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63화 (462/1,559)

제 463화

마녀의 존재.

티오니스 대륙에 마녀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정교 이단 심문회에서 악질적인 특질능력자들을 잡아 마녀라는 명칭을 붙이면서 유래되었다.

문제는 지금은 없어진 정교 이단 심문회가 정상적인 집단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주로 정교 이단 심문회가 하던 것은 공포를 조성한 성국의 실권 강화.

그 과정에서 희생된 애꿎은 존재가 많은 것은 숨길 수 없는 진실이었다.

물론, 마녀라 불릴 만한 존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능력자라고 분류해도 괜찮은 특질능력자,

그녀도 그런 존재인 것일까.

정체불명의 마법 책을 꼭 끌어안고 있는 그녀는 척 보기에도 마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굳이 챙이 있는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중요한 건 다른 부분에 있었다.

“꼬마야, 여긴 위험한 곳이란다. 훠이훠이 어서 가거라.”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어버리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그녀를 똑바로 직시했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지 않나?”

“글쎄, 나는 모르겠는데. 쓸데없는 작업을 걸 정신은 있나 보구나.”

느긋한 말투로 말한 그녀가 품에 안고 있던 마법서를 고쳐 안았다.

척 보기에도 무게가 상당해 보였다.

“꼬마…….”

“그쪽이 얼마나 살았는지 모르겠다만 겉보기엔 그쪽이 더 꼬마 같으니 호칭 정리는 확실히 해두자고,”

“흐음, 마녀는 평생은 늙지 않는단다.”

“그쪽이 브리우크 왕국에서 한창 유명한 그 마녀인가?”

내 말에 그녀는 침묵으로 답했다.

“뭐가 되었건 그쪽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거든.”

메스텔레포트 사건은 브리우크 왕국에 중요하지만 나는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쪽의 이름이, 혹시 베르단데인가?”

내 물음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몬스터를 찾아 들어온 이 숲에서 만난 마녀.

그녀가 심연의 공주였던 울드의 동생 베르단데가 맞는지는 눈으로 보고도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진짜 심연의 공주 베르단데는 내가 그녀 자신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 굳이 숨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의 몸에선 심연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탓에 겉보기로 판단하긴 어려웠다.

‘페르세르크.’

이에 내가 페르세르크를 통해 그녀를 조사해보라 눈치를 보내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동시에 뭔가 생각하는 듯하던 마녀가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쿠웅!!!

숲 저편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커다란 진동이 전해져왔다.

스팡!!!

동시에 마녀는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고, 나는 그녀를 뒤쫓을 새도 없이 그 자리에 남겨져 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군.”

“확인해봤어?”

“그녀가 이 마경을 지배하는 마녀라는 것 이외엔…… 그 외에는 별것 없었음이야.”

심연의 권능으로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녀는 아닐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그녀가 방금 사용한 힘은 심연의 힘이 아니라 특질능력자들의 몸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독립적인 힘이었다.

“꽝인가 본데.”

그 말인즉 그녀는 심연의 공주인 베르단데가 아니라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나름대로 아이나와 레이나가 단서를 좁히고 좁혀서 찾아낸 것까진 좋은데 정작 그 이후가 신출귀몰 그 자체였다.

대체 어디에 숨어있기에 이렇게 찾기가 힘든 건가 싶어 괜스레 짜증이 치솟았다.

“그토록 찾기 쉬웠다면 심연의 공주 울드가 벌써 찾아냈겠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랜 시간 이 세상에 숨어있는지는 본녀도 의문인 게야.”

“돌아가자.”

그녀가 심연의 공주 베르단데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다면, 더 이상 개인적으로 그녀를 찾아 헤맬 이유가 없다.

너무 깔끔한 결론에 괜스레 김이 빠질 지경이었다.

“데이비.”

“음?”

“그 베르단데라는 심연의 공주를 찾으면 어찌할 게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숲의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죽여야지.”

페르세르크와 관련되어서 그 어떤 심연의 우환거리도 남겨놓을 순 없다.

* * *

마녀의 마경은 하늘을 통해 지나갈 수 없는 구조였다.

거대한 안개가 높게 퍼져 아예 보이지 않게끔 되어있었으니 말이다.

그 탓에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그곳을 향해 이동했을 때.

나는 수많은 마물, 그리고 그 마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세상에…….”

이미 늦었다.

십수 명 정도 되어 보이는 기사들은 모두 숨이 끊어졌는지 차가운 숲의 바닥에 널브러져 침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마물들은 정신없이 그들의 시신을 뜯어먹으며 포식을 즐기고 있었다.

분명 수색은 당장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나를 따라오는 백호, 흰둥이를 품에 안아 든 나는 녀석들을 불러 놈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어이.”

거대한 체격의 마물들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블러드 보어.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에 있을 때 교범에서 본 적이 있는 동부 지역의 마물이다. 리인포스 알파가 아닌 다른 라스트 위스프 본부 쪽에서 주로 토벌하는 몬스터라고 들은 바 있다.

주로 육식을 하며, 그 힘이 그리즐리 베어의 수배에 달하는 근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한 마물이다.

입가에 묻은 핏자국이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르르르……

피가 섞인 침을 질질 흘리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들을 향해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들 하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건드리거든.

내 품에 안겨있던 흰둥이가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눈을 번뜩였다.

“흰둥아, 펀치.”

고양이들의 특유의 후려치기는 제법 효과가 좋다.

내가 녀석을 놓아주기가 무섭게 호랑이 정도의 크기로 거대한 녀석의 앞발이 블러드 보어들을 덮쳤다.

* * *

백호 흰둥이는 그야말로 용맹함의 신수다웠다.

녀석의 거대한 앞발은 그 강한 힘을 지닌 블러드 보어들을 일순간 처 날려버렸고 거침없이 놈들을 짓밟고 찢어발겼다.

그야말로 맹수 그 자체의 위용을 보여주는 흰둥이의 전신에 대지 정령의 힘과 비슷한 땅의 힘이 스며들었다.

꾸웨에에에엑!!

마지막 한 마리의 블러드 보어를 날려버린 흰둥이는 곧이어 낮게 포효를 터뜨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쟤…… 뭐하냐?”

“본녀도 몰라…….”

그대로 드러누워 버리더니 이내 추욱 늘어져 버렸다.

마치 다했으니 잠이라도 자겠다는 듯한 그 모양새였다.

천천히 다가가자 녀석이 흘낏 시선을 내게 보내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잘했다…….”

이에 나는 녀석의 옆구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자 녀석이 만족스러운 듯 그르릉거렸다.

도도한 병신미라는 게 신수의 특성인 모양이었다.

“데이비. 이걸 봐. 브리우크 왕국의 왕궁 기사단 마크야.”

“수색이라도 하러 왔던 건가?”

내가 숲으로 온 사이에 왕태자가 독단으로 결정을 내렸던 모양이었다. 이미 쓰러져 죽은 기사들의 수는 십수 명.

나는 그들의 시체를 말없이 바라보다 그들의 목에 걸린 은빛 목걸이들을 모두 회수했다. 시신은 이곳에서 매장하고 그들을 증명할 수단만 가지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한 기사의 갑옷 수납공간 안에서 영상기록 아티펙트를 두 개 발견할 수 있었다.

한 개는 멀쩡히 가동하고 있지만, 나머지 하나는 파손되었는지 가동하지 않았다.

“영상기록 아티펙트라…… 멀쩡한 건 계속 녹화되고 있는데?”

“이들을 죽인 범인에 대한 것도 나올지 모르지.”

페르세르크의 말에 나는 영상 기록장치를 끄고 이미 저장된 내용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그것은 숲에 들어올 때부터의 기사단 모습을 기록하고 있었다.

사상자 하나 없이 치밀하고 신중하게 마경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자니 크게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들이 기이한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영상기록 도구에 놀라운 장면이 포착되었다.

초록빛 피부에 거대한 근육질 체격을 가진 4족 보행형 괴물.

그 괴물의 모습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마물왕 브라가.”

군단이자 마법의 숙주라고 했던가.

오만한 마법사 멀린을 잡아먹기 위해 그를 죽이지 않고 오랜 시간 마나 호박에 가둬놨었다던 그 남부의 괴물이 분명했다.

뭐 결과적으로 그런 우연과 우연이 겹친 상황에서 살아남은 멀린은 압도적인 재능을 얻게 되었지만 말이다.

실제로 기사들을 죽인 것은 강대한 놈의 마법 세례였으니까.

한참 동안 말없이 영상을 바라본 나는 나머지 파손된 영상 아티펙트를 아공간에 넣고 멀쩡히 가동하는 아티펙트는 바깥의 주머니에 담았다.

부서진 건 챙기더라도 이들의 죽음에 대한 정보와 죽인 이에 대한 정보가 담긴 소중한 정보는 브리우크 왕국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이것이 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줄 유일한 물건일 테니까.

“부서진 건?”

“뭐, 조금 호기심도 동하니까 고쳐보게.”

사람의 호기심은 참 깊고도 깊은 편이다.

이후 나는 기사들의 시신을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는 흰둥이를 향해 말했다.

“시신들은 이곳에 묻어줘.”

내 말에 녀석이 꼬리만 까딱일 뿐 일어나지 않는다.

“흰둥아.”

까딱!

또 한 번 꼬리만 까딱이는 녀석이었다.

듣고 있는 주제에 하지 않으시겠다?

“불닭아, 쪼아.”

-키이이이이이익!!!

내 말에 불닭이가 기다렸다는 듯 흰둥이를 향해 덤벼들자 녀석이 펄쩍 뛰며 일어나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맞을래? 말 들을래.”

내 물음에 흰둥이는 눈치를 살피듯 나와 불닭이를 바라보았고 이내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그그그그극.

동시에 방대한 힘이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오며 대지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기사들을 고이 삼키며 땅속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 *

내가 가져온 소식으로 인해 왕국은 한바탕 뒤집혔다.

국왕의 명령 없이 왕태자가 독단으로 기사들을 파견한 꼴이지만 그 어떤 귀족도 그것을 놓고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 말인즉, 왕국 내에 대부분의 귀족이 왕이 아닌 왕태자의 편이라는 말로 통했다.

“마물왕 브라가가 이곳에 있다니…….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 되네요. 그 녀석은 마법의 숙주라 부르는 괴물이에요. 그 녀석이라면 8서클 메스텔레포트를 사용해도 이상하지 않겠네요.”

“마물이 마법이라니 웃기지도 않네.”

“브라가는 본능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니까요. 조금 특이한 마물이죠.”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소곤거리는 레이나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분명 브라가는 대륙의 남쪽에 서식하고 있던 마물왕인데 어째서……”

조용히 레이나와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도 국왕이 있는 어전은 설전으로 정신이 없었다.

“이토록 위험한 괴물이라면 하루라도 방치할 순 없습니다!”

“왕국의 자랑스런 기사단 십수 명을 일순간에 절명시킬 정도의 괴물입니다. 놈을 쉽게 토벌하는 게 가능하다 보십니까?”

귀족들의 설전이 더욱 심화해갔다.

“지금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현재 이곳에는 대 현자님과 성자님, 그리고 빛의 용사님이나 검의 공주님까지 계시지 않습니까! 그 외에도 수많은 분께서 도움을 주시려고 하고 계십니다!”

“마물의 문제는 우리 브리우크 왕국 내의 문제입니다.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이는 건 문제의 여지가 있소!”

저들끼리 토론을 하느라 정신없는 상황.

나는 흥미를 잃은 채 부서진 아티펙트를 슬쩍 꺼내 바라보았다.

충격으로 파손된 아티펙트다.

그런데.

‘이거 묘하게 사람 손으로 부순 거 같지 않냐?’

‘억측이겠지. 과한 싸움 중에 충격을 받아 부서졌다고 보는 게 더 옳을걸?’

페르세르크의 의견에 나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확실히 내 억측보다는 그녀의 의견이 더 신빙성이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생각한 것도 잊지는 않았다. 마치 이 안에 담긴 내용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헌데…… 저런 괴물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요.”

“모르지요. 마녀가 왕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소환했거나 만들어냈을지도.”

“그럴 수가……”

“마녀의 행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녀는 오래전 이 왕국의 죄 없는 백성들을 학살했다는 혐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호한 왕자의 말에 나는 숲에서 만난 검은 머리의 소녀를 떠올렸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은 위험한 마녀라고 말하긴 했는데.

솔직히 페르세르크의 권능으로 봐도 내 눈으로 봐도 그녀가 정말 그런 짓을 할 인물인지는 조금 의문스러웠다.

물론 정황 자체는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마물의 습격 당시 이 수도 내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녀를 본 것이 헛것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추측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때 가만히 있던 왕태자 그레이드 말론 브리우크가 자신의 뿔테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 왕을 향해 말했다.

“폐하. 이 마물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바로 빌어먹을 그 마경입니다. 마녀가 장악하고 있는 그곳이요!”

“왕태자. 공간이동까지 사용하는 괴이쩍은 마물이다. 그런 존재가 갑자기 나타난……”

“증거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병사 중에 몇몇이 목격했다 합니다. 저 괴물이 통로를 열어 마물들을 보냈을 때 그 마녀가 이 수도 안에 있었다는 것을요.”

그의 말에 좌중이 싸늘하게 침묵했다.

“사실…… 인가.”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로써 모든 단추가 들어맞는군요. 저 괴물, 빛의 용사님의 말에 따르면 브라가라는 이름의 괴물은 대륙 남부에 서식하는 마물입니다.”

“그래서?”

“더 볼 게 무에 있습니까! 그 빌어먹을 마녀가 우리 브리우크 왕국을 파괴하기 위해 남부에 살고 있던 괴물을 이곳까지 소환해냈다 라고 하면 모든 이야기가 통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한 그레이드 왕태자는 그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더는 죄 없는 백성들이 죽게 두지 마시옵소서. 폐하. 당장에라도 수색대를 보내 마녀를 잡아들이고 괴물을 토벌해야 함이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괴물은 불안전한 마법이지만 8서클 메스텔레포트를 사용했다 들었다. 그런 괴물을 감당할 수 있다 보는 것인가?”

그 말에 나선 것은 레이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검의 그립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 점은 걱정 마세요. 마물왕 브라가는 군단이자 마법의 숙주라 불리죠. 하지만 마법을 과하게 사용하고 나면 약 일주일 정도 마법을 쓰지 못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어요. 녀석의 특징은 놈을 호위하는 다수의 마물과 마법, 마법이 봉인된 지금 다수의 마물을 견제할 수 있다면 어렵지 않게 토벌 가능해요.”

지금만큼 적기가 따로 없다는 소리였다.

그녀의 말에 국왕은 머리가 아픈지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용단을 내려주십시오, 폐하. 이 이상 마녀를 두둔하다간 폐하의 앞일에 누가 될까 저어되옵니다.”

왕태자의 말에 일리나나 율리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대놓고 왕을 폐위시키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국가 내의 문제는 외부의 세력이 명분 없이 끼어들 수 없는 것이 규칙이었으니까.

아무리 현자나 제국의 황녀님이라도 간섭해서 될 게 있고 안될 게 있는 법이다.

아들의 그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고수하던 왕은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못난 꼴을 보여 면목이 없소. 지금 우리 브리우크 왕국의 힘만으론 그 괴물을 처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오.”

그의 말에 헬리슨 발레스티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법을 사용하는 마물이라니 흥미롭네요.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탑의 장로이자 중앙 마탑의 장로로서 한 팔 걷겠습니다.”

“용사로서 공인되어있는 입장이니 저도 거들겠습니다. 브라가에 대한 정보를 아는 건 저 뿐일 테니까요.”

“팔란 제국도 참가합니다. 외부의 문제가 개입된 이상 중앙 제국의 이름으로 왕국을 비호하겠습니다.”

그 외에 몇몇 단체는 중립을 선언하거나 방관을 선언하거나 참전을 선언했다.

각기 자신들의 단체에 관련되어 이익의 문제를 면밀하게 따진 결과들이었다.

“데이비 성자님께서는……”

이윽고 왕태자 그레이드 말론 브리우크가 나를 바라보며 묻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이 와중에도 국왕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굳어져 있었다.

마치 원치 않는 방향으로 모든 일이 굴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왕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왕자나 왕이나 똑같은데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과할 정도로 마녀를 죽이려 드는 왕자와 살리려 드는 왕이었다.

‘데이비, 정말…… 이대로가 맞는 것인 게야?’

‘본인이 미치지 않고서야 일부러 죄를 뒤집어쓸 리가 없지 않겠냐. 페르세르크.’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브라가 퇴치에 한 손 거들죠. 뭐, 지분 요구 정도는 가능하겠죠?”

내 우스갯소리에 주변에서 희희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마물왕 브라가를 처리할 연합이 결성되고 회의를 파한 시각.

나는 벌써 어두워진 주변을 흘끗 보며 내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작은 책상에 파괴된 마석 아티펙트를 올려놓았다.

무언가를 가득 저장하고 있지만 파손되어 출력이 안되는 마법 아티펙트.

‘과연 넌 뭘 숨기고 있는 거냐.’

나는 반 흥미에 가까운 심정으로 그 마법 아티펙트를 분해하고 서서히 개조, 수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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