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6화
“흐흐…… 흐흐흐흐.”
음산하게 웃음을 흘리던 귀여운 인상의 소년이 음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감히, 넬타리드님의 충실한 종자인 내게 이런 수모를 주다니.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다.”
소년의 이름은 케인, 스스로를 발키리아라 칭하며 넬타리드라는 생소한 신을 모시는 신의 종자라고 했다.
소년의 키는 고작해야 10살에서 13살 정도로 매우 어린 모습이지만, 녀석이 그런 통상적인 성장방식을 겪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녀석이 태어난 건 고작 하루 남짓이니까.
소년은 자신이 가진 특유의 빛을 머금은 힘을 이용해 시약에 빛을 조금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음산하게 웃으며 평범한 포션병을 높게 들어 보였다.
“좋아, 완성이다. 활성화된 용액의 향기를 맡거나 마시면 효과가 드러나겠지? 어디 확인을 해볼까?”
시약 확인 방법 중엔 후각으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포션병의 마개를 열고 코에 가져다 대 냄새를 확인한 녀석의 얼굴에 만족감이 어렸다.
그 탓인지 녀석의 등에 달린 푸른 날개가 쉴 새 없이 펄럭거린다.
“케인.”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금발 소녀가 불쑥 들어오자 케인은 깜짝 놀란 얼굴로 손에 쥐고 있던 포션병을 숨겼다.
그리고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어머니! 아름다우세요!”
“얘는 무슨……”
당황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일리나가 쿡쿡 웃어 보였다.
“어떠니?”
“으음……. 저는 인간의 미적 감각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어머니는 세계 최고로 아름다우세요!”
케인의 대답에 일리나가 빨개진 얼굴로 볼을 긁었다.
“알아봐 줄까……?”
“네?”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은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렴.”
비록 케인 데 팔란 이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 나가기엔 문제가 많았다.
그렇기에 일리나는 확정이되기 전까지는 케인의 존재를 외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어쨌든 고마워, 그런데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저 포션들은 뭐고?”
마탑과 연금학파, 그리고 신전에서 판매하는 각종 포션이나 약초들을 보며 일리나가 의심스레 케인을 보자 녀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양손을 저어 보였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어머니!”
“흐음…… 그래.”
의심스럽지만 더 캐낼 수는 없었는지 일리나가 떨떠름하게 말하고 나가버리자 케인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크흐흐흐…….”
그리고는 다시 음흉하게 웃기 시작했다.
데이비가 만들어준 렌즈 때문에 평소의 동공이 없는 푸른 눈은 일반적인 사람의 눈에 푸른 동공이 있는 모습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걸로 그놈을 물 먹여주지! 크헤…… 크헤…… 크헤헤…… 쿨럭! 쿨럭쿨럭!”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웃어 보이던 녀석은 곧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해댔다.
눈물까지 머금어가며 한참 괴롭게 기침을 하던 녀석은 곧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울 속에서 그와 비슷한 어떤 형체가 나타났다.
[어때, 끝내주지? 기대되지 않아?]
“음! 마음에 든다! 아주 마음에 든다! 이런 시약의 제조법이라니.”
[그래. 그걸로 네 어머니와 함께 있던 그 얄미운 인간을 혼내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너무 과하면 좋지 않을 텐데.”
[이봐, 날 못 믿는 거야? 우린 조화의 신이신 넬타리드님을 모시는 종자들이라고! 그런 내가 네게 누군가를 헤치는 걸 알려줄 리 없잖아? 그리고 너도 처음엔 그 인간을 죽이려고 했으면서.]
“그, 그거야 어머니를 헤치려고 하니까 그랬던 거지.”
[변명하곤.]
“그런데 너와 나 이외엔 다른 발키리아 족은 없는 거야?”
아이처럼 케인이 물어보자 거울 속의 형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석하게도 그래. 지금은 네게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른다면 그때 모두 말해줄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미 우리 종족은 한 차례 멸종했었다는 점이야.]
“하지만 넌 남아있잖아?”
[나는 네 유일한 친구니까. 나를 믿어, 친구. 종족 모두가 멸종해도 나만큼은 네 곁을 지켜줄게.]
그 말에 케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형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형체가 한발 물러나며 말했다.
[자, 이제 돌아가. 넬타리드님의 힘은 여러 방면에서 너를 보조하고 있어. 비록 발키리아는 모두 사망했지만, 우리에겐 조력자가 아직 남아있다는 걸 잊지 마.]
그 말과 함께 사라진 형체를 보며 케인은 손에 쥔 약병을 바라보았다.
먹기만 하면 2시간 동안 간지러움을 타게 되는 물약이다. 효과는 즉발, 그 얄미운 인간을 혼쭐내줄 수 있으리라.
작은 주먹을 꼭 쥔 케인의 눈이 번뜩였다.
* * *
검술대회 때도 그랬지만 마법대회도 삼제국의 주최 아래에 펼쳐진다.
이번 마법대회를 주최하는 팔란 제국으로 황태자 살리반은 일리나를 제국의 밖으로 빼내고 그녀의 입지를 쌓기 위해 그녀에게 이 일을 일임했다. 사고만 터지지 않으면 큰 공적이 될 테니 말이다.
대회가 시작되기 하루 전.
참가하는 10대 소년 소녀들이 연회장에 입장하고,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오라버니!!”
나를 보기가 무섭게 후다닥 달려와 포옥 안기는 녹발의 작은 소녀를 보며 나는 미소를 숨기지 않고 녀석을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윈리, 많이 컸구나.”
내 말에 녀석이 헤실거리며 내 품에 머리를 비벼댔다.
“오라버니는 왜 이렇게 변하셨어요?”
“알아볼 수 있어?”
“제가 오라버니를 못 알아볼까요.”
환골탈태 이후 액면가가 20대까지 올라갔음에도 윈리는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오랜만입니다, 데이비님. 그동안 바빠서 연락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었네요.”
“율리스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소식은 많이 들었습니다. 매번 놀라운 일을 해내시더군요. 그나저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조금 많이 변하셨는데요?”
윈리와 다르게 율리스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환골탈태를 해서 말입니다.”
“아…… 데이비님이라면 새삼 놀라울 것도 없네요.”
보통 이 나잇대에 환골탈태를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세상에 알려진 10대에 환골탈태를 한 이는 일리나 단 한 명으로 나의 환골탈태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어머나, 율리스님 오랜만이에요.”
“아, 일리나 황녀님.”
“왜 또 거리감을 두실까.”
뒤이어 일리나가 걸어 나오며 키득거리자 율리스가 쓰게 웃어 보였다.
“이제 일리나님도 어엿한 숙녀분이시니까요.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시네요.”
누가 들으면 참 로맨틱한 말이지만 일리나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애 취급하는 건 여전하네요.”
“하하하…….”
“앗 차, 시간이 벌써 다 되었네요. 언니! 처음 뵈어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에오니샤가 만든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윈리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페르세르크의 양손을 꼭 잡으며 헤실거렸다.
“오, 오랜만이구나.”
“헤헤, 제가 언니를 보는 건 처음이지만요. 정말 아름다우셔요.”
“고맙구나.”
쿡쿡 웃는 페르세르크의 눈에 장난기가 순간 돌았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머리를 뒤에서 잡아 당겨버리자 입술을 삐쭉였다.
“그대는 눈치만 빨라서.”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그녀는 내게 당한 스트레스를 주로 주변인들에게 장난을 치는 것으로 푸는 버릇이 들어버렸다.
뭐가 되었건 그녀와 나의 상성 관계는 내가 압도적인 갑의 위치에 있으니 말이다.
“두 분 결혼하신다고 들었는걸요.”
“뭐, 아직은 준비 중이지.”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기에 내가 대충 둘러대자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오라버니께서 누구와 혼약을 맺을지 참 궁금했었는데 잘됐어요.”
윈리는 한차례 나를 통해서 페르세르크의 정체를 들은 바 있다.
게다가 워낙에 붙임성이 좋은 탓에 크게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았다.
“저는 그럼 연회장에 들어가 볼게요. 오라버니.”
“이번 대회에 네가 참가하는 거니?”
“헤헤. 이래 봬도 4서클 마법사라구요. 어디 가서 꿀리지 않아요.”
배시시 웃는 녀석이 아름다운 녹빛의 드레스 자락을 들고 입장하자 율리스가 쓰게 웃어 보였다.
“윈리님께서 그동안 이 대회를 상당히 기대하셨거든요. 쌍둥이 오라비인 바리스 왕자님도 참가한 대회에 본인도 그냥 있을 순 없다면서요.”
4서클 마법사, 게다가 어릴 때부터 화적떼를 물리치는 데에 나서면서 실전경험도 풍부하다. 아마 어렵지 않게 입상할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 조금 걱정이네요.”
율리스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걱정이요?”
일리나의 질문에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번 대회에 그가 참가한다고 하더군요.”
“그라면?”
“평민 출신이지만 공로를 인정받아 남작이 된 소년이 있습니다. 이름은 멀린, 제법 뛰어난…… 아니, 굉장히 뛰어난 마법사예요.”
그의 말에 나는 심드렁하게 손을 휘저었다.
“그래 봐야 애들이죠.”
“아뇨, 그는 어린 나이에 5서클 경지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말끝을 흐린 그가 쓰게 웃어 보였다.
“저와 대련하는 중에 6서클의 벽을 넘어섰고요.”
“대련이요?”
의외의 단어에 일리나가 관심이 생긴 듯 물어왔다.
“네. 사실 우연찮게 치러진 대련입니다만, 뭐 숨길 게 있나요. 저는 그 멀린이라는 소년에게 한차례 패배를 했거든요.”
그 말에 일리나가 기겁한 표정을 짓는다.
율리스가 누구던가.
마법 학계에선 최고의 천재라 불리던 이로 20대 중후반에 소드마스터급이라 불리는 6서클에 들어선 재능아 중 하나다.
실제로 마법사는 검사들보다 마스터급의 경지에 오르기가 더 어려운 편이었으니 말이다.
“딱히 숨길 건 없겠죠. 맞습니다. 저는 그의 마법에 한차례 패한 적이 있어요.”
“세상에……, 6서클 초입 아니었나요? 같은 등급이라도 율리스님과의 경력 차가 있을 텐데…….”
기가 막힌다는 듯 물어보지만 율리스는 말을 아꼈다.
“제법 신기한 방식으로 마법을 다루더군요. 게다가 재능 면에선 가히 압도적일 정도였습니다. 그때 6서클 초입이었으니 지금은 익스퍼터급까지 올랐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나 빠르게요?”
“멀린의 스승은 고작 3서클입니다. 그는 그런 스승을 뛰어넘은 지 한참 되었죠. 실제로 적탑을 포함한 수많은 마탑에서 그 소년을 영입하려 하기도 했었습니다만, 문제가 하나 있더군요.”
율리스의 말에 나는 말없이 연회장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권태에 찌들어있었습니다. 너무 재능이 압도적이라 흥미를 못 느끼는 거죠. 재능 자체는 우수하지만 제 스승님께서는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하는 바람에 미뤄지기도 했었습니다.”
멀린은 마탑에 그리 좋은 감정이 없다는 모양이었다. 대현자의 한마디에 영입하려던 이들이 모두 손을 놓아버렸으니 말이다.
“실제로 그렇게 떠들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대현자도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마법은 자신에게 그토록 쉽고 따분하며, 이곳의 마법사들은 모두 멍청한 이들뿐이라더군요.”
“세상에. 오만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일리나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재능은 진짜입니다. 뭐, 천성이 나쁜 소년은 아니에요. 벽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 뿐.”
“솔직히 여기 그보다 더한 괴물이 있긴 한데 말이죠.”
일리나의 시선이 흘끗 나를 향해 다가온다.
“뭘 봐.”
“하여튼, 이쪽도 성질머리는 더럽죠.”
“하하하…… 이런, 저는 대회주최 측이기에 스승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사실 이번 대회에 제 스승님이신 대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님이 참관하시거든요. 일리나님은 당연히 주최 측으로 참관이실 테고. 데이비님은 참가하시나요?”
“어떻게 할까요.”
장난스레 웃으며 말하자 그가 식은땀을 흘렸다.
“농담으로라도, 자라나는 새싹을 밟는 짓이 될 거로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참가 안 합니다.”
이유 없는 양민학살에는 취미가 없다.
“윈리가 잘하는지 그냥 지켜볼 겸 이전에는 제대로 보지 못한 대회를 즐겨보려고요.”
검술대회 때엔 뱀파이어 샤리와 볼티즈 왕국의 7왕자의 난동으로 중반에 대회가 취소되었었다.
그렇기에 이번엔 지켜보고자 하였다.
율리스가 떠나고 페르세르크와 일리나만 남은 공간에는 괜한 침묵이 감돌았다.
“혹여 그 소년이 윈리를 다치게 할까.”
“그럴 리는 없겠지. 너무 넘겨짚지 마.”
만약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야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마 그럴 확률은 낮을 거다.
실제로 소년은 대련 중에 압도적인 실력으로 찍어누를 뿐 누군가를 괴롭힌 적은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어머니!!”
그때 멀리서 로브를 뒤집어쓴 작은 소년이 일리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케인?”
“어머니! 여기 계셨네요!”
마치 어미를 찾는 새끼 새처럼 달라붙은 케인의 모습에 내가 짧게 혀를 차자 녀석이 곧 나를 노려보았다.
“뭘 봐, 인간!”
“죽는다?”
“윽!”
본능적으로 움츠러든 녀석의 모습에 일리나가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 녀석, 데이비는 소중한 친구라고 말했잖아. 사과해야지?”
“하, 하지만.”
“어서.”
의외로 단호한 일리나의 말투에 케인은 울상을 짓더니 이내 품 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들었다.
상당한 고가의 마나 포션이었다.
“흥! 이거나 먹으시지!”
부끄러운 듯 약병을 내게 내미는 모양새에 일리나가 킥킥 웃어 보였다.
“부끄럼타는 거야?”
“아, 아니에요!”
“데이비, 아이가 주는 건데 안 받을 거야?”
그 말에 나는 말없이 녀석이 건네는 병을 받았다.
아주 잠깐, 녀석의 입가가 씨익 올라가는 걸 본 거 같은데.
동시에 페르세르크의 눈에 장난기가 돋는다.
“참, 일리나, 데이비가 타통해준 혈로에 마나 흐름은 괜찮은 게야?”
“아…… 글쎄요. 처음엔 활발하더니 요즘엔 상당히 둔해져서 말이죠.”
일리나의 대답에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럼 내가 아니라 네가 마셔야겠네. 총 마나량이 부족한 거야. 제법 비싼 거니까 네가 마셔.”
내 말에 일리나는 반쯤 의심하는 얼굴을 하며 병을 받았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
“충분할 거다.”
“아……, 어, 어머니!”
“왜 그러니 케인?”
마개를 열고 향을 맡는 일리나를 보며 케인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그게……”
“왜 무슨 일이 있어?”
“아, 아니에요. 그러니까……”
“싱겁기는.”
그렇게 말하며 병을 입에 가져다 대려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악!!”
기겁하며 녀석이 날아올라 일리나가 쥔 병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자신이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페르세르크와 내 얼굴에 녀석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윽…….”
그리고.
효과는 대번에 드러났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참지 못하고 바닥에 뒹굴며 웃어대기 시작하는 그 모습에 일리나의 표정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뭐, 뭐야?”
“뭐긴 애들 장난이지, 어디서 개수작을 부리고 있어. 쥐방울만 한 게.”
“쿡쿡.”
내 말에 케인은 엉엉 울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나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당황한 일리나가 녀석을 진정시켜보려 하지만 효과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데이비! 어떻게 해봐!”
어쩔 줄 모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뭣…….”
굳이 해줄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연회장 쪽에서 익숙한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본 나는 표정을 굳힌 채 곧바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흑백 톤의 드레스를 입고 있던 페르세르크 또한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몸을 소형화해 내 어깨에 올라앉았다.
연회는 마법을 펼치는 곳이 아니다. 앞으로 대륙의 미래에 이바지할 새싹들이 서로 국경을 넘어 친분을 쌓는 곳이다,
그런 데서.
마나가 움직였다.
그것도 윈리의 마나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