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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57화 (456/1,559)

제 457화

연회장 내부 분위기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 중심에는 잔뜩 열이 받은 얼굴로 서 있는 윈리와 상당히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왜 화를 내고 그래? 내가 틀린 말을 했나?”

“이봐요. 당장 그 발언 철회하세요. 율리스님은 당신이 그렇게 평가 절하해도 되는 분이 아니니까.”

싸움이 벌어졌다.

툭하면 싸움이라니, 어차피 서로 경쟁자들이기에 서로 간의 신경전은 없잖아 있는 일이지만 이런 경우는 사실 잘 없어야 정상이다.

“가는 곳 마나 액운이 따르는구나.”

아무도 없는 테라스에 내려앉아 내부를 들여다보자 소년이 어깨를 으쓱이는 게 보였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이봐요! 멀린!”

“왕녀님,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율리스 장로가 현재 당신의 사수라고 해도 진실을 왜곡시켜가면서까지 지키는 건 오히려 본인에게 더 불명예를 안겨주는 꼴 아닌가?”

“진실을 왜곡시켜요? 이봐요, 지금 장난해요?!”

윈리의 마나가 더욱 흉폭하게 날뛰었다.

윈리가 저렇게까지 화내는 걸 잘 본 적이 없는데.

“저 소년이 멀린인가 보군. 보아하니 싸움이라도 난 모양인데?”

“전통인가 진짜.”

겉보기엔 참 부드러운 인상의 잘생긴 소년이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느긋함이 나와 비슷했다.

“아니면, 지금 여기서 나와 한바탕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

주먹을 꼭 쥐고 파르르 떠는 윈리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주변 사람들은 곧 벌어질 일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는지 모두가 침묵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후우.”

한참 동안 그를 노려보던 윈리는 곧 몸을 돌렸다.

“됐습니다. 당신이 이토록 저열한 인간인 줄은 몰랐네요.”

“거참 저열하다니. 그 사수에 그 부사수답네.”

“내일 대회에서 당신의 콧대를 눌러버릴 겁니다.”

“어이구야, 무서워라. 기대는 해보지.”

끝까지 빈정대지만 윈리는 냉정한 표정으로 그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흉흉하게 날뛰던 마나도 한 번에 거둬들인 그녀는 짜증스레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아, 오라버니.”

“화가나?”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 없어요. 저 인간.”

한치의 가감 없이 대답하는 녀석의 모습이었다.

“오라비가 혼내줄까?”

“아니에요. 애들 싸움에 어른 끼는 거 아니랬어요.”

고작 두 살 차이인데.

처음보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위치까지 올라가 버렸다.

참 웃긴 일이다.

“저런 인간하고 대치하는 건 똑같은 수준이라는 거겠죠. 불만이 있으면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니까요.”

“이길 자신 있니?”

“없어요. 서클부터 차이가 너무 나는걸요.”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6서클과 4서클, 게다가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녀석의 실력은 그냥 넘기기엔 너무 뛰어났다.

일리나가 전무후무한 검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면, 그는 가히 악마와 같은 마법의 재능을 두르고 있다.

다만.

그건 거기까지일 뿐이다.

윈리와 대치하고 있던 그를 직접 본 내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한계네.”

“한계?”

“슬슬 벽에 부딪힐 거다. 그걸 어떻게 해결할지는 모르겠다만, 그거야 내 알 바가 아니지.”

“쿡쿡…….”

성격만 멀쩡했으면 대륙에서 유명한 존재가 되었을 텐데. 워낙에 오만한 성격이다 보니 재능이 있어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한 왕국에서 그를 왕궁 마법사로 섭외하려 했지만 대놓고 면전에서 면박을 주고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윈리가 해주었다.

“만약에 말이야 데이비.”

“음?”

“윈리가 그 아이와 싸우다 다친다면.”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면 안 된다면서?”

“그렇긴 하지. 웬일로 담담하네.”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는 건 제법 추한 짓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 오만이 애들 싸움을 넘어서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 * *

성황리에 마법 대회가 개최되었다.

나름 쟁쟁한 실력을 지닌 귀족가, 왕족 등등 마법에 재능있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모두 참가한다.

참가 인원은 128명으로 나름대로 엄선한 모양이지만 그 수가 상당히 많았다.

“여기야 데이비.”

미리 귀찮은 것들을 다 정리했는지 일리나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일리나 뿐만 아니라 여러 중요인사로 보이는 인물들과 그 사이에 있는 익숙한 노인도 보였다.

“허허허, 오랜만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전에 마탑에 보낸 선물은 잘 받으셨는지요.”

“껄껄껄. 선물이라, 잊지 못할 선물이었지.”

적탑 전역에 CS탄을 터뜨려버렸던 일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일리나의 곁에 앉자 그녀는 자신의 품에 있던 작은 상자를 보여주었다.

“이게 은사님이 만드신 보옥이야. 마법사들이 침을 질질 흘릴 정도의 고급 아티펙트라고 들었어.”

헬리슨 발레스티아가 누구이던가.

그는 대륙에서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며 다른 마탑에서조차 존경심을 금치 않는 인격자이며, 지혜로운 인물이다.

경쟁을 떠나 그의 일면은 존경받을 가치가 있었다.

“허허, 그저 마법 사용을 보조해주는 보옥일세. 자네의 눈에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겠지만.”

“충분히 대단한데요.”

픽 웃으며 답하자 그가 껄껄 웃어 보였다. 빈말은 아니었다.

그는 대륙 최고의 마법사라 불릴 만큼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이번 대회의 대상이 이 보옥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다들 전의를 불태우고 있어. 아마 흔히 보기 힘든 대회가 될 거야.”

일리나는 마법사들이 결계를 설치하고 있는 대회장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대회의 취지는 화합을 목표로 한 친선경기이다.

그런 만큼 의도 자체는 정말로 좋았다. 실제로 이런 대회를 펼치는 것으로 서로 간에 경쟁이나 불만 등을 푸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지구의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수많은 국가를 한마음으로 모으는 효과는 확실했다.

이윽고 일리나와 대현자 헬리슨의 축사를 시작으로 대회가 개최되자 경기장의 열기는 더더욱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장 우선순위로 올라온 것은.

멀린이라는 소년.

그리고, 처음 보는 귀족가의 아가씨였다.

알록달록한 완드를 들고 올라온 그녀는 긴장한 듯 짧게 숨을 내쉬고는 느긋하게 서 있는 그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테메테스 백작가의 삼녀인 오린 테메테스에요. 잘 부탁드려요.”

“이런 예쁜 아가씨네. 끝나고 식사 한 번 어때요?”

“……”

거슬리는 듯한 말투에 오린 테메테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대회 중엔 대회에 집중해주세요. 저는 비록 이래 봬도 3서클 마법사니까.”

나이는 대충 십 대 후반 정도.

퍽 귀여운 인상의 소녀다.

“어떻게 될 거 같은가?”

자리에 앉아 있던 내게 페르세르크가 물어오자 곁에 있던 일리나도 궁금해졌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맞아. 궁금한데?”

“멀린이 이기겠지.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아.”

“하긴.”

내 말대로였다.

“불씨여, 나 여기서 영창한다!”

오린 테메테스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완드 끝으로 축구공만 한 파이어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멀린은 스태프도 완드도 없이 느긋하게 팔짱을 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에 잔뜩 열이 받은 오린이 이를 악물고 파이어볼을 빠르게 쏘아 보냈다.

결투가 아닌 대련인 만큼 힘 조절은 필수이지만 오린은 그의 도발에 열이 뻗쳤는지 제대로 힘 조절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날아든 파이어볼이 그를 헤치려던 그 순간.

가만히 있던 멀린이 하품을 쩍쩍하며 한발을 들어 보였다.

쾅!!

동시에 그의 발이 지면과 충돌하며 바닥에서 물줄기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대로 오린의 파이어볼을 집어삼키다 못해 역공을 가했다.

“든든한 벽이 되어 나를 보…… 꺄악!!”

결과는 뻔했다.

장문 영창을 하는 오린과 다르게 멀린은 아주 작게 시동어만을 내뱉는 것으로 마법을 펼쳤다.

속도, 밀도, 숙련도 모든 면에서 밀리니 당연 오린 테메테스는 물줄기에 휘말려 그대로 경기장 밖으로 튕겨 나가버렸다.

승패가 결정 난 것이다.

“무영창!?”

그 모습에 깜짝 놀란 대중의 모습이 보였다.

멀린이 공식적으로 활동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탓에 대중은 영창도, 시동어도 아닌 무영창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는 멀린의 행동에 경악할 수 있었다.

“무영창은…… 너만 가능한 거 아니었어?”

일리나가 놀랍다는 듯 나를 보며 물어오자 나와 페르세르크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속은 거야 멍청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시동어를 뱉고 있어. 최소한의 요구치만 충족시켜서 마법을 발현시킬 정도면 재능이 보통은 아닌 게지.”

그 말에 일리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속도 빠른 마법사들은 상대하기 참 까다로운데……”

그녀는 자신이 검을 들었을 때 그를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물론, 내 입장에서 볼 때.

저놈은 레이나는 커녕 일리나에게도 이길 수 없다.

재능에 비해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경기를 뒤로 한 채 빠르게 경기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10대 소년 소녀들은 자신들의 가진바 모든 것을 내던지며 경기에 임했고 명예롭게 패하고, 명예롭게 승리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몇몇은 있었다.

성격이야 어찌 되었건 현재 우승후보로 추측되는 멀린과 4서클 마법사이면서 경험과 실력도 풍부한 윈리.

그리고 그 외에 여러 마법 가문의 자제들까지.

제법 대단한 이들이 많이 모였지만 결론적으론 그러했다.

“허허, 올해는 재능이 풍년이로고.”

“어차피 다 소속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침 발라도 나올 거 없어요.”

“허허, 그저 성장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네. 이 대회에서 이기는 승자가 아티펙트를 받고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늙은이의 재미인 게지.”

그렇게 좋게만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이들은 몰라도 멀린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계속해서 압도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며 두각을 드러내는 그의 마법 실력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모두가 한 번에 제압당했다.

그것도 상당히 질이 나쁜 게 상대가 마법을 선공하면 반드시 그것을 짓누르는 마법을 고속 영창하여 상대를 채로 뭉개버리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은 굉장히 따분해 보였다.

“따분하고 재미없네.”

그 말에 반대편에서 녹발의 소녀가 천천히 올라왔다.

“따분하고 재미없어요? 그런 주제에 이곳에 왜 나왔는데요?”

싸늘한 물음이었다.

“이런, 귀여운 아가씨. 뭐, 비하하려던 건 아니야. 다만 사실이잖아? 마법이라는 건……”

그가 한 손을 펼쳐 보인다. 동시에 그의 손에 공기의 변화가 일어나더니 푸른 화염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쉽고 따분한 건데.”

그가 선보인 마법에 좌중이 경악하기 시작했다.

“고열…… 도저히 6서클에 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고열의 화염구…….”

일리나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린다.

반대로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페르세르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천재인 줄은 알았다만…… 설마 원소기호까지 독자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이봐요! 당신에겐 따분할지 몰라도 다른 이들에겐 평생의 목표가 될 수 있어요!”

윈리의 외침에 그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걸 내게 강요하지 마. 마법은 애들 장난일 뿐이니까. 난 이거에 왜 흥미를 느끼는지 모르겠어. 마탑도 그저 장사꾼들의 소굴일 뿐이잖아?”

“……”

“그 논리를 깨뜨리고 싶다면.”

그의 손에 푸른 화염구가 모여들었다.

“나를 이겨봐. 그럼 받아들이지.”

그 말과 동시에 윈리가 품에 안고 있던 스태프를 가볍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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