아의 힘은 역시나 놀라울 정도였다.
“데, 데이비?”
말없이 기가드라와 메가로드리아의 싸움을 지켜보던 나는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페르세르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계를 거둔 그녀는 힘이 빠졌는지 휘적휘적 걸어 내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던 탓에 다리가 저린지 초월의 종언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던 그녀가 급기야 내 앞에 와서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안겼다.
“정말…… 데이비 그대야?”
마치 다른 이를 바라보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늘 그렇듯 장난스레 웃어 보이며 그녀의 머리를 당겨 품에 안았다.
“그래, 나야.”
“그래……. 조금 변하긴 했지만, 그대가 맞는 게야.”
“변했다고?”
환골탈태를 하면 육신이 더욱 건강해지는 건 사실이다. 컨디션 최상위에 오르는 건 맞는데 보통 외향이 크게 변해서 못 알아볼 정도로 바뀌진 않는다.
무슨 이유인지 모습이 변한 걸 확인하고 싶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기가드라를 처박은 채 날뛰고 있는 메가로드리아를 지나친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숯검댕이를 바라보았다.
전신이 검게 그을린 것은 다름 아닌 륀느였다.
그녀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아니, 가동을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륀느.”
대답은 없다.
눈을 감은 채 침묵하고 있는 륀느의 오른팔은 거칠게 물어뜯긴 흔적으로 가득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물어뜯긴 상태에서 그대로 브레스에 직격했다는 게 훤히 보였다.
“메가로드리아.”
말없이 륀느를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지금 나는.]
“됐고, 비켜.”
짧게 말하며 내가 몸을 일으켰다.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낀 메가로드리아가 놈을 제압하던 앞발을 치우며 물러나기가 무섭게 내 뒤의 아공간에서 두 자루의 검이 검집에 고이 꽂힌 채 모습을 드러냈다.
우웅…… 우우웅!!!
동시에 두 자루의 검이 내 힘과 공명하며 다시 한 번 변화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청단이 홍단이보다 긴 사이즈의 검.
두 아이가 융합되어 만들어지는 초단이였다.
어느 정도 이상의 힘으로 강제 각성시키는 게 아닌 이상 초단이를 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환골탈태를 완성하면서 그 커트라인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절반.’
몸 안의 육신 상태를 확인한 내가 초단이를 검집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뽑아내기 시작했다.
-끄우우우우우으으으!!!
고통스레 울부짖으며 몸을 일으키는 6두룡, 기가드라가 나를 발견하고 괴성을 내지른다. 6개의 주둥이에선 각기 다른 속성의 브레스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더럽게 시끄럽네.”
찰칵.
[천마공]
[마령검 79초식]
[귀신빙의]
[참수하살법(斬首遐살殺法)]
동시에 내 전신의 뒤로 새카만 마공의 내기가 흘러나오며 마치 악귀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냈다.
나와 같은 자세로 검을 천천히 뽑아내는 귀신의 검이 빛에 번뜩이는 순간.
쩌억!!
검이 뽑히지도 않은 채로 공간이 찢어졌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공간이 마치 거대한 검기가 훑고 지나간 형태로 잘려나가며 기가드라를 덮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기가드라는 곧이어 자신의 목 2개가 증발하듯 뒤늦게 잘려나가자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성을 내질렀다.
처절한 괴성을 내지르며 녀석이 거대한 육신으로 온몸을 비틀었다.
이런 아픔은 없었을 거다.
마물의 왕이라 불릴 만큼 강한 객체였을 테니 그 누구도 놈에게 거스르지 못했을 테니까.
물론 녀석은 죽지 않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잘려나간 두 개의 머리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곧 다시금 재생하기 시작한다.
그 머리의 수는 이제 8개.
그러니까.
이놈 이거, 신화에나 볼법한 히드라와 매우 흡사하다.
머리가 잘린 부분에서 두 개의 머리가 재생하는 꼴이라니, 퍽 우습다.
[아버지……]
풀이 죽은 초단이의 목소리에 나는 검신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고생했다.”
짧게 중얼거리자 초단이의 힘이 흩어지며 다시금 두 자루의 검으로 나뉘었다. 동시에 내 겉으로 뻗어져 나가던 거대한 귀신의 형상이 허깨비처럼 서서히 흩어졌고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데이비! 녀석의 머리가!”
“됐어.”
짧게 중얼거린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명백히 놈을 무시한 행각이었다.
그리고는 숯검댕이가 된 륀느를 품에 안은 채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전능하사, 세상을 굽어살피는 주신 프리아 여신이시여. 당신의 자애와 은총을 내려받고자 하오니. 어린양이 한 치 앞 보이지 않는 어둠을 걸을지라도.]
우우웅…….
[……]
짧게 고민하던 내가 혀를 찼다.
아 모르겠다.
[됐고, 은총 내놓으세요.]
기분이 저조해진 내 전신으로 막대한 신성력이 쏟아지기 시작하며 륀느를 감싼다.
생체 골렘인 륀느이기에 신성 마법보다는 고치는 쪽이 맞겠지만 륀느는 일반적인 골렘과는 다르다.
새카맣게 탄 피부가 서서히 흰 빛을 되찾기 시작하고, 미동도 않던 륀느의 몸이 조금씩 온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륀느를 품에 안고 놓지 않은 채 신성 마법을 모조리 그녀의 육신에 때려 박았다.
이윽고 찢겨 나간 그녀의 팔이 마치 시간을 역행하듯 서서히 본래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완전히 회복되었을 즈음 나는 그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녀석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200kg이 넘는 륀느의 육신은 겉보기와 다르게 어마어마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그보다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페르세르크에게 다가가 륀느를 안겨준 나는 기가드라의 출현으로 난장판이 된 숲을 둘러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유불급이네.”
너무 많이 넣어서 부작용으로 엄한 놈을 불러들였다. 과연 내 힘에 홀려서 튀어나온 놈이 이놈 하나일까.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현 내 생각이었다.
아마 대륙 곳곳에서 변화가 생겼으리라.
이 정도까지 거대한 파장을 만들어낼 줄 몰랐으니까.
“데이비!! 아직 마물이 살아있음이야!”
놀란 페르세르크가 소리치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좀 전까지 굳어있던 기가드라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괴성을 내지르며 내게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8개로 늘어난 녀석의 머리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폭염과 극빙, 뇌광과 폭풍 등등 수많은 힘을 모으기 시작하는 녀석을 무시한 채 나는 손사래를 쳤다.
“됐어.”
“무슨……”
“받아칠 능력도 없는 놈이면 이야기할 것도 없다고.”
쩍…….
그 말과 함께.
내게 반격을 가하려던 기가드라의 육신에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기가드라의 황금빛 육신에서 수십, 수백, 수천 가닥의 실선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내 손 쓸 틈도 없이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가 죽었는지 모르는 놈이 위협되어봐야 얼마나 되겠냐.”
미련 없이 녀석에게 등을 보인 채 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전생의 삶에서 본 수많은 영화에서 그랬다.
상남자, 간지의 상징은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쿠구구구구궁!!
기가드라의 묵직한 수많은 육편들이 지면을 울리며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